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급 요리' WCS 개편안, 블리자드의 '간 맞추기' 필요하다

칼럼 | 길용찬 기자 | 댓글: 14개 |



블리자드에서 스타크래프트2 e스포츠의 지각 변동을 알린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 지역이 먼저 포문을 열었고, 북미와 유럽 역시 새로운 마음으로 지역 리그를 준비하고 있다. 세 지역의 리그는 월드챔피언십시리즈(이하 'WCS')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며, 매년 네 번(올해 세 번)의 시즌 파이널과 한 번의 글로벌 파이널로 세계 최강자를 가린다.

이 개편안은 전 세계를 관통하는 대회 스케일에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한켠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WCS 개편안에서 가치를 갖는 점은 무엇이고, 현재 WCS 시스템에서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선수와 팬의 입장에서 정리해보았다.


■ 협회 팀과 연맹 팀, 엇갈리는 반응





▲ 전세계 주요 관계자들이 집결한 4월 3일 WCS 발표회

협회 팀들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팀들은 이번 개편에 관계 없이 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개인리그에서도 스타리그 우승, GSL 우승 등이 아닌 월드챔피언십 우승이라는 큰 목표가 생겼기에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선수들이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스타리그 시드 배분의 문제에서는 협회 선수들이 손해를 감수했다는 의견. WCS 지역 리그가 GSL 체제 중심으로 재편된 데서 발생한 현상이다. "지난 시즌 스타리그에서 듀얼토너먼트 진출권을 가지고 있던 선수들은 전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면서 이에 대한 불만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다.

비협회 중하위권 선수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잘 하는 사람이 올라가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과, "상위와 하위의 상금 격차가 너무 극심해질 것" 등의 의견이 오갔다. 대회 숫자의 전체적인 축소가 시즌 및 글로벌 파이널로 보완되면서 일어나게 되는 걱정이다. 특히 이번 시즌을 코드S에서 시작하지 못한 선수들에게서는 불안한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긍정적인 반응 역시 있다. 과포화 상태였던 한국 리그에서 많은 선수들이 해외 지역을 선택함에 따라 새로운 얼굴이 도전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열렸다. 이것이 다양한 선수들의 기회 확보로 연결될지, 아니면 스타 플레이어의 부족이라는 현상으로 빠질지는 시즌이 계속 진행되면서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



■ 뜨거운 감자 상금 체계, 방향은 잘 잡았다




▲ WCS 개편 전후 상금 비교 분석

4월 16일, 블리자드는 WCS의 상금 규모와 포인트 제도를 발표했다. 기존의 GSL과 스타리그에 해당하는 프리미어 리그 우승자는 2만 달러, 준우승자는 1만2천 달러를 얻는다. 3~4위는 7천 달러, 5~8위는 3천 5백 달러, 9위부터 16위까지는 2천 달러, 그리고 17위부터 32위까지는 1500 달러를 받게 된다.

프리미어 리그의 상위 입상자가 진출하는 시즌 파이널부터 상금은 크게 뛴다. 시즌 파이널 우승자는 4만 달러를 받으며, 연말에 열리는 글로벌 파이널의 우승에는 10만 달러가 걸려 있다. 만일 한 선수가 1년 동안 우승을 독식한다면, 최대 받을 수 있는 상금은 34만 달러(약 3억 8천만 원)에 이른다.

관련 기사 : 블리자드, 월드챔피언십시리즈(WCS) 대회 상금 규모 및 포인트 제도 발표

가장 큰 특징은 한국 리그의 우승 상금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 그리고 3위 이하 수상자들의 상금이 오른 것이다.

블리자드의 이 정책은 입상권 바깥의 선수들에게 더 풍부한 상금을 제공하면서, 우승 상금이 하락하는 대신 시즌 파이널에서 고액의 상금을 지불하면서 상위권 선수에게도 동기 부여를 하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이런 방향으로의 개선은 칭찬을 남기고 싶다. 고액의 우승 상금을 내거는 것이 주목도를 끌기 쉽고, 선수들의 의지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이와 같이 본선 입상자들의 상금을 전체적으로 올리는 일이다. 언제나 GSL 코드S 8강을 기록하던 선수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선수는 환율 1200원 기준으로 1년에 480만원 가량의 수익을 더 기대할 수 있다.

