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조日記] 차(조) 선생님, 게임이 하고 싶어요...

칼럼 | 강승진, 박광석, 윤서호 기자 | 댓글: 2개 |
자, 눈을 감고 '게임쇼'라고 읊조리며 그 이미지를 떠올려봅시다.

1. 게임쇼, 새로운 신작들이 공개되는 컨퍼런스들이 잔뜩 열리며 밤잠을 설치게 하고
2. 게임쇼, 주요 미디어를 통해 보도 제한 기한인 엠바고가 풀리며 인터뷰와 리뷰가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3. 게임쇼, 거대한 부스들이 게임 팬들을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팬들의 발길을 붙잡고 그들이 향한 그곳엔
4. 아무도 플레이하지 않은 시연 버전이 담긴 기기가 눈부신 후광과 함께 게이머를 유혹한다. 게임쇼.

기대했던 신작, 혹은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틀의 등장까지. 그리고 그 환희를 완성하는 게 바로 체험입니다. 요즘에야 더 많은 팬을 위해 게임쇼 기간에 맞춰 온라인 데모를 배포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게임쇼에 방문한 유저들만을 대상으로 공개되는 첫 시연 역시 적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트레일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게임의 모습을 만날 수 있고, 또 그런 참가자에게만 주어지는 경험이 게임쇼를 방문하는 이유가 되죠.




그런데 20주년을 맞아,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행사를 되살리기 위해 큰 준비를 한 차이나조이2023에서는 그 시연이 부족합니다. 그것도 한참. 기대작이라 할 법한 게임의 시연은 손에 꼽고, 그나마 준비된 시연 기기도 턱없이 적고요.

게임별 시연 기기 대수가 소량만 준비되는 건 사실 해외 대형 게임쇼도 비슷합니다. AAA급, 올해 최고 기대작 하나만을 들고오는 대형 게임사 정도가 아니라면 큰 게임도 부스에는 시연 기기 너댓 대, 10대 안팎으로 준비되는 게 보통이니까요.

다만 이런 게임쇼들은 올해의 차이나조이와 다른 특징 하나를 분명하게 가지고 갑니다. 한 게임의 시연 기기 자체는 적을지 몰라도 그런 시연의 기회를 주는 게임들이 정말 넘쳐나도록 많다는 특징 말이죠.

게임쇼에 참여한 게이머들은 기대작으로 불리는 게임을 길게 줄을 서 즐겨도 되지만, 그 시간에 비교적 대기 인원이 적은 중소 규모 게임을 다양하게 체험해보는 쪽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예상하지 못했던, 취향에 맞거나 숨겨진 꿀작품을 찾을 수 있기도 하죠. 한때 인벤의 한 기자가 미국 취재에서 아무도 하지 않아 텅 비었던 시연 기기 두 대가 있는 시티 빌더를 플레이했는데 훗날 그게 프로스트펑크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하니까요.

한가지 확실한 건 이렇게 현장을 방문한 게이머가 '어떤 게임을 플레이할까'라는 선택, 그리고 그에 따라 이루어지는 시연까지. 게임쇼에 방문한 게이머들에게 게임 그 자체로 경험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택한 게임이 만족스럽든, 혹은 재미는 덜해도 많은 게임을 즐겼든, 게임 플레이라는, 게임의 가장 근원적인 놀이 방법을 직접 경험한 것이니까요.

반면, 차이나조이의 핵심은 게임 플레이보다는 게임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부수적인 콘텐츠에 있습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경우 실제 게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주기도 하고, 무대 전면에 코스프레 모델의 자리를 만들어 오가는 팬들을 붙잡기도 하죠. 게이머들이 부스에 마련된 키보드에, 스마트폰에 손가락을 올리는 건 쿠폰이나 선물을 받기 위한 스탬프 발급 과정의 일부쯤에 더 가깝습니다. 게임 플레이 자체가 주는 경험보다는 게임 플레이를 수단으로 여기는 셈이죠. 일부 큰 게임의 시연도 있지만, 많은 부스가 이런 식입니다.

이런 방식의 행사 구성이 차이나조이 특징에 맞추면 마냥 잘못된 선택만은 아닐 겁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긴 하지만 찾아오는 팬들이 그 이상으로 많은 중국 게임쇼 특성상 게이머가 오랜 시간 자리를 붙이고 게임을 즐기면 회전율은 그만큼 떨어지겠죠. 행사장은 그만큼 더 복잡해질 거고요. 그래서 긴 줄을 세우고 부스를 가로질러 간단한 체험과 경품을 주고 다음 부스로 보내는 식이 효과적이죠. 또 참가 기업은 마땅한 신작이 없어도 부스를 꾸리고, 게이머들에게 이미 서비스 중인 게임 플레이를 유도할 수도 있고요.

차이나조이가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로컬 행사였다면 이해하기 더 쉬웠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차이나조이는 중국 게임 시장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는 상징성과 함께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글로벌 게임 이벤트로의 자리매김을 모색하는 게임쇼입니다. 단순히 내수 시장, 자국 게이머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만으로는 그러한 목표를 이루기 어렵겠죠.

돈 잘 버는 방식을 넘어 게임 자체의 만듦새, 질을 높여가는 중국 게임 개발사들이 늘어나는 만큼 분명 팬들의 기대를 받는 게임도 많고,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낼 타이틀도 다수 개발 중입니다. 그런 게임들의 새로운 정보 획득, 나아가 플레이까지 차이나조이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상해를 찾아선 안 되는 걸까요?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확실히 축소된 규모. 또 분명히 줄어든 시연 기기와 게임의 수를 생각하면 넓은 관을 채울 게임사나 기업에 시연 빌드 제공 능력까지 바라긴 어렵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나조이가 단순히 규모의 우월함만으로 세계적 게임쇼를 자부할 게 아니라면, 시연, 그리고 어느 국가의 게이머가 방문해도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구성을 준비해야 할 겁니다.

제가 중국까지 와서 기대한 게임들 못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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