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DB 공방전, 유저들의 권리는 어디로?

칼럼 | 서명종 기자 | 댓글: 28개 |
▷ 사실은 알지언정, 아직 진실은 알지 못합니다.

최근 '넥슨-게임하이'와 'CJ 넷마블'의 날선 공방전은 꼭 선거를 생각나게 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상대방을 향해 날을 세운 논평과 성명을 발표하는 선거때의 정치인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진실보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어떠한 사건은 그 시작점부터 현재까지 흐름과 변수, 즉 맥락이 있게 마련인데 이런 맥락을 도외시한 채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만,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똑 떼어내서 근거로 삼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주장 자체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적인 예가 계약조건에 대한 두 회사의 입장차이였습니다. 5월 30일 CJ 넷마블이 협상 내용을 처음 공개했을 때 7대 3의 조건을 제시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넥슨-게임하이측의 반론은 7대 3의 조건은 자신들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빠진 사실이 있었습니다. CJ 넷마블이 제안한 것은 퍼블리싱에 7대 3이었던 거고, 넥슨-게임하이가 제안했던 것은 퍼블리싱이 아닌 채널링에 7대 3이었다는 것입니다. 퍼블리싱과 채널링의 차이를 모르지 않을텐데, 그 부분을 제외한 채 7대 3이라는 단어만 언급하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빠뜨린 것입니다.





[ ▲ CJ E&M 남궁훈 전 대표가 올린 공지 중에서.. ]



최근에 난무하고 있는 핵을 방지할 수 있는 패치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CJ 넷마블은 '패치파일안에 핵 방지 외의 다른 패치 내용이 있고 그 내용을 우리가 알 수 없으니, 패치 내용을 공유해주고 핵 방지 패치만 들어있음을 보장해달라. 그러면 패치하겠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넥슨-게임하이는 '핵 방지 패치 외의 다른 내용이 있을 경우, 모든 책임을 다 지겠다는 각서를 요구하는 것은 개발사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며, 패치와 무관한 파일까지도 요구하고 있어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핵 방지 패치 외 다른 내용은 없다'며 정 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양쪽 말이 다 맞을 수도 있고, 또 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용을 다 확인하기 전까지는 업데이트 못한다는 측의 말도 일리가 있고, 포괄적인 책임을 묻는 각서는 못쓰겠다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차피 떠나는 게임을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패치해 줄 필요는 없다는 마음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패치파일에 상대회사가 알면 안되는 내용이 있기에 그냥 우리가 주는 패치파일만 올리면 된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제 3자가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두 회사 사이에 오간 메일 내용을 모두 확보하거나 패치 파일을 분석하면 모르겠지만, 같은 일을 놓고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두 회사의 말만 가지고는 진실의 승자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 개발사의 권리: 계약 여부는 원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서든어택의 개발사는 게임하이이고, 게임하이를 인수한 회사는 넥슨입니다. 즉 서든어택의 원저작권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상대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하든 말든, 서비스 계약을 할지 말지는 오로지 원저작권자인 넥슨-게임하이가 결정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5대 5의 조건에도 계약에 응할 수 있고, 8대 2의 조건에도 계약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개발사, 원저작권자의 고유한 권리이며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이기도 합니다.

마치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여러 조건을 내세우면서 결혼하자고 따라다녀도, 옆의 친구들이 얼른 오케이하라고 부추겨도, 결혼하고 말지는 당사자만이 정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상대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협상이 중단되었다고 해서 협상 조건을 공개했던 것을 옳은 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원활하고 안정적인 서비스, 게임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런 분쟁 과정에 유저들이 대폭 이탈했던 과거 다른 게임의 전례를 본다면, 서비스 연장 계약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3자의 생각일 뿐이며 제 3자의 생각만으로 당사자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할 순 없습니다. 그 권리 자체는 존중받아야만 하는 권리입니다.





[ ▲ 서든어택의 원저작권자는 어쨌거나 게임하이와 넥슨 ]




▷ 퍼블리셔의 권리: DB 이전 여부는 퍼블리셔에게 있습니다.

