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셧다운과 심의비 인상, 게임계에 불어닥친 한파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46개 |
최근 가장 깜짝놀라게 했던 뉴스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엔씨소프트의 야구단 창단 소식이 아닐까한다. 본지의 관련 기사 첫 댓글이 “갑자기 뜬금없네”라고 달린 걸 보면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게이머들도 비슷한 느낌이었을 듯 하다.


KBO(한국야구위원회)에서 검토 중인 사안으로 확실한 결론이 난 상태는 아니지만 그 뉴스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기도 전에 야구팬들은 물론 친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게임계 내에서도 우려와 긍정 등,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반응은 엔씨소프트의 주가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야구단 창단 소식이 나온 22일에 11월 18일 한 주에 최고 275,000원 하던 주식이 197,000원으로 폭락했으며, 이틀날인 24일 연중 최저치인 192,000원까지 떨어졌다.


현재는 다시 20만원대를 넘겨 서서히 회복세를 찾아가고 있고, 증권가나 야구계, 게임계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 확산되고 있지만 야구단 창단에 대한 엔씨소프트 주주들의 입장을 대번에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가 정말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하나 만으로 시가총액 4조 4천억 규모의 회사를 단 하루만에 7% 하락하게 만든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을까?


프로야구단 창단과 관련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게임과 사회의 중간고리 역할을 맡아 사회적 인식을 좋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엔씨소프트의 이재성 대외협력이사의 말을 들어볼 때, 엔씨소프트가 꺼내든 야구단 창단이라는 카드는 그 성공 가능성이야 어떻든 간에 심각한 위기에 처한 국내 게임계의 현실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엔씨소프트의 야구단 창설은 게임산업을 주류산업으로 이끌기 내기 위한 카드가 아닐까.
위 사진은 2013년으로 예정된 엔씨소프트 판교 신사옥




엔씨소프트가 야구단 창단을 발표하기 약 20일 전 ‘극적인 합의’에 대한 깜짝 소식이 하나 나왔다. 게임산업을 지원하는 전담부처인 문화관광부가 그 동안 여성가족부가 시급한 사안인 '오픈마켓 자율 심의' 등이 포함된 게임법 개정안을 태클을 걸어 끌어내리면서까지 주창해온 16세 미만 강제 셧다운 제도에 합의한 것이다.


16세 미만 강제 셧다운 제도란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이용을 자정(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완전히 차단하는 제도를 말한다.


단순히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에서 본다면 그럴듯 하지만 강제 셧다운 제도는 두 부처의 합의로 결정할 수 있는, 하수도 맨홀의 뚜껑을 어떤 색으로 교체할지와 같은 그리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국민의 행복추구 및 자유권, 기업의 이윤 추구권, 영업 자유 등과 같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알려진 바로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은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여성가족부의 규제를 받게 됨으로써 게임산업을 관장하고 있는 문화관광부의 ‘게임법’과 함께 사실상 국내 게임산업은 이중규제를 받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콘솔과 모바일, 패키지 게임 등 ‘인터넷’을 활용하지만 PC 온라인 게임이 아니어서 강제 셧다운 제도를 일괄적으로 적용시키기 어려운 분야도 문제다.


예를 들어, 16세 미만 청소년이 애플 앱스토어에서 네트워크 게임을 아이폰으로 다운로드 받아 자정을 넘겨 플레이하다고 해도 그것을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XBOX360이나 PS3과 같은 콘솔도 마찬가지다. 해외에 서버를 둔 PC 온라인 게임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다 포기하고 국내 PC 온라인만 강제 셧다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그때는 역차별의 늪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즉, ‘게임’이라는 장르와 산업, 그리고 플랫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행정부처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실제 산업 현실과도 맞지 않는, 시대를 역행하는 제도를 제안했고, 그 제도를 국민과 실제 게임 업계의 목소리도 전혀 듣지 않은채 두 부처간의 ‘합의’로 결정했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인 사실인 것이다.





▲ "평등사회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강제 셧다운 제도의 합의 소식으로 인해 게임업계 전체가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는 게임 심의에 드는 수수료를 100% 인상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위에서 발표한 계획안에 따라 계산기를 두르려보면 기존에는 MMORPG의 경우 1,080,000원의 심의료가 들어갔던 것이 3,000,000원으로 약 3배 인상된다.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심의’에 통과하는데만 삼백만 원이 들어간다는 소리다.


