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칼럼] 게임과 심리학 (10) - e스포츠, 정식 스포츠화가 최선의 길인가?

칼럼 | 윤홍만 기자 | 댓글: 27개 |



인벤에서는 '게임하기의 심리학적 고찰'을 키워드로 한 사회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입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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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들려오는 우리나라 클럽팀들의 롤드컵 맹활약에 감탄하고 있다가 접하게 된 최근 e스포츠 뉴스는 내 마음을 찹찹하게 만들었다. 특히 한국이스포츠협회(KeSPA)가 통합체육회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뉴스와 e스포츠의 성지 가능성을 언급한 블리자드 아레나 개장 뉴스가 그랬다. 이 뉴스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e스포츠 정책이 실패했음을 고하는 뉴스로 들렸기 때문이다.




세월을 조금만 거슬러가 보자. 2000년 안팎 e스포츠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혁신의 상징이었다. 듣도 보도 못하던 새로운 현상들이 e스포츠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중심으로 한 PC방 열풍, 우주복 같은 범상치 않은 코스튬으로 무장한 프로게이머, 요즘 아이돌을 능가하는 오빠부대프로게임단, 보는 게임시대를 연 게임전문채널 같은 현상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기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은 프로게이머가 1위였고, 슬레어스 박서(SLayerS_'BoxeR')임요환의 신출귀몰 전략을 선보인 경기는 다음 날 친구들끼리 수다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이즈음 젊은이들의 관심이 필요했던 정치권과 이동통신사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4년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프로리그 전기 결승전에 10만 명이 모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숫자는 그 자체로도 굉장했지만, 같은 날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 경기장 입장객 1만 5천 명과 비교되면서 프로스포츠의 최강자 프로야구마저 능가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광안리 대회를 계기로e스포츠 정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탄력을 받게 된다. 협회주도 통합 프로리그 개막, 공군게임단 창단, 대통령배 전국아마추어e스포츠대회 개최, 세계 최초 e스포츠 전용경기장 건립 추진, 국제e스포츠연맹(IeSF) 창설, e스포츠진흥법 신설 등이 주요 정책 성과물들이었다. 이런 정책성과들은 e스포츠의 정식 체육종목화, e스포츠 종주국 위상강화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들이었다. 잊고 있었는데, 국산게임의 e스포츠화란 정책목표도 있었다. 국산 FPS 종목으로 프로리그를 하다 실패한 후 사라지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들 목표에 집중하여 달려온 지 어언 10여 년. e스포츠의 정식체육종목화는 통합체육회 회원 자격박탈로 미끄러지고, e스포츠 종주국 위상강화로서 리그는 롤드컵과 블리즈컨에 밀린 지 오래고, 지리적 상징성마저 상암동 e스포츠 아레나가 블리자드 아레나에 ‘e스포츠성지’ 타이틀을 넘겨줄 찰나다. 그나마 각 종목의 최고 기량의 선수들만이 십수 년 전의 화려했던 한국 e스포츠의 위용을 확인시켜줄 뿐이지만, 이것 역시 정책의 혜택이라기보다는 선수들과 팀이 잘 나서다. 그런데도 정책전환의 목소리나 움직임이 없는 것이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그땐 몰랐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상한 점을 깨닫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혁신(innovation)’이란 단어다. e스포츠에서 혁신이란 단어는 이신형의 아이디 외에 들어본 기억이 없다. 세상의 거의 모든 곳에서 ‘혁신’이라는 말이 남용될 정도였는데, 유독 e스포츠는 혁신과 거리가 멀었다. 아니 혁신과는 반대 방향의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그 핵심에 ‘정식 스포츠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최근 e스포츠는 아시안게임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었다

축구, 야구의 프로시스템과 국제올림픽 경기와 같은 근대 스포츠 제도는 19세기 후반에 성립된다. 근대 스포츠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산업사회와 꼭 맞는 궁합 덕분이었다. 장시간 노동에도 끄떡없는 체력과 지겨운 반복도 참아내는 근면, 성실의 덕목을 함양하며, 무엇보다도 규칙준수라는 조직규범,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알짜배기였다. 이런 이유로 근대교육 초기부터 글쓰기, 셈하기와 더불어 체육은 핵심 교과목이 된다. 그리고 20세기 전반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체력은 국력’이라는 표어로 상징되는 국가주의와 스포츠의 결합을 만들어 냈다. 이런 흐름은 ‘베를린 올림픽’ 이후 50년 가까이 올림픽 흥행으로 이어졌다.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스포츠도 그랬다. 20세기 후반 들어 국가주의가 약해지고, 공장 중심의 산업사회가 컴퓨터와 지식 중심의 정보화 사회로 급속히 바뀐다. 이에 발을 맞춰 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로 전환됐다. ‘어디서 이빨을 보이냐’던 근엄함 대신 엉뽕빤쓰를 입고 춤추기를 마다치 않는 스포테인먼트가 대세가 된다. 또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란 중계 멘트가 국뽕으로 느껴질 무렵 올림픽은 흥행의 실패와 이에 따른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e스포츠’는 그 이름에서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든 스포츠의 뒷자락을 움켜쥐게 된다.



