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간담회 이후 한 달, 페그오는 변했을까?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18개 |

2021년 1분기 국내 게임계를 강타한 단어를 하나 꼽자면 '트럭 시위'일 것이다. 기원을 따지고 보면 작년 11월 e스포츠쪽부터 시작됐지만, 어느 새 그 불길은 국내 게임사에 대한 유저들의 항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그 시발점이 된 페이트/그랜드 오더는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1월 4일 페이트/그랜드 오더에서 갑작스레 스타트 대시 이벤트가 중단된 이후 약 한 달간, 유저들의 항의와 트럭 시위가 이어졌다. 운영진은 거듭 사과문을 올렸지만 유저들은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했다. 이에 백영훈 부사장까지 참석한 간담회가 2월 6일 진행되고, 후속 조치를 이행하고 있는 중이다.

4시간 가량 이어진 간담회는 엄밀히 말해서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3년 간 쌓여왔던 문제들과 감정의 골이 4시간만에 해결될 리도 없었을뿐더러, 페이트/그랜드 오더라는 게임에 대한 유저와 운영진의 온도 차이가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최애 서번트에 대해서 한 시간은 넘게 말할 수 있다"는 유저에게, 담당이 되면서 부랴부랴 공부하기 시작한 운영진의 답이 미덥지 않게 보였으리라. 그나마 솔직하게 "(담당이 되기 전)중간에 재미가 없어서 그만뒀었다"라고 밝혀서 유저들이 "그래도 해보긴 했네"라고 넘어가준 것이 다행일까.



▲ 지난 2월 간담회 이후, 넷마블은 페이트/그랜드 오더의 개선안을 내놓고 실천해왔다

그 치열했던 간담회 이후, 어찌되었건 넷마블에서는 유저들에게 공언한 대로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최초 논란이 됐던 보상은 일본 서버와 동일하게 지급하도록 맞출 것이며, 캠페인을 최대한 일본 서버와 맞추되 사정상 맞추지 못한 경우 다른 캠페인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운영자 노트도 월 1회 작성할 것을 약속하고, 공식 방송 채널을 운영해 3월 마지막 주까지 선보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1월 4일 스타트 대시 사태 이후, 2월 9일 공지가 올라오기 전에 서번트 및 개념예장을 삭제해버린 유저들을 기한 제한 없이 무조건 복구할 것을 약속했다. 그 뒤로 오역/오타를 최소화하기 위한 LQA 인력과 소통을 위한 커뮤니티 인력 추가 공고가 올라왔고, 나머지 다른 사항에 대해서도 답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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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공지가 한 순간에 공염불로 변해버리는 일이 그간 게임업계에 여러 건 있었던 만큼, 유저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지켜봐왔다. 그간 쌓여있던 오탈자 및 오역 등 LQA 문제들은 아직까지 완벽하게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건의 게시판 외에도 버그 및 오탈자 제보 게시판도 따로 만들면서 유저의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는 매번 패치마다 변경 사항을 공지하면서 조금씩 고쳐가는 모습을 보였다. 운영자 노트와 로드맵도 올라왔고, 커뮤니티 인력도 새로 들어온 것도 확인됐다. 남은 건 공식 방송, 그리고 앞으로 이 운영이 계속 이어질지 여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4일 진행한 페이트/그랜드 오더의 공식 생방송은 훨씬 더 의미가 막중한 방송이었다. 이전에 진행했던 페이트/그랜드 오더 3주년 방송의 실책을 만회하면서, 게임에 대한 운영진의 진중한 태도를 보여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서비스하는 게임에 관심 없어서 기본적인 것조차 오류를 내고 맥락도 읽지 못한 운영진이 어떤 실태를 보일 수 있을지, 스타트 대시 때 뼈저리게 느꼈던 유저들이었다. 그런 유저들의 트라우마를 한 끝이라도 건드렸다간 바로 터져버릴 수 있는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생방송의 포맷은 특별하진 않았다. 흔히 하는 캐릭터 뽑기와 이번에 개최하게 되는 '도쿠가와 회천 미궁 오오쿠' 이벤트 설명, 신규 서번트 '카마' 시연 및 앞으로의 업데이트와 개선 방향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흔한 포맷이었지만, 그 안에는 성의가 느껴졌다.

