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언론의 '왜곡 중독', 그들은 어떻게 게임의 목을 졸랐나

칼럼 | 길용찬 기자 | 댓글: 1095개 |


▲ 2013년 10월 14일 인벤 만평 (그림: 박태학 기자)


'딸을 성폭행당하게 한 게임폐인'의 낙인이 찍힌 한 어머니가 있었다.

2012년, 나주 성폭행 사건으로 수백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집에서 자고 있던 일곱 살 딸을 납치해 성폭행한 충격적 사건이었다. 그 시간 어머니는 PC방에 있었다. 범인은 같은 PC방을 즐겨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연관성이 깊은 것처럼 보였다. 모든 매체는 앞다퉈 "엄마의 게임 친구가 범행을 저질렀고, 게임에 중독된 엄마는 그것을 방치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 어머니는 1년이 지나서야 눈물 섞인 토로를 했다. 아이가 넷이나 되는 가족은 가난했고, 컴퓨터가 없었다. 아이들의 초등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는 숙제를 돕기 위해 자주 PC방에 가야 했다. 가끔씩 가족끼리 함께 가서 아이들에게 게임을 시켜주기도 했다. 분식집을 하면서 두세 번 정도 떡볶이를 판 것이 범인과 관련된 유일한 연결 고리였다. 같은 PC방을 드나든 것도 관련 없음이 드러났다. 그 동네는 PC방이 단 하나뿐이었다.

어머니는 그 동네에서 '게임중독 엄마'가 되었다. 필사적으로 해명하고 다녔다.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떤 기사에도 그 어머니의 해명은 들어 있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PC방 엄마와 범인이 잠도 잤다더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어머니를 향한 기사 댓글은 증오와 비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가족은 결국 이사를 떠나야 했다.

어머니에게 사과한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참다 못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론은 하이에나다. 고종석(범인)보다 더 나쁜 건 언론이다"라고. 결국 얼마 전, 피해 가족이 낸 소송에서 1심 법원은 피고가 된 언론사에 '피해 학생 본인과 가족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당연히 믿지 않지."
"그러면 또 한 사람이 같은 소리를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역시 믿지 않을 거요."
"만약 세 번째 사람이 똑같은 말을 아뢰면 그때도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때는 믿어야겠지."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어린애도 알 만한 상식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세 사람, 이렇게 전하는 입이 여럿이다 보면 솔깃해서 믿게 됩니다. 예컨대 '없는 호랑이를 사람 셋이 만드는 셈'이지요."


'한비자'에 나오는 '삼인성호' 고사성어의 유래다. 본래 유언비어와 거짓 모함이 난무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의미로 쓰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미디어 쪽으로 사용되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참이 아닌 정보도 많아졌다. 정보 생산자측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것들을 취합해 퍼트리고, 정보 소비자들 역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게임은 '인식'과 싸우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 인식은 미디어에서 만들어진다. 해외에서 게임에 관한 수많은 사건 사고와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국내 TV와 활자에 비친 게임의 모습은 그저 흉악하기만 하다. 게임 인식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부딪쳐나가야 할 대상은 미디어, 즉 언론인지도 모른다.




▲ 전 LoL 선수의 투신 사건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왜곡했던 뉴스 (출처: MBC)


외국도 '게임 탓'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자, 범인이 폭력적인 총기 게임들을 즐겼기 때문에 이런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미국의 몇몇 언론이 주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총기 소유를 찬성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게임을 겨냥해 크게 들고일어났다.

하지만 조사 결과, 범인은 총기 게임은커녕 게임 자체를 전혀 즐기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여러 총기난사 사건을 연구한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와 미심쩍은 연구 조사 결과와는 달리, 총격 가해자들과 폭력적인 게임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미국 정부가 직접 하버드대 메디컬스쿨에 요청해 비디오 게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폭력성을 연구한 결과 전혀 증거가 없는 것이 드러났다. 심지어 하버드대 연구진은 "오히려 게임을 전혀 플레이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싸움과 트러블에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 언론에서 말하는 게임은 특히 심각하다.

