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대만 키운 공간 컴퓨터, 애플도 다르지 않았다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11개 |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애플이 만들고 있다는 신형 기기와 관련된 루머가 무성하던 시기에 '가상현실 헤드셋, 애플이 만들면 다를까?'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오큘러스의 설립자인 팔머 럭키가 먼저 나서서 자신의 SNS를 통해 '애플의 헤드셋은 정말 좋다'라는 의미심장한 내용의 글을 게시했던 것은 물론, 이 기기가 한화로 약 4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가 될 것이라는 소식이 더해져 '애플이라면 어쩌면?'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지난 2월 2일, 실제로 3,500달러(한화 약 467만 원)의 파격적인 가격을 자랑하는 애플의 신형 기기 '애플 비전 프로'가 미국 시장에 출시됐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MR 헤드셋이라는 명칭 대신 '공간 컴퓨터'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고, 오랜 기간 기대를 모았던 덕인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다른 MR 헤드셋보다 약 7배 이상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사용자 반응이 이어졌다. 마치 실제 눈으로 보고 있는 것 선명한 패스스루 화질과 해상도, 높은 인식률을 보여주는 시선과 표정 추적, 컨트롤러를 대체할 수 있는 정교한 핸드트래킹 기능 등이 장점으로 언급됐다. 미국 현지 언론들도 애플의 비전 프로가 사전예약 단계에서만 최소 18만 대 이상 판매됐고 출시 당일에는 품절 대란이 벌어졌다며 이른 성공을 점쳤다. 이는 단순 계산으로도 어림잡아 8천억 원 매출을 넘어서는 수치다.




그로부터 약 2주의 시간이 흐르고, 커뮤니티 곳곳에서 '비전 프로 반품'이라는 키워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애플의 반품, 환불 관련 정책에 따라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제품 수령 후 약 14일 이내라면 무조건 반품을 신청할 수 있는데, 비전 프로를 먼저 경험한 많은 사용자들이 이 정책을 활용하여 반품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반품 행렬이 이어졌다'라는 말은 다소 과장이 섞인 표현에 가깝다. 실제로 비전 프로가 몇 퍼센트의 반품률을 기록하고 있는지 별다른 수치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고, 오히려 애플 측은 '아이폰의 일반적인 반품 비율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자극적인 외신의 보도 내용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비전 프로 반품'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받은 이유는 여러 IT 전문 인플루언서들을 비롯,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비전 프로 구매를 인증한 여러 사용자들이 비전 프로에 만족하지 못했다며 실제로 반품 의사를 전했기 때문이다. 반품 의사를 전한 이들이 밝힌 이유도 대부분 비슷하다. '분명 가능성이 보이나,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여러 비전 프로 사용자들이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반품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용자들이 언급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착용감이다. 요는 고글 형태인 기기가 무겁고 답답해서 편하게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비전 프로는 헤드셋 자체의 무게만 두고 보아도 가장 대표적인 MR 헤드셋인 메타 퀘스트3보다 더 무겁고, 여기에 사용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충전용 케이블과 배터리까지 더하면 실제 무게는 약 1kg에 달한다.

기기의 무게 중심도 디스플레이가 위치한 전면으로 쏠리다보니, 장시간 사용하면 피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몇몇 사용자들은 헤드셋 기기의 발열 때문에 오래 끼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우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디스플레이의 지연시간 탓에 따라 두통이나 멀미, 충혈 문제가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여러 필수 앱이 누락되어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는 비전 OS와 부족한 콘텐츠, 업무에 활용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시선 추적과 핸드 트래킹도 문제점으로 언급됐다. 폐쇄적인 애플 생태계를 그대로 계승하여 생각보다 활용할 수 있는 앱이 적고, 마우스나 키보드를 사용하는 기존 방식들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다보니 애써 HMD를 뒤집어 쓰는 대신 익숙한 맥이나 아이패드, 아이폰을 찾게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렇게 언급된 문제들은 한화로 약 460만 원에 달하는 비전 프로 본체의 높은 가격과 맞물려 더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새로운 기술이 보여주는 가치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비전 프로와 거의 유사한 기능을 제공하는 다른 MR 헤드셋들과 비교하면 460만 원이라는 가격은 터무니없게 느껴질 정도로 비싼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안경 사용자들은 비전 프로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도수 클립을 구매해야 하는데, 이때도 약 2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여기에 비전 프로를 보관할 수 있는 케이스나 여분 배터리까지 구매한다면 이것만으로도 다른 MR 헤드셋 한 대를 구매할 수 있는 비용이 된다. 장기적인 사용을 가정했을 때 따라올 가격 부담을 무시할 수 없고, 이 역시 많은 사용자들이 환불을 고려하게 된 주요 사유가 됐다.



