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칼럼] 한국 MMOG의 흐름 - 어느 유저의 관점에서

칼럼 | Cyfel 기자 | 댓글: 73개 |
인벤에서는 Cyfel님이 작성한 'mmog의 흐름' 관련 칼럼을 소개해 드립니다.

Cyfel님은 현재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며, 다양한 리뷰와 칼럼 등을 기고하고 있으며 현업 개발자로서 온라인 게임 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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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하여 뭘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는데 그게 ‘한국 MMOG의 역사’ 다. 근데 솔직히 말해 ‘역사’씩이나 붙는 거창한 글을 쓰려면 자료조사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생각도 많이 해야할 것 같고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더라.

그래서 생각하기를 역사씩이나 쓰기는 좀 그렇고 ‘흐름’ 정도로 이름붙이면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쓰기로 한 글은 전적으로 내 관점에서 쓰여진 바, 잘못된 사실이나 편견이 들어갈 수 있음을 강하게 못박아두고 싶다. 이래야 보통 틀린 내용이 나오더라도 변명하기가 용이하더라. 물론 처음부터 틀린 내용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게 좋긴 하겠으나 그게 쉬우면 역사를 쓰지 흐름을 쓰진 않는다. 그러니 뭔가 좀 애매한 내용이 나오더라도 관대한 마음으로 널리 양해 바란다.

이 글은 크게 두 가지에 포커스를 맞춰서 쓰여졌다. 첫번째는 ‘게임 디자인’ 즉 우리가 흔히 게임 기획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 전반의 여러 환경 변화가 한국 MMOG 시장에 끼친 영향이라던가, 테크 및 아트에 대한 부분들은 내 분야가 아닌 관계로 소양이나 관점이 여러분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이 글에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의견이 들어간다면 그건 전적으로 양념 정도이고, 기본적으로는 게임 디자인에 대한 부분이라는걸 유념해서 읽어주시면 좋겠다.

두번째는 이 글은 ‘흐름’에 대한 것이지 ‘최초’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시장의 전체적인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그래서 그 영향력이 이후에 나온 게임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경우를 중심으로 다룬다. 다시 말하면 그런 요소를 ‘최초로 시도한’ 케이스를 말하는게 아니다. 유럽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기 수백년 전에 우리 조상들은 직지심체요절 (직지심경) 을 금속활자로 찍어냈다. 최초는 엄연히 직지심경이며 그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향력의 측면에서 직지심경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유럽의 금속활자는 그동안 종교적 사회였음에도 종교경전을 직접 읽기 어려웠던 유럽인들 전체에 성경을 보급하는 획기적 사건의 시작이었으며, 이로 인해 당대 종교단체들의 정책과 행동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어났고, 결국 종교혁명에 이어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직지심경은 당대 고려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효과는 있었으되 종교혁명과 르네상스에 견주기는 어렵다. 예를 들다보니 너무 거창한 걸 가져온 게 아닌가 싶긴 한데, 아무튼 무슨 소린지는 알았으리라 믿는다.

이 글은 한국 MMOG에 있어서 ‘최초’보다는 ‘큰 영향력을 끼쳤던 게임 디자인’들에 대해 얘기하려는 글이다.


리니지와 후계자들




당연하게도 시작은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로 해야할 것 같다. 그 이전에도 ‘한국 게임’이라고 한다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니 창세기전이니 없다고는 말 못하겠으나 이들 게임들은 비교적 좁은 유저풀에서만 유통&플레이되었던 관계로 이 맥락에서는 좀 부가적인 곁가지정도다. 범위를 좀 좁히더라도 리니지 이전에 다양한 MUD들과 바람의 나라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 게임들은 이 두 가지가 처음이었다고 본다. 항간에는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야말로 한국의 인터넷 전용선 보급에 가장 큰 공신이라고들 하는데, 이 말에도 일리가 있다.

리니지랑 스타가 히트를 치니까 당연히 ‘헐 나두~’ 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기 마련. 우후죽순처럼 다양한 여러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타의 후계자들과 리니지의 후계자들은 누가누가 더 많은 게임 디자인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정말로 치열하고 박진감이 넘치며 손에 땀을 쥐는 전투를 벌였고 최후의 승자는 리니지의 후계자들 … 이라고 말하면 멋지겠지만 사실 이 전투는 좀 싱겁게 끝났다.