PC방 전원을 내리는 전설적 실험을 선보였던 MBC는 지난 3월 전 프로게이머 피미르 선수의 투신 소식을 보도하면서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해당 선수는 전 소속팀 감독의 승부조작 강요를 폭로하면서 뛰어내렸지만, MBC는 영상 편집을 통해 과도한 게임 때문에 충동적으로 자살을 기도한 것처럼 보도했다.

MBC 뉴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부산 북부경찰서 형사팀장은 "게임을 보통 사람보다 밤새도록 하고...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살을 기도했다"고 말한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인터뷰 영상을 보면 두 문장 사이가 끊어져 있다. 영상 뉴스에서 발언 조작에 흔히 쓰이는 문장 이어붙이기가 사용된 것.




▲ 높은 시청률의 뉴스특보 사이 기습적으로 게임중독 뉴스를 끼워넣은 KBS


언론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사건은 최근 다시 발생했다. 22세의 한 아버지가 두 살 아들을 살해한 뒤 쓰레기봉투에 담아 유기한 것이 밝혀지면서 파문을 일으킨 것.

경찰은 "젊은 나이에 직업이 없는 용의자는 아내와 별거하는 등 생활고를 겪으면서 게임에 빠졌으며, 이런 복합적 문제로 인해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은 단 한 가지 부분, 정씨가 게임에 빠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비정한 게임중독 아빠의 두 살 아들 살해 소식은 뉴스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게임중독 아빠' 라는 검색어는 '게임에 중독되어 아들을 죽인 아빠'라는 의미로 순식간에 기사를 복제해냈다. 제목과 내용을 조금씩 바꾼 50여 개 기사가 인터넷을 메웠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의 발언에 따르면 게임중독을 직접적 원인으로 보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상황이며, 2000년 이후 아동학대로 사망한 어린이 141명 중 게임과 연관된 사건은 3건 정도다. 게이머 인구 비율을 생각하면 서로 연관짓기 어렵다.

하지만 충격적인 노출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금 시기에 게임중독과 범행의 연관관계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매체는 찾기 힘들었다. 대부분 게임을 소재로 자극적인 보도를 연신 쏟아내며 시청률 혹은 조회수를 잡으려 했다. 그 선두에는 다름아닌 공영방송, KBS가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진 4월 17일 아침, KBS 2TV는 아침 뉴스특보를 방송하던 중 "잠시 일반 뉴스를 전해드리겠다"면서 화제를 돌렸다. 특보 사이에 그런 일은 흔히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일반 뉴스'는 게임중독 아버지 살해사건이라는 꼭지에만 치중되었다. 아침 8시 30분, 출근길 시청자와 주부 등 많은 시선이 TV 앞에 쏠려 있을 시간이었다.

실제로 당일과 그 전날 KBS 뉴스들은 시청률이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모든 국민의 시선이 TV 앞에 모여 있을 때 그 사이에 게임중독 뉴스만 끼워넣은 것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을 정황 증거가 된다는 주장도 각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방송에 나간 판사의 발언도 왜곡되어 있었다. 해당 뉴스는 이 사건과 함께 게임중독 남성의 할머니 성폭행 미수 사건을 엮었다. 30대 남성이 술에 취한 채 식당 문을 부수고 들어가 여주인 앞에서 옷을 벗고 폭행한 뒤 돈을 빼앗은 사건이다. 피의자는 "게임 속 공간으로 착각해 특정 아바타를 갈아입기 위해 바지와 속옷을 벗었지 강간하거나 살인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 판결문 내용 :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인 점은 인정되나, 범행 전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거스름돈까지 정확하게 받은 것이 CCTV에 찍힌 점 등에 비춰 온라인 내 가상 상황으로 혼동했다고 보기 어렵다"

◆ 방송 편집 발언 : "피고인이 온라인 게임의 가상 상황과 혼돈하여 게임 아바타로 갈아입기 위해 옷을 벗었다고 주장하였으나...(멘트 삭제) 일반인의 어떤 정상적인 판단 수준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으로 판단력이 흐려 있는 상태다"


형량을 낮추기 위해 피의자가 게임중독을 내세워 선처를 호소했지만 각종 정황으로 인해 기각된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가장 중요한 판결 내용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앞뒤 내용을 이어붙였다. 다양한 목적에 의해 뉴스가 조작되고 왜곡되면서, 언제나 희생양이 하나씩 죽어나갔다. 끝나지 않는 그 제단에는 현재 게임이 올려져 있다.




