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차라리 안 한다" 스타트업이 등 돌린 정부지원사업, 왜?

칼럼 | 윤홍만 기자 | 댓글: 26개 |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게임산업의 숨통이 트여가는 분위기다. 규제에서 진흥으로 정부 정책 노선이 선회한 것에서부터 산업과 관련된 각종 포럼, 정책 간담회도 활발히 열리고 있다. 이에 발맞춰 진흥책의 대표적인 사례랄 수 있는 정부지원사업 역시 전에 없게 활발히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지원사업을 반기는 소규모 개발사는 드물다. 분명,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사업이건만 왜 그들은 정부지원사업을 견원시하는 걸까.

대부분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서류절차가 너무 번거롭다"며 입을 모았다. 경력자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경우가 아닌 이상 스타트업 개발사의 경우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이에 자연스레 대표의 경우 겸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면서 프로그래밍이나 기획, 아트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문서작업까지 해야 하니 대표로서는 시쳇말로 돌아버리기 일쑤다.

물론 이런 문서작업은 필요하다. 정부로서는 그들이 지원하는 스타트업 사업체가 제대로 일하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과도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부지원사업에서 요구하는 문서량은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는 지원금을 제대로 썼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 경우 과도할 정도로 세밀하게 기록해야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서류작업을 하는 인원을 새로 뽑아야 할 정도다.




지원사업부처로부터 각종 간섭을 받는 사례도 왕왕 있다. 작게는 개발 진행 상황을 수시로 검사하는 것에서부터 각종 과제 등으로 개발사의 진을 빼놓는다. 이와 관련해 정부지원사업을 받았거나 신청했던 개발자들은 "정부지원사업. 지원해주니까 좋긴 하더라. 근데 서류절차부터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먹튀 같은 거 없어야 하니까,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는 건 맞지만 소규모 개발자에겐 이거 엄청 빡세다. 서류 절차만 몇 시간씩 걸리기도 하고. 스타트업은 어떻게 보면 배수진치고 도전하는 입장인데 진이 빠진다. 차라리 안 받는 게 낫다"며 문서작업과 간섭을 정부지원사업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결국, 스타트업이 오롯이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부지원사업이 반대로 개발 외에도 신경 써야 하는 점을 만드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을 만든 셈이다.

이런 지원사업부처와 스타트업 개발사 사이의 문제 외에도 장애물은 존재한다. 바로, 지원금 헌터들이다. 지원금 헌터란 창업할 생각이 없거나 혹은 기존 사업과 다름에도 지원금만을 목적으로 정부지원사업에 뛰어드는 개발사를 뜻하는 말로 정부지원사업의 암적 존재들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현 정부지원사업의 깐깐한 문서작업, 간섭이 생긴 데에 영향을 끼친 지원금 헌터지만, 반대로 규칙만 복잡해졌기에 외려 지원금 헌터들이 더욱 활개 친다는 것이다. 앞서, 문서작업과 간섭으로 스타트업이 정부지원사업에 손을 빌리지 않고 도중에 포기한다고 했었는데 그 부분을 지원금 헌터들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애당초 지원금이 목적인 만큼, 문서작업 등에 대해선 빠삭할뿐더러 그것만 잘 처리하고 지원금을 받고 난 다음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물의 경우 외주를 주거나 혹은 그들 나름대로 적당히 만들고 남은 지원금은 그대로 먹튀하는 게 대부분이다.



▲ 지원금을 목적으로 한 지원금 헌터는 정부지원사업의 암적 존재다

정부지원사업 관계자들의 신사업에 대한 집착 역시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자와 만난 어느 스타트업 대표는 "사업계획서를 준비해서 발표를 끝마치니 VR, AR 콘텐츠를 만들 생각이 없냐는 말을 하더라.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에 설마 싶었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는 기분이었다"라며, "기껏 준비했지만, 심사위원들이 원한 키워드는 VR, AR 같은 4차산업이었던 거였다. 무슨 시험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포기해버렸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는 정부지원사업 관계자가 협소한 시각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 정부지원사업 자체가 신사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앞서 기자와 만난 그는 정부지원사업 멘토링을 받았을 때의 일화도 말했는데 "멘토분이 사업계획서를 살펴보더니 대뜸 "AR로 하자. 이걸로는 사업을 따낼 수 없다"고 조언하더라. 그 말을 듣고 멘토링을 포기했다. 내가 정부지원사업을 하는 목적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보조금을 받으려는 건데 저래서야 그냥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한 지원금 헌터와 다를 게 없지 않나. 의미도 없고, 본말전도인 셈이었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 현 IT계열 정부지원사업은 대부분 VR, AR에만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문제는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2015년까지만 해도 정부지원사업을 신청한 대상자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액션 RPG를 개발할 생각은 없나?"였다고 하니, 이래서야 정부지원사업이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부처인지 투자 부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정부지원사업 관계자들의 현업에 대한 인식 부족 역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아이템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의 상당수가 현업 종사자가 아닌 교수나 투자자로 구성돼 있어 산업에 실정에 대해 어두운 편으로 신사업, 트렌드에 집착하는 것도 이에 대한 방증인 셈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현재 국내 게임 산업은 진흥과 몰락의 기로에 놓인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이전 정부의 각종 규제에서부터 과금, 사행성 요소같이 산업에 뿌리내린 폐단, 외산 게임들의 대두, 업계의 양극화 등 문제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산업의 허리가 될 양질의 개발사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현행 정부지원사업을 근본부터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가시적인 성과만을 바라보는 게 아닌 양질의 개발사가 나올 수 있도록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명확하고 고쳐야 하는 점 역시 명확하다. 여기에 현 정권이 게임 산업에 대해 우호적인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진흥과 몰락의 기로에 놓은 국내 게임 산업.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변화의 바람이 정부지원사업의 변화를 통해 불어오길 바란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