[기자수첩] 오더링(authoring), 도구가 창작자를 자유롭게 할지 어니

칼럼 | 이현수 기자 | 댓글: 11개 |
게임이나 영화는 여러 인접산업이 융합하는 대표적인 산업으로 꼽힌다. 영화나 게임이나 여러 팀이 한데 모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철저히 전문적인 집단이 모여 만드는 만큼 의사소통만큼이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자본과 기획이 중요하다.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영화를 제작해 줄 제작사부터 찾아야 한다. 이미 준비된 자본이 있어서 시나리오 작가를 고용한 후,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제작사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면 아이디어를 체계화해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나 아티스트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환상적인 영감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엔지니어 없이는 구체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영화나 게임 산업에서 '기획서'를 그토록 받드는 것이다. 문제는 창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그 '삘'이 문서화 되는 과정에서 애초 의도와는 다른 느낌으로 변질하거나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어마어마하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샘 솟는 천재도 기획서를 쓰지 못해 역사의 전면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발의 민주화’와 ‘문제 해결’의 기치를 휘날리는 유니티는 엔진을 통해 창작가들에게 새로운 도구를 들려줬다. 디자이너나 아티스트, 애니메이터가 직접 디지털 미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유나이트 오스틴에서 보고 들은 '유니티'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단순 편의도구를 넘어서는 '창의, 창작 도구'였다.




3일 내내 들었던 오더링(authoring,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 제작)은 이를 대표해주는 단어다.

과거만 해도 영상 미디어 편집은 전문가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파이널컷 프로나 다른 소프트웨어를 통해 누구나 영상을 편집할 수 있게 되었고, 포토샵을 통해 누구나 사진 편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유니티는 이와 마찬가지로 엔지니어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창작자에게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전문적인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더라도 엔진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도구가 있다 보니 창작가들은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될 테고 재능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생길 터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만약 데이비드 헬가슨이 11살 때 컴퓨터를 접하지 않았다면 유니티라는 브랜드가 지금과 같이 존재했을까?

자유와 기회는 선택지의 방대함으로 방증할 수 있다. 선택 요소가 많다면 그만큼 속박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도구는 선택지를 늘려준다. 도구는 도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목적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도구는 자유의 범위를 확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닐 블롬캠프 감독은 인터뷰 중 "원한다면 방에서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디스트릭트9'과 '채피’로 널리 알려진 닐 블롬캠프(Neill Blomkamp)감독은 유나이트 오스틴에서 유니티 엔진으로 제작한 단편영화 ‘아담: 더 미러(Adam: The mirror)'를 상영했다. 사실 유니티 엔진을 게임 외 영역에서 사용하는 건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아담: 더 미러’가 주는 진짜 의미는 도구가 생각을 확장하고 창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이미 익숙한 것에서 도구가 제공하는 것 이상을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익숙한 것에서 불확실을 추구하는데 따르는 부담감 때문이다. 생각이 도구를 한정해버리는 것이다. 특정 개념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때 생기는 일인데, 자바 프로그래머가 C언어로는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해답은 정해져 있을지언정 답에 이르는 길은 다양할 수 있다. 어떤 것을 사용하든 간에 원하는 결과를 높은 수준에서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 상관이겠는가?

그래서 도구는 끊임없이 창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하는 역할도 수행해야만 한다. GW베이직에서 C로 발전한 것만 보더라도, C언어 문법에 inline이나 restrict 등 새로운 문법이 확장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유니티 2017.2는 이런 구실을 하려고 하는 듯이 보인다. 홍보를 겸해서 자사의 결과물을 공개하지만, 이는 높은 수준의 창작가들이 대중 및 또 다른 창작가들에게 영감과 인사이트를 전달한다. 그것이 기술적이든 창의적이든 기술이 촉발하는, 도구가 촉발하는 자유를 배양하고 영향을 준다.