▲ 사이비의_공포.jpg (출처: 북스 리브로)


게임에 의한 정신적 폐해를 알릴 때면 언제나 국내 정신의학과 전문가가 등장해 한 마디씩 보강 멘트를 남긴다. 모순적이게도, 바로 그 정신의학계에서는 게임의 중독 이론이 학술적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2013년 세계 정신의학협회 연차회의에서 세계적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과학적 연구 없이 게임을 중독이라 결론짓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한국 일부 정신의학과 교수들이 주장하는 '게임뇌' 이론은 2003년 모리 아키오의 일본 서적 '게임뇌의 공포'에서 처음 내놓은 것이다. 동시에 마지막이기도 하다. 일본 현지에서조차 수많은 과학적 반론이 등장한 끝에 유사(사이비)과학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사이비 과학의 대표주자로는 혈액형별 성격 이론이 있다. 이런 이론들의 신뢰도가 '0'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0에 무한히 수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반면 2013년 말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면 공간 방향 기억 형성과 전략 기획, 미세운동 능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는 권위 있는 세계 과학지 '네이처(Nature)'에까지 실리면서 공신력을 더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다룬 국내 뉴스는 한 군데도 없었다.

게임중독법 찬성 의사들은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해 11년 전 폐기된 뇌 사진을 들이밀며 "게임을 오래 하면 뇌가 짐승이 된다"고 외친다. 일개 기자보다 정신의학에 밝은 사람들인데 그것이 사이비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들은 왜 그럴까. 이익이 걸렸기 때문이겠다고 애써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왜 언론들은 이런 이론의 허점을 짚어볼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일까.




▲ 이해국 교수는 토론 프로그램에도 게임뇌 자료를 근거로 내밀었다. "인터넷을 더 많이 사용할 경우 알콜과 담배에 두 배 가량 더 쉽게 중독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불가사의하게도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된 1998년부터 흡연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출처: EBS)


최근 언론의 자극적 보도와 계속되는 오보가 도마에 올랐다.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부정확한 기사가 나오는 일은 사실 오래 되었다. 활자신문 시기를 포함해서 말이다. 경쟁 매체보다 속도에서 앞서는 일은 언제나 중요했다. '호외'라는 수단이 활용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외는 특수한 경우였다. 일부러 특수 인쇄비용을 들일 정도로 큰 뉴스가 언제나 터지진 않았다. 일반 속보는 점차 TV 뉴스가 대체하기 시작했고, 태생적으로 TV를 속도에서 이길 수 없었던 신문들은 매일 승부수를 준비해 선봉에 내세웠다. 뉴스 가판대 위에서 오늘 살 신문을 고르던 시기, 언론사의 승부수는 언제나 1면에 있었다.

활자 시기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군부 정권 시절 철저했던 언론 통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 이후에도 속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정보가 다수 섞여 대중에게 뿌려졌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역시 세월호 때와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오보가 난무했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정정과 사과는 더욱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미디어 혁명'이 찾아왔다. 인터넷 보급률이 눈부신 속도로 올랐고, 스마트폰 보급도 순식간이었다. 독자들 절대 다수가 인터넷 포털을 통해 최신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전장은 옮겨졌다. 모든 매체의 기사가 한 화면에 노출되었다. 자신의 기사가 . 인쇄 시대에서 한 매체의 존망이 판매 부수에 달렸다면, 인터넷 시대에는 그것이 트래픽으로 대체되었다.