승자는 압도적으로 리니지의 후계자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를 과금 모델에서 찾는 편이다. 당시는 과금모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았다는게 첫번째. 그리고 리니지의 후계자들과 스타의 후계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모태가 된 게임들을 흉내내는데서 출발 (출발만 그렇게 했다 뿐이지 결과도 그렇다는건 아니고) 했기에, 과금모델도 그냥 리니지와 스타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는게 두번째 이유다. 둘을 합쳐보면 리니지의 후계자들은 월정액 베이스, 스타의 후계자들은 패키지 판매수익 베이스라는 것. 근데 다들 알겠지만 패키지 판매수익 모델은 우리나라에선 불법복제 때문에 망한지 오래다. 결국 월정액 베이스의 리니지 기반 MMOG들이 살아남았고, 스타 베이스의 게임들은 완성도가 좀 있다해도 결국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렇게 ‘리니지와 후계자들’의 시대가 시작된다. 리니지가 시장의 압도적 쉐어를 차지하는 가운데 여러 군소 게임회사들의 리니지를 본딴 게임들이 시장에 나왔고, 일부는 그럭저럭 살아남는데 성공하지만 대부분은 망하고 마는 뭐 그런 시기였다. 이 때는 한국의 게임 개발력이라는 게 지금보다 형편없었던 데다가, 게임 만들어본 적 없는 이들이 리니지만 보고 ‘이 정도라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약한 확신과 대체로 유사할 듯한 느낌이 드는 것만 같은 예감이야’ 하는 마음가짐으로 달려드는 때라서 더욱 그렇기도 했다. 지금 한국의 게임 개발력도 여전히 별로라 보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난 어쨌든 '이정도 기간에 이정도 성장이면 괜찮은거 아냐?' 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튼, 리니지의 후계자들 중 주목할만한 게임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뮤'이다. 뮤는 리니지와는 다른 3D 그래픽을 들고 나와서 대박을 쳤다. 한때 오리지널 리니지와도 자웅을 견줄 정도로 세력이 컸는데, 3D 이지만 쿼터뷰 (정식 명칭은 다르지만 우리가 흔히 쿼터뷰로 부르니까 그냥 그렇게 부르자) 시점을 가진 게임이었다. 비록 쿼터뷰 일지언정 어쨌든 3D라서 그런지 현란한 이펙트가 팍팍 터지는, 지금보면 (솔직히, 그때봐도) 우뢰매스러운 그래픽으로 떡칠을 한 게임이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소문에는 기획 1명, 그래픽 1명, 프로그래밍 1명의 총 3명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러가지 헛점이 있어서 오토와 핵의 온상이 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뮤는 ‘웹젠’ 이라는 회사를 엄청나게 키워놨고, 이후 웹젠의 몰락코스는 지금도 게임 딱 하나 히트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게임 회사들이 망해가는 과정에서 롤모델이 되고 있다.








두번째로 주목할만한 게임은 '라그나로크'다. 배경은 3D 인데 캐릭터만 8방향 2D로 만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일본 캡콤의 귀무자를 뒤집어 놓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 ‘비슷한건가?’ 싶기도 하지만 라그나로크의 2D 캐릭터들은 앙증맞은 SD (머리통 크고 몸 작은, 귀여워보일 수 밖에 없는 체형) 화 되어 있어서 여러 여성 플레이어들에게 인기를 꽤 얻었다고들 하더라. 라그나로크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크게 성공했지만, 특히 일본에 수출되어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기도 했다. 난 처음에 라그나로크가 일본에서 엄청 먹어준다는 소리를 듣고 ‘어디서 또 한민족 우월주의 소리가 들려온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모처에서 아무 생각없이 다운받았던 라그나로크 온라인 동인지의 압도적 양과 우월한 질을 보고서 ‘아 이게 정말 일본에서 뜨긴 엄청 떴나보네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리니지와 후계자들의 주목할만한 점으로 대체로 캐릭터의 성장이라는 개념과 MMOG가 만났을 때 그 가능성이 무시무시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부분을 본다. 미국에서 시작된 CRPG는 본래 전투의 전략성이랄까 스토리를 직접 만들어가는 재미랄까 뭐 이런걸 보는 장르였는데, 이게 일본에 이식되면서 일본의 지배적 플랫폼이던 패미콤에 맞게 각색될 필요가 있었고, 키보드가 딸리지 않은 게임패드만으로 플레이하게 편하도록 복잡한 요소들을 제외하고 ‘캐릭터의 성장’ 이라는 개념에 포커스를 맞춰서 개발되었다.

