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칼럼] WHO의 게임장애 등재는 갑질이다

칼럼 | 이장주 기자 | 댓글: 17개 |



인벤은 WHO의 '게임 장애(Gaming Disorder)' 공식 질병 목록 등재 시도에 대한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문을 소개합니다. 해당 기고문은 등재 시도가 얼마나 부당한지 총 4회에 걸쳐 근거를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 장애 질병화란 광기의 질주를 멈추라!
[1부] 게임 장애,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2부] 게임장애,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
[3부] 게임장애가 만들어 낼 새로운 문제들, 감당할 수 있을까?
[4부] 게임장애는 갑질이다





권위주의가 뭐였더라? 지난주 WHO에서 게임장애를 강행하겠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 떠오른 의문이었다. 그래서 찾아봤다. ‘권위에 의해서 일방적이고 강제적으로 종적 지배관계를 형성하려는 질서원리’란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내가 찾으려는 단어였다. 게임장애를 결정하는 과정은 WHO란 권위로 일방적이고, 강제적으로 게임을 관리받도록 만드는 폭력적 조치라고 나는 믿는다.


■ 권위주의와 게임장애

권위주의는 전근대 시대의 개발과정에서 높은 효율성을 입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교육수준과 문화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요즘 권위주의는 사회문화적으로 독재나 독선으로 퇴행적인 정치 행위로 인식된다. 또 일상생활의 수준에서 권위주의는 ‘갑질’이라 불리는 경멸의 대상이다. 독재자나 갑질을 저지르는 자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우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말이 곧 법이요 진리라 여긴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 시대에 독재와 갑질은 도덕적인 책임을 넘어 법률적인 책임도 져야 하는 범죄가 되었다.

게임장애를 반대하는 학자들은 게임장애는 현상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으며, 진단기준이 모호하며,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로 진행되어야 할 국제기구인 WHO는 이런 우려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새로운 증거나 논리를 내놓은 대신, 이전에 주장했던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게임 플레이 시간 조절 불가’, ‘게임과 여타 활동의 우선순위 지정 장애’,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 무시’가 ‘12개월’ 동안 나타나면 도박과 같은 유형의 행동중독장애! 수년 동안 근거가 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내(전문가)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란 식의 황당한 대응이다. 전형적인 갑질이다. 



▲ 아무런 증거나 설명의 보완없이 게임장애를 추진하겠다는 WHO의 태도는 넘버쓰리의 송강호가 연상되었다.
“내가 현정화라면 현정화인거야”라던 그 불사파의 송강호 말이다. 

이번에 재확인된 모호한 게임장애 진단기준은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잠깐 드는 의문점을 적어보기로 한다.

모든 게임은 게임장애의 대상이 되는가? 교육용 게임이나 특수 목적의 기능성 게임도 정신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가? 아니라면 어떤 게임들이 게임장애 대상 게임이 되는가? 또 게임 플레이 시간 조절 불가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시간을 정할 것인가? 하루 단위인가? 일주일 혹은 한 달 단위인가? 하루에 잠깐 접속해도 플레이에 지장 없는 방치형 게임은 그럼 예외가 되는가? 프로게이머는 게임장애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청소년도 게임장애 진단 대상에서 예외가 되는가? 게임장애진단을 받은 청소년이 프로게이머가 되면 진단이 취소되는가? 게임 플레이를 스트리밍하는 수많은 스트리머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무시한다고 하는데, 사람의 앞날을 어떻게 알고 부정과 긍정을 판단할 것인가? 20살, 30살에 사람 구실? 그럼, 사람 구실 못해도 게임을 하지 않고 멍하니 지내면 정상인가? 마지막으로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이런 질문에 명확하고 일관적인 답을 할 수 없다면, 이번 게임장애 진단기준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진단이 될 수 없다. ‘그냥 의사 선생님 당신하고 싶은대로 하세요’를 알아먹기 힘들게 표현한 문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건 범죄인 전횡(專橫)인거다. 무슨 007 살인면허도 아니고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이 무슨 깡패 짓인가.


