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등위와 용궁판타지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12개 |
7월 말 경에 누군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직업 특성 상 평소에도 제보 메일을 종종 받습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법 사행성 게임으로 큰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불거졌던 ‘바다이야기’가 거론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PC방 업주라고 소개한 제보자에 의하면 PC방 영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원들이 와서는 ‘용궁판타지’라는 게임을 설치해서 영업을 해보라고 권했는데, 아무리 봐도 ‘바다이야기’나 다름없는 사행성 게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영업사원은 전국 50~60개가 넘는 PC방에서 ‘용궁 판타지’를 통해 장사를 잘하고 있고 손님도 크게 늘었다며,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에서 정식으로 심의를 받은 게임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메일을 보낸 PC방 업주는 그 말을 도저히 믿기 어려웠고 정말 게임위에서 심의를 전체이용가로 해주었다면 분명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며 플레이 영상까지 첨부해 기자에게 제보한 것입니다.


제보를 받은 즉시 인벤팀에서는 해당 동영상을 확인했고, 동영상의 내용만 볼 때는 제보한 PC방 업주의 말처럼 ‘바다이야기’나 다름 없는 사행성 게임이 분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용궁판타지' 문제가 된 영상의 스크린샷




즉시,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게임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바쁜지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해 기다리고 기다려 어렵게 통화가 됐는데 담당자는 전화를 받자 마자 “혹시 용궁 판타지 때문인가요?”라고 되물어봤습니다.


그 당시 게임위 담당자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해당 PC방 업주가 전 게임매체 기자들에게 제보를 한 것 같다. 그거 때문에 오전부터 ‘용궁판타지’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용궁판타지’는 게임위에 의해 전체이용가 판정을 받은 게임이 맞다. 그리고 등급을 받을 때 게임 내용에 사행성에 관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제보가 들어왔으니 게임위 사후관리팀이 조사를 해보겠지만 경쟁업체를 시기하는 PC방 업주가 전 매체 기자들에게 제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추후 조사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겠다.




게임 등급을 분류하는 주체며, 국가기관인 게임위가 ‘전체이용가’가 맞고 게임 내용에는 이상이 없다고 답변하니 기자는 게임위의 추가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별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제보한 PC방 업주에게도 더 자세한 내용을 알려달라는 메일을 보냈지만 그 이후 추가 메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2주 정도가 지난 지금 게임위 홈페이지에서 ‘용궁 판타지’를 검색해보면 원래 ‘전체이용가’로 등급을 받았던 것이 8월 4일자로 “ 등급분류 취소예정”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면 연락을 주겠다던 게임위,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했는데 그 사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바로 게임위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답변은 이랬습니다. 몇몇 매장에서 용궁판타지가 원래 심의를 받을 때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개, 변조가 이루어진 상태로 서비스되는 것을 확인했고 이에 기존의 ‘전체이용가’ 등급은 폐지하고 ‘등급분류 취소예정’을 판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슬롯머신의 그림 맞추기를 의미하는 ‘릴’이 전혀 없었는데 개,변조된 용궁판타지에는 그 '릴'이 추가 되었다는 겁니다. 애초에 용궁판타지의 등급을 신청한 ‘365일’이라는 회사와 실제 용궁판타지를 불법으로 개,변조한 주체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등급분류 취소 확정’이 아닌 ‘예정’ 상태로 두고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사실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미 2주전에 사행성이 짙어 등급 확인을 해달라는 제보가 있었고, 릴이 들어간 플레이 영상까지 돌았는데, ‘등급 분류’에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하더니 이제서야 등급 취소가 내려졌다니요.


물론, 워낙 개, 변조 수법이 교묘해졌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환전 방법도 지능화되어 즉각적인 조치가 어렵다지만, 이 정도 기간이면 불법 사행성 게임을 유통하는 업자들은 충분히 부당 수익을 내고 빠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선량한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서둘렀으면 어땠을까요?


사실 확인을 위해 들어간 게임위 홈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공지가 중앙 배너에 크게 걸려있습니다. 참 여러모로 씁쓸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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