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군단의 심장 "보는 맛", MLG 챔피언십에서 증명하다

칼럼 | 길용찬 기자 | 댓글: 52개 |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었다. 기자가 아닌 시청자의 기분으로 돌아가 새벽과 아침을 불태운 것이 얼마만인지.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이 이번달 12일 출시되었고, 16일부터 미국 달라스에서 MLG 윈터 챔피언십은 이것으로 치러지는 첫 번째 메이저 대회였다. 짧은 시간 동안 각지에서 소규모 대회가 열렸고, 국내에서도 'GSTL 프리시즌'과 '해변킴 스타리그' 등 이벤트 경기를 통해 군단의 심장으로 펼쳐지는 게임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에서 군단의 심장을 만끽하는 것은 한 차원 다른 문제였다.




▲ GSTL 프리시즌 우승을 차지한 LG-IM


그래서 MLG 윈터 챔피언십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고, 실망한 사람은 없었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양쪽 스테이지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난타전과 명승부를 정신없이 지켜보면서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자유의 날개가 결코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준이 올라갈수록 흥미로운 경기가 속출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군단의 심장은 단지 유닛 몇 가지가 추가되고, 또 몇 가지가 수정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재미가 한 차원 높이 뛰어올랐다. 이것이 단지 시선을 끌기 위한 과장이라면, 아예 이 기사를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vod 시청을 통해 MLG 윈터 챔피언십의 경기들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무엇이 달라졌고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에 어떤 과제가 남아 있는지 지금부터 짚어보도록 하자.

MLG 경기 다시보기



■ '한방 쾅'은 이제 안녕, 옵저버 분들에게 보너스 좀 주세요





▲ 이승현과 이영호의 결승 1세트. 같은 순간에 뮤탈리스크가 테란 사령부를 치고 의료선이 5시 확장에 떨어지고 정면으로 바이오닉이 돌격한다


군단의 심장을 싫어할 사람이 있다면, 그중에 게임연출(옵저버)도 포함될 것이다.

동시 전투가 기본이다. 서로 물량만 쌓아가는 대치 상황은 길게 가지 않는다. 공격적인 쪽이 유리하고, 급소를 찌르는 쪽이 승리한다. 자유의 날개가 큰 덩어리를 쌓아가는 승부였다면, 군단의 심장은 병력을 효과적으로 쪼개는 승부다. 그 결과 MLG 대부분의 경기들은 초반 빌드 심리전으로 시작해서, 산발적인 난전이 이어지며 빠른 동시 컨트롤 승부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였다.

원인은 새로운 유닛과 스킬에서 찾을 수 있다. 테란은 거머리 지뢰와 의료선의 애프터버너 점화(부스터), 프로토스는 모선핵과 예언자를 통해 초반과 중반에 선택할 수 있는 견제 전략이 대폭 늘어났다. 공통점은 적은 위험으로 많은 이점을 노릴 수 있다는 것. 난전을 유도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불리해졌다. 저그는 초반 환경에 바뀐 것이 없지만, 다른 종족들에 맞춘 대응을 시작했다. 기동력에서 결코 밀리지 않고, 더 강해진 뮤탈리스크가 그 중심에 있다.

자유의 날개에서는 주병력끼리의 한 방 싸움이 가장 중요한 교전이었다. 군단의 심장은 서로 거점과 거점을 두고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단 숙주나 땅거미 지뢰 같은 잠복 유닛들이 자신의 거점에서 상대 병력의 발을 묶고, 그와 동시에 상대 거점에 우리 견제 병력을 침투시키는 동시 공방전이 펼쳐졌다. GSL의 황영재 해설은 인벤과 진행한 군단의 심장 인터뷰에서 이런 식의 경기 흐름을 예측한 적이 있다.





"군단의 심장 신 유닛들은 잘 버티거나, 시간이나 시선을 끌기 위해 디자인 된 것으로 보입니다. 군단 숙주나 땅거미 지뢰 같은 잠복 유닛들은 잡기 위해 많이 집중을 해야 하죠. 저그가 뮤탈리스크로 시선을 끌고 군단 숙주로 본진을 기습하는 경우처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을 더 해봐야 하는 상황도 연출되어, 군단의 심장은 자유의 날개에 비해 보는 재미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관련 기사 : 채정원, 안준영, 박대만, 황영재, 이성은, GSL 해설들이 말하는 '군단의 심장'


이 발언은 적중한 것 같다. 이제 프로 선수들은 극한의 동시 컨트롤 능력과 함께 몇 초마다 달라지는 전황 속에 무엇을 취하고 버려야 할지 선택하는 판단력도 요구받게 되었다. 그만큼 피곤할 것이다. 덧붙여 언제 땅거미지뢰가 터지고 예언자가 기습을 할지 모르는 순간에서 모든 전장의 상황을 보여줘야 하는 옵저버는 또 얼마나 힘들까.

그들이 피곤해지는 딱 그만큼, 관중은 즐거워졌다. 이영호 대 이신형의 4강 2세트와 3세트는 이런 난전의 끝을 보여주었다. 의료선을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주요 '거점'을 공략하려 한 이신형과 지키기 위해 움직인 이영호의 속도전은 전세계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그밖에 어떤 종족전이든 체감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프로게이머들의 '인간성능'이 다시 한계를 뛰어넘는다면, 어떤 승부들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할지 기대가 된다.