WCS 글로벌 파이널은 작년 WCS 그랜드 파이널과 비교해 우승 상금이 같다. 개최 빈도도 연 1회로 같기 때문에 늘어난 기회 비용에 해당되진 않는다. 다만 이것 역시 준우승 이하 상금이 다소 늘어난 모습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우승자를 제외한 다른 상금을 늘리면서 내실을 다진 모양새다.

우승권에 입상한 선수는 시즌 파이널에서 추가 상금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는 확률도 대폭 상승한다. 물론 파이널 매치에서 조기 탈락할 경우 이전에 비해 획득하는 상금은 떨어지지만, MLG와 IEM 등 해외 주요 대회는 이전처럼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큰 손해는 아니다. 인벤에서는 상금 발표 당시 개편 전후를 비교해 상금의 변화를 정리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분석] 스타크래프트2 WCS 상금개편, 과연 득일까? 실일까?

중요한 것은 우승 상금이 줄었다는 점이 아니다. 지금 상태에서 3위 이하 상금이 늘어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보완책이 되기에 약간 부족하다. 중하위권 선수들의 상금은 더 늘어야 한다. 이전 해에 버금가는 수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챌린저 리그(전 코드A)의 선수들은 이전과 동일한 상금(12강 100만 원, 48강 40만 원)을 받는다. 이들의 상금이 늘지 않은 것은 의문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실력으로 올라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원론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위 입상자가 있으려면 하위 탈락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 프로의 구조이기도 하다. 리그는 철저한 상대평가다. 모두가 상위권일 수는 없다. 이런 구조에서 중하위권 선수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신성도 나올 수 없고, 감동의 드라마도 나올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풀(Pool)'의 유지이다.

블리자드의 새로운 상금 정책이 그런 문제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약간의 상금 증가로 근본적인 토양을 다지기에는 부족하다. 챌린저 리그에서 미래를 꿈꾸는 선수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완벽한 상금 체계를 갖출 수도 있지 않을까.



■ 부족했던 두 가지, 정보 제공과 협의




▲ 협회와 연맹이 한 데 모여 페어플레이 선언식을 가졌다

선수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부분에서는 일치를 보였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스러웠다", "사전에 상의가 없었다"가 그것이다.

공식 발표가 나온 4월 3일은 GSL 코드S 개막전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개편안을 공개해야 했던 사정은 일견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결론을 놓고 봤을 때 시기상으로도 완벽하지 못했고, 세부 내용도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 이 개편안은 군단의 심장 출시 이전에 발표되거나, 아예 천천히 보완되어 나왔어야 했다.

해외 팀 소속의 한 선수는, 인벤과의 통화에서 블리자드의 이런 태도를 꼬집었다. "발표 당일에 소식을 듣고 짧은 기한 동안 지역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확정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지역별로 상금은 어느 정도 규모인지, 포인트는 어떤 식으로 배분되는지, 차기 코드S에 진출한 상태에서 지역을 옮기면 포인트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이런 정보가 아무 것도 없었다. 유럽과 북미는 세금이 많이 붙어 신중히 고려하고 싶었는데, 급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번 시즌 지역 선택이 끝난 후에야 WCS 상금이 공개되면서, 고민 끝에 한국 지역을 선택했던 선수들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GSL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한국 WCS 상금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기 때문. "모든 지역 상금이 같은 것을 미리 알았다면 상위권 입상이 쉬운 해외로 갔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선수도 있었다. 다음 선택의 기회에서부터 해외로 이동하는 선수의 숫자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최근 진행된 있는 북미 WCS 예선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주최측 MLG의 운영 미숙에 고생을 겪고 있다. 시차가 맞지 않는 가운데 늘어난 경기 수와 스트림 중계 등의 문제로 이십여 시간 동안 예선을 치르는 강행군을 펼쳤다. 특히 WCS 북미 지역을 선택한 퀀틱게이밍의 고석현 선수는 같은 시즌 한국 WCS 본선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미 예선 상위 라운드를 진행하던 도중에 갑자기 자격이 박탈되는 곤욕을 치렀다. 지역 리그 참여에 대한 정보를 더 빨리 정립하고 사전에 공지했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관련 기사 : MLG CEO 선댄스 지오반니, WCS 북미 예선 진행 관련 사과문 발표

