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공지능을 이용해 돈을 쥐어짜는 기획서가 유출됐다

칼럼 | 이현수 기자 | 댓글: 22개 |
출근 중 GDF에서 한 건의 글을 봤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의도적으로 사용자경험을 변조해서 과금을 유도하는 기획서가 유출됐다는 내용이다. 기획의 논거가 되는 논문 데이터도 함께. 누가 이미지를 올렸는지는 모른다. 원래 슬라이드와 논문에 적힌 작성자, 브랜드, 상품명 등이 지워진 상태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신선한 충격이랄까? 지금까지 구조 설계는 보통 알고리즘 기반이었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액티비전-블리자드'의 과금 유도 특허(연구라고는 하고 있지만)처럼 일종의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구조 설계에 도입되어도 충분하다는 방증이니 놀랄 수밖에.

일종의 싱귤래리티(Singularity)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등이 2045년께나 도래할 것으로 예측했던 그 일이 '알파고 제로'를 통해서 앞당겨진다는 소리가 나올 때 즈음이라 더 충격적이다. 역시나 유출 슬라이드를 보고 해외 테크놀로지계열 매체와 포럼에서는 '악몽'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우려를 표했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우려가 가열되고 있다.




게임 산업에서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초기 태동부터 미약하나마 함께 해왔으니까. 물론 지금과 같이 ‘강화 학습 시스템’(reinforcement learning system)' 같은 건 당연히 아니었고 낮은 단계의 인공신경망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서도.

아무튼 출처 불명의 슬라이드에는 AI를 이용해 게임 플레이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분석해, 게임이 각각의 사용자에 대해 최고로 효율적인 수익전략을 취할 방법이 제안되어있다. 일관적으로 사용자 경험 자체를 변조하여 불평등한 결과를 일으킴으로써 게임 내에서 낭비를 이끌어 내려는 거다. 사용자 패턴과 사용자의 현실 정보 등을 학습하는 것으로 '프리미엄 액티비티'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 하나 때문에 게임에 인공지능을 도입해야 되는걸 우려하는 막연한 불안감이나 공포, 두려움은 경계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신기술이 탄생할 때마다 역기능이 지적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인류는 신기술의 순기능에 주목하며 혁신의 길을 걸어왔다. 인공지능 기술의 어두운 면을 보고 부정적인 접근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2015년 유엔 미래보고서에 따르면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행동분석 및 예측을 포함하여 언어번역, 음성인식, 금융, 법률, 교육, 보험 등에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소비문화 요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기술과 연계점이 아주 단단한 게임의 적용 가능성과 범위는 매우 넓다고 본다.

게임에서 인공지능의 미덕은 같이 잘 놀아주는 최고의 NPC다. 알파고와 같이 경쟁하고 우월성을 입증하기보다는 사용자 수준에 맞는 게임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방준혁 의장이 NTP에서 말한 "아이랑 놀아주는 게 더 어렵다. 너무 쉬우면 난도를 좀 올리고, 너무 어려우면 아이 수준에 맞춰 내려서 아이가 흥미를 계속 가지게끔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쉬우면서도 적합할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오래전부터 게임 속에 강화학습을 탑재한 인공지능을 선보였다. '블레이드&소울'의 무한의 탑이 가장 대표적이다. 무한의 탑 인공지능은 공격패턴이 정해져 있어 숙련이 가능한 NPC가 아니라 정해진 패턴 없이 상황에 따라 학습, 판단해 반응을 보인다. 엔씨소프트 AI 센터는 AI랩과 NLP(자연어 처리)랩으로 구분하여 운영 중이다.

넥슨은 지난해 AI 연구조직이었던 분석본부에 인력을 추가, '인텔리전스랩스'를 출범했다. 데이터분석팀과 라이브 서비스, 라이브 개발실, UX 분석팀 등 기술 기반 조직을 통합해 만든 조직이다. 게임 내 AI를 활용한 콘텐츠와 시스템 적용을 본격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듀랑고나 출시 예정인 피파 온라인 4에 적용됐다.

넷마블은 2014년부터 맞춤형 서비스 엔진 '콜럼버스'를 언급하고 개발 중이다. 방대한 운영 데이터로 사용자들의 패턴, 습관을 분석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카카오 VX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AI 챗봇 플랫폼을 활용해 부킹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을 상업단에서 긍정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은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유출 슬라이드처럼 기술에는 언제나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신기술이었던 다이너마이트, 원자력, 로켓 등은 문명의 파괴를 이끌기도 했다. 스티븐 호킹 교수가 "인류는 100년 내 AI에 의해 끝장날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AI 시대의 도래를 거부할 수는 없다. 당연히 게임도 마찬가지다. 항상 새로움을 장단점을 같이 가지고 온다. 결국 이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인문학적 소양이 가미된 디자인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한 때 이 땅의 문과생들은 과학기술로부터 정서적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고결함을 보여주는 것에 자부심을 품는 풍조를 가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SF소설을 '공상'과학 소설이라 불렀을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제는 이과생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구닥다리'로 취급하고 있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배제된 기술에 안겨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지닌 위조 현실(counterfeit reality)능력이 이를 간파하는 능력을 능가해 디지털 불신을 조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유출 슬라이드처럼 말이다.

하지만 예측은 예측일 뿐이다. 게임에서 인공지능의 진화가 앞으로 어떤 게임 경험을 불러오게 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방향이 지금 연구 방향처럼 긍정적으로 사용되기를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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