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거기가 맞는가?' 스마일게이트의 전략

칼럼 | 강민우 기자 | 댓글: 109개 |



전쟁에 나선 한 장군이 부하들을 이끌고 적의 고지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부하가 5천 명. 고지에 올라 지도를 보던 장군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아 여기가 아닌가벼." 병사들은 기가 막혔지만 다시 명령에 따라 옆 고지를 점령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5천 명이 희생되었다. 고지에 올라 지형을 살피던 장군은 걱정스레 말한다. "거기가 맞는가벼."

1990년대 노태우 정부 시절 유행했던 최불암 시리즈의 한 대목이다. 젊은세대가 기성세대에게 보내는 야유와 조소였다고 분석한 전문가도 있지만 이는 불통의 시대를 관통했던 하나의 거대한 농담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의 무심한 판단에 희생 당하는 건 결국 병사들이다.

얼마 전 이 농담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바로 2015년 역대 최대 실적을 갱신하며 국내 게임업계 TOP 5 반열에 올라섰던 스마일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다.

스마일게이트에서 온라인과 모바일게임 그리고 플랫폼을 담당하고 있었던 자회사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의 구조조정 이슈가 연초부터 터져 나왔다. 익명 SNS '블라인드'가 먼저 반응했다. "우리가 레고도 아니고 왜 일만 터지면 붙였다 뗐다 하느냐"고 볼멘소리가 여기저기 흘러나왔다.

이후 메가포트가 쪼개진다는 소문은 기정사실화되어 업계 전체에 퍼졌다. 사실도 있었고 과장된 부분도 있었다. 당시 메가포트 홍보팀은 행여나 이상한 소문이 기사화되지 않을까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녔다. 하지만, 흘린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들도 메가포트 분할과 함께 짐을 싸야 했다.


"어? 이 길이 아닌가벼" 선빵치고도 주도권 못 잡은 '스마일게이트'

싸움에서 선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 달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먼저 선수를 쳤다면 이후 전략은 극도로 단순해진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우직하게 미는 것이다. 비록 실패를 겪더라도 그 노하우는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




스마일게이트도 시작은 빨랐다. 국내 모바일게임 춘추전국시대였던 2012년, 스마일게이트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모바일게임 개발사 '팜플'을 설립했다. 이듬해 데빌메이커 등 신작 라인업 9종을 공개하며 모바일게임에 힘을 주는듯 싶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채 2년도 밀지 못하고 2014년 7월 자회사 SG인터넷과 합병해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로 흡수되었다. PC온라인게임 퍼블리싱을 담당했던 SG인터넷 역시 사업이 지지부진하다고 판단했는지 핵심인력을 물갈이하는 등 어수선하던 찰나였다. 누군가 "이 길이 아닌가벼"라고 외쳤나 보다.

그렇게 출범한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는 우수한 인력을 대거 영입하며 다시 재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2년을 겨우 넘긴 시점에서 또 반으로 쪼개졌다. 갈피를 못 잡은 스마일게이트는 마치 레고 장난감처럼 조직을 붙였다가 떼었다가 사람과 조직을 흔들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스마일게이트 스토브'라는 신설 법인이 또 만들어졌다.

사업의 통합 및 영역 확장이라는 그럴싸한 보도자료 어휘는 은연중에 구조조정이라는 맥락을 묻어버린다. 일부는 전환 배치되었지만 아예 부서가 없어진 팀은 다른 직장을 구할 틈도 없이 짐을 싸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지던 가장은 백수로 집에 돌아갔다. 이것이 지난해 영업이익률 부문에서 업계 2위를 기록한 스마일게이트의 민낯이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가 왜 이렇게 됐을까? 명목은 지난해 기록한 356억 원의 순손실 때문이다. 하지만 메가포트 추락의 배경은 따로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권혁빈 회장의 승부수 '스토브'...킬러 타이틀 없는 플랫폼으로 전락