대표적으로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있다. 내 아바타인 캐릭터가 성장하는 즐거움, 그리고 그걸 체감하는 쾌감. 그리고 여기에 스토리를 직접 만들어가기보다는 잘 정제된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는 재미를 가미한 것이 이들 게임의 뼈대라고 보는 편이다. 직접적인 관련성을 발견한 바는 없으나, 한국 MMOG의 ‘성장’ 개념은 방금 설명한 JRPG의 성장 개념 중에서 ‘성장의 쾌감’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것이 히트의 이유라고 본다. 비약적의 향상의 핵심이라면 역시 JRPG에서는 몬스터를 때리면 뜨는 데미지로 밖에 자신의 강함을 확인하기 어려운데 비해, MMOG에는 그걸 확인시켜줄 무수한 ‘진짜 사람’들의 캐릭터가 있다는 점이다. 애써 구입한 예쁜 옷을 걸쳤는데 그걸 입고 집구석 거울앞에서만 폼을 잡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봐줄 수 있는 바깥으로 나가는 쪽이 그 옷을 구입한 데 대한 만족감을 느끼기엔 더 적합한 것이다.

물론 IMF를 맞아 실직한 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레져를 찾다가 얻어걸린게 리니지라거나, 현금거래의 폭발로 인한 환금 가능성의 유혹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강하게 작용했겠으나, 게임 디자인 내에서만 찾아보자면 그렇다고 본다는거다. 당연히 리니지의 후계자들 또한 ‘성장’의 개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고, 이를 공공연히 과시하거나 체감할 수 있는 퍼시스턴시 (persistency) 한 환경, 즉 예쁜 옷을 과시할만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을 제공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 속에서 화려한 이펙트와 그래픽으로 인기를 얻은게 뮤, 반대로 사람들 사이의 아기자기한 커뮤니케이션에 포커싱하여 성공을 거둔 것이 라그나로크 온라인.


과도기, 파티플레이의 도입

리니지의 후계자들은 리니지를 그저 따라하기만해서는 리니지만큼의 인기를 얻을 수 없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물론 이 업계의 상식이다. 나름의 독창적인 면이 어디라도 있어줘야한다. 그게 반드시 클 필요도 대단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뭐라도 다른 구석이 있어야만 한다. 리니지 성혈 총군 캐릭 버리고 다른 게임 하러 갈 사람은 없으니까. 앞서 설명한대로 뮤는 리니지에 3D 그래픽과 화려한 이펙트를 얹어서,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리니지에 좀더 우호적인 커뮤니티 구도를 얹어서 히트가 가능했다.

한편 리니지와 후계자들의 시대 전성기는, 한국에서의 게임 업계가 안정적 산업이 되었음을 공공연히 만방에 선포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전까지 게임 개발은 한국에서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부실하고 취약한, 그보다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산업이었고, 따라서 코어 게이머들은 생업을 위한 직업과는 별개로 취미로서 게임을 즐기는 패턴이었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나이가 아직 어려 생업을 가질 시기가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리니지, 뮤, 라그나로크가 보여준 가능성은 이들을 게임 업계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코어 게이머들이 게임 개발 일선에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막무가내로 리니지를 따라하다가 운이 좋아 얻어걸리는 코스를 바라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발전을 모색했다.

한국에서 리니지와 후계자들의 시기는, 북미에서 울티마 온라인과 에버 퀘스트의 시기이기도 했다. (뭐 리니지는 지금도 전성기니까 딱 잘라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 무슨 뜻인지 알거라 믿고 넘어간다) 앞서 언급한대로 게임 개발 일선에 뛰어든 코어 게이머 계층은 리니지 따라가다가 운이 좋아 얻어걸리는 방식 말고 좀더 합리적인 발전의 방향을 모색하려 했고, 그때 눈에 띈 것이 에버퀘스트의 파티플레이였다.

