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양함과 신선함이 필요하다" 게임스컴을 마치며

칼럼 | 김강욱 기자 | 댓글: 23개 |
데브컴부터 게임스컴까지. 6박 7일의 긴 일정이 끝났다. 유럽 게임 시장을 경험한 건 처음이다. 시야가 넓어졌다. 지금까지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콘솔 게임 시장을, 세계 시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유럽 게이머들의 마인드도 느꼈다.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 눈물나게 부러웠다. 매출 규모로는 분명 독일보다 큰 시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식이나 문화 면에서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국 시장은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시장이 정체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임스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PC MMORPG, 두 번째는 모바일 게임이다. PC MMORPG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제외하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바일 게임 역시 인디 게임 코너가 아닌 메인 전시관에서는 베데스다의 '엘더스크롤 블레이드'와 EA의 'C&C 라이벌즈'를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도 C&C 라이벌즈는 B2B 관에서만 시연이 가능했으니, 실제로 유저들이 볼 수 있었던건 엘더 블레이드 밖에 없었다. 메인으로 모바일 게임이 나오는 한, 중, 일 게임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과 한국은 콘솔보다는 PC와 모바일 위주 시장이다. 일본이 콘솔/모바일 위주인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매출을 견인하는건 모바일 게임이지만, 게이머 숫자에서는 콘솔 인구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북미 유럽은 모바일과 PC보다는 콘솔 시장이 더 크다. 한 관계자는 "북미 유럽은 어릴 때부터 콘솔로 게임을 접하는 경우가 많아 그쪽이 자연스럽다"는 말을 했다.

한국 시장은 다양성이 부족하다. 단순히 콘솔 비중이 낮아서가 아니다. 모바일이 많아서도 아니다. 인식의 문제다. 학생 때는 집에서 게임을 하면 '공부나 해'가 먼저 나온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시간이 없다. PC도 맞출 수 있고 콘솔 기기와 타이틀도 살 수 있지만 사회적인 시선이 부담된다. 취미가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혼한 친구의 집에서 게임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전에는 그렇게 게임 오래 하는지 몰랐다. 사기결혼 당했다"고 말했다 한다. 욕을 해서도 험하게 해서도 아니다. 그냥 게임을 해서다. 너무 오래 한 거 아니냐 물어보니 한 시간이라더라.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집에 와이프가 있는데 한시간이나 게임을 하다니 너도 참 용감하다"고 킬킬거렸다. 아마 이 친구만의 일화는 아닐 것이다.

진득하니 플레이할 시간도 상황도 없다. 그래도 하고는 싶으니 모바일을 선택한다. 이동 시간에, 틈틈히,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바일로 몰리니 개발사에서도 모바일 게임에 주력한다. PC 시장도 MMORPG보다는 친구들과 가볍게 한 판, 짧게 끝낼 수 있는 장르가 인기있어진다.

모바일 게임의 조작감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PC나 패드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스위치나 3DS 같은 휴대용 기기도 있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육성 지향적 자동 전투 모바일 게임이다. 게임을 할 수는 있고, 주변의 시선도 덜 신경써도 되니까. 이런 상황에서 가족이 모여 비디오게임을 즐긴다? 닌텐도 위에서 잠깐 가능성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게임은 어린아이들이나 즐기는 취미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게임쇼를 찾아오는 입장객 구성에서도 보인다. 지스타에서도 가족 단위로 행사장을 찾아오는 모습은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부모는 심드렁하고 아이들만 신나서 돌아다닌다. 어린 아이 혼자 보내기 뭐하니 같이 온 것 뿐이다. 중고등학생만 되도 자기들끼리 놀러와 쇼를 구경한다.