■ 무지인가, 선견지명인가



▲ 출처 : http://www.artandtechnology.com.au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란 심리학 이론이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무식할수록 용감하다'라고 대략 요약할 수 있는 현상이다. 무식한 자들은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도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잘못된 행동을 확신에 넘쳐 거침없이 반복한다.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자기의 전문영역이 아니면 일반인과 마찬가지이기에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지식이 얄팍한 자들은 자신이 아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모른다. 온갖 오지랖을 펼친다.

게임은 콘텐츠다. 뭐 하나 마나 한 말 같지만, 콘텐츠를 담는 기기의 혁신과 함께 게임은 놀라운 변신을 가져왔다. 콘솔에서 PC로, 인터넷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될 때마다 게임은 획기적인 변신을 이루어왔다. 그런 게임은 이제 영화, 건축. 우주, 환경, 국방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소위 4차산업혁명시대에 게임은 과거 석유나 전기와 같은 산업의 기초자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등장할 자율주행자동차, AI 로봇과 같은 혁신기술들은 게임과 함께 나타날 것이며, 이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 역시 게임의 방식이 가장 유력하다. 미래의 게임은 일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번 ICD-11의 게임장애는 무려 4년 후인 2022년에 발효될 예정이란다. 아마도 미래의 일중독을 막기 위한 선견지명인지도 모른다. 만약 닥터 스트레인지가 게임장애 추진 그룹에 포함되었다면 말이다.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장애 범주의 원인물은 누가 만드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게임은 아무나 대충 만들어도 이용자들이 정신없이 즐겨주는 그런 비즈니스가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게임이 마켓에 올라오고, 국내 기준으로 1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게임은 채 1%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10억 원도 개발비, 유지비 등을 고려하면 돈을 벌었다고 보기 어려운 액수이지만, 다른 게임들에 비하면 그래도 실패하지 않은 사례라고 분류되는 정도가 100개 중 한 개다.

그리고 그런 게임마저 몇 달 혹은 몇 년을 서비스하게 될지 장담을 하지 못한다.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매력적인 스토리를 구상하고, 그걸 프로그래밍하고, 여기에 그래픽과 사운드 효과를 입히고 미묘한 조작감까지 적절하게 결합하려면 천문학적인 돈과 학교에서 배운 국영수 예체능을 모두 쏟아 넣고, 눈이 높아질 때로 높아진 유저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갖은 눈치와 창의성을 버무려야 나오는 첨단종합문화예술인 거다. 이렇게 힘겹게 살아남은 이들에게 훈장을 주지는 못할망정 장애를 유발하는 물질 제조자로 낙인을 찍는 것은 이런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만행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게임장애를 2019년 WHO에서 정식으로 승인하게 된다면, 미래세계사에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과학의 시대에서 주술의 시대로 회귀하는 그런 믿기지 않을 결정으로 말이다.


■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권위주의는 점차 약화하여 탈권위의 사회로 바뀌고 있다. 갑질이 뉴스에 부각된 것은 갑들이 갑자기 악독해져서가 아니다. 을들이 힘이 강해져서다. 충분히 교육을 받은 똑똑한 사람들이 첨단 장비의 지원을 받아 더 이상 막무가내 억지에 떠밀리지 않는 시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게임장애도 WHO의 현명한 결정만을 바라기에는 그들의 태도가 과도하게 권위적이라는 것을 이제까지 경과에서 드러났다.

이제 그냥 게임중독이라고 퉁치고 넘어갈 것이 아니다. 어떤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켰는지, 그런 문제가 사람의 문제인지 아니면 게임의 문제인지, 그리고 그런 경과는 어떠했는지, 어떤 조치가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볼 권리가 있다. 게임장애를 결정한 측은 이런 물음에 성실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부당하거나 미심쩍은 결정에 대해서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이건 게임장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의료서비스 소비자의 보편적인 권리다.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2019년 보건총회에서 게임장애가 확정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충분히 잘못된 결정을 검토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이다. 게이머로서, 게이머를 자녀로 둔 부모로서, 그리고 기술사회를 살아가야 할 한 시민으로서 충분히 공감하고 납득할만한 결정을 WHO가 도출해 내길 바란다. 탈권위 사회에 어울리는 그런 성숙한 결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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