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화 없는 MMORPG, '전 오늘도 전자식물을 키웁니다'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24개 |



MMORPG가 다른 장르에 비교해 갖는 특징은 이미 이름에,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안에 담겼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함께 즐긴다는 특징은 이전의 RPG, 아케이드, 퍼즐 게임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MMORPG가 등장하면서 플레이어는 마왕을 공략하는 것만큼, 또는 더 어려운 요소를 신경 쓰게 됐다. 바로 다른 유저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은 MMORPG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해서 특별한 일을 지칭하는 건 아니다. 유저와 유저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커뮤니케이션이라 말할 수 있다. 레이드를 위해 서로의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도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고, 다른 유저와 아이템 거래, 게임 속에서 아무런 콘텐츠도 하지 않고 채팅만 하더라도, 모두 커뮤니케이션이라 말할 수 있다. 게임사들은 MMORPG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겨 유저 간 유대감을 강화하는 시스템들을 항상 마련한다. 대표적으로 '길드'가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모바일에서도 MMORPG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장르와 게임이 모바일 시장의 흐름을 그려냈었고,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 이후로 모바일 MMORPG가 주류가 됐다. 그리고 최근 모바일 게임 시장을 살펴보면 '리니지M'이 영원히 내려오지 않을 듯한 기세로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뒤이어 '검은사막 모바일', '뮤 오리진2', '리니지2 레볼루션'이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모바일 MMORPG'는 PC로 즐겼던 콘텐츠 대부분을 옮겨 담았다. MMORPG의 꽃으로 불리는 대규모 레이드와 공성전은 이제는 모바일에서도 당연한 콘텐츠다. 반면, '모바일 MMORPG'가 PC보다 한 발 나아간 면도 있다. 컴퓨터라는 공간적 제약이 묶여있던 기존 MMORPG를 모바일로 옮기면서 '언제 어디서든 레이드와 공성전'이 가능해졌다.

플랫폼 기술적으로는 PC보다 한 발 나아간 '모바일 MMORPG'이지만, 이상하게도 전과 같은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허전함이 느껴진다. 물론, 매출은 잘 나온다. 그러나 높은 매출이 곧 재밌는 게임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예전의 PC MMORPG의 재미를 모바일에서 느낄 수 없는 이유로 자동사냥의 존재, 어쩐지 스킨만 바꾼듯한 비슷한 콘텐츠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MMORPG의 가장 중요한 요소, 유저 간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강조하고 싶다. MMORPG에 대화가 없다.

유저들은 이제 "ㅎㅇ" 대신에 '전체 인사 버튼'을 클릭해 서로 보상을 주고받는다. 정예 던전이나 공격대 모집은 게임 내 모집 기능이 대신한다. 게임에 접속해서 끌 때까지, 한 마디의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게임을 하는 데 무리가 없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모바일 기기는 PC 환경보다 채팅하기 힘들기에 유저 간 커뮤니케이션이 덜 일어난다. 게임사는 보다 편한 채팅을 위해 인터페이스를 단장하지만, 모바일 기기의 태생적 문제로 한계가 있다. 모바일에서 채팅을 하기 위해선 화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채팅창과 가상 키보드를 띄워야 한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기엔 불편한 환경이다.



▲ 채팅창(빨간 영역)이 전체 화면의 일부만 차지하는 PC 검은사막



▲ 검은사막 모바일은 채팅창이 전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채팅창이 PC에서는 24인치 화면의 일부분만 차지하는 데 반해 모바일에서는 5.8인치 화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당연히 인터페이스로 인해 가독성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특히 채팅창의 내용에서 더 큰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PC에서는 잡담을 채팅창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모바일에서는 자동으로 발송되는 던전 모집 글이 대부분이다. 물론 모바일에서도 잡담은 보이지만, 비율은 PC보다 현저하게 낮다.

'모바일 MMORPG'의 커뮤니케이션 한계는 아이러니하게도 PC 덕에 다소 해결됐다. 앱 플레이어가 널리 퍼지면서 플랫폼의 제약을 풀어준 것이다.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게임은 '리니지M'으로 평가된다. IP의 막강한 힘 덕분에 많은 유저들이 '리니지M'을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했고, 앱 플레이어로도 많이 즐겼다. 출시 초반에는 많은 '아재'들이 PC 리니지의 추억담을 전체 창을 통해 풀었고, 원작의 살벌한 '필드 PK'와 혈맹 시스템이 잘 구현되어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모든 '모바일 MMORPG'가 '리니지M'과 같은 힘을 지닌 건 아니다. 많은 게임사가 유저 간 소통을 위해 단축키, 이모티콘 표현 등의 수단을 마련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낚시, 요리 등의 콘텐츠를 선보이지만 마땅치 않다. 게임 디자인을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라그나로크: 포링의 역습'도 보이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모바일 MMORPG'는 게임사가 높은 매출을 기대하기 좋은 장르다. 기존까지 수집형 RPG, 액션 RPG가 플레이어 개인의 만족을 위해 뽑기를 했다면, '모바일 MMORPG'는 뽑기에 '만인의 경쟁'을 집어 넣었다. 결국 남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 뽑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장르보다 매출은 잘 나온다.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고민은 보이지 않고, 경쟁 체제로 돌입하니 성적표는 좋다. 그러나 플레이어로선 다른 유저와 어울려 즐겼던 '그 시절'의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모바일 MMORPG'로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커뮤니케이션을 극대화한 넥슨의 '듀랑고'조차도 매출 성과는 고배를 마셨다. 새로운 게임성에 있어서 의의만 남긴 정도다. 성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앞으로도 '모바일 MMORPG'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위메이드가 '이카루스M' 출시를 앞뒀고 넷마블 역시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을 만지작거린다. '리니지M'으로 재미 보고 있는 엔씨소프트도 '리니지2M', '아이온 템페스트'를 가다듬고 있다.

저마다 콘텐츠를 잘 준비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 게임에서 유저 간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고민한 흔적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더 화려해진 PVP와 PVE, 일일 던전과 무한의 탑이 등장할 뿐이라면, 예전과 같은 MMORPG의 맛을 줄지 의문이다.


그나마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한 '마비노기'의 모바일 버전에서 유저 간 소통을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세로형 UI와 함께 가독성 있는 채팅창 인터페이스는 기존 '모바일 MMORPG'와 차이를 보인다. '마비노기 모바일'이 유저 간 이야기를 그려내는 게임이 될지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많은 데이터 분석 업체에서 앞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은 더 커지리라 전망한다. 과거 PC MMORPG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르가 되어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거뒀듯이, '모바일 MMORPG'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이미 '리니지M'과 '라그나로크M'이 좋은 성적을 냈고, 앞으로 출시될 '검은사막 모바일' 역시 기대를 할 만하다.

다만, MMORPG에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잘 만든 전자식물 키우기' 정도만 될 뿐이다. 이제 콘텐츠는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가 됐다. 앞으로는 게임사가 '모바일 MMORPG'에서 풀기 어려웠던 문제, 유저 간 커뮤니케이션을 풀어내는 게임사가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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