하지만 게임스컴의 분위기는 달랐다. 행사장을 방문한 가족들이 모두 함께 즐기고 있었다. 할머니가 손녀와 함께 마리오카트를 즐기고(심지어 잘 한다), 아버지는 아들과 소울칼리버로 대전을 벌인다. 연패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짜증을 내자, 아버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가 이 게임을 10년 동안 했다"며 강해져서 돌아와라 를 시전한다. 가족 단위의 코스프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단순히 행사장 내부만이 아니다. 근처에 텐트를 치고 숙박하는 '게임스컴 캠프'에도 가족이나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낮에는 행사장을 가고, 저녁에는 캠핑을 하며 지낸다. 가족 여행을 왔다는 느낌이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질 좋은' 게임이 나오려면 이런 인식의 변화가 필수다. 하지만 인식의 변화는 갈 길이 멀다. 모바일에서 비롯된,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으니. 세계 4위의 큰 시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양성이 부족한 것은 위에서 말했듯 내수시장이 치우쳐진 결과다.

시장이 정체되어있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PC 온라인/모바일 게임과 콘솔 게임의 차이는 '결론의 유무'라고 본다. PC/모바일 게임은 업데이트가 쉽다. 하나의 게임을 시작하면 업데이트 지원이 계속 되는 한 서비스 종료까지 할 수 있다. 언제나 새로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수명이 긴 게임들은 버전 넘버링으로 크게 바뀌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끝이 없다. 어차피 업데이트 될 것을 아니 당장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끊겨도 신경쓰지 않는다. 엔딩이 없다. 기승전결 없이 그냥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콘솔은 이야기가 다르다. 콘솔도 업데이트를 제공하긴 한다. 몬스터헌터 월드도 계속해서 추가 몬스터를 제공함으로써 플레이를 계속 할 수 있다. 하지만 PC나 모바일의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아예 멀티플레이를 노리고 나온 게임이 아닌 이상 어떤 형태로든 엔딩에 도달하는 시점이 생긴다. 하나의 타이틀은 반드시 완결된 상태로 나와야 한다. DLC로 스토리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본편은 한 차례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이 차이가 신작이 잘 정착할 수 있나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PC 온라인 / 모바일 게임은 신작이 나왔을 때 '기존에 하고 있는 게임'과 경쟁해야 한다. 흔히 "할 게임이 없어 계속 한다"는 말을 한다. 당연하지만 하나의 게임을 계속 한다는건 어떤 형태로든 취향에 맞으니 가능한 일이다. 업데이트는 계속 될 것이고, 새로운 콘텐츠도 계속 나온다.

신작이 나왔을 때 유저 입장에서는 "지금 내가 만들어놓은 것들을 버릴 만큼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 처음부터 시작하느니 충분히 재미있는 지금 게임을 계속 한다. 개발사 입장에서도 개발력을 쏟아부어 AAA급 타이틀을 내놓기보다는 기존 게임의 강화가 안전하다. 기존 게임의 유저를 전부 모을 수 있을 정도의 위협적인 타이틀이 나온다면 모를까, 자사의 게임이 잘 나가고 있는데 굳이 다른 게임을 만들어 '팀킬'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경향은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인 대형 타이틀이 실패를 거듭하며 더욱 공고해지고있다.

하지만 결론이 있는 게임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구작을 마치고 신작을 다시 플레이할 수 있다. 게임이 게속해서 순환되기에 새로운, 독특한 게임은 그 자체로 어필할 수 있으면 된다. 이게 이번 게임스컴에서 느낀 점이다. 세상은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은 그때 그 기억에 머물러있다. 비단 AAA급 타이틀만이 아니다. 그 아래 등급, 또 그 아래 등급의 게임도 마찬가지다.

한때 한국 게임은 전세계를 호령했다. 한국에서 신작이 나온다고 하면 전 세계가 주목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흥행 보증수표였다. 한 개발자는 "예전에는 게임을 출시하면 다른 나라에서 제발 팔아달라고 애걸했다."며 옛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다양성이 부족한 정체된 시장 안에서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간이 흐르고 있다. 생각보다 빨리.


8월 21일 개최되는 게임스컴(GAMESCOM) 최신 소식은 독일 현지에 나가 있는 정필권, 김강욱, 석준규 기자가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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