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 2의 디아블로3 사태? 심시티, '명작'이라는 이름에 흠집을 남기다

칼럼 | 이종훈 기자 | 댓글: 27개 |


▲ 이 화면 한 번 보기가 왜 그리 힘들었던가


자정 남짓한 시간. 해외매체 Joystiq에 올라온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디아블로3심시티를 거론한 제목.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가고, 클릭하고 말았다. 발매부터 서버 오류까지, 극과 극을 달리는 사건으로 핫이슈를 이어가고 있는 심시티. 그 '서비스의 질'을 지적하는 내용의 사설이었다.

10년 혹은 11년 가량.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돌아온 심시티의 발매 소식은 필자의 심장을 쉴새없이 뛰게 만들었다. 기자이기 이전에 게이머로서, '시저'와 '세틀러'부터 시작해 건설 시뮬레이션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종류라면 사족을 못 쓰고 찾아다니던 과거 기억들이 끊임없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몇 시간 정도 짤막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고, 확 느껴졌던 첫인상과 전체적인 소감을 적어 리뷰를 올렸다. 그 날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진 퇴근길에 올라서야 미칠듯이 두근거리던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맘편히 즐길 수 있는 게임 하나를 얻었다는 사실에 못내 즐거워졌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사건은 시작됐다. 한두 개의 서버가 오류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일부 게이머들은 진행한 플레이 정보가 특정 시점부터 서버에 저장이 되지 않는, 소위 롤백(Roll Back)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다. 주위 동료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기 위해 오세아니아 서버로 옮기려던 필자도 튜토리얼이 진행되지 않는 증상에 직면했고, 게임을 껐다 켰을 때부터는 아예 접속이 되지를 않았다.

몇 시간 정도 오류가 지속되자, 상대적으로 문제가 없어보이는 서버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수용인원을 초과한 서버는 한껏 붐비는 과열 상태에 이르다가 역시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이 반복됐다. 곳곳에서 불만이 속출했고, 커뮤니티에서의 평점도 점점 하향선을 그렸다. 바로 그렇게, 처참한 '심시티 사태'가 시작됐다.







▲ 해외 리뷰사이트인 Meta Critic와 Game Rankings의 평점은 하향세를 그렸다


명작의 이름, 게다가 오랜 시간 유저들을 기다리게 했던 타이틀이었다. 맥시스와 EA가 어느 정도 반향을 예측했는지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서버 오류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명작의 이름 아래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게이머들의 기대를 모아놓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그야말로 '뒤통수 때리는' 격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1년 여 전 왕십리 역 광장의 풍경을 기억한다. 그리고 한동안 이어진 전세계적 서버의 공황상태도 생생하게 잊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게이머들의 기대를 받았던 디아블로3, 나아가 블리자드라는 이름에 오명을 남겼던 그 사건을, 사람들은 이번 심시티 사태로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버 폭주 문제로 유저들이 서버 증설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운영을 맡고 있는 EA코리아의 페이스북 올라온 댓글 때문이다. 아시아 서버가 따로 없는지에 대해 묻는 내용에 대해 EA코리아 페이스북 관리자는 '불법 복제가 많은 지역이라 서버 증설이 어렵지 않나 싶다'는 답변을 남겼다.

이에 수많은 논란이 일자 공식적인 사죄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EA 측이 온라인과 서버, 인증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시장과 게이머들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정녕 디아블로3 사태를 보고도 아무런 타산지석(他山之石)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돈을 내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음식이 나오지를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Joystiq 사설을 쓴 알렉산더 슬리윈스키(Alexander Sliwinski)가 이러한 상황을 빗대 쓴 표현이다. 하나의 게임 타이틀을 레스토랑으로 비유한다면, 그것을 플레이하는 경험은 음식을 서빙받아 맛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음식의 맛을 이야기하기 앞서 먹어볼 수조차 없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제대로 된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빛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요리일지라도 손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나.



▲ 내면에 잠들어있는 분노를 깨우던 그 문구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서비스는 게임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킨 요소임에 분명하다. 또한, 멀티플레이는 물론 기본적인 싱글플레이에도 서버 인증을 요구하는 방식은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왔던 불법 복제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게임의 퍼블리싱을 맡은 업체들이 온라인과 서버에 대해 너무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은 어쩔 수 없고,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고치고 있다'라는 답변은 최선의 답변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유저들을 만족시키는 최고의 답변일 수는 없다.

유저들이 게임을 결제한다는 것은 그것을 '플레이하고 싶을 때', '플레이하고 싶은 곳에서', '마음껏 플레이할 수 있는' 일련의 권리까지 함께 사는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서버 인증을 거쳐야하는 것을 기본으로 요구했다면, 그들의 서버가 24시간 원활하게 유지되고 있어야함 역시 기본이라는 것이다. 게임을 소비하는 유저들에게도, 고생해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에게도, 그것이 예의다.

조금 다행이라면, 어제 새벽부터 심시티의 서버 상태가 조금씩 안정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물론 완벽한 안정을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유저들은 다시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일부 유저들은 아직도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을지라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즐겁게 넓혀가던 도시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끔찍한 경험을 유저들이 다시는 하지 않도록, EA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버튼을 누른다는 건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 게임을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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