▲ 출처 : KBS 9시 뉴스

그 당시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좋게 보면 ‘참신’이고, 나쁘게 보면 ‘족보’없는 인기 절정의 게임 대회를 빠르게 안착시키는 데는 스포츠의 형식을 도입하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특히 중고생을 중심으로 한 e스포츠 유저층을 체계화하는 데는 학교 체육시스템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또 정식 체육화만 될 수 있다면 군미필자 게이머에게 병역혜택이나 군대에 가더라도 게임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와 국제대회 예선은 안정적인 e스포츠 인프라로 더 없는 기회였다.

좋은 것은 비싼 법이다. 이렇게 스포츠의 장점을 얻기 위해 e스포츠는 매우 비싼 값을 지불했다. 바로 혁신을 버리고, 완고함을 고집했다.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e스포츠는 게임 자체에 심판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그렇기에 심판이 필요 없다. 굳이 필요하다면 돌발상황에서 경기를 원활하게 해주는 진행요원이나 경기결과 확인을 위한 권위 있는 감독관 정도가 다였다. 스포츠의 규범에 따라 역할이 모호한 심판을 두다 보니 ‘GG’ 대신 ‘ㅎㅎ’를 쳤다고 몰수패를 주는 웃픈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또 경기 전후 어정쩡하게 도열하여 차렷 경례를 하던 모습도 매력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간절히 스포츠의 외연을 필요로 했다면 왜 경기 전 스크린에 태극기를 띄우고 애국가 제창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중 최고봉은 ‘트레이닝복’이다. 지금 중국에서도 입고 있는 등판에 아이디 박힌 트레이닝복이 과연 전 세계가 열광하는 e스포츠 경기에 적합한 복식인지 심히 궁금하다. 정말 매력적인 디자인에 누구나 입고 싶은 그런 경기복을 시즌마다 바꾸어 입는다면 스폰서나 굿즈로 더 좋을 것 같은데.



▲ 이 옷이 정녕 세계 최강팀의 경기복으로 적합한가?

나는 e스포츠가 스포츠 일변도 정책을 벗어나야 혁신이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전 세계 e스포츠의 상징 페이커(Faker)가 정식체육화의 덕택에 탄생하였는가? 떠오르는 신예 칸(Khan)은 학교 팀이 있어서 엄청난 기량을 보유하게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e스포츠의 스포츠화 정책은 여러 정책 중 하나여야 한다. 이제 스포츠화 말고 다른 정책을 만들고 추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e스포츠’의 이름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내 오랜 지론이다. 난 그냥 ‘게이밍(Gaming)’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다가올 2020 도쿄 올림픽( the XXXII Olympic Summer Games)도 정식 명칭에 게임이 들어간다. 멀리 보면 스포츠도 게임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게이밍은 스포츠를 포괄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손색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 이미 제조와 서비스 현장은 사람 대신 로봇이 차지하고, 무인폭격기가 전쟁터를 휘젓는 지금. 스포츠보다 게임이 유치하고 열등해 보인다면, 사람의 목숨은 얼마나 더 하찮아 져야 할까?

혁신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는 게 핵심이다. 유저와 협회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저들도 알게 모르게 e스포츠의 완고함에 물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e스포츠에 대해서 자신을 소개할 때 얼마나 오래전부터 e스포츠를 보아왔는지가 중요한 정체성이 된다. 올핌푸스배 스타리그니 스카이 프로리그니 하는 역사를 읊는 것은 e스포츠가 스포츠를 추종하던 전통의 내면화가 만든 무의식이리라. 이러니 신입유저들이 오면 ‘어서와 처음이지?’하며 상냥하게 가르쳐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편으로 초보를 만나면 ‘제대로 한번 놀아볼까?’ 하며 농락하고, 같은 편으로 만나면 ‘트롤’이라는 욕부터 부모님 안부까지 버라이어티한 굴욕을 느끼는 것이 드물지 않은 경험이다. 괜히 매너없는 초딩들이 넘쳐나는 게 아니다. 매너라고는 배운적도 없는 이들에게 매너를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대안적으로 이기는 것이 최선인 챔피언 말고, 하수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마스터(master)들을 더 존중해주는 e스포츠 문화가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나 싶다. 굳이 따지자면 온라인 도장에서 문하생들 길러내는 사부(師父). 이런 사부들이 많은 지역이 자연스레 e스포츠 본산이 되지 않을까?



▲ 하스스톤 덱 상담소 이벤트처럼 고수가 하수를 가르쳐 주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협회도 스포츠협회를 모방하기보다는 e스포츠 정체성에 맞는 역할을 새롭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선 스포츠는 협회가 없으면 아예 대회 조직이 불가능하지만, e스포츠는 그렇지 않다. 과거 스타크래프트 같은 패키지게임은 협회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 인기 e스포츠 종목은 온라인화 되었다. 자연스레 개발사는 대회조직, 선수선발, 선수급여보장 등 협회의 역할 대부분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협회의 역할이 축소되다 보니 지역대행사의 역할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 최근 10년도 안 된 사이에 벌어진 변화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협회는 대회를 조직하기보다는 ‘선수연맹’ 혹은 ‘이용자 조합’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협회는 종목 커뮤니티와 현안에 대한 유저입장의 조정과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개발사와 협상력이 생길 수 있고, 또 유저들로부터 권위를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 법. 우리는 20년 전 스타크래프트라는 미국 게임을 가지고 e스포츠라는 혁신적인 문화를 만들어 전 세계에 보급한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으로 e스포츠의 새로운 경지를 만들 수 있는 이는 전 세계 딱 한 곳. 그 곳이 나와 내 글을 읽는 이들이 사는 그 나라였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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