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바마와 무응답, '우리' 게임은 과연 문화인가?

칼럼 | 김지연 기자 | 댓글: 23개 |
최근 한 매체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진행됐습니다. 게임산업 규제에 관한 법안을 공동 발의한 손인춘 외 16명의 국회의원들에게 셧다운제의 실효성과 법안 보완의 필요성, 그리고 게임산업 진흥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고, 이에 12명의 의원이 무응답 혹은 답변 거부 의사를 보였습니다.


셧다운제가 실효성이 있다고 언급한 의원도 있는 반면, 일부 의원은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그 효과가 어떨지 의문의 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법안 보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게임 과몰입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산업의 발전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다수의 의원에게서 거론됐습니다. 게임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현재 국내 게임 산업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발의 의원 17명 중 10명이 무응답이었다는 점입니다. 대표발의자인 손인춘 의원과의 친분을 통한 법안 동의라던가 취지에 공감이 되어 동의를 한 것 뿐이었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게임산업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하거나 법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법안에 동의를 했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피해가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 현재 발의된 게임중독지수에 관한 조항]


요즘은 문화산업이 그 나라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양질의 문화 콘텐츠 하나로 다양한 장르로 파생되어 2차 콘텐츠로 발전하기도 하며, 그 콘텐츠 하나로 국가 브랜드가 제고되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드라마 '대장금'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엄청난 한류 열풍이 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빌보드차트 2위에 등극,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잘 만든 문화 콘텐츠는 그 어떤 정치, 외교적 차원의 국가관계 정립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수 많은 선례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나아가 문화 콘텐츠를 통해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를 넘어 다양한 지식과 감성, 사고의 깊이를 넓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을 통한 유아 교육이라던가 캐릭터를 내세워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쇼프로그램 등이 제작되고 있죠. 게임은 분명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잘 이용한다면 교과서 그 이상의 효율적인 학습재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해당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게임은 그 자체로 해가 되는 문화가 결코 아닙니다. 게임을 어떻게 올바르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점으로 두고 생각할 점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법안의 제정'이 아니라 '아이들이 올바르게 게임을 하기 위한 법적, 사회적 제도의 마련'인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잦은 초등학교 난사 사건이 폭력적인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는 미국 내 분위기를 감안, 폭력적인 게임이 실제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연구할 것을 지시하며 1천만달러(한국 기준 약 106억원)를 지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자주 발발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서 비난의 여론이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NRA)로 쏠리는데에 대해 NRA 측은 '총기소지가 원인이 아니며 폭력게임이 이러한 사건을 조장한다'라고 입장을 밝힌바 있습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면서 "게임에 대해 좀 더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위와 같은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ESA)는 "총기 관련 사건에 대해 백악관은 사려깊고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미국 전체가 노력을 기울여야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폭력 게임이 실제 총기 사건에 영향을 줄지를 두고 대립할 수 있는 양 측이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이성적인 자세로 조사에 임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총기 난사 사건이 국내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요? 일부 학생들의 게임 과몰입 현상을 기반으로 게임산업 전체를 저해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았을 때 대답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게임규제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조차 대다수가 무응답으로 의사를 표명한 데에 반해, 미국에서는 총기사건에 게임이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실시, 정부 차원에서 1천만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현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순간의 감정이나 선입관이 아니라 냉정함과 침착함에 바탕을 둔 체계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그들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잔혹한 범죄에 의해 수십명이 한꺼번에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이렇게 접근한다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경탄과 전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두가지 사례를 통해 '게임을 절대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은채 무언가를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그릇된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친분을 통한 게임규제 법안 통과나 단순히 취지에 공감한 참여와 같은 자세로 한 나라의 큰 재산이 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제재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게임을 바라보는 양쪽의 서글픈 시각차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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