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동 게임을 '게임'이라 할 수 있을까

칼럼 | 김수진 기자 | 댓글: 79개 |
게임의 재미는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군가는 바닥을 피하거나 숨어있는 적을 원 샷에 처치하는 컨트롤에서, 누군가는 영화인지 게임인지 애니메이션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그래픽에서, 또 누군가는 눈물 한줄기 흐르게 하는 배경음악에서 게임의 재미를 꼽을 테다.

흔히 게임은 종합 엔터테인먼트라고 일컬어진다. 그 말인즉슨 보고 듣는 것뿐 아니라 또 다른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와도 상통한다. 그건 '서사'에서 오는 웅장함일 수도, '공감'에서 오는 감동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직접 '조작'하며 얻는 성취감 역시 게임을 게임답게 만들어 주는 요소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조작 요소가 빠져버린 요즘의 '자동' 모바일 게임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시간보다 자동 시스템을 이용해 켜놓기만 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게임들. 분명 '게임'이지만 정말로 이걸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게임 플랫폼인 모바일에서, 자동 요소를 선택한 게임들이 매출순위 탑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 이제는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모바일 게임이 자동 시스템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장르를 불문하고 게임에 들이는 시간이 그대로 '강함'이라는 결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서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 콘텐츠 소모 속도를 줄이기 위해 강제로 반복 플레이를 강요하는 경우도 꽤 있다. 문제는 게이밍 기기가 아닌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에서 몇 시간씩, 몇십 시간씩 반복적인 조작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지루하고 힘든 일이라는 점이다.

모바일 플랫폼의 강점은 다른 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 어떤 타 플랫폼도 따라올 수 없는 '휴대성'이야말로 모바일의 특징이자 강점이자 모든 것이다. 하지만 이게 동시에 한계로도 작용하는데, 애초에 휴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기이다 보니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훨씬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PC나 콘솔에 비해 조작감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이에 유저가 '직접' 반복적으로 같은 조작을 하는 데에서 오는 피로감 자체가 모바일 게임의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게임사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 조작 시스템을 선택했고, 단순히 전투만 자동으로 돌려주던 것이 점점 진화해서 그야말로 이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캐릭터만 만들어두면 알아서 움직이고, 알아서 퀘스트를 받고, 알아서 전투를 하고, 알아서 물약을 먹고, 알아서 아이템을 팔고, 알아서 다시 사냥터로 돌아가는 그런 상황 말이다.

자동 시스템이 들어간 게임에 대해 게이머들은 늘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직접 조작하는 요소가 완전히 빠져버린 '게임'을 과연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갖 장르에서 자동 요소를 포함한 게임들이 출시되었고, 지금도 출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출시될 예정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PC나 콘솔 게임에 비해서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비주얼 퀄리티와 콘텐츠 볼륨을 자랑하는 게임들이 자동 시스템을 탑재하고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분명 수동 조작을 할 수는 있으나, 누구도 사용하진 않는다. 자동 조작이라는 요소가 있는데 굳이 지루한 반복 플레이를 수동으로 조작할 필요성을 아무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신기하게도, 이런 모바일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겉으로 표출되는 일부 부정적인 반응과는 다르게 인기 순위와 매출 순위는 상승세를 그리며 순위권을 향해 치솟는다. 아마 시간의 한계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재미를 찾고자 하는 유저가 그만큼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자동' 시스템이 있는 게임을 무조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거나 배척하는 경우가 잦았으나, 요즘은 오히려 자동 시스템이 없으면 성공 여부를 불투명하게 보는 반응도 꽤나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당장 나만 해도 반복적인 수동 조작이 필요한 모바일 게임은 쉽게 설치하거나 건드리지 못한다.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고, 그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반복적인 수동 플레이를 할 만큼의 '재미'를 주는 게임을 찾기가 힘든 것이 주 이유다.

특히 대다수 게임이 그날그날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주다 보니, 직접 조작을 해야 할 경우 시간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재화가 되었든 경험치가 되었든 아이템이 되었든 숙제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보상은 달콤한데, 출퇴근 시나 점심시간, 혹은 퇴근 후 침대에 누워서야 겨우 직접 조작할 시간이 난다. 결국 자연스럽게 평소 일하면서도, 다른 일을 하면서도 돌려놓을 수 있는 자동 게임을 찾게 되더라.

물론 그렇다고 수동 조작 게임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대략 5년 정도 해온 러닝 게임이 하나 있는데, 이 게임을 꾸준히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재미있는데다가,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해도 되니까'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잠깐, 밤에 자기 전 침대에 앉아 잠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하루 정도는 깜빡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수동'이지만 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압박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 모바일 게임은 자동 시스템을 도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작정 넣기에도, 버리기도 힘드니 결국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한다.

