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함께 모바일' 다함께 신기루를 찾고 있나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22개 |
폭풍 전야라는 말도 이젠 식상하다. 하루가 멀다고 수십 개의 모바일 게임이 마켓에 쏟아지는 지금의 국내 게임계는 이미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N이라 불리던 대형 게임사를 비롯해 수많은 중견 개발사, 스타트업까지 마치 ‘모바일 게임’을 차세대의 바이블처럼 여기며 치열한 생존 레이스에 동참하고 있다.

CJ 넷마블은 이미 온라인게임을 축소하고 내부 개발조직을 대부분 모바일에 집중시키고 있으며 국내 MMOPRG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엔씨소프트도 올해를 ‘모바일의 해’로 만들자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그에 반해 온라인 게임은 그야말로 우울한 풍경이다. 거창한 수치, 표 등의 자료를 꺼낼 필요도 없다. 과거 대비 신작 온라인 게임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음을 게이머들이 누구보다 먼저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이 시기가 되면 으레 등장하는 하반기 기대작 기획기사를 작성하기가 힘든 것도 애써 찾아봐도 신작 온라인 게임의 생존신고가 좀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게임이) ‘리스크는 높고 성공 가능성은 낮다.’는 관념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게임사의 경영진과 투자자들의 눈을 자꾸만 ‘모바일’쪽으로 돌리게 만들었고 실제로 1년 사이에 국내 게임업계는 ‘모바일’ 가분수 체형으로 바뀌었다.

“주변 동료가 하나, 둘씩 모바일 게임을 개발한다고 회사를 떠나는 상황에서 온라인 게임개발에 몸을 담고 있는 나 자신이 쇠락하는 산업의 마지막 등불을 잡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모 개발자의 고백은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최근 막대한 자금을 들여 막바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모 온라인 개발사 대표도 마찬가지 고민이다. 숙련된 개발자들이 대부분이 모바일 게임사로 스카웃 당해 전체 개발 일정이 지연되는 난국에 빠졌다.

과연 모바일 게임에 과도하게 집중된 지금 국내 게임계의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게임업계의 시장변화를 예측하는데 각 플랫폼의 번영과 쇠퇴는 중요한 판단근거가 된다. 스마트폰 3,500만 시대가 도래한 만큼 모바일 디바이스의 강세는 부정할 수 없고 데스크탑 PC의 하향세도 이미 현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이 1, 2년 사이에 뚝딱 결론이 나서 마치 지층의 단면처럼 ‘어제는 PC, 내일은 모바일’ 같은 뚜렷한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아무리 지금 스마트폰, 태블릿의 위세가 등등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즉각적인 PC 플랫폼의 사망선고로는 볼 수 없다.

아직도 엄청난 수량의 PC가 각 가정 및 PC방에 보급되어 있고 그중 대부분이 앞으로도 수년 동안은 현세대 게임을 충분히 구동할 수 있는 사양을 갖추고 있다. 두말할 것 없이 게임에 있어 PC는 여전히 리딩 플랫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PC게임 ‘리니지1’은 엄청난 매출이 2분기까지 이어지며 엔씨소프트의 전체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이미 1분기에 매출 660억 원을 돌파했으며 증권사가 예측하는 리니지1의 2분기 예상실적은 700억 원을 웃돈다. 출시 후 15년이 지난 바로 이때, 사상 최대매출을 기록한다는 것은 ‘게이머의 니즈’에 맞는 PC 게임이 존재한다면 고객은 지금이라도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 ‘난 LoL도 싫고 모바일도 싫은데 할 만한 게임이 없다.’는 식의 유저 글이 꾸준히 올라오는 것도 지금 당장 할만한 게임이 없을 뿐 게이머들의 관심이 아예 PC를 떠난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LoL이 PC방 점유율 40%를 넘으며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지금까지 국내에 서비스된 단일 PC온라인 게임 중 가장 많은 동시접속자 수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들 모바일이 강세라고 입을 모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PC 게임 유저층은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하다.

큰 그림을 위한 ‘전략’과 지금을 위한 ‘전술’이 나뉘는 것처럼 모바일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과 현재 PC 게임의 시장 상황에 대한 분석은 그 대응법이 달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국내 게임업계를 보면 마치 내일 당장 PC가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 같다. 진행 중인 온라인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일단 모바일로 전환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실력과 경력을 겸비한 개발자들의 타 업계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도 구인이 어려워 온라인 게임 개발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며, 이미 개발을 완료한 온라인 게임이 있어도 모바일로 방향을 선회한 퍼블리셔가 출시를 해주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이미 여러 경로로 들려오고 있다.

정체는 곧 퇴보라는 말이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발전'을 꾀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업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눈에 보이는 수익’이 발생한다고, 지금 LoL의 40% 점유율이 두렵다고 모두가 모바일로 전환한다면 언제 또 다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커다란 의문이 남는다.

기술 습득은 퇴보하고 감각은 무뎌지며 능력 있는 개발자들은 하나, 둘씩 업계를 떠나 온라인 게임 신작의 씨가 마르는 2, 3년 후에는 또 다른 LoL 또는 바짝 뒤쫓아온 중국산 PC 온라인 게임에 국내 시장 전체를 고스란히 넘겨주지는 않을지 걱정도 앞선다.

이미 모바일에서도 카카오 플랫폼의 환상은 깨진 지 오래다. 엄청난 개발비와 마케팅비를 쏟아 넣은 모바일 신작이 빛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버리는 레드오션의 징후도 보이기 시작했다. 카피캣 문제도 매번 제기되고 있다. 모바일 게임도 지난 온라인 게임 시장 못지 않은 극한 경쟁시대가 벌써 도래했다는 의미다.

대형 게임사의 구조조정, 모바일 열풍으로 시작된 격변의 2013년도 벌써 반이 지났다. 이제 우리 모두가 단꿈에서 벗어나 냉정히 현실을 직시하며 숨 고르기를 해 볼 시점이 왔다. 변화의 거친 바람 속, 비록 오늘은 가혹할지라도 PC 게임 시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사진 자료: 넥슨컴퓨터박물관 1층에 비치된 애플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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