스토브는 개발부터 운영, 사업까지 모든 부문을 연결해 파트너사를 돕는다는 목표를 전제로 개발된 스마일게이트의 게임 플랫폼이다. 멤버십 제공부터 간편 로그인, 통합 빌링, 어뷰징 방지, 글로벌 서비스 지원 등 통합 소프트웨어 개발툴(이하 SDK)을 제공해 개발과 인프라 비용에 대한 경쟁력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권혁빈 회장이 전면에 나서며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밀었다. 당시 언론에 스토브를 최초로 공개한 권혁빈 회장은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모바일 시장에서의 경험과 역량을 집약한 것으로, 이를 함께 나누기 위한 결과물”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토브 1호 게임인 알피지팩토리의 '시간 탐험대'는 스토브 플랫폼에 올리기 위해 출시를 무려 5개월가량 늦췄다. 스마일게이트가 스토브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오픈한 '스토브'는 플랫폼 활성화에 필수적인 파트너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반 년간을 표류했다. 심지어 스마일게이트 관계사 게임마저 스토브에 들어가길 꺼린다는 소문이 퍼지자 8~9월 예정이었던 파트너사 공개도 흐지부지되었다.

실제로 스마일게이트가 1200억 원에 인수(지분 20.66%)한 선데이토즈는 자사의 핵심 타이틀인 애니팡을 지난해 7월 카카오게임과 재계약했다. 기존 고객을 놓칠 수 없다는 사업적 판단 때문이겠지만 신작인 애니팡2, 상하이 애니팡, 애니팡 맞고 등 주요 타이틀도 스토브가 아닌 카카오게임을 선택했다.

스토브를 글로벌 플랫폼으로 키우기 위해 스마일게이트는 작년 미국 E3 Expo에 스토브를 출품해 대규모 홍보를 했다. 그러나 정작 관계사 게임인 '애니팡2'는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해외 퍼블리셔인 아에리아게임즈(Aeria games)를 선택했다. 산토끼는 커녕 집토끼도 못 잡은 셈이다.

실적이 부진하자 스토브의 기술 부문을 담당했던 송계한 본부장을 비롯, 실무자들 다수가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팀으로 전환 배치되었다. 그룹 차원에서 힘을 쏟은 '스토브'가 추락하자 다른 사업들도 줄줄이 무너졌다. 가능성이 있는 게임도 더러 있었지만 마케팅 비용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넘어졌다.


사람도 신뢰도 잃은 스마일게이트, 차기 사업은 과연 안전할까?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 났던 시절은 예전에 끝났다. 게임산업은 이제 전형적인 고비용·고위험 산업군으로 접어든 지 오래다. 이 때문에 사업이 실패하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누군가는 때때로 힘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회사가 클수록 결정은 신중해야 하고 책임소재는 명확해야 한다.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조직이나 부서가 사라지면 남아 있는 직원들은 자연히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일부는 자신의 업무보다는 살기 위한 줄서기에 더 힘을 쓰게 된다. 평직원들도 정치에 휩쓸리는 것이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가 플랫폼 개발과 게임 서비스 조직으로 분할된다고 밝혔다. 신규법인 ‘스토브’는 現 그룹 CEO인 권혁빈 회장과, 그룹 CFO이자 부사장인 양동기 대표가 각자 대표를 맡았다. 현재 공석 자리인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 대표는 現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장인아 사업부문 대표가 지휘봉을 잡았다. 그룹 전체가 큰 변화를 맞은 셈이다.

이 짧은 보도자료에는 사업이라는 단어가 17번, 플랫폼이 15번, 역량은 7번, 안정이라는 단어는 4번이 들어갔다. 스마일게이트가 무엇에 집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2년마다 쪼개지고 합쳐지는 회사에서 직원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서두에서 언급했던 최불암 시리즈에는 마지막 반전이 있다. "거기가 맞는가벼"라고 말하는 장군을 보며 병사 하나가 기가 차서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 장군이 아닌가벼"

구성원 간 신뢰가 뒷받침되지 못한 기업의 新 전략은 직원들에게는 그저 거대한 농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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