서든어택의 퍼블리셔(서비스회사)는 지금까지 CJ 넷마블이었습니다. 이 말은 곧, 현재까지 서든어택을 즐긴 유저들의 정보를 CJ 넷마블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저들의 DB 권한을 CJ 가 가진다는 내용 역시 서든어택의 퍼블리싱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개발사인 넥슨-게임하이가 계약 여부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다면, 퍼블리셔인 CJ 넷마블은 서든어택 유저 DB 를 줄지 안줄지 결정짓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개발사에서 유저 DB 를 달라고 부탁할 순 있을지언정, 강제로 이를 가져올 순 없는 것입니다. 법을 동원해서 강제로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인식표 업데이트처럼 퍼블리셔 몰래 잠수 패치를 한 것은 계약 위반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계약이 곧 끝나더라도 엄연히 퍼블리셔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만큼 잠수 패치에 DB 를 확보할 수 있는 패치라면 이는 협상 조건을 공개해버린 것 못지 않게 룰을 어긴 것입니다.

퍼블리셔가 마음먹기에 따라 그냥 공짜로 유저 DB 를 넘겨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천억원을 준다고 해도 유저 DB 를 넘겨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계약 여부가 원저작권자의 고유 권리인만큼, DB 이전 문제 역시 퍼블리셔의 고유 권리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퍼블리싱 모델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개발사와 퍼블리셔 각기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적인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두 회사가 가진 무기를 서로 결합해야만 온전한 모습이 되는 것이고, 만일 각자의 무기로 서로에게 칼을 겨누면 양패구상의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퍼블리셔와 개발사가 공개적으로 분쟁을 벌이는 모습은 흔치 않습니다.





[ ▲ 하지만, DB 이전은 엄연히 퍼블리셔인 CJ의 권리 ]



이는 퍼블리싱이라는 사업 모델 자체의 특징에서 오는 것인데, 퍼블리셔는 마치 큰 마트나 백화점의 주인과 같습니다. 그 마트나 백화점에 입점한 상품들은 곧 게임들이 될 터입니다. 이때 어떤 한 상품이 이제 입점을 중지하고 다른 마트, 백화점에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성공한 상품은 판매자보다 생산자의 목소리가 더 클 수 있는데, 이번이 그런 케이스입니다.

이때 새로운 마트나 백화점으로 자신의 상품을 옮긴 생산자들이 전에 있었던 마트나 백화점에게 그간 자기가 생산한 제품을 사간 회원들의 연락처나 구매내역을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과연 전에 있었던 마트, 백화점의 주인은 쉽게 구매내역과 연락처 등을 넘겨줄 수 있을까요 ? 지금 서든어택 DB 를 둘러싼 문제는 딱 이것과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넥슨의 이용약관입니다. 게임 DB 는 유저의 것이라는 문구를 접한 뒤에 과연 그 말을 한 당사자의 게임 이용 약관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를 살펴보았습니다. 넥슨의 이용약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있습니다.

제 11조 (게임서비스) ④ 게임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모든 소유권은 회사에게 있으며, 게임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은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범위 내에서 이용권을 가집니다...

제 12조 (콘텐츠서비스) ⑤ 회사가 제공하는 아이템(아바타 포함, 이하 동일)을 포함한 콘텐츠의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모든 소유권은 회사에게 있으며, 회원은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범위 내에서 서비스 이용권을 가집니다...


CJ 넷마블에 대해서 넥슨-게임하이는 게임정보는 유저들의 것이라며 이전을 촉구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서비스하는 게임의 이용약관에는 모두 다 회사의 소유라고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약관은 어느 게임사나 마찬가지입니다.


▷ 오로지 유저를 위해서만입니까 ?

두 회사 모두 유저를 위해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계약을 요청할 때도 유저를 위해서, DB 이전을 요구할 때도 유저를 위해서, 핵방지 패치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유저를 위해서... 모든 말에 '유저를 위해서'라는 말을 붙이지만, 정작 실행되는 일은 없습니다.