지난 2월까지 운영진과 날을 세우며 대립했던 총대 유저를 패널로 불렀고, 박헌준 사업부장은 부족한 점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차근차근히 개선안과 로드맵에 대해서 짚고 넘어갔다. 그리고 팬이 원하는 것에 대한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 방송 포맷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총대 유저를 패널로 초청해 진행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지난 3월 9일부터 13일, 14일부터 18일까지 뮤지컬 'FGO THE STAGE -신성원탁영역 카멜롯-'의 영상을 한국어 자막과 함께 공개한 것에 이어서 7장 뮤지컬과 '로드 엘멜로이 2세의 사건부' 애니메이션 VOD 공개도 예고했다. 애니메이션은 이전에도 공개한 적이 있었지만, 뮤지컬은 그간 라이센스 문제가 겹쳐서 유저들 사이에서도 영상을 들여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조심스레 점쳤던 분야였다. 정상화뿐만 아니라, 페그오 팬을 위해 라이센스 문제도 최대한 해결하겠다는 그 말을 실천으로 증명해나간 것이다.

박헌준 사업부장의 페이트/그랜드 오더 플레이 진도가 많이 나가지 않은 것도 솔직하게 공개됐지만, 유저들은 "네로좌"에 이어서 "니토크리스좌"라고 불러주면서 호응했다. 서번트 이름도 제대로 검수하지 않아서 오타를 내는 등, 기본적인 것이 부족했던 예전 운영진과 달리 미숙해도 유저들의 시각에 맞춰서 차근차근히 나아가려는 모습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간 반신반의했던 커뮤니티의 반응도 호의로 기울고 있다. 생방송이 당초 공지와 달리 송출 이슈 때문에 넷마블 TV로 송출이 되고, 이번 회천 미궁 오오쿠 업데이트가 갑작스런 오류로 연장점검이 되는 등 미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말이다.

물론 페이트/그랜드 오더 사태의 원인은 최근 게임업계에서 발발하고 있는 이슈와는 다르다. 자체 개발한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이 문제가 아니라, 퍼블리싱하는 와중에 쌓인 이슈들이 터져버린 것이니까. 그래서 비교적 해결책을 쉽게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지만 유저들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똑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곪아있던 시간이 비교적 짧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3년은 됐으니, 한 달만에 여론을 바꾸고 상처를 낫게 하기란 쉽지 않은 일 아닌가.

더군다나 2000년대 초중반, 흔히 '달덕'이라고 불리던 타입문 팬덤을 겪어본 사람이면 그 집요함과 행동력은 다들 알 것이다. 이미 트럭 시위에서 증명되지 않았던가. 한창 때는 고증이나 떡밥 하나 갖고 몇 시간은 서로 붙들고 늘어지면서 다투다가도, 팬덤 전체에 해가 되는 일이 벌어지면 바로 합심해서 행동을 보여주던 이들이다. 괜히 서브컬쳐 유저 사이에서 "달덕은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떠돌던 게 아니다. 세월이 지나서 다소 순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라도 자신들의 팬심의 터전을 건드리는 티끌 하나라도 보이면, 바로 터져나갈 수 있는 것이 타입문 팬 그리고 페이트/그랜드 오더 유저들이다. 그렇게 다루기 어려운 유저들의 신뢰를 조금씩이나마 회복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페이트/그랜드 오더 생방송 이후 유저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물론 단 한 번의 방송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자신들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이행해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행동 하나하나는 미흡한 점도 있고,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유저들이 아직은 완벽하게 믿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바뀌어나갈 것이라고 유저들이 점차 믿게 만들었다. 유저의 시각에서 보고자 하고, 그에 맞춰서 한 발 한 발 내딛었기 때문이다.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으며, 신용이 없으면 존경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 작은 실천을 페이트/그랜드 오더 운영진은 하나하나 이행하고 있다. 미흡한 점을 인정하고 작은 실천을 하나하나 쌓아서 조금씩 바뀌어가는 과정을, 다른 게임사들도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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