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망나뇽을 잡는 사람을 보고

칼럼 | 김강욱 기자 | 댓글: 144개 |




아직 날씨가 많이 추울 때, 그러니까 조금 지난 일이다. 그날따라 일이 많아 늦은 퇴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하철 7호선에 몸을 싣고 꾸벅꾸벅 졸던 중 무심코 옆자리 사람의 스마트폰 화면에 눈길이 갔다. 뭔가 이상했다.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정신을 차리고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의 화면에는 망나뇽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뿔사.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꺼내 포켓몬GO를 켰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지하철이 달리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아깝네 라고 생각하던 그때, 그 사람의 화면에 또 한 마리의 망나뇽이 등장했다. 어라. 뭔가 이상했다. 실례라는걸 알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화면 상단에 작게 떠있는 날개 달린 나침반을 보았다.

신기했다. Fake GPS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렇게 쓰는 거구나. 잠깐 본 그 사람의 포켓몬 리스트에는 S, SS로 시작하는 이름의 망나뇽과 잠만보가 가득했다. 속으로 감탄하며 10분 정도 쳐다봤다. 그 사람은 그 시간 동안 한 마리의 망나뇽을 더 잡았고 그 근처 체육관의 방어도를 기가 막히게 올려놨다.

궁금했다. 왜일까. 왜 사용할까. 무슨 생각일까. 기자로서의 호기심과 유저로서의 호기심이 뭉글뭉글 솟았다. 무작정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짤막하게나마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게임은 하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날도 추워서요"


"왜 Fake GPS를 사용하시나요"라는 물음에 그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딱히 대단한 이유를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막상 듣고 나니 더 허탈해졌다. 직장인으로서의 동질감일까. 약간 짠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가 텅 비어있을 정도로 늦은 시간 지하철에 함께 타고 있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하지 않나. 자신이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포켓몬GO는 일반적인 게임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포켓몬GO의 콘텐츠는 스마트폰 안에만 있지 않다. 솔직히 게임 자체만 놓고 보면 포켓몬GO의 콘텐츠는 부실하기 그지 없다. 걷고, 잡고, 싸우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벌어지기에 그 의미가 있다. 단순히 포켓몬을 잡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잡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포켓몬GO의 콘텐츠이다. 골방 안에 틀어박혀 혼자 S 잠만보, SS 망나뇽을 잡아봐야 자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건 그렇게 하라고 만든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득 예전 일이 생각났다. 같이 점심을 먹던 중 한 기자가 외쳤다. "무장조다!" 그 순간 모두가 스마트폰을 꺼내 포켓몬GO를 켰다. 거리가 애매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늦은 복귀를 각오하고 무장조를 잡으러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광경이다. 덩치 큰 남자들이 포켓몬을 잡겠다고 우르르 몰려가 볼 하나에 일희일비했으니 말이다. 아직도 우리들끼리는 그때 사진을 돌려보며 낄낄거리곤 한다. 포켓몬GO의 진짜 재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재미있냐고요? 그냥 하는 거죠 뭐."


그 사람은 "Fake GPS를 쓰면 재미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냥 하는거죠"라고, 남들 다 하니까 자기도 해본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정지되면? 그냥 접어야죠 뭐."라고 말하는 얼굴에서는 어떤 애정도 느낄 수 없었다.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쯤 게임을 지웠을거라 생각한다. 망나뇽을 100마리 잡아도, 온동네 체육관을 다 점령해도 썩 재미가 없었을테니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포켓몬GO? 내가 그거 좀 해봤는데 완전 망겜이야. 할게 없어 할게."

문제는 Fake GPS 사용이 단순히 한 유저의 지루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게임의 생태계를 파괴한다.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길을 막는다. 포켓몬GO는 RPG의 흐름을 따라간다. 레벨을 올리고, 포켓몬을 잡고, 포켓몬을 육성하고, 체육관을 점령한다. 체육관 점령은 비단 물질적인 보상 뿐 아니라 노력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일반 유저들은 포켓몬을 잡고 육성하는 데에서 흐름이 끊긴다. 일부는 포켓몬을 잡는 것이 재미있어 게임을 계속 할 수 있다. 하지만 포획에서 그치지 않고 육성까지 마쳐 체육관 점령을 원하는 유저라면? 일부는 높은 벽에 막혀 고생할 것이고, 일부는 분노해 Fake GPS와 같은 불법 프로그램에 발을 들일지도 모른다. '올바른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유저들이 관심을 잃고 게임을 떠나가는 이상의 폐해를 낳는다. 순수하게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마저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비단 포켓몬GO 뿐만이 아니다. 불법 프로그램 문제로 홍역을 치룬 리그오브레전드나 오버워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포켓몬GO 인벤을 통해 Fake GPS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Fake GPS와 같은 불법 프로그램 사용을 비난하는 글이었지만 이를 옹호하거나 합리화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주변에 포켓스톱이 없다고, 포켓몬이 나오지 않는다고, 너무 멀리까지 나가야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이다. 고작 게임인데, 그냥 재미일 뿐인데 왜 그렇게 빡빡하게 구냐고 말한다. 나쁜 것은 제재를 가하지 않는 개발사라고, 옳지 않은 것은 아는데 그걸로 누군가 피해를 보냐고 말이다.

"정지되면 접으면 그만"이라는 말, 실제로 듣고 솔직히 울컥했다.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계정이 살아있다고 해서 잘못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때문에 피해를 봤고, 누군가는 그 때문에 나쁜 경험을 해야만했다. 잘못임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않는 것은 합법과 불법의 문제가 아니다. 양심과 도덕의 문제이다. 고작 게임이라고? 되묻고 싶다. 고작 게임인데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짤막한 대화 끝 씁쓸함을 안고 지하철에서 나와 걸어가며 내 스마트폰 속 포켓몬 리스트를 보았다. 애버라스를 제치고 함께 걷고 있는 토게피와 이름을 잘못 입력해 쥬피썬더가 된 Rainner가 보였다. 줘도 못 먹는다며 동료 기자들의 비웃음을 사면서도 아득바득 키운 친구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내 포켓몬 중 가장 CP가 높다. 샤미드를 저격해 체육관 탈환에 성공한 경력도 있다. 이래저래 고락을 같이한 친구다.

리스트를 쭉 훑어봤다. 팀원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잡은 무장조, 고속터미널 역에서 잡아 고속터미널이라 이름 붙인 킹크랩, 이벤트 마지막 날 친구와 추위에 덜덜 떨면서 간신히 한 마리 잡은 파티모자 피카츄를 비롯해 포켓몬 하나 하나마다 사연이 담겨있었다. 액정 속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액정 안에서만 순간이동 하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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