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욕 안먹는 과금'에 대한 짧은 생각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61개 |



비즈니스 모델

줄여서 BM. 게임업계에서는 언제나 논란이 되는 단어다. 오죽하면, 개발사 인터뷰를 나설 때 BM에 관해 질문할지 말지 고민해야 할 정도다. 게이머들이야 궁금해할 수도 있으나, 괜히 긁어 부스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영 없지는 않다.

막말로 '돈 쓰게 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없을 수야 있겠냐만은, 게임업계의 BM은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게임 산업이 발달하면서 수없이 분화된 BM 중 대부분은 상생보다 기대 수익의 증대에 초점이 맞춰졌고, 당연히 게이머와 개발사 간 감정의 골은 깊어져왔기 때문이다.

기나긴 줄타기다. 비싼 가격의 BM은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그만큼 게이머의 반감을 산다. 반대로 저렴한 구조의 BM은 게이머의 옹호를 받지만, 기대수익이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오늘날 모든 개발사는 '기대수익'과 '게이머 민심'이라는 두 개의 추를 장대 끝에 단 채, 끝없는 외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새로운 BM에 대한 니즈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민심과 수익, 기나긴 외줄타기

굴지의 거대 게임사 'EA'는 기대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게임을 쪼개 DLC로 판매했고, '밈(Meme)'이 될 정도로 게이머 민심을 잃었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3N이라 불리는 국내 대표 게임사 역시 이 과금 모델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요컨대 게임 퀄리티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게 문제다. 국회에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논란이 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은 아직도 높은 기대수익 때문에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쓰이고 있다.

물론, 게이머의 옹호를 받으면서 수익도 보장할 수 있는 BM이 아예 없지는 않다. '리그오브레전드'나 '도타2'같은 경우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스킨 판매로 수익을 얻지만, 이들에겐 수년간 쌓인 팬층과 콘텐츠가 있다. 'CS: GO'의 경우 유저 거래 간 수수료를 BM으로 삼는데, 유저 거래가 그만큼 활발한 게임이 흔한 것도 아니다. 결국, 지금의 상황에 대다수의 개발사가 선택할 수 있는 BM은 다분히 한정적이다.



▲ EA의 BM을 꼬집는 밈

하지만, 그 한정된 상황이 언제까지고 합리화될 수는 없다. 세상 어느 업계도, 국내 게임산업만큼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가 나쁘진 않을 것이다. 식품이나 자동차 등의 산업에서 저질 상품으로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벌어지면 뉴스에 실릴 정도지만, 게임 산업에선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기대수익을 높이면 게이머 민심이 달아나고, 게이머 민심을 얻으려면 기대수익을 낮춰야 하는 상황. 단순한 '퍼주기'가 아닌, 보다 건강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BM이 개발사의 숙제다.



▲ 현재 주류 BM의 현주소


'좋은 BM'도 있을 수 있다

'포트나이트'에는 '배틀 패스'라는 BM이 있다. 구매 후 게임을 플레이하면 구매 전과 달리 별도의 진행도가 쌓이고, 진행도 달성에 따라 추가 보상을 지급하는 형태의 BM이다. 지금은 이미 다른 여러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데, '펍지 모바일'이나 '에이펙스 레전드'도 유사한 구조의 '패스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에픽세븐'이나 '데스티니 차일드'같은 모바일 게임, 그리고 콘솔 게임인 심지어 레드 데드 온라인에도 '무법자 패스'라는 이름으로 같은 모델이 있다. 일단 이 기사에서는 '배틀 패스'라는 이름으로 통칭하겠다.



▲ 이미 국내외를 불문하고 '배틀 패스'는 널리 쓰이고 있다.

갑자기 이 '배틀 패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BM이 가진 특성이 지금 시장 상황에서 꽤 긍정적인 부분으로 흥미롭기 때문이다. 일단, 이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거의 없다. 디지털 상품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생기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완성형 게임을 일부러 나눠 추가 결제를 요구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확률에 의존해 상품을 지급하는 경우다.