리니지와 후계자들의 공통점들 중 하나는 게임 플레이 타임에서 비중이 큰 ‘전투’ 라는 부분이 철저히 ‘혼자서’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근데 에버 퀘스트는 여기에 협동의 개념을 넣어서, 여러명이 함께 전투를 하면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리니지와 후계자들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게임 개발 일선에 있는 이들이 눈을 돌린 것이 바로 ‘파티 플레이의 도입’ 이었다. 파티플레이가 재미있다는 점은 서구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관건은 누가 더 안정적으로 빨리 이걸 한국 시장에 도입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째는 ‘나이트 온라인’ 이라는 게임이었다. 그래픽이 안 좋긴 했는데 아무튼 파티플레이의 핵심인 어그로와 탱딜힐을 제대로 도입했고, 덕분에 안정적 중박을 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MMOG의 파티플레이를 한국 시장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건 ‘리니지2’ 였다. 리니지는 공전의 히트를 통해 엔씨소프트라는 브랜드를 안정권에 올려놓았고, 이걸 기반으로 리니지2는 파티플레이를 도입하여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 보면 리니지2의 파티플레이 개념은 당시 서구권에서 쓰던 엄격한 것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아무튼 기본기를 한국 MMOG에 보편화시키는데는 크게 기여했다는 것. 이건 다시말해 이후 출시된 MMOG들은 가능한한 파티플레이를 도입하려 노력했다는 의미이다.

결국 리니지와 후계자들의 시대 끄트머리는, 리니지에서 벗어나보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파티플레이로 귀결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다른 게임들에게는 애석하게도, 리니지에서 벗어나려는 합리적 시도는 리니지의 후계자들 중에서도 적자인 리니지2가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와우(World of Warcraft)의 시대





그리고 블리자드의 와우가 시장에 소개된다. 스타크래프트의 절정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내에서 엔씨와 맞견줄 브랜드 가치를 가진 게임 회사는 블리자드가 유일했다. 그런 블리자드가 소개한 와우는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 엄청난 파문을 던지며 스타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여러 게임회사들 중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 정도였던 블리자드를 단숨에 ‘세계 최강의 게임회사’로 끌어올린다.

블리자드가 게임 디자인에 던진 가장 의미있는 파문은 ‘보상 싸이클의 단축’ 으로 꼽는 편이다. 예로부터 블리자드는 밸런싱에 능했는데, RTS 장르에 3종족 모두 전혀 다른 구도를 도입했으면서도 그 밸런스가 꽤 괜찮았던 (물론 욕도 많이 먹긴 하지만, 반대로 유사한 구도에 스타만큼 밸런스 잡힌 게임 보기도 드물다)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 ‘밸런싱’ 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를 포괄하는 의미를 갖는다. 스타의 3종족간 PvP 밸런스 뿐 아니라 부드럽고 매력적인 성장곡선의 구성, 다양한 컨텐츠들 간의 유기적 보상균형 등등이 모두 밸런스라는 개념을 필요로 한다. 블리자드는 극도로 창의적인 뭔가를 기발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회사이기보다는 숫자를 아주 잘 다루는 회사에 가까웠고, 그들은 MMOG시장에 새로 뛰어들면서 ‘부드럽고 매력적인 성장곡선’ 이라는 부분이 이 장르 전체에 결여되어 있음을 간파한다.

리니지의 후계자들에서 소개한 ‘성장의 쾌감’은 와우의 진영분리 구도에 의해 충분히 제공되고 있다. 즉 ‘내 레벨이 높으면 너희들 다 죽었어’을 전달하는 멋진 장치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과도기, 파티 플레이의 도입에서 소개한 파티플레이는 당연하다는 듯 적용되어 있다. 그것도 파티플레이의 원류인 에버퀘스트가 수년간에 걸쳐 노출해왔던 파티플레이의 여러 단점들을 상당히 완화시킨 상태였다. 앞서의 둘은 이전 MMOG들이 가졌던 재미를 계승하는 쪽에 가깝다. 그와는 달리 와우가 독자적으로 시장에 소개한 고유의 요소는 바로 앞서 설명한 ‘보상 싸이클의 단축’이다.

와우는 게임을 시작하면서부터 만렙을 찍기 까지 수백 수천개의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와우 이전에는 이런 게임이 없었다. 퀘스트란 아주 특별한 것이며, 복잡하고 정교한 여러 단서들을 퍼즐 맞추듯 맞춰서 가까스로 성공했을 때에만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컨텐츠였다. 말하자면 MMOG의 컨텐츠들 중에서도 비교적 사치품에 속했다. 근데 와우는 그런 퀘스트를 바닥에 깔아 하층민을 위한 생필품으로 만들었다. 누구든 쉽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와우의 퀘스트는, 이전의 MMOG들이 가지고 있었던 길고 힘든 확정 보상 또는 기대하기 어려운 무작위 보상의 구도를 파괴했다.

