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갓'패치와 미봉책 사이, 오버워치 리그 도입한 역할군 고정에 대한 우려

칼럼 | 장민영 기자 | 댓글: 25개 |



20년 가까이 되는 블리자드의 게임 대회가 꾸준히 열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한국과 중국에서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대회가 계속 진행하고 있고, 성행하는 리그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해당 대회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악담을 하더라도 아직까지 리그가 명맥을 이어가는 게 사실이자 현실이다. 해당 게임의 팬들은 여전히 가끔 새로운 양상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리그를 계속 보고 있다.

이렇게 리그가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잘 만든 게임이라서,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 때문만은 아니다. 한 블리자드 개발자는 인터뷰에서 "프로게이머들이 개발자가 생각한 것 이상의 플레이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는 프로씬에서 보여주는 경기의 수준이 계속 변화,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프로게이머들이 게임과 리그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 사기라고 칭하며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전략은 항상 존재해왔다. 하지만 프로들은 일반 유저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플레이를 펼치곤 했다. 스타크래프트1 프로씬의 상징과 같은 임요환부터 '혁명가', '몽상가'라는 프로들의 별명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게임의 판도를 바꿀 정도의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면서 게임과 대회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블리자드 역시 최대한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리마스터 이후에도 해당 게임들의 큰 틀은 건드리지 않았다.

오버워치에 대한 블리자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최근 오버워치 2탱-2딜-2힐 역할군을 고정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일반 게임과 리그까지 큰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오버워치의 빠른 대전과 경쟁전 자체는 이를 조정할 법했다. 딜러를 하고 싶은 유저들이 다른 역할군에 비해 확연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게임 내에서 '탱딜힐' 조합을 구성하기 힘들었다면, 이번 패치와 함께 기본적인 조합의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역할군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일반 유저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충분히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오버워치 리그의 경우는 말이 다르다. 프로들은 애초에 승리를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해낼 수 있는 역할군에서 능력을 발휘해왔다. 딜러 포화상태도 아니기에 역할군 배치는 큰 문제가 아니다. 대신 한동안 리그에서 3탱-3힐 체제가 계속된다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었다. 프로 경기에서는 오히려 탱커-힐러 역할을 선호하면서 시즌2 스테이지2까지 딜러 영웅을 보기 힘든 현상이 나타나긴 했다.

하지만 스테이지3(3/4)가 지난 시점에서 프로 단계도 2-2-2를 갑작스럽게 적용할 줄은 몰랐다. 최근 오랫동안 유행하던 3-3도 결국 딜러 조합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 딜러 조합을 필두로 또 다른 변화를 시작할 만한 시기가 찾아온 듯했지만, 오버워치 리그는 새로운 변화 대신 1년 전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가장 영웅과 조합에 대한 비난이 적었던 시기로 말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프로 단계에서 2-2-2로 역할군을 고정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2-2-2 역할군 고정, 완벽한 미봉책?

그동안 오버워치를 보는 이들이 말하는 불만은 이렇다. ‘나오는 영웅과 조합만 계속 등장하니까 지루하다’는 말들이었다. 오버워치 초창기 대회 때부터 가장 오랫동안 나왔던 윈스턴-디바-트레이서-겐지-젠야타-루시우의 2-2-2 돌진 조합, 그리고 시즌1 스테이지2를 지배했던 투 스나이퍼와 메르시 중심의 2-2-2까지 모두 그런 평가를 받았다. 한 세트 내에서 자유롭게 영웅을 변경할 수 있는 게임인데, 그런 장점을 살리지 못하면서 나온 말들이다. 그리고 시즌2 스테이지 1, 2를 점령했던 3-3 메타가 2-2-2 돌진 조합처럼 장기화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불안이 정점에 도달했다고 보면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블리자드는 과감하게 1년 전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2-2-2를 중심으로 돌진 조합과 스나이퍼 조합이 모두 공존하던 시점으로 말이다. 작년 스테이지4는 가장 불만이 적은 시기이기도 하다. 저격수와 돌격 영웅들이 모두 교체 투입돼 현란한 오버워치 경기가 나왔기에 그렇다. 이번 시즌2의 스테이지4 역시 작년 2-2-2 조합의 모습을 잘 구현하면서 괜찮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오랜만에 딜러군에서 등장하는 메이를 비롯한 다양한 영웅을 매 경기 볼 수 있으니까.