진정으로 '유저를 위해서'였다면, 넥슨-게임하이는 서든어택의 계약을 연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계약을 연장할 의사는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넥슨-게임하이가 인식표를 업데이트한 것은 지난 5월 3일. 인식표를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 자동으로 게임정보를 확보할려면 이미 그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의 서든어택 매출액은 넥슨-게임하이가 50%, CJ 넷마블이 50%를 가져가는 구조였습니다. 매출의 50%만 가져가는 것이었으니, 만일 이번 이전 과정의 소란으로 유저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어도 본전인 셈입니다. 절반 이상만 남아있으면 개발사측으로서는 이득입니다. 그러니 이런 소란을 감수할만한 이유는 충분히 될 터입니다.

진정으로 '유저를 위해서'였다면, CJ 넷마블은 넥슨-게임하이가 SA Tool 을 아예 삭제해버릴 정도로 이미 DB 이전이 진척이 되었어야 합니다. 한쪽은 SA Tool 을 날마다 업데이트하고 반대로 한쪽은 날마다 이것을 막는, 마치 해커와 백신프로그램처럼 날마다 뚫고 막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입니다.

CJ 넷마블이 DB 를 이전해주겠다고 발표했지만 그 방식이나 과정, 시기가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 유저의 불안감 역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줄려면 아예 확 제대로 줘서 상대가 그리고 유저가 믿고 안심할 수 있게끔 해야만 하는데, 그런 수준에는 많이 못미칩니다. 또 이만큼 사이가 벌어졌으니 '넘겨줄테니 믿어라'라고 해도 상대방으로선 믿기 힘든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설사 넘겨받더라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자체적으로 확보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Plan B 가 될테니까요.

진정으로 '유저를 위해서'였다면, 넥슨-게임하이는 DB 를 달라고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CJ 넷마블에게 물질적으로 상당한 댓가를 주고서라도 DB 를 가져왔어야합니다. 즉 이렇게 대놓고 성명전을 벌일 것이 아니라, DB 의 가치만큼 적정한 가격을 물어주고 DB 이전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지금쯤 넷마블의 서든어택 홈페이지에서는 DB 이전 신청 페이지가 이미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쉽게 신청할 수 있었고, 핵 방지 패치도 진즉 완료되었을 것입니다.

넥슨은 최근에 여러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3,850 억원을 주고 산 네오플(던전앤파이터), 2,000 억원을 주고 산 엔도어즈, 1,362 억 가량을 주고 산 게임하이(서든어택) 등 최근 몇년간 7,000 억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여러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덕분에 2011년은 연매출 1조원 돌파가 확실시되기도 합니다. 그런 정도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으니, 차라리 말 그대로 유저를 위해서 댓가를 주고서라도 DB 를 가져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

진정으로 '유저를 위해서'였다면, 두 회사는 이미 핵 대응 패치만이라도 했어야합니다. 넥슨-게임하이는 핵 대응 패치 파일에 다른 파일을 몰래 숨겨두면 안되는 것이고, CJ 넷마블은 보장을 요청하기 전에 일단 패치부터 올렸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대화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진짜 유저를 위해서였다면 말입니다.

게임사도 기업인만큼 매출액을 올리고 이익을 증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유저를 위해서'라는 말을 할려면 그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 ▲ 게임업계 매출의 1%를 강제 징수하는 법안이 여성가족부에 의해 법안소위에 상정되었습니다. 그러나.. ]



▷ DB 가 어디로 가든 그것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답답한 것이, 청소년 셧다운제와 매출 1% 강제징수 제도입니다. 청소년회원이 많은 만큼 다른 어느 게임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회사가 바로 넥슨이고 그 다음에 CJ 넷마블입니다. 그런데 정작 두 회사는 서든어택을 놓고 서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뿐, 정작 업계의 주된 관심사에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둘 다 유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작 게임은 망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군복무중이라 DB 이전조차도 못하게 된 분들이 제일 안타깝습니다. 두 회사가 좀 더 대승적인 선택을 할 순 없었는지, 꼭 이렇게 싸워야만 하는건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재계약을 할지 말지는 개발사 고유의 권리입니다. 그중에서 개발사는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게임정보 DB 를 줄지 말지는 퍼블리셔 고유의 권리입니다. 결국 퍼블리셔는 주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DB가 어디로 가든, 유저들이 서든어택을 다시 할것인지 말것인지는 개발사가 정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저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에 따라 개발사의 흥망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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