에버 퀘스트와 리니지의 공통점은 레벨업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물론 리니지쪽이 좀더 어렵긴 하지만) 그리고 레벨업과 레벨업 사이에 별다른 보상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플레이어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그걸 극복해내는 플레이에서 보상을 얻는다면 그걸 말릴 수야 없겠지만, 이건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직접 제공하는 컨텐츠는 아니다. 와우는 레벨업과 레벨업 사이에 수십개의 퀘스트를 끼워넣었다. 보상받지 못하고 플레이해야하는 수십시간을 작지만 의미있는 여러 보상들 (퀘스트) 로 채워넣은 것이다.

이전의 게임에서 보상은, 한 층에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이 대충 5개의 단으로 이루어진 것과 비슷했다. 계단에 단의 숫자가 적다고 얕보기엔, 반대로 한 단의 높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성인들도 이런 계단을 오르내리면 쉽게 치지고, 어린이와 노약자는 올라갈 수조차 없다. 와우는 5단 밖에 없던 계단을 36단 정도로 잘게 잘랐다고 보면 된다. 이제 어린이와 노약자가 오를 수 있는건 물론, 성인들도 전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에버 퀘스트나 리니지에서 플레이어들이 떨어지면 좋아하긴 하지만 그닥 큰 기대를 걸지 않던 ‘랜덤드랍’을 퀘스트 보상으로 보완했다. 에버 퀘스트나 리니지에서는 레벨이 같아도 캐릭터의 파워 자체는 차이가 많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누군가는 레벨업 와중에 운좋게 득템을 하고 그걸로 강하고 힘쎈 캐릭터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는 운이 나빴던 고로 대단한 아이템을 얻지 못했고, 결국 동렙인데도 서로 차이가 많이 나는 캐릭터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와우는 퀘스트의 보상으로 이를 커버했다. 득템을 하면 좋지만, 아니어도 퀘스트 보상으로 주어지는 장비가 안정권은 보장해준다. 가난해 빠진 양민 저렙들에게 사회적 안전망 – 일종의 복지를 제공한 것이다.

이는 몬스터 밸런싱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전의 게임에서는 레벨이 같은 캐릭터 사이에도 파워 차이가 존재했기에 보편적 수치를 기준으로 몬스터 난이도를 잡는게 어려웠다. 똑같이 20레벨 캐릭터를 기준으로 중간 난이도로 만들어진 몬스터가, 장비가 약한 20레벨에겐 넘사벽으로 다가갈 수 있고 장비가 빠방한 20레벨에겐 씹던 껌처럼 쉽게도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와우에선 기준이 되는 캐릭터 레벨만 있으면 그 내부에서의 파워 변폭이 좁으므로 좀더 안정적으로 적절한 난이도의 몬스터를 배치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와우는 퀘스트 한 방으로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보완해 낸 것이다.

이 게임은 MMOG역사상 가장 큰 히트로 기록될 여러 업적들을 양산해냈다. 아울러 그만큼의 파급력을 시장에 행사하기도 했다. 와우 이후에 나온 게임들은 대부분 성장 구간을 퀘스트로 채워넣으려 노력하며, 주어진 여건상 그게 어려울 경우 다는 못해도 어쨌든 저렙에서 중렙에 이르는 구간 정도에는 퀘스트를 채워 넣는 편이다. 와우의 잦은 보상 주기에 길들여진 게이머들은 이제 리니지와 에버 퀘스트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양변기가 소개된 이래 푸세식 화장실은 여건이 허락하는한 빠르게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다.


와우 이후...

와우 이후에도 변화를 위한 자잘한 노력들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간 얘기했던 것만큼의 거대한 파문을 불러온 게임은 별로 없다고 본다. 대체로 요새 MMOG들은 리니지가 시장에 소개한 재미, ‘강함을 체감하는 쾌감’과 리니지2가 시장에 보편화시킨 ‘파티플레이의 재미’ 그리고 와우가 시장에 소개한 ‘짧은 주기로 끊어치는 보상의 매력’을 대체로 다 가지고 있는 편이다. 여기에 각자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이게 대박임’ 하는걸 조금씩 넣어서 내놓긴 하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렇게까지 대박을 친 케이스는 없다고 보는 편.