중요한 건 여전히 2-2-2의 밸런스와 영웅 폭은 외줄타기와 같다는 것이다. 밸런스가 한 번이라도 크게 바뀌면 또다시 돌진이나 스나이퍼 조합 중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 시즌1 스테이지1, 2에서 메르시 버프 하나로 돌진 메타가 순식간에 스나이퍼 메타로 바뀌듯이 말이다.

두 조합이 균형을 맞춘다고 하더라도 오버워치 초창기의 2-2-2 돌진 조합처럼 장기화되면 다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오버워치는 영웅의 수(3역할군 30개)가 부족하고 업데이트 속도 역시 빠르지 않았다. 이미 밴 시스템까지 도입할 정도로 많은 영웅, 챔피언 풀을 가지고 있는 게임들에 비해 더딘 편이긴 하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오랜만에 핵심 픽으로 등장한 메이 역시 계속 나와 3-3에서 악명 높았던 브리기테의 명성을 이어갈 수도 있다.

게다가, 신 영웅이 많이 나오더라도 현실적으로 리그에 바로 투입하긴 쉽지 않았다. 2017년 초에 나왔던 오리사는 한 해가 지나고 스나이퍼 조합이 나오면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올해 본격적으로 등장한 영웅이다. 올해 출시된 애쉬와 바티스트는 특정 선수가 정해진 맵 구간에서 몇 번 선보이긴 했다. 그렇지만 다양한 전략의 시도일 뿐, PO와 같은 중요한 무대에 나올 만큼 핵심 전략은 아니라는 게 현실이었다. 바티스트 전문가로 평가받는 SF 쇼크의 ‘라스칼’ 김동준도 스테이지2 PO에서 못 꺼내다가 3 PO에서 쓸 정도였으니까. 이는 신 영웅이 프로 무대에 보편적으로 쓰이기 힘들다는 점을 잘 말해준다. 올해처럼 한 시즌에 대략 3개의 영웅이 출시된다고 하더라도 대회에 등장하는 신 영웅만으로 리그의 변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순 없어 보였다.





오버워치 프로씬 미래/가능성 보여준 스테이지3

그렇다면 앞서 말한 아쉬움에 대한 해결책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가장 가까운 정답은 이미 몇 주 전 스테이지3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지향적인 오버워치 리그 경기로 앞으로 프로들이 보여줘야 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담겨있다. 프로 팀과 선수들이 리그 경기의 기존 틀을 깨고 바꾸는,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게 바로 스테이지3였다.

스테이지3에서는 새로운 영웅 등장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는 경기들이 나왔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정점의 경기는 결승전이었다. 모든 역할군의 영웅을 다루는 ‘Flex’ 선수들이 상황에 맞게 역할까지 바꿨고, 실시간으로 상대의 전략에 맞춰 역할군을 넘나드는 두 선수의 선택에 따라 경기 양상마저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샌프란시스코 쇼크의 ‘라스칼’이 힐러 바티스트 3-3으로 단단하게 방패를 세우면, ‘영진’ 진영진의 둠피스트가 등장해 이를 돌파해버렸다. 반대로 ‘라스칼’이 딜러인 파라를 띄우면, ‘영진’이 탱커 로드호그로 낚아챘다. 다시 둠피스트에 버티는 힐러 바티스트, 브리기테가 나오면서 끝을 알 수 없는 두 ‘Flex’ 선수 중심의 경기 흐름이 7세트까지 이어진 것이다.

해당 경기에 대한 기대감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단순히 둠피스트-파라-로드호그-브리기테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큰 기대가 생기진 않는다. 그렇지만 ‘Flex’ 선수들이 영웅을 교체하면서 조합과 경기 양상이 어떻게 바뀔지가 궁금증 해진다. ‘과연 저 선수가 저 역할을 얼마나 잘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같은 영웅이라도 어떤 선수가, 어떤 조합에서 활용하는지에 따라 경기 양상 자체가 확연히 달라졌으니까.

