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엇이 게임쇼를 게임쇼답게 만드는가

칼럼 | 김강욱 기자 | 댓글: 5개 |
게임스컴. 유럽 최대의 게임 쇼다. E3, 동경게임쇼와 함께 세계 3대 게임쇼라고도 불린다. 방문자는 매년 증가하고 출품작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전 세계 게임인을 다 만날 수 있다.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차이나조이에 비해도 전혀 눌리지 않는 크기, 세계 각지의 게임이 모이는 다양성도 가지고 있다. 직접 와보니 왜 세계적인 게임쇼라고 불리는지 느껴진다.





몇 년 전 방문한 차이나조이는 거대한 콘서트장이라는 느낌이었다. 각 회사의 부스는 커다란 무대 위 부스걸과 코스프레 모델의 쇼를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었다. 중앙에 무대를 두고 쇼와 이벤트로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잡았다. 물론 시연 공간도 있었지만 메인은 아니었다. 규모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다. 무대와 시연 공간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기업이 아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중소 규모 부스 중에서는 무대를 선택한 업체의 비율이 더 높았다. 몇 년 전 차이나조이 부스걸 규모와 의상 규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온 "이제 가도 볼게 없겠네"라는 이야기는 '볼거리'를 중심으로 한 차이나조이의 특징을 잘 보여준 말이다.

게임스컴의 정체성은 명확하다. 체험이다. 모든 관, 모든 부스가 체험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무대가 있는 부스도 있긴 하다. 올해 블리자드 부스도 큰 규모의 무대를 뒀다. 하지만 그만큼 거대한 시연 구역도 마련했다. 무대와 시연 중에서는 시연대를 선택해 부스를 꾸린 업체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기줄을 편하게 기다리기 위한 간이의자는 필수품이다. 일부 부스에서는 아예 증정품으로 종이 재질 임시 의자를 주기도 한다. 사방에 가득한 AAA급 게임을 보며 어떤걸 먼저 해볼까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놀거리'가 가득한 쇼다.

게임쇼는 유저들이 참여하는 행사다. 당연하지만 관객들이 원하는 요소를 배치해야 한다. 그게 바로 시연이다. 출시 전의 게임을, 혹은 이미 출시했지만 플레이를 고민하고 있던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다. 요즘 같이 접근성이 높아진 때에 짤막한 티저나 트레일러 영상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잡기 어렵다. 무대에서 진행되는 쇼도 마찬가지다. 주변 행인의 시선을 끌고 자리에 잡아둘 수는 있지만, '유저'로 만들지는 못한다. 결국 유저를 만드는건 게임 그 자체다.

게임쇼의 목적은 홍보다. 출전 회사는 자신의 게임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새로 나올 작품을 공개하며 회사의 게임과 회사의 기술력을 보여주려 한다. 방문자는 새로운 소식을 알고 싶어서, 본인이 기대하는 게임을 눈으로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 쇼를 찾는다. 쇼에서 진행되는 대회,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 아이템, 쿠폰이나 혜택 등은 사람을 모으기 위한 일종의 서비스다.



▲ 간이 종이 의자는 인기 증정품이다.


현장에서 한 게임의 시연을 끝내고 우연히 개발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시연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우리의 잠재적인 플레이어다. 시연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게임의 좋은 점을 말해줘야 한다. 사람들에게 시연은 굉장히 흥분되는 순간임과 동시에, 게임의 구매를 결정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가 나가서 '이 게임 별로야'라고 말하면 우리는 한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의 잠재적 플레이어를 잃는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일까. 게임스컴 시연장에는 굉장히 많은 도우미들이 대기한다. 사람들이 시연 중 막히거나 길을 찾지 못하거나 방법을 모를 때 길을 알려주고 방법을 말해준다. 시연자가 흥미를 잃은 채로 자리를 뜨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개발사에서 준비한 모든 것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들은 15분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볼거리 위주 쇼의 장점도 있다. 지루하지 않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사방에 볼만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으니. 방문자의 만족도도 높다.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나. 서너시간씩 기다려 간신히 짧은 시간 게임을 하고 행사장을 나오는 상황에 비하면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쪽이 훨씬 재미있다. 하지만 발길을 멈추고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을 유저라고 볼 수 있을까. 양손 가득 상품과 증정품을 들려 보내면 유저가 되는 걸까.

누군가가 그러더라. "그건 게임스컴이니까 가능한거"라고.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게임들이 다 모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고. 북미-유럽 시장은 아직까지 패키지 게임이 많기에 가능하지만, 차이나조이가 그랬던 것처럼 모바일 게임 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게임쇼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모바일이면 어떻고 콘솔이면 어떻고 PC면 또 어떤가. 결국 게임은 직접 해봐야 안다. F2P 게임을 굳이 그런 곳에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시간이 짧아 많은 면을 보여줄 수 없다는 말은 핑계다. 게임에서 가장 자신있는 부분을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 게임은 20시간 이상 즐기면 재밌어지니 그때까지만 해보세요"라는 말이 냉정한 시장에서 통할 것 같은가. 아쉬운건 유저가 아니다.

게임스컴 출장을 오기 전 시연 리스트를 정리했다. 꼭 기사 때문만이 아닌 사심 가득한 리스트다. 하나씩 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돌아다니던 중 목록에는 없었지만 눈길을 끄는 게임이 하나 있었다. 부스도 작았다. 시연대도 8개 뿐이었다. 아무 기대 없이 잠깐 기다려 들어갔다. 이럴수가. 완전 취향 저격이다. 왜 이런 게임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날 저녁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약 팔지 마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영업했다. 다음 날, 마지못해 시연한 동료가 돌아와 딱 한 마디를 하더라. "출시 되면 같이 하시죠." 이게 게임쇼다. 이게 재미기도 하고.


8월 21일 개최되는 게임스컴(GAMESCOM) 최신 소식은 독일 현지에 나가 있는 정필권, 김강욱, 석준규 기자가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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