▲ 별도로 판매되고 있는 비전 프로의 액세서리에도 '애플 프리미엄'이 붙어있다

결과적으로 '애플 비전 프로'를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은 도저히 낙관적이라고는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지난 7일, SNS를 통해 "비전 프로는 인상적이지 못했고, 충분히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향후에 더 보완된다면 최고의 제품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으나, 1세대 아이폰이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비전 프로 역시 전혀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비전 프로의 시선 추적 기능은 정말 인상적이지만, 애플 비전 프로보다 메타 퀘스트3가 더 좋다"라며 HMD 시장의 선두 주자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퀘스트3가 비전 프로보다 7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한 것은 물론, 케이블 연결이 필요없는 무선형 기기이고, 더 가벼운데다가, 더 많은 몰입형 콘텐츠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저커버그 CEO가 언급한 것들은 분명 현재 비전 프로가 해결하지 못한 치명적인 단점들이기에 단순히 경쟁사 대표의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 저커버그 CEO는 퀘스트3로 직접 촬영한 고해상도 패스스루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메타 퀘스트3가 비전 프로보다 7배 더 저렴하다'는 댓글도 눈에 띈다.

처음 소개된 순간부터 줄곧 기대를 모았던 애플의 비전 프로는 기대했던 만큼의 혁신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그 나름대로 VR, AR, MR을 아우르는 현재의 XR 시장에 분명한 울림을 주었다. 혼합현실 기술을 구현하는 HMD가 소비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선 어떠한 것들을 충족해야 하는지, 분명한 조건들을 다시금 되짚어주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누구나 일상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경량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애플 역시 처음엔 이 부분을 고려했고, 개발 초기 단계에는 신형 MR 기기를 안경 형태로 제작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신형 기기 공개 시점에 맞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안경 대신 스키 고글 형태를 택하게 됐고, 이 선택으로 인해 비전 프로는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혁신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물론 애플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공간 컴퓨터의 명제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해답이 안경 형태 하나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쟁점은 이를 통해 사용자가 느끼는 두통이나 멀미, 피로감을 줄이는 것에 있다. 현재의 고글 형태를 유지한다면 지금보다 더 넓은 시야각을 갖추고, 무게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하며, 케이블 없이 스탠드얼론 기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드웨어의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물론, 애플 비전 프로가 충분한 접근성을 갖추기 위해선 배터리 팩의 연결 케이블을 독자규격 대신 USB-C 단자로 통일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지만 말이다.

초기 단계의 비전 OS 역시 사용자 편의에 따라 더 다양한 커스터마이징 가능하도록 개선이 필요하며, 고전적인 핸드 헬드 컨트롤러를 대체할 시선 추적과 제스처는 현재보다 더 직관적이고, 다양한 조작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비전 프로가 기본적으로 애플 생태계를 이용하는 이들을 주요 타겟층으로 삼는 기기인 만큼, 기존 애플 생태계에서 이용할 수 있었던 앱들 정도는 대부분 사용할 수 있도록 보강하는 것 역시 애플이 당면하고 있는 주요 과제다.



▲ 공간 컴퓨터라면, 적어도 아이패드를 활용하던 업무 정도는 완벽히 대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애플이 야심차게 선보인 비전 프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이며 주춤하고 있는 지금, 삼성전자와 LG, 화웨이를 필두로 여러 기업들이 차세대 XR 시장의 선두에 서기 위한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이 준비 중이라고 소개한 신형 기기들도 대부분 퀘스트3, 비전 프로와 유사한 활용성을 지닌 MR HMD가 될 예정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신형 기기는 각각 소프트웨어, 프로세서 분야에서 강력한 입지를 지닌 구글과 퀄컴이 함께하기에 더욱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비전 프로가 다시 한번 보여준 선례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 것에 있다. 이젠 웬만한 HMD 사용자들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는 필수 요소들, 대표적으로 가벼운 기기 무게, 선명한 해상도, 사람 눈과 유사한 폭의 시야각, 충분한 배터리, 조작의 편의성, 소프트웨어 확장성, 그리고 저렴한 가격 등의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발매 일정에 쫓겨 미완의 상품을 내놓는 타협의 과정을 이젠 지양해야 할 것이다. 퀘스트3와 비전 프로 등 여러 선택지들이 존재하는 지금, 이용자들은 더 이상 새로울 뿐인 범작을 찍어 먹어보지 않아도 거를 수 있는 경험치를 축적한 상황이다.

애플 역시 비전 프로 출시 경험을 토대로 더 저렴한 가격에 여러 개선점을 더한 다음 세대의 공간 컴퓨터를 준비 중이다.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이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6개월 뒤가 되리라고 전망했다. 삼성과 LG를 포함한 여러 기업이 저마다의 HMD를 시장에 내놓은 뒤에도 한동안 경쟁은 계속될 예정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경쟁이 오랫동안 정체된 것처럼 보였던 XR 업계 전체에 활기를 더하고, 그 끝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차세대 HMD가 등장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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