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이덴티티게임즈가 잊고 있는 것

칼럼 | 이현수 기자 | 댓글: 36개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기로 장부 작성하고 구두로 외상장사하는 구멍가게들이 있었다. 당연히 시스템 자체가 필요 없었고, 그래서 체계적이지 못한 일 처리를 빗대어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관용적 표현을 쓴다.

최근 '드래곤네스트M'으로 잘 알려진 아이덴티티게임즈가 밀린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라는 고용노동청의 시정지시를 받은 뒤 이를 행한 것처럼 위조 이체확인증을 만들어 노동청에 제출했음이 밝혀졌다. 이체확인증은 직원한테 수당을 입금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다.

이를 확인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입금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허위로 꾸며 제출한 아이덴티티게임즈 대표인 구오하이빈을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아이덴티티게임즈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위조임을 확인하고 기별을 하자 곧바로 체납된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했다.

그러니까 아이덴티티게임즈는 지난 6월, 직원 160여 명의 3년 치 초과근로수당 6천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아 시정명령을 받았고, 8월에 포토샵 조작한 문서를 노동청에 제출하면서 시정지시를 이행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시중은행 직인까지 조작하면서 초과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한 아이덴티티게임즈, 문서만 대충 확인한 고용노동청의 행정편의주의, 둘이 손잡고 만들어낸 실소가 절로 나오는, 구멍가게를 떠오르게 하는 '사건'이다.

아이덴티티게임즈는 오늘(10일) 내부 조사 결과 경영진의 지시 없이 담당 관리자의 주도로 시정완료 보고가 허위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후에 내부 보고 프로세스와 초과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어차피 회사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아이덴티티게임즈가 위조했고, 고용노동청은 시중 은행에 확인만 해도 될 문제에 속아서 인제야 찾아냈고, 그전까지는 보고계통에 있던 모든 이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게 민낯인 것을.

어제(9일)부터 아이덴티티게임즈는 줄곧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경영진은 몰랐다고만 도돌이표를 찍고 있다. 노동청이 면피하기 위해서 회사에 뒤집어씌우는 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고용노동청은 너무 정교해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서로 피해자인 것처럼 군다. 그런데 피해자는 두 곳 다 아니다. 돈을 제때 받지 못한 사람들이 피해자고, 아이덴티티게임즈의 입장문에 그들에 대한 사과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퇴사한 담당관리자가 무엇 때문에 이랬는지는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 그런데 6천만 원이 집행되지 않았고, 국가 기관에서 받은 시정명령을 이행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구멍가게 수준의 기업 경영에 쓴웃음이 나온다는 건 조사하지 않아도 알게 됐다. 초과근무수당을 제때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구오하이빈 대표는 2016년 11월, 액토즈 대표로 서초동에 입성했다. 이후 e스포츠 브랜드이자 사업 플랫폼인 WEGL을 출범시켰다. 드래곤네스트M으로 e스포츠를 진행할 계획도 있음을 밝혔다. 포부도 크고 준비도 착착해 나갔다. 그런데 이번일을 실무진의 잘못으로 돌리고 상투적인 사과에 머물렀다. 한 회사의 책임은 대표의 책임인데 회사의 대표가 사과 대신 상투적으로 '책임을 통감'하고만 있으니 영 모양새도 좋지 못하다. 잘되면 내 덕, 안되면 직원 탓. 한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는 걸, 그들도 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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