대형 업체들이야 어쨌거나 이미 만들어진 게임, 일단 서비스는 해야 하니 울며겨자 먹기로 지불할지도 모르지만 심각한 자금난과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앞만 보며 달려가던 중소게임사에게는 ‘게임개발을 중지해라’라는 통보로 들릴지도 모르는 큰 액수다.





▲ 개정 예정인 심의 수수료 조견표




모바일 게임도 마찬가지다. 뜻이 맞는 지인 몇 명이서 회사를 차리고 간단한 모바일 온라인 RPG를 만들었다고 치자. 다시 위 표에 맞게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모바일 기본료(100,000) X 네트워크 계수 (1.5) X RPG 계수 (4)” 해서 600,000원의 심의료가 들어간다. 만약에 그 게임이 PSP나 닌텐도DS를 겨냥한 게임이라면 심의료만 백 팔십만 원이다.


게임위은 이번 심의 수수료 인상의 이유로 등급 분류에 소요되는 국고 비유을 줄여야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게임물의 대형화 추세와 기술발전들을 고려해 플랫폼별 기초가액과 장르 계수를 조정했다는 설명인데, 일단 게임업체들의 사정은 뒤돌아보고 심의료를 인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1만장이 팔렸다고 축하 파티를 열 정도로 콘솔/패키지 게임의 불모지라고 불리우는 대한민국에서 콘솔용 온라인 RPG를 출시하기 위해 심의료만 이백 사십만 원이 든다는 것은 안그래도 죽어가는 시장 자체를 뿌리채 뽑아버리는 조치임을 모르고 한 것이라고 밖에는 이해가 안된다.


해외 게임들의 한글화가 수익이 나지 않아 퍼블리셔들이 대부분 현지 언어 그대로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럴 경우 심의료를 더 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게임위는 심의 수수료 인상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2011년 1월 10일까지 달라고 했지만, 새해부터는 게임 심의를 받지 않고 서비스할 경우 사전고지 없이 행정처분 또는 수사의뢰를 한다고도 밝힌 상태다.





▲ "C&C3, 만장 판매 기념 랜파티 열려"
국내 패키지/콘솔 게임의 현실이 이렇다.




12월의 마지막 날 세계적인 게임 퍼블리셔인 THQ의 한국 사무소가 폐쇄된다. 단순히 수많은 해외 퍼블리셔 중의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콘솔/패키지 게임의 유통 뿐 아니라 국내의 버티고게임즈와 ‘WWE 스맥다운 대 로우 온라인’의 공동 개발을 진행할만큼 국내 온라인 게임 산업에 진출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업체다.


THQ는 이번 폐쇄와 개발 프로젝트 취소를 여느 기업에서나 빈번하게 있는 일상적인 사업의 재점검 차원에서 이루어지 조치라고 밝혔지만 척박한 국내 시장에서 활로를 찾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생각된다. 그간 수많은 게임을 한글화해서 출시하는 의욕을 보여주었던 코에이테크모코리아도 12월말 부로 사무실을 폐쇄한다. 한국에서의 콘솔 게임산업에 비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금 당장은 현실의 상황을 견디지 못한 콘솔업체들이 먼저 떠나겠지만, 앞에서 거론했던 청소년 셧다운 제도의 이중규제와 게임 심의료 인상 등으로 게임산업을 국가적 규제와 철퇴의 대상으로 내몰기만 한다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칠만큼 급격한 발전을 이루어온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 업체들도 결국 아사(餓死)할 운명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묻지마 살인의 원인을 오직 ‘게임 중독’으로 몰아가는, 오비이락을 저널리즘의 원칙으로 삼는 일부 언론들의 게임 산업 때리기와 그릇된 국민 선동까지 가세한다면 이 꽉물고 겨우 버티고 있는 게임업체들에게는 마무리 일격과 같은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며, 이는 결국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들의 피해로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따뜻하게 보내야할 연말연시, 2010년 국내 게임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춥고 힘겨운 겨울에 직면해 있다. 우리 게이머들의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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