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잊지 못할 추억, 팬들과 함께 만들어간 블리자드 e스포츠

칼럼 | 장민영 기자 | 댓글: 4개 |



많은 e스포츠 팬들이 현장으로 직관(직접 관람)을 하러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고 명경기가 나오는 순간에 함께 하기 위해, 큰 무대의 생생함을 느껴보고 싶어서 경기 현장을 방문한다. 게임사와 방송사 역시 세계 대회나 결승전 같은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마다 기존 경기장을 벗어나 새로운 무대를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 많은 팬들 역시 현장을 찾아오기에 '전석 매진'이라는 말 역시 익숙해진 지 오래다.

대회 규모가 점점 커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에 많은 인원이 모였다고 해서 팬들이 얼마나 만족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 수치가 팬들의 기억을 말해주진 않기 때문이다. 방송사와 게임사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메시지 역시 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8월 17일부터 3일간 인천에서 열렸던 블리자드 e스포츠 대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오버워치 월드컵과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이스턴 클래시가 진행되는 가운데, 팬들이 현장을 즐기는 색다른 모습들이 눈에 띌 정도였다. 평소 접하기 힘든 선수들과 중계진이 팬들과 교류하면서 e스포츠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었다. 오버워치 리그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프로게이머와 중계석에만 있었던 중계진 역시 팬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라 그런지 팬들의 응원은 더욱 뜨거웠고, 중계진 역시 현장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추억'을 만들다

▲ 경기전 현장 팬들의 ‘응원의 물결’(출처 : 오버워치 e스포츠 Youtube)

한국에서 진행된 2018 오버워치 월드컵 예선에서 팬들이 인상적인 응원을 펼쳤다.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많은 팬들이 응원 도구를 흔드는 장면이 나왔다. '파도타기' 응원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모두가 한마음이 돼 움직이는 모습이 자주 화면에 잡히곤 했다. 중계진의 뒤로 관객석이 보이면서 한, 두 사람으로 시작한 응원이 전체로 퍼져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해설진 역시 이런 상황을 함께 즐기면서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는 오버워치 월드컵 한국 예선이 될 수 있었다.

오버워치 무대 옆에서 진행되는 히어로즈 HGC 이스턴 클래시 경기장에서도 열띤 응원이 펼쳐졌다. 상대적으로 오버워치보다 작은 곳에서 열렸지만, 응원의 열기만 큼은 뜨거웠다. 팬 중 한 명이 경기 시작에 앞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화이팅"을 외치는 게 한국 e스포츠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다. 이번 대회는 세계 대회인 만큼 해외팀 역시 그 자리를 함께 했는데, 한국의 팬들이 해외팀의 구호까지 함께 외치면서 히어로즈로 하나된 장면을 연출했다. 해외팀 간의 경기에도 열렬히 응원하고 반응하면서 한국의 e스포츠 응원 문화를 전 세계에 알렸다.

현장을 찾아온 히어로즈 EU 디그니타스팀의 '스니치'는 "현장 팬분들의 응원 열기가 정말 엄청난 것 같다. 한국이 e스포츠 강국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e스포츠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은 게 부럽다. 유럽은 아직 이렇게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는데, 언젠가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한국 팬들의 응원 문화를 칭찬하는 말을 남겼다.



▲ 한국 팬들과 함께하는 핀란드의 '빅구스-프레기'

오버워치 핀란드 국가대표인 '프레기'는 "한국 팬들이 응원해줄 때 정말 행복했다. 많은 응원을 받으면서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은 일이다"고 했다. APEX 시절부터 한국이 익숙한 핀란드의 '타이무' 역시 "한국 팬들의 열정이 멋있었다. 그 열정에 보답하도록 하겠다"며 인터뷰마다 인사를 남기곤 했다. '자피스'는 "한국에 와서 정말 멋진 경험을 하고 간다. 핀란드가 타국임에도 열심히 응원해주더라"며 한국 팬들의 응원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버워치 한국대표팀도 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리베로' 김해성은 "미국에서 진행하는 오버워치 리그에는 경기 시작전에 화이팅을 외치는 문화가 없다. 한국 팬들이 '대한민국 화이팅!'을 외쳐줘서 경기하는데 큰 힘이 됐다"는 말을 전했다. '메코' 김태홍은 "헤드셋을 끼고 있어도 한국 팬들의 응원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며 한국팀 응원의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해주기도 했다.

중계진들 역시 팬들의 응원에 반응했다. 밀폐된 중계석에서 냉철한 경기 분석과 프로씬에 관한 이야기만 하던 해설진들이 오랜만에 만난 팬들과 평소 못했던 대화까지 중계 중에 나눴다. 해설진의 근황부터 팬들의 기분까지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중계진의 자리와 객석이 떨어진 다른 대회들과 또 다른 중계가 나오곤 했다. 팬들과 중계진이 소통하며 e스포츠 현장을 만들어갔기에 인천에서 열렸던 오버워치 월드컵과 HGC 이스턴 클래시가 더욱 기억에 남을 수 있었다.


■ 경기는 끝났지만, 팬들의 행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경기가 끝나고 한국대표팀 사인회 줄이 이어졌는데...

더욱 놀라운 장면은 경기가 끝나고 볼 수 있었다. 팬사인회가 수시로 경기장 복도에서 열리더니 2일 차에는 한국 대표팀 사인회와 3일 차에는 중계진의 사인회도 열렸다. 해외와 중계석에서만 활동했던 프로게이머들과 중계진이 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마어마한 줄이 이어졌음에도 사인회는 끊이지 않고 진행했다. 세계 대회를 치르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지만, 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해외 선수들의 팬 사인회도 자유롭게 열렸다. 핀란드 팀은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기장 앞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등 다양한 팬 서비스를 하고 갔다. 한국 팬들 역시 그들과 추억을 남기면서 팬과 프로게이머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추억 거리를 현장에서 만들었다.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는 게 아닌 팬들이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현장을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예선 경기가 끝나고 매일 오버워치 트위치 채널에서 선수들이 팬들의 질문에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팬들의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질문에 답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더욱 친밀해질 수 있었다. 예선전 이전에도 국가대표 공개 스크림을 통해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경기 전후로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해왔다. 국가대표팀과 보다 친숙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예선 1일 차가 끝난 뒤 스트리밍하는 국가대표 '새별비-페이트'


많은 팬들이 경기를 보러 인천까지 매일같이 이동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선수들의 경기라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지만, 좋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더 많이 소통하려고 했다. 관계자들과 선수들 역시 팬들과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8월에 열린 블리자드 대회에서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e스포츠 현장의 문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 e스포츠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열띤 응원 문화는 어찌보면 우리에겐 익숙하다. 하지만 해외 선수들이 말했듯이 "아직까지 한국의 이런 e스포츠 문화가 해외에서 자리잡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의 대회 현장에만 '특별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블리자드 대회에서 잘 보여줬듯이 더 많은 이들이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e스포츠 현장이 많아졌으면 한다. 팬들의 관심과 함께 존재하는 e스포츠의 발전은 앞으로도 소통하는 현장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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