시대에 발맞춘 당연한 변화였다. 동시에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 정서에 악영향 받은 그 청소년들, 지금 대부분 사회인으로 잘 살고 있답니다


소설가 로버트 헉슬리는 1932년작 '멋진 신세계'를 통해 진실이 무의미한 소식에 묻히는 미래를 경계했다. 하나의 불편한 목소리가 나왔을 때, 그것을 무력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억지로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소음을 난사하는 것이다. 정보의 유통이 너무 많아 참과 거짓을 구분할 여유가 사라지는 현상은 정보화 시대의 대표적인 모순이다.

앞서 말했듯 매체의 성적표는 판매 부수에서 트래픽으로 대체되었다. 수단은 바뀌었지만,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주요 수익원은 변하지 않았다. 바로 광고다. 언론사의 광고가 끊기는 것은 밥줄이 끊기는 것과도 같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던 비주류 매체들도 진실 대신 이익을 전달하는 일이 잦아졌다.

광고는 정치적인 움직임에 쉽게 동조시킬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큰 기업 집단의 이익을 가로막는 언론이 있다면, 그곳의 광고를 끊어버리면 그만이다. 정부 및 정치 세력도 이것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유력 지상파 방송 몇몇은 정부가 직접 CEO를 임명할 수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정부의 언론 장악 여부는 어느 정권이든간에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게임을 공격하는 뉴스를 내면 왜 조회수와 시청률이 오르는 것일까. 첫째로 게임중독으로 인해 범죄가 발생한다는 소재가 자극적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신문을 접하는 많은 기성 세대가 그 논지를 반기기 때문이다. '음란성과 폭력성,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프레임은 언제나 미세한 왜곡쯤은 정당화시키는 파괴력이 있다. 게임 이전에는 만화, 또 그 전에는 영화가 요리 재료였다.

게임으로 화살이 쏠린 이후에도 다른 문화 예술로 화살을 돌리는 일은 아직 흔하다. 2순위라고 보면 정확하다. 사회부 경력이 있는 한 기자는 "흉악범죄가 나타나면 기자들은 먼저 범인이 게임을 즐겼는지 알아보고, 그 다음에는 어떤 폭력적인 만화나 영화를 봤는지 살핀다"고 말했다.

2013년 '용인 엽기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자는 굳이 피의자에게 "'호스텔' 같은 잔인한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먼저 물었다. 피의자는 "봤다, 공포영화를 자주 본다"고 대답했다. 모든 유도 질문이 끝나고, 잠시 후 뉴스 헤드라인은 '엽기살인범, 영화 '호스텔' 모방해 범행'으로 도배되었다. 학부모단체들은 "10대 살인 양산하는 공포물을 축출해야 한다"며 집회를 열었다. 현재 게임의 그것과 똑같은 시나리오다.


"저희는 식당 종업원이 아닙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뉴스를 원하는 방식대로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 드라마 '뉴스룸' Season 1, 3화 중에서


언론은 서비스업이 아니다. 동시에 영리를 추구한다. 이런 미묘한 균열 때문에 언론의 방향에 관한 딜레마는 언제나 화두였다. 어느 업계든 지켜야 할 상도덕이 있다. 언론은 그 기준이 가장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그 도덕과 양심이 국내에서 가장 무너진 곳이 바로 언론으로 보인다.

중독을 의학적 개념으로 살펴보면 크게 독으로 지칭되는 유해 물질에 의한 신체 증상인 중독(intoxication, 약물 중독)과 알코올, 마약과 같은 약물 남용에 의한 정신적인 중독이 주로 문제되는 중독으로 나뉜다. 그들의 중독 이론이 사실이라면, 우선 자극적인 낚시를 통해 돈과 정치라는 쾌감을 충족하는 그들에게 먼저 '왜곡 중독'이라는 병명을 선사해도 좋지 않을까.