최근 플레이하는 리듬 게임이 하나 있다. 이 게임은 좀 독특한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는데, 한 번 수동으로 풀 콤보를 달성할 경우 그 곡에 한해서 자동 기능이 오픈되어 오토로 노트를 칠 수 있다. 리듬 게임에 '자동'이라니 의아하겠으나 이는 게임의 콘텐츠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단순히 원할 때 접속해서 원하는 곡을 치기만 하면 되는 경우, 자동 시스템은 가장 불필요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이 게임은 일정 기간마다 진행되는 특정 이벤트 주간에는 곡을 지속적으로 쳐서 포인트를 모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곡을 플레이할 수 있는 행동 포인트가 쌓일 때마다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리듬게임의 특성 상 플레이에 장소, 환경 등 꽤 많은 제한이 걸린다. 이에 자연스럽게 이벤트 기간 동안 자동 시스템을 선호하는 유저들이 많으며, 나 역시도 이어폰을 끼고 직접 노트를 두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좀 더 수월한 이벤트 참여를 위해 자동 시스템을 사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경우, 자동 시스템을 오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 풀 콤보라는 조작, 즉 자신이 자동을 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 정도의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증'해야 한다. 또한 자동 시스템은 일부 콘텐츠에서만 사용 가능할 뿐,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직접 곡을 플레이해야 한다. 즉, 자동 요소를 하나의 선택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추가해 둔 것이다.




예시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한때 팀 내 반절의 인원이 했을 만큼 한창 유행했던 모바일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경우 게임 내 재화는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꾸준히 쌓이며, 한 번씩 접속해서 얻어주기만 하면 그만인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대신 그 재화의 양을 상승시키기 위해선 직접 덱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전투와 관련된 부분은 단 하나도 수동으로 조작할 수 없다. 캐릭터들은 자동으로 적을 공격하고, 스킬을 사용한다. 캐릭터 구성이라는 부분만 수동이고 그 외 모든 조작이 자동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게임의 90%는 자동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지만 정작 게임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 '스테이지 클리어'를 위해서는 덱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무의미한 반복 플레이가 필요한 재화를 획득하는 부분은 게임을 켜놓을 필요조차 없는 '자동' 시스템으로 돌려버리고, 가장 중요한 덱 구성과 스테이지 돌파라는 부분은 유저가 직접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재미있는 점은, 전투 조작을 아예 불가능하게 해버리면서 그 과정에서 오히려 '랜덤성'이 추가되어 덱 구성이라는 조작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는 거다.

이 게임은 직접 플레이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자동 시스템을 극대화한 방치형 게임이지만 직접 게임을 들여다보고 직접 '할 수 있는' 요소를 주요 시스템으로 채택하면서 타 게임과 차별성을 뒀기 때문. 현재도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자동 시스템을 모바일 게임에서 필수 불가결한 '뭔가' 라고 말하긴 힘들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원신은 자동 시스템을 완전히 버렸고, 출시 준비 중인 디아블로 이모탈 역시 자동 시스템을 아예 제외했다. 특히 원신의 경우 크로스 플랫폼을 지원하긴 하나, 게임 자체의 뛰어난 완성도와 콘텐츠적 재미를 살린다면 모바일에서도 충분히 유저들이 조작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걸 보여줬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부턴가 조작이 거의 필요 없어진 자동 시스템으로 인해 PC 에뮬레이터에서 지속적으로 모바일 게임을 켜놓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정작 모바일 기기로 플레이하는 일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이걸 '모바일'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원천적인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동 시스템이 무조건 배척되어야 할 부정적인 요소라고 보기는 또 힘들다. 누군가는 조작하는 즐거움을 위해 게임을 할 것이지만, 누군가는 게임 내 콘텐츠를 수집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강해진 자신의 캐릭터를 보며 만족감을 느낄 테니까.

개인적으로 자동시스템으로 얻는 것은 '보는' 즐거움이라기보단, 성취에서 오는 만족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을 하고 싶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 때문에 쉽사리 하지 못할 경우, 결국 휴대하면서 게임을 할 수 있는 '모바일'이라는 선택지가 남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하는 것을 획득하면서 얻어내는 성취를 위해, 자동 시스템을 사용하게 된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서, 자동 시스템을 게임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는가에 대한 선택지 중 하나로 바라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정'에서 게임을 할 필요성을 찾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결과'로 게임에서 누릴 만족감을 찾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제 모바일 게임의 '자동 시스템'을 하나의 플레이 수단으로 인식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즉, 옳다 그르다를 가리는 게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적절한 '정도'에 대해 논의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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