하지만 '배틀 패스'는 추가 상품을 주는 개념이기에 콘텐츠 억세스 권한을 제한하는 것도 아니며, 확률에 의존해 상품을 지급하지도 않는다. '배틀 패스'가 요구하는건, 구매 시 얻을 수 있는 총 상품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 그리고 게이머의 직접적인 플레이다.

또 다른 특성은, 배틀 패스가 '필요'가 아닌 '사치'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배틀 패스는 필수가 아니다. 사고 싶다면 살 수 있고, 사면 많은 상품을 주지만, 굳이 사지 않아도 게임을 플레이하기엔 지장이 없다. 구매하지 않을 경우 다른 플레이어와 진도를 맞추기가 힘들다거나, 특정 콘텐츠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필요' 상품이 아닌, 오로지 더 편하게 게임을 하기 위한 '사치'의 차원이다.



▲ 굳이 없어도 게임을 못할 건 아니다.

'프로세스의 변화'도 생긴다. 기존의 BM은 '결제 -> 상품 지급', 혹은 '결제 -> 확률에 따른 상품 지급'이라는 두 가지 경우의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배틀 패스는 '결제 -> 플레이 유도 -> 플레이 진도에 따라 상품 지급'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자연스럽게 게이머는 더 많은 시간을 게임 플레이에 투자하게 되고, 게임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DAU(일일활성유저)가 증가한다. 그리고 높은 DAU는, 또 다른 개발사의 기대 수익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수행 -> 보상'이라는 게임의 기본 공식을 '수행+결제 -> 더 큰 보상'으로 바꾼 간단한 BM이지만, 기대 수익과 게이머 민심이라는 두 평행선 사이의 골을 조금은 좁힌 셈이다.

실제로 '서든어택'은 작년 8월 '서든 패스'를 도입한 후 전달 대비 24% 이상 증가한 PC방 점유율을 보여주었다. 또한, '데스티니 차일드'를 서비스하는 시프트업도 아이템이 긍정적인 지표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인정했다.


▲ '서든패스' 도입 첫 달 서든어택의 유저 증가율은 24%가 넘는다.


결국, '만족'의 문제다

'배틀 패스'의 사례를 빌려 말하긴 했지만, 모든 개발사에게 이런 '**패스'를 도입하라는 뜻은 아니다. 모든 개발사가 배틀패스 개념을 도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게임과 이런 BM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이를 실행하기 콘텐츠가 충분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게이머가 납득하면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BM이 환상속 존재가 아니라는 건 알아야 한다. 노골적으로 표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추가되는 확률형 아이템 상품을 보면, 그저 포기했다는 생각뿐이 들지 않는다. 비판 없이 돈을 벌기는 글렀으니, 이왕 욕 먹을 거 수익이라도 확실히 내자는 생각이 보인다면 그건 내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결국 소비와 관련된 모든 것은 '만족'의 문제다. 좋은 BM도 결국 게이머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것이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명품이 있고, 그 중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의 물건들도 있지만 구매한 이들은 만족한다. 쉽지 않겠지만, BM 또한 가격에 상응하는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문제될 바가 없지 않겠는가.



▲ 확률형 아이템이 그만큼의 만족을 주었다면, 이슈가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족과 필요를 착각해서는 안된다. 세상 어느 산업도 생필품에 과한 가격을 부과하지 않는다. 여성용 위생용품에 대한 이슈가 끝없이 불거지는 이유가 생필품임에도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어 있어서 아니던가.

강해져야만 다음 도전을 할 수 있고, 강해지는 길이 과금이라면, 그것은 곧 과금 유도가 되고 '필요'에 따른 과금이 된다. 여기에 '확률'이 더해진게 지금의 모습이다. 결과가 어떤지는 모든 게이머와 개발사가 다 알고 있으리라 본다.

언제나 모든 산업 구성원은 발전을 도모하고 고민해야 하겠지만, 지금이야말로 고민이 절실한 시기다. 게이머와 개발사 간 감정의 골을 좁히면서, 동시에 게이머의 만족과 개발사의 수익을 추구하는 길. 쉽지 않을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국내 게임업계에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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