▲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학교폭력 원인은 현장 학생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 그 생각의 간극은 언론이 만들어냈다 (출처: 오픈서베이)


언론과 정부가 합작해 만든 게임중독 프레임은 국내 게임계의 진짜 문제를 오히려 비켜나간다. 국내 온라인,모바일 게임에 정말로 문제가 없을까. 뽑기로 대표되는 사행성은 오히려 보편화되는 추세고, 아이템의 현물 거래가 커지면서 게임 내 부당이득과 사기행각도 여전하다. 이전에 나온 게임들의 기획이나 디자인을 그대로 배껴서 쉽게 성공하는 사례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언론들이 조작, 왜곡, 사이비 과학을 이용하지 않고 이런 문제에 정면으로 접근했다면 딱히 반박할 이유가 없다. 역으로 더 건전하고 밝은 게임 문화가 정착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게임의 중독 증세를 부풀리고 이중규제를 돕는 지금 환경에서는 게임사와 게이머가 고립될 위험이 커진다. 창조할 여유가 없는 업계가 긍정적으로 발전하기란 언제나 어렵다.

언론이 그러지 않는 이유도 짐작은 된다. 아직 게임이라는 개념 자체도 흡수하기 힘든 기성 세대에게 '게임 속' 이야기는 너무나 와닿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 이야기를 반대로 말하면, 국내 언론들 및 게임계는 게임 자체에 대한 실체적 접근 및 홍보를 지금까지 거의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게임 매체도 포함된다. 우리 역시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자녀가 게임에 너무 빠진 것 같다면, 여행과 문화예술을 체험할 시간을 제공하는 건 어떨까
(출처: 슬로우뉴스)


게임과 만화에 가혹한 매체들은 말한다. 폭력성과 선정성은 청소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주게 된다고. 세 살 어린아이도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그들의 인터넷 페이지에는 헐벗은 여성들이 선정적인 언어와 함께 광고칸을 메우고 있다.

뉴욕대 사회학 교수 로드니 벤슨은 '미국을 분열시키는 극보수주의 미디어'라는 기고문에서 "편향적 미디어는 자신의 고객에게 하나의 거울을 내미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고객들에게 기존에 갖고 있는 생각을 더 신랄하고 더 열등감에서 벗어난 언어로 다시 만들라고 격려한다"고 주장한다.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자유도는 전체 197개 국가 중 68위를 기록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언론 장악으로 전세계의 지탄을 받는 이탈리아보다 낮은 순위다. 2010년 '부분적 자유' 그룹으로 추락한 이후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메이저 언론사는 예전보다 훨씬 커다란 권력을 이용하고, 독립 매체들은 기본 생존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

턱도 없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소위 공신력 있다는 언론에서 입을 맞추어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에는 무시하다가도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것을 논파하는 정보를 찾기 힘든 계층일수록 더욱 그렇다. 결국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믿게 된다. 아주 약간의 어감 차이가 한 사람의 생각을 바꿔버릴 수 있다. 언론 장악 논란이 언제나 뜨거운 감자고, 언론 왜곡이 그 무엇보다 무서운 이유이다.



▲ 청소년 보호를 외치는 언론에게서 청소년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범죄가 일어나는 동기는 수천 가지가 있다.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가 있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게임이 범죄를 발생시키는 존재다'와 동의어가 되진 않는다. 논리적 모순을 짚어내는 데에서 언론 개선은 시작된다. 세 사람이 호랑이가 있다고 말해도 많은 청자가 그들의 의도와 상황을 스스로 추론할 수 있다면, 그들은 다시 호랑이를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말한 과다정보의 세상은 너무나 어지럽고 손 쓰기 어려워 보인다. 반대로 생각하면 희망이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인간은 언제나 적응해내기 때문이다. 옳은 논리와 거짓된 논리를 구분하고 냉정하게 살펴보는 능력은 누구든 가지고 있다. 수많은 정보 속 어딘가에는 양심이 있고, 진실이 있다. 사실을 마음대로 변조하지 않는 매체를 찾아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감시의 끈을 놓지 않는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국내 언론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시스템 중 하나다.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디펜스 게임과도 같다. 잘 막아내야 본전이고 한 번 잘못 뚫리면 게임 오버다. 하지만 여기서 끄면 해피엔딩은 없다. 이것은 신진 문화를 더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기도 하고, 훗날 우리 자녀들이 더 좋은 게임을 즐기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한다. 펜으로 찔린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이 펜을 신중하게 잡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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