나아가, 시즌2 전반의 걸친 ‘3-3 파훼’라는 숙원 사업 역시 프로게이머들의 능력으로 해냈다. 오래전부터 시도는 해왔지만, 3-3 역시 솜브라와 바티스트를 기용해 꾸준히 변화했기에 넘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상하이 드래곤즈라는 팀이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3딜러’ 중심의 조합을 완성하면서 3-3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3-3이 계속될 거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딜러도 본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많은 딜러를 기용해 우승한 상하이 드래곤즈가 잘 보여줬지 않았는가. 3-3이 나오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파훼할 수 있다는 것을. 이에 ‘감수’ 노영진은 딜러로 3-3을 넘을 가능성을 어디서 찾았는지 묻자 “방어력으로 감소하는 피해량이 5에서 3으로 줄어들었다는 패치가 큰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쉽게 지나치기 쉬운 패치 내용이지만, 프로게이머들은 이를 바탕으로 3-3 조합을 넘어설 만한 근거를 찾아낸 것이다. 이는 큰 틀의 제한 없이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게이머의 능력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상하이 혼자 해낸 것은 아니다. LA 발리언트와 휴스턴 아웃로즈, 광저우 차지도 스테이지3 다수의 딜러 메타가 도래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기에 가능했다. 최하위권이었던 LA 발리언트(LAV)와 휴스턴 아웃로즈가 해당 조합으로 PO(6위권)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고, 광저우 차지와 LAV는 상하이를 꺾으며 스테이지3에서 이변을 일으키곤 했다. 상하이의 ‘띵’ 양진혁은 이들과 대결에서 패배 후 “딜러 조합의 강력함을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할 정도로 경기를 통해 전략-전술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이렇듯 리그 중에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할 수 있는 게 프로게이머들이다. 3-3 메타가 무너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상하이가 자랑하는 1탱-3딜-2힐 체제를 어떤 팀이 넘을 수 있을지 궁금해질 법한 상황에서 2-2-2 역할군 고정 소식이 들려오고 말았다.




▲ 상하이 드래곤즈 '감수-영진'

(1-2-3, 2-2-2, 3-3, 1-5, 2-4, 1-4-1, 6-0) => 2-2-2

그리고 결국 오버워치 리그는 2-2-2라는 틀에 갇혀버렸다. 특정 상황에서 역할군까지 바꿔가며 새로운 대처법을 생각하던 선수들이 이젠 생각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2-2-2 외에 1-3-2, 4-1-1 등 다양한 체제를 시도 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처음 3-3과 청두 헌터즈의 1탱-3딜-2힐 조합을 접했을 때도 그런 조합이 가능한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의심부터 가졌다. 하지만 프로들은 이런 조합을 갈고 닦아 결국 우승으로 완성해낸 이들이다. 더이상 이들이 새로운 흐름을 이런 새로운 흐름을 이끌지 못한다는 제도적인 한계가 찾아왔다.

나아가, 다양한 역할군을 넘나드는 선수들의 활약을 볼 수 없게 됐다. 당장 스테이지3 결승전을 명경기로 이끌었던 ‘영진’과 ‘라스칼’이 딜러 역할군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 아쉽다. 두 선수 외에도 많은 오버워치 프로게이머들이 한 시즌의 3/4를 다른 역할군을 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탱커 자리야를 주로 했던 최상위권 팀의 딜러 ‘시나트라-넨네-서민수’를 비롯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능력을 키워 인정받았다. 이제 그런 능력은 의미가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대신 놀라운 에임과 특정 영웅과 역할군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선수만 빛을 볼 수 있는 시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물론, 한동안 본인 역할에 충실했지만, 조명받지 못하던 선수들의 역시 중요하긴 하다. 이번 시즌은 3탱-3힐이 성행했기에 순수 딜러 역할의 선수들이 핵심으로 떠오른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작년으로 돌아간 스테이지4는 축구로 치면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가 주목받는 시대라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축구에선 슈퍼스타들 사이에서 수비-미드 필더-공격을 오가며 빛나는 박지성 같은 선수들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포지션 변화와 함께 경기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멀티플레이어’ 말이다. 그리고 이제 오버워치 리그에서는 박지성 같은 선수를 보기 힘들 것 같다. 충분히 ‘멀티’ 능력을 입증했음에도 그 활약을 앞으로 볼 수 없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이미지 출처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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