■ 역사에 남을 e스포츠 혁명, '리플레이 이어 하기'





▲ e스포츠의 오랜 숙원이 해소된 경기 재개 카운트


e스포츠에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온풍신'은 두려운 이름이었다. 선수 혹은 팀의 싸움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순간, 갑자기 어둠이 화면을 덮는다. 각종 이유로 그 게임이 날아간다면 재경기를 하거나 불리했던 쪽이 패배를 인정하거나, 우세승을 판정해야 했다. 재경기나 우세승이 벌어지면 팬들은 논란으로 들끓었고, 선수 자신도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온풍신과 작별하게 됐다. 군단의 심장에서 추가된 '리플레이 이어 하기' 기능은 아무나 한 명만 리플레이를 저장한다면 그 어느 시간에서도 플레이어가 참가해 다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이 기능은 경기 재개 이외에도 일반 유저들이 프로게이머의 경기를 도중에 시연할 수 있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쓰인다.

MLG 윈터 챔피언십에서 특히 주효했다. 스테이지 한 곳에서 회선이 불안정해 경기 도중 연결이 끊기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 것. 그때마다 이 리플레이 이어 하기로 경기를 복원하면서 관중들의 갈채를 받았다. 16강 장민철 대 정종현 1세트 경기 등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몇몇 네티즌은 경기 관전자 중에 노트북 접속을 하나 참가시킬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럴 경우 경기장 전체가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노트북은 자연스럽게 자체 배터리로 전환되기 때문에 리플레이를 남길 수 있는 확률이 백 퍼센트에 가깝다는 이유다.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다.



■ 협회와 연맹의 어우러짐, 그리고 '신 리쌍록'으로 보는 스토리





▲ 최근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이영호(왼쪽), 이승현(오른쪽)


게임 자체의 재미만으로 리그가 흥하진 않는다. 그만큼 중요한, 아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간의 대결 구도와 스토리다. 이것이 발생하지 않는 리그는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 협회와 연맹 소속 선수들이 한 데 어우러져 시작한 군단의 심장은 더 풍성한 대결 구도를 가질 전망이다.

협회 소속팀들이 하나둘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하면서 자유의 날개 막바지를 불태웠고, 이제 군단의 심장을 동등한 조건에서 시작했다. 그 결과가 처음 드러난 이번 MLG 시즌에서는 8강에 협회 선수가 넷, 비협회 선수가 넷이었다. 협회가 잘하냐 연맹이 잘하냐 같은 논제는 의미가 없어졌다. 양쪽으로 나뉘어 있던 최고급 선수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군단의 심장을 플레이했고, 흥미로웠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나타난 선수 구도 중 하나가 '신 리쌍록'이다. 스타크래프트1 사상 최고 성적을 거둔 KT 롤스터 이영호와 현재 최고 선수라 불리는 스타테일 이승현의 대결을 일컫는 말. 이것은 스타크래프트 전체를 지배한 자와 미래를 지배하게 될 자의 만남이었다.

각각 연맹과 협회 소속인 이 선수들은 2012 MLG 폴 챔피언십에서 처음 만나 사투를 벌였고, 군단의 심장 출시 이벤트전에서도 마치 결승전 같은 명승부를 펼쳤다. 그리고 이번 결승에서도 만나 이승현이 괴물 같은 경기력으로 우승, 새로운 리쌍 라이벌의 탄생을 알렸다. 두 선수의 다음 만남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 'e스포츠의 심장'이 다시 호흡한다는 것





▲ 스스로 채팅창을 활용해 관객과 함께 호흡한 MLG 옵저버


스타크래프트2가 국내 게임계 정점을 차지하는 데 실패하는 동안, 외국에서는 스타1 시절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GSL이 꾸준히 내실을 다지고 이어내려오면서, 화려하지 않지만 더욱 단단하게 토양을 다졌다. 이제는 전세계가 e스포츠 시장이다. 한계 폭이 넓어졌다.

이번 대회에서 외국 선수들은 단 한 번도 한국 선수에게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 GSL 등 글로벌 중계와 각종 세계 대회를 지켜본 해외 팬들은 자국 선수가 떨어졌다고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 선수의 팬이 되고 있다. 8강 이승현 대 최성훈 5세트, 미국 현지 시각이 새벽 한 시가 넘었는데도 자리에 남아 열광하던 관중들의 모습은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편가르기는 통하지 않는다. 즐겁다면, 즐기면 된다.

군단의 심장, 기대보다 더 흥미롭다. 순수하게 시청하는 입장에서 경기 내용이 즐겁다. 더군다나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신생아 단계다. 선수와 팀이 더 연구하고 플레이가 더 발전했을 때, 무엇이 얼마나 더 우리를 놀라게 할지 상상해보면 설렐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부스터 의료선과 궁합이 맞지 않고 땅거미지뢰가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공성전차의 저그전 쓰임새가 줄어들면서 테란 메카닉 체제는 테테전을 제외하고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테란과 프로토스의 동족전은 놀랍도록 재미있게 변했지만, 반대로 저그 동족전은 스타1처럼 뮤탈리스크 싸움 위주가 되었다. 이런 점이 앞으로 어떻게 개선될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도타2 등 다양한 종목의 e스포츠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시점에서, 군단의 심장의 첫인상이 합격점에 들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여기에서 차후 밸런스가 어떻게 조정되느냐, 선수들이 어떤 전략 전술을 개발해낼 것이냐에 따라 수많은 변수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성공 여부에 따라 'e스포츠'라는 이름이 더 짜릿한 목소리로 뭉쳐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있다.

다양한 게임 양상과, 흥미로운 스토리가 흘러나올 것이다. 그것을 이야기할 때다. 섣부른 부정은 잠시 옆에 놔두고 지켜보도록 하자. 어느 게임을 보든, 어떤 팀을 응원하든, 모두 e스포츠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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