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 칼럼] 게임과 심리학 (2) - 게임, 정치가 되다

칼럼 | 이장주 박사 기자 | 댓글: 27개 |




인벤에서는 '게임하기의 심리학적 고찰'을 키워드로 한 사회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를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게임, 그리고 정치입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겸임교수이자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에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놀이는 먹고사는 일과 거리가 있는 대표적인 여가활동이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먹고사는 일을 담당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나, 비주류 한량들이 놀이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래서 놀이는 주류사회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사소하고, 유치한 것들로 오랫동안 인식되어왔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먹고 사는 일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대표로하는 IT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과 효율성의 극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일을 하는 사람도 예전처럼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도래했다. 이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자의반 타의반 노는 사람들의 대열에 속속 합류한다. 그리고 놀이는 더 이상 사소한, 비주류의 활동이 아닌 첨단 사회의 일상에서 핵심적이고 중요한 활동이 되어버렸다.



'생각하는 사람(Homo Sapiens)'을 넘어,
이제는 '놀이하는 사람(Homo Ludens)'의 시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할까? 자료를 뒤져보았으나 요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수를 명확하게 밝힌 자료를 발견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요즘 대세인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게임인구를 직접 추정해봤다.

우선 모바일 기기 사용자 수를 알아보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 2014년 9월 무선통신서비스통계를 보았더니 무선 인터넷 사용자 수(단말기 기기 보급 댓수기준)는 5,271만 명이었고, 그중 스마트폰은 4,005만 대였다. 2014년 우리나라의 인구(국가통계포털 KOSIS 기준)가 5042만명으로 추산된다는 점에서 인구 수 보다 많은 기기들이 보급된 것이다.

그럼 이런 기기를 활용해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대략 얼마나 될지 짐작을 할 수 있는 자료는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3년 모바일이용실태조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남자의 74.3%, 여자의 69.5%가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10대가 89.2%, 20대 84.7%, 30대 76.5%로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으며, 40대와 50대도 각각 63.2%와 54.2%로 40~50대 중년층의 절반 이상이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대략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10대에서 50대까지 게임이용비율을 대입하고, 현재 우리나라 연령대별 인구수를 대입하여 추산한 게임 이용자는 2,700만 명이다.



- 인구 산출 근거 : 안전행정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2014년 11월 12일 추출)

요즘은 유치원생 때부터 게임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10대 미만의 아이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나이 드신 분 중 오로지 고스톱만 즐기시는 분들을 통념상 게이머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점을 서로 상쇄시킨다면 그 근사치가 크게 틀리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2천7백만 명이라! 이 수치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이자, 서울, 경기, 인천의 수도권 인구를 모두 합친 2천5백만 명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집단이다. 그러고 보니 왜 요즘 게임이 정치의 중요한 의제로 부각되고 있는지 명쾌해진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게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입법 활동이 최근들이 급격하게 일어났다. ‘게임산업진흥법’, ‘이스포츠진흥법’과 같은 진흥법은 물론 일명 ‘셧다운제’, ‘중독법’와 같은 규제법까지 이렇게 많은 법안이 하나의 주제에서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버라이어티하다. 그리고 이런 법률을 발의한 손인춘의원이나 신의진 의원은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3~4선급 중진의원을 능가하는 지명도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으로 남경필 지사(전 의원)나 한국e스포츠협회장으로 전병헌 의원이 나란히 맡게 된 것 역시 게임이 정치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리고 이들은 수동적인 회장 타이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보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특히 전병헌 의원은 게이머들의 요구를 발빠르게 대변해줌으로써 '갓병헌'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반면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스팀에서 서비스하는 게임들을 국내법처럼 규제해야한다는 발언을 해서 많은 게이머들에게 지탄을 받은 박주선 의원도 이런 결과를 미리 예측하였더라면 이런 주제를 피했으리라. 어쨌든 이제 게임은 아이들의 사소한 놀이가 아닌 주요 정치인이 눈독을 들이는 탐나는 정치의제가 되었다.




그런데, 정치가 뭐더라? 급 궁금해졌다. 그래서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봤다. 정치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종합해 보면 '대립이나 갈등을 조정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대립적인 상대를 통제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것' 정도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질서를 상대방으로부터 관철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 '정당(Party)'이란다.

이런 개념들을 통해보면,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게이머들을 활용하거나 억압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에 비해 수적으로 월등히 많은 게이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오늘도 묵묵히 레벨을 올리는데 힘쓰거나, 아니면 부당한 차별이나 규제정책을 커뮤니티에서 하소연하고, 댓글들로 위로하는 개인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싸움이 안 될 수밖에!!

그럼 게이머들이 필요로 하는 일상생활을 즐길 권리는 어떻게 만들고 관철시킬 수 있을까? 그것 역시 정치일 수밖에 없다. 생활정치,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봤더니 정말 꼭 있어야만 하는데 빠진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바로 파티(Party) 즉, 게이머들에게 필요한 질서를 주장할 수 있는 조직이다. 온라인상에서만 파티를 열심히 한 까닭에 오프라인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었던 것이다.

게임에만 국한시키더라도 게임사도 조직이 있고, 게임 개발자도 조직이 있는데 정작 수많은 게이머들만 조직이 없다. 게이머 협회가 되었던, 게이머 연대가 되었든 이제 게이머들의 요구를 조직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올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왜냐하면 게이머들은 남에게 의지해야 할만큼 어리지도 않다. 또한,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결코 사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런 조직이 나오면 정말 재미있겠다. 회비는 게임머니로 받고, 게임별로 대표를 선출하고 서버별로 의견수렴하고, 게임이용자 규약도 꼼꼼히 살펴보고, 게임등급도 어찌 결정되는지 참관도 하고, 선거 때가 되면 게임이나 게이머에 대한 정책 질의도 하고... 음~ 이런 슬로건도 있으면 좋겠다. '게임보다 공정한 세상을 위한 경쟁과 협력!' 멋진 이름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건 집단지성에 맡기기로 하고, 패스!



게이머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조직화된 집단이 필요한 때

놀이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했던 호이징가(Huiziga, 1872-1945, 네덜란드의 역사가)는 인류 문화의 근원이 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노는 인간' 또는 '놀이하는 인간')'에서 보면 철학은 지혜를 뽐내는 수수께끼 놀이에서 시작되었고, 심지어 전쟁이나 재판도 이기고 지는 놀이의 요소에서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호모 루덴스에서의 논리에 따르면, 정치 역시도 '이기고 진다'는 표현이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놀이의 원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정치가 문제라는 소리를 듣는다. 놀이, 즉 게임의 원형이 깨진 탓이리라.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원형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왜곡된 게임의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의 목소리는 게임산업과 문화의 범위를 넘어 정치 자체에도 아주 인상적인 학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마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정치가들은 게이머들을 훈계하려했던 과거가 부끄러워지리라.

단, 그들이 건강한 상식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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