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바일 RPG, 언제까지 '보는 재미'만 추구할 텐가?

칼럼 | 윤홍만 기자 | 댓글: 136개 |



중국산 모바일 RPG의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산이라고 하면 낮잡아 봤지만, 이제는 그 시선이 달라졌다. 최근의 중국산 모바일 RPG는 게임 퀄리티는 물론이고 재미까지도 국산 모바일 RPG를 위협하고 있다.

도대체 중국산 모바일 RPG가 어떤 마법을 부린 걸까? 게임 시스템, 콘텐츠, 그래픽 등 많은 부분을 살펴봤지만, 얼핏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겉으로 보이는 그래픽은 물론이고 세밀한 표현 등은 여전히 국산 모바일 RPG가 더 좋았고 연출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중국산 모바일 RPG가 잘나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중국산 모바일 RPG와 국산 모바일 RPG의 명확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자동사냥의 유무였다. 도대체 자동사냥이 어떻게 이런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을까?

지금은 국산 모바일 RPG에 대해 말할 때 자동사냥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지만 초창기부터 자동사냥을 채택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초창기에는 웹게임을 근간으로 한 중국산 모바일 RPG가 자동사냥을 전면에 내세웠고 국산 모바일 RPG는 수동사냥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론 정교한 조작이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고 이에 국산 모바일 RPG도 하나둘 자동사냥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재미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직접 해야 제맛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자동사냥이 도입되면서 점차 보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 자동사냥을 도입하면서 국산 모바일 RPG는 보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국산 모바일 RPG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래픽에서부터 세밀한 표현, 연출 등이 여느 게임보다도 뛰어났다. 2016년 모바일 RPG가 점점 고퀄리티를 지향할 당시 언리얼 엔진 제작사인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가 "하이엔드 모바일게임 붐은 한국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게 계속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픽과 연출에만 힘을 쏟은 나머지 콘텐츠나 시스템 등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했고 이에 유저들도 신작에 대한 기대를 점차 품지 않게 된 것이다. 신작이라고 해도 외형만 다를 뿐 큰 차이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간 낮잡아 본 중국산 모바일 RPG가 조금씩 인기를 끌게 됐다. 당시 국산 모바일 RPG가 특색이 없다는 것과 더불어 랜덤박스로 대표되는 과금체계로 인해 유저들에게 원성을 듣고 있었는데 이러한 불만을 중국산 모바일 RPG가 해소한 거였다.

시작은 미카팀의 '소녀전선'이었다. 익숙한 미소녀 수집형 RPG. 하지만 처음에는 이렇다 할 기대를 받던 게임은 아니었다. 당시 국내 모바일 게임 트렌드는 MMORPG였고 수집형 RPG도 기존 게임들이 꽉 잡고 있었기에 아무도 '소녀전선'의 선방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소녀전선'은 성공했다. 중국산 + 수집형 RPG임에도 불구하고 구글 플레이 스토어 매출 순위 3위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녀전선'의 이러한 흥행은 불편함 덕분이었다. 기존의 국산 모바일 RPG가 자동사냥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면 '소녀전선'은 전투에 앞서 육성 동선을 짜거나 제조시간, 수복시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러한 불편함이 유저들에게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과정에서의 즐거움, 극복했을 때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줬다. 재미가 중국산이라는 색안경을 벗겨낸 것이다.



▲ 중국산 모바일 RPG 흥행의 시작을 끊은 '소녀전선'

이런 즐거운 불편함은 '붕괴3rd'를 거쳐 '라그나로크M', '이터널라이트'에서 빛을 보게 됐다. '라그나로크M'과 '이터널라이트'를 보면 둘 다 자동사냥이 있지만, 그 용도는 제한적이다. 어디까지나 육성 구간에서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요소에 가깝다. 효율도 자동사냥보다 수동전투가 나아서 파티나 레이드 같은 핵심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수동전투를 하도록 의도했다.

국산 모바일 RPG와는 다른 이 특색은 어찌 보면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녀전선'이, '붕괴3rd'가 보여준 이런 즐거운 불편함은 이번에도 통했다. '라그나로크M'과 '이터널라이트'가 각각 구글 플레이 스토어 매출 순위 6위와 19위에 자리하는 결과를 낸 것이다.

누군가는 '라그나로크M'에 대해 단순히 IP 덕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이터널라이트'도 비슷하다. 대규모 마케팅과 대세인 MMORPG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낮잡아 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운도 계속되면 실력이라고 봐야 한다. 어디 IP를 사용한 MMORPG가 이 게임들뿐이었던가. 아니다. 국산 모바일 RPG는 더 많았다. 하지만 중국산 모바일 RPG는 그 게임들을 제치고 살아남았다.




중국산 모바일 게임의 공습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언제까지나 중국산이라며 낮잡아 봐선 안 된다. 국내 게임업계가 보는 재미만 추구했을 때 중국은 직접 하는 재미를 추구했고 그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 국내 유저가 가진 중국산 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고려하면 이는 수치적인 성과 이상의 결과를 낸 것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사전적 의미로 게임은 놀이나 경기를 뜻한다. 그리고 이런 놀이나 경기를 즐긴다는 건 곧 직접 참여한다는 걸 의미한다.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는 건 구경하는 거지 참여한다고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국내 게임업계는 오래도록 게임의 근간을 간과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아니, 정확히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현상 유지에만 목메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각양각색의 중국산 모바일 게임 공습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국내 게임업계도 게임이란 뭔지 고민하고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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