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아시스'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15개 |



최근 VR 게임과 대중문화를 소재로 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개봉됐다. VR 게임 '오아시스' 속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찾는 여정을 그린 이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VR 기술을 바라보며 상상했던 모습들이 화려한 CG 효과와 함께 스크린 가득 채워진다. 유복한 사람,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오아시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고, 영화의 주인공 '파시발'은 누구나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VR의 무한한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레디 플레이어 원' 이전에도 VR 세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린 작품들은 계속 존재해왔고, 사람들은 이러한 작품들을 접하며 VR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언젠가 계속해서 꿈꿔왔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오아시스'가 등장하길 고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VR은 아직 시기상조야. 앞으로 5년은 더 기다려야지"




이제는 VR·AR과 관련된 새로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반응이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 등의 일반 소비자용 VR HMD가 출시되고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VR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원색적인 비난보다 무서운 철저한 무관심의 벽은 물론 하루아침에 허물어질 문제는 아니다. 장시간 착용 시 피로를 유발하는 HMD의 무게와 번거로운 연결 케이블, 낮은 해상도에서 오는 멀미 현상,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 등등, VR에는 VR과 친해져 보려는 유저들의 앞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이 산재해있었다.

지금은 더 가벼운 무게와 무선 기능은 물론, 스크린도어 현상을 없애고 높은 해상도를 갖추며 초기에 언급된 문제점들을 하나씩 개선하고 있지만,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에도 대중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닌텐도 스위치나 PS4와 같은 콘솔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유저에게 '젤다'나 '몬헌'이 얼마나 명작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직 한 번도 VR 콘텐츠를 접해보지 못했거나 VR 기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유저들에게는 결국 다른 세상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단 VR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직접 경험할 기회가 없다면 관심은 자연히 옅어진다. VR이 정말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접하는 사람들만 접하는 '그들만의 기술'로 계속 남아있었다면 이러한 분위기는 누구도 쉽게 쇄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 "와, 진짜 갓겜이야, 꼭 해봐라!" / "아…그래? 그건 그렇고 랭 듀오하쉴?"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국에서 새로운 VR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들이 꾸준히 개최되고, 노래방처럼 가볍게 방문할 수 있는 'VR방'도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전국의 VR방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한 일반 유저들이 선수로 참여하는 VR e스포츠 행사가 개최되는 등,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VR 세상에 직접 발을 담가볼 수 있는 인프라가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인프라만 번듯하게 구축되고 정작 할만한 게임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겠지만, VR 업계에는 이미 '명작'이라는 수식어를 받기에 충분한 양질의 VR 콘텐츠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VR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공포 장르의 '바이오하자드7',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VR이 보여주는 상호작용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잡 시뮬레이터',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영화 매트릭스 속 '네오'가 된듯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슈퍼핫 VR' 등등, VR이기에 더 재밌는 이러한 게임들 말이다.

"그래 봤자 잠깐 즐기고 마는 체험성 콘텐츠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유저들의 편견을 깔끔하게 지워줄 AAA급 게임들도 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 VR'과 '폴아웃4 VR'은 PC·콘솔로 발매된 원작의 방대한 콘텐츠를 그대로 VR에 옮겼고, 2017년 한해에만 총 73억 원 이상의 판매 수익을 기록하며 가시적인 성과도 보여줬다.



▲ 영화 속의 '오아시스'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VR은 더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속 가상현실 세상의 모습을 완벽하게 갖춘 '5년 뒤'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당장 VR 콘텐츠를 직접 겪어보고 편견을 버려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5년 뒤는 너무 늦고, 1년쯤 합시다!'라고 가볍게 말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현실과 가상을 쉽게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해상도의 VR 영상을 구현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며, 영화 속 '오아시스'처럼 큰 몰입도를 보여주는 콘텐츠도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저들의 계속되는 관심과 기대가 많은 VR 콘텐츠·하드웨어 개발자들에게 힘이 되고, 5년이라는 시간을 앞으로도 계속 줄여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관람하고 극장을 나오며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개연성이 있는 좋은 영화냐'라는 물음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지만, 화면을 가득 수놓은 VR 세상의 모습은 분명 오랫동안 꿈꿨던 이상 속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VR 체험장에라도 방문해봐야겠다. 영화 속 '오아시스'를 하루빨리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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