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칼럼 | 김규만 기자 | 댓글: 18개 |

이따금씩 유튜브는 전혀 찾아볼 생각도 없었던 영상들을 추천해 주거나, 아니면 감상하고 있던 영상과 비슷하다는 이유로(어떤 기준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음 동영상을 골라 자동으로 재생해주고는 한다.

최근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Swedish Radio Symphony Orchestra)이 연주하는 '젤다의 전설' OST 모음곡 연주 영상을 접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평소 같았다면 다른 동영상을 보기 위해 바로 지나쳤을 테지만, 이 예기치 못한 연주곡 모음은 음악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롯이 음악만 들어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그것도 무려 16분 동안이나!

신들의 트라이포스(A link to the Past)의 메인 테마로 시작해, 젤다의 전설 팬들에게 가장 익숙할 터인 메인 테마곡으로 끝을 맺는 연주곡을 들으면서, 참 많은 추억이 떠올랐다. 동굴에서 칼을 얻었던 첫 순간이나, 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몰라 의심 가는 곳마다 폭탄을 놓던 기억, 그리고 닭 떼들에게 두들겨 맞았던 경험까지... 영상 아래 댓글을 보니,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린 사람이 혼자는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옛 추억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요즘 떠들썩한 이슈와 맞물려 제목과 같은 걱정이 떠올랐다.




WHO가 약 28년 만에 개정하는 국제 질병 분류, ICD-11의 초안상 행위 중독 하위 항목에 '게임 장애'가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었다. 먼저 미국 게임산업협회가 발 빠르게 성명서를 발표해 WHO에 반대하고 나섰고, 이후 각국의 전문가와 협회, 학회 등에서 WHO의 게임 장애 분류 중단을 위해 공동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ICD-11의 초안이 최종 승인이 되는 것은 약 두 달 뒤인 5월. 앞으로도 이 사안과 관련해 더욱 많은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정대로 5월에 '게임 장애'가 정식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중독을 유발하는 것으로 낙인찍힌 게임과 연관된 문화 콘텐츠들에 대한 인식 또한 변화를 맞게 되지 않을까?

술과 담배,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과, '행위 중독'으로 분류된 도박 등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중파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애니메이션 '원피스'에서 상디는 담배 대신 막대사탕을 물었고, 도박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담배 연기로 자욱한 지하 도박장을 배경으로 한다. 마약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나마 꼽아 본다면 위즈 칼리파와 스눕독이 부른 노래 'Young, Wild & Free'정도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총기 사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아직 행위 중독으로 지정되기 이전인 게임을 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는 않아 보인다. 거기에 '게임 장애'가 정식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각종 매체에서 게임의 '어두운 일면'만을 다루는 일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분노의 질주'처럼 음지에서 암약하는 프로게이머들을 주제로 하는 영화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 9일 있었던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낙인을 찍는 순간, 사람은 배제의 논리를 작동시키기 시작한다"고 전했다. '중독'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붙는 순간부터 게임은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과 언제나 함께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리라.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면서 떠오른 생각이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감동을 받는다. 어떤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절절한 스토리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또 다른 게임에서는 지나가다 마주치는 풍경에 넋을 잃기도 한다.

게임이 터부시 되어버린 미래에도 우리는 지금처럼 게임에 나오는 테마 음악을 듣거나, 그 속에 펼쳐진 멋진 장면들을 보며 지금처럼 감동할 수 있을까? 그 이전에, 앞으로도 우리가 감동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당장에 큰 변화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 과연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것이 '중독 유발자'라고 결정된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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