실질적으로 다른 게임들에 파급력을 강하게 미친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주목할만한 게임들이 있기는 하다. 첫번째는 MMOG의 가장 미시적인 플레이 중 하나인 ‘전투’를 개선하려는 노력. 테라와 블소, 레이더즈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게임은 기존의 MMOG 전투를 좀더 재미나게 만들려는 노력 중에서도, ‘액션’에 특화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실제로 테라와 블소의 전투는 왕년의 액션 장르 콘솔 게임들만큼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레이더즈는 직접 안해봐서 잘 모름) 반대 방향으로 시도하는 게임으로는 엔도어즈의 게임들이 있다. '삼국지를 품다'와 그 또 뭐더라 … 뭐 있다. 판타지 게임. 김태곤씨가 만드는 MMOG들은 특이하게도 턴베이스 전투를 선보이곤 하는데, 꾸준히 중박을 치는걸로 봐서 뭔가 흥미로운 부분이 있을거라 짐작된다. (역시 안해봐서 잘 모름)

파티플레이 개선은 꽤 오래전부터 시도되어 왔다. 앞서 말한대로 에버 퀘스트가 소개한 파티플레이는 강렬한 재미만큼이나 크리티컬한 단점들도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튼 솔플이 어렵다는거. 파티 한 번 꾸리려면 시간도 노력도 무진장 많이 들어 열받는다는거, 거기다 레이드 한 번 하려하면 무지 화가 난다는 거 등등이 있다. 와우는 이런 문제점들을 ‘완화’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완전히 개선했다고 보긴 좀 어렵다. 이런 부분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들이 있는데, 블소와 '길드워2' 정도가 여기에 속하지 싶다. 각 게임들은 자기들 고유의 방법으로 파티플레이가 주는 불편함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노력 중이다.

좀더 스케일을 넓여서 거시적 플레이의 개선 시도를 보자면 난 단연코 '길드워2'를 추천하는 편이다. 와우의 진영 구도가 한 서버 내에서 유저들이 편을 갈라 지들끼리 치고받는 스타일이었다면, 길드워2에서는 서버끼리 서로 맞붙어서 싸운다. 서버 내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한 편이 되어 다른 서버와 싸우는 형식이다. 최근 베타 들어간 우리나라의 코어 온라인이라는 게임도 이런 구도인걸로 아는데, 길드워2는 여기에 한 때를 풍미한 게임인 DAoC의 공성 컨텐츠를 가미하여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진 게임을 만들어냈다. 안타까운건 길드워2가 흥행 측면에서는 와우만큼 대박이 아니라 … 이 게임이 가진 장점들이 잊혀질까하는 점이 애석하다. 길드워2의 경우는 영화로 치자면 비평적으로 성공했으나 흥행은 중박인 뭐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아키에이지 또한 놓칠 수 없다. 이 글이 한국 시장에 관해서만 얘기하는 글이기에 몇몇 중요한 – 다시말해 한국 시장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 – 게임들을 제외하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금방 간단하게 언급한 DAoC (Dark Age of Camelot) 이라던가 이브 온라인 (Eve Online)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이브 온라인은 울티마 온라인, 스타워즈 갤럭시즈 (SWG) 등과 더불어 흔히 ‘샌드박스 타입’ 이라 불리우는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계보와는 전혀 다른 테크트리를 타고 발전해 온 게임이다.





국내에서 이런 방향으로 최초의 시도는 마비노기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마비노기는 실제로 한국에도 샌드박스타입 MMOG를 바라는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긴 했지만, 후속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즉 샌드박스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mmog의 필드에서 마이너한 편이다. 송재경 대표는 아마도 ‘샌드박스는 메이저한 흐름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모양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결국 아키에이지를 만들어냈다. 물론 처음에 야심차게 ‘샌드박스를 추구한다’ 라고 발표했던 것과는 달리 출시된 아키에이지는 전형적인 샌드박스 MMOG라기엔 다른 부분들이 많긴 하지만, 아무튼 주목할만한 게임이라고 본다.

이외에는 글쎄, 다들 모바일&스마트폰 게임 또는 SNG 게임이 대세라고 하고, 사실상 온라인 게임 시장은 성장을 멈췄거나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둔화되긴 했다. 혹자는 이 시장이 이제 문 닫을 시기가 된거라고도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지만, 어쨌든 새 게임들이 나오는 속도가 심하게 둔해지긴 했다. 신작의 숫자가 줄어든다는건 다시말해 새로운 시도를 할 여지나 그럴 이유도 줄었다는 얘기이고. 뭐 몇 년 지켜보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겠지. 대충 2016년쯤 되어서, MMOG 시장이 살아남아 이 글의 후속편을 쓸 수 있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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