실제로 아담 마이힐(Adam Myhill) 시네머신 책임자의 세션에서 진행된 타임라인 시연 중 맨 앞자리에 있던 여성은 눈물을 터트렸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전통적인 방법이 너무 어렵고 힘이 들어서 꿈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쉽고 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을 보고서는 희망을 얻었다. 감동에 북받쳤다."

이처럼 높은 수준에서 도구와 창의적 사고는 서로 융합되어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언뜻 체감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보자. 게임 UI 작업은 굉장히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그 중요도가 높으므로 UI 디자이너들은 반복 테스트를 통해 최적의 UI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픽셀 단위로 위치를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는 엔지니어들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엔지니어로서는 겨우 몇 픽셀 옮기는 작업에 일정을 소모해야 하니 귀찮고 계속 부탁해야 하는 디자이너로서는 미안하고 번거로운 작업이다.

'9이닝스 매니저'를 개발한 에이스프로젝트는 UI 디자이너가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는 툴을 만들어 UI 디자이너에게 자유를 부여했다. UI 디자이너는 좀 더 자유롭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엔지니어들은 더 고도화된 기술활동에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유니티나 언리얼이나 종합 엔진이 된 시점에서 인간은 또 한 번 진보를 경험할 것 같다. 게임 엔진 개념이 보편화하지 않았던 2D 초창기 시절에는 엔지니어들이 혼자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상상력과 게임 시스템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래픽 개념이 자리 잡자, 아티스트들은 스프라이트로 애니메이션을 표현했고 3D 시대가 열리면서 스프라이트 반복작업과 차원이 다른 영화와 같은 카메라 이동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제작프로세스에 큰 장점을 가져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2017.2를 이해하면 이해가 쉽다.

아티스트들은 자유를 얻었고 기존에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많은 창작이 가능해졌다. 엔지니어 역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에게 할애했던 시간을 좀 더 기술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의미에서의 자유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유니티와 같이 모두에게 개방된 상용 엔진은 다양성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출판물을 배포할 때 인쇄하지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예술가들은 인쇄기의 푸른 색 발색에 지대한 관심을 뒀다. 통상적으로 푸른색이 잘 발색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예술가들은 푸른색만 별도로 인쇄하여 출판하고는 했다. 이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여 창의성 외의 요소가 창작 활동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들어서면서 본래의 색채와 흡사하게 무한대로 복제, 전송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창작가와 수용자 모두에게 새로운 자유를 부여했다. '개발의 민주화'를 주창하는 유니티의 새로운 기술은 창조성과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증진하므로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한다고 볼 수 있다. 결과물을 획득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허들을 낮추고 다양성과 다원성을 창의성과 묶고 있다.




흔히 예술은 기술적이고 의도적인 표현활동이라고 한다. 창작가의 개성과 의도를 강하게 나타낼 때 아름다움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창작가가 직접 기술을, 도구를 사용할 때 개성과 의도는 강하게 표출된다. 새로운 기술을 품은 도구의 핵심적인 주제는 어떠한 주체가 새로운 것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event)'이다. 창작가가 새로운 미디어를 만나 전대미문의 결과물을 탄생시키며, 그로부터 파생하는 것은 새로운 유형의 미디어 혹은 혁신적인 '무엇'일 확률이 높다.

이는 기존의 기반에서 상태 변수의 변경을 통해 무수한 변주곡을 만들어 낸다. 게임 및 영화와 같은 상호작용 미디어가 정밀도를 올려가며 구체화하는 선형적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변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최적의 모습을 조합해나가는 비선형 프로세스도 적용할 수 있게 해준다.

오스틴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텍사스 대학 정문 앞 게시판에 'veritas vos liberabit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아마 동아리 모집 문구였겠지만, 3일간 유나이트를 누빈 나에게는 창작자의 아이디어(진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는 말처럼 보였다. 유나이트 오스틴에서 본 도구는 창작가에게 표현의 자유와 역량 그리고 가능성을 선사하고 있었다. 오더링(authoring), 도구가 창작자를 자유롭게 할지 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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