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장일치 통과 셧다운, 오늘이 안타까운 이유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110개 |
안타깝다. 청소년 셧다운제도가 법사위를 통과된 것도 안타깝고, 그것도 만장일치도 통과됐다는 건 더 그렇다. 원래 하던 일을 급히 멈추고 이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상황도 괴롭고, 셧다운 통과에 따른 분노의 화살을 인터넷상의 애꿎은 상대방에게 서로 날려대는 작금의 현실도 참기가 더욱 힘들다.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차단”. 바로 이 문장. 청소년의 인권이나 게임업계 영업권 등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거스르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식을 둔 부모를 넘어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교육열이라면 전 세계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특수한 환경을 살아온, 그리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억울하지만 익숙한 상황이다.


하지만, 단지 이게 과연 청소년 셧다운제도의 실체일까?

청소년 셧다운제도에 대한 의견을 다른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좋지 않은 시선과 함께 “야간에 청소년한테 게임 못하도록 하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라며 반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 그럴까?


2009년 4월 22일 최영희 의원 등 21인이 발의한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안’을 살펴보자. 그 법안에는 일명 청소년 셧다운제도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터넷 게임”이라는 용어다. 법률 안에는 아래처럼 설명되어 있지만, 사실 플랫폼을 막론하고 “인터넷 게임” 아닌 것이 없다.



PC 온라인 게임은 물론이요, 콘솔게임, 모바일 게임 등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쓸 수 있는 환경에서 “인터넷게임”이라는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게임은 극히 드물다. 심지어는 기자의 부모가 피처폰으로 즐기는 고스톱게임도 3G 망을 통해 인터넷을 실시간으로 사용한다면 “인터넷 게임”의 범주에 든다. 이것이 지금 셧다운 제도의 함정이다.



▶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중에서..

인터넷 게임이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게임물로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게임물을 말한다.




오늘(20일) 열린 법사위에서 “셧다운제도”를 통과시키며 일단 온라인PC 게임만 셧다운제도만 우선 적용하고 모바일 게임은 2년의 유예기간을 준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인터넷 게임'을 해결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패키지로 판매하는 스타크래프트2는 PC 패키지 게임일까? 아니면 PC 온라인게임일까? 우리나라는 특히 블리자드의 게임을 패키지게임보다는 온라인게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으니 다른 예를 들어보자. EA의 축구게임 FIFA 11의 멀티플레이는 어떨까? 만약에 그것도 PC 온라인 게임이라고 주장한다면 게임 내용은 똑같고 플랫폼만 다른 콘솔판 FIFA 11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될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적용을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청소년보호법을 실제 시행하게 되는 여성가족부 마음이다. 보너스로, 최근 이정선 의원이 발의한 게임업체들로부터 매년 매출의 1%를 중독예방부담금으로 징수하자는 법률이 통과됐을 때 그 기금을 소관하게 되는 행정부도 다름 아닌 여성가족부다.





[ ▲ '인터넷 게임'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 일까? ]




2년의 유예기간을 받은 모바일이라고 해도 별다를 게 없다. 15세의 청소년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새벽에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모바일 게임까지 셧다운제도가 시행됐을 때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바로 위에 있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 제공자”가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이용시간, 이용방법 등 인터넷게임 이용제한에 관한 기술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과연 셧다운제도를 위한 이 기술적 조치를 누가 해야 할까? 애플 앱스토어? 안드로이드마켓? 아니면 앵그리버드 개발자? 사전심의 제도 때문에 아직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가 없는 상황인데, 애플에 이런 기술적 조치까지 추가하라고 한다면 과연 국내 앱스토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모바일 게임의 제작사에 돌린다면 대부분이 중소 게임사인 모바일 게임사들은 셧다운제도의 늪에 빠져 게임개발은커녕 서비스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 콘솔쪽도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패키지게임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수지타산도 맞추기 어려운데 그것도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저런 장치를 도입하라고 한다면 소니,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기업들은 아예 한국을 떠나버릴 확률이 높다.


물론, 이런 가정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지만 적용범위의 한계가 없는 “인터넷 게임”이라는 용어가 존재할 경우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는 것이다.





[ ▲ '모바일 게임'의 셧다운, 그게 과연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 ]




에이 설마 그러겠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반응도 예상된다. 하지만,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 게임이라는 장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없이 급작스럽게 생겨난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무조건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라는 법률 조항을 보라. 게임물등급위원회를 탄생시켜 수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 게임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추후 상황을 봐서 법 개정 하면 안 되냐고? 오픈마켓 게임의 사전심의 완화를 담은 게임법 개정안은 원래 2008년에 발의됐지만, 최근에야 겨우, 그것도 여가부의 셧다운제도를 수렴한다는 조건에 통과가 됐다. 셧다운제도가 모바일 게임에까지 확장되면 효과적인 측면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지만. 사전심의가 완화돼도 모바일 게임에 셧다운제도가 생기면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는 영원히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터넷 게임’이라는 용어 하나만 따져봐도 이런데, 청소년의 인권,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 수많은 관점에서 청소년보호법을 뜯어봐도 실제 적용에 상당히 문제가 많다는 것과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떤 변명을 하건 간에 최초 법안을 제정해서 발의하고, 20일(오늘) 법사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불합리한 요소를 말끔히 감춘 후, “청소년 보호”라는 이름 좋은 허울을 쓰고,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상황이니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올 수 밖에.





[ ▲ 법사위 전체회의, 국회 본회의만 통과하면 '셧다운'은 현실이 된다. ]




오전 셧다운제도가 법사위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온 데서 난리가 났다.


국회에서 돌아오는 길이 착잡해서 스마트폰으로 이리저리 자연히 업계 반응을 살폈다. 셧다운 제도에 분노하고 비난하는 세력은 물론, 그런 세력을 보고 쿨하지 못하다고 나무라는 세력도 있었다. 셧다운제도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각자 다르다 보니 자신의 관점을 들이대며 서로 비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가장 합리적인 논리로 가장 많은 말을 해야 하는 이 산업의 주체인 "게임업계"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는 거다. 물론, 개개인의 반응은 지금도 넘쳐난다. 하지만, 업계를 대표하는 ‘큰’ 기업으로서의 입장은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결국 셧다운제도가 법사위를 통과한 오늘은 뭔가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게임계 '큰' 기업을 향한 의문과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혹자는 어차피 셧다운제도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게 더 타격을 주는 만큼 정부가 알아서 잠재적 경쟁자를 치워줘서 가만있는 건 아니냐는 뼈있는 비판도 했다.


오늘 셧다운제도가 야기한 혼란 속. 자신이 개척한 산업의 기반과 권리를 지키려는 게임업계의 하나 된 의지와 목소리는 느낄 수 없었다. 그대신 우리 업계가 셧다운제도에 대처하는 법을 '너 아니면 내가 죽는' 살벌한 적자생존의 논리로만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안타까웠다.





[ ▲ 우연히 발견한 한 게이머의 트윗. 마음을 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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