한 번 바꾸면 1년 동안 자리를 바꿀 수 없다. 평균 수명이 길지 않은 프로게이머들에게 한창 시절의 1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다. 그 중요한 선택에 필요한 세부 정보는 당시에 없었거나, 아직까지도 확정되지 않은 것이 많다. e스포츠 중심에서 판을 이끌어온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 똑같이 나누면, 공평한 것일까




▲ 성황리에 막을 연 2013 WCS GSL 시즌 1

가장 핵심적인 구조로 들어가보자. 리그 균형과 형평성이다.

세 지역 리그의 상금이 동일하다. 이것은 오히려 불평등을 가져온다. 모든 세계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8강을 싹쓸이한 지 오래고, 그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역 격차가 극명하게 나타난 지금 시점에 상금을 동일하게 배분하는 것은 한국 선수들과 국내 대회가 희생을 감수하게 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해외 지역 리그는 기존 대회 상금에 비해 많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한편, 월등히 많은 상금을 자랑하던 GSL은 우승 상금이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세계 e스포츠계를 양분하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비교할 수 있다. 각 지역 대회에 서킷포인트를 배정하고, 연 1회 월드 챔피언십에서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방식은 WCS 개편안과 흡사하다. 하지만 이런 지역별 배분에 있어 LoL은 문제가 크지 않다. 각 지역별 팀들의 실력차가 있을지언정, 그것이 압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2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 선수들이 세계를 석권한 상태다. 북미와 유럽의 최강 게이머들이 세계 대회에서 한국과 만났을 때 성적은 16강, 8강이 최대치로 나타나고 있다. 상금이 동일할 경우 많은 선수들이 다른 지역 리그로 이전을 강요받게 된다. 그럼에도 경쟁은 여전히 한국 리그가 가장 힘들다. 협회측 선수들은 모두 한국에 남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해외 체류비를 감당하기 힘들거나 기타 이유로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팀과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쟁에서 대회에 참가해야 한다.

북미 WCS와 별개로 기존 MLG가 유지되는 것에 반해, 국내 GSL과 스타리그는 WCS의 이름으로 묶였다. 단순한 산술로도 북미 메이저급 대회는 하나에서 둘로 늘었고, 국내는 반대로 줄었다.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압도적으로 앞선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지금의 리그 배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각 리그에 대한 스폰서 상금을 허가해서, 경쟁률에 맞게 조금 더 파이를 키우는 것은 어떨까. 이 경우 주목도가 높은 리그에 어느 정도 합당한 상금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공평한 체제는 올라가기 힘든 산일수록 달콤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 흩어지는 별들, 더 넓게 빛날 수 있을까





▲ GSL의 슈퍼스타라 할 수 있는 정종현 선수, 유럽 리그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팬들의 흥미다. 최근에 들어서야 연맹과 협회가 각종 대회에서 만나며 '풀 버전'의 스토리를 엮어나갈 수 있었다. GSL과 스타리그를 보던 팬들에게 이것은 이제 막 앞에 놓인 만찬과 같았다.

상금이 동일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싶은 북미와 유럽 지역으로 옮길 가능성이 크다. 공급과 수요의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세 갈래로 나뉜 선수들이 서로 유동적으로 얽히기는 쉽지 않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시즌 파이널과 글로벌 파이널. 하지만 특정 유명한 선수들이 만나는 빈도는 평균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서적인 문제도 있다. 각각 브루드워와 스타크래프트2의 명실상부 세계 최고 대회였던 스타리그와 GSL이, 이제 하나의 '지역 리그'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도 팬들로서는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GSL이 WCS에 소속된 것과는 달리, 다른 세계 메이저 대회인 MLG와 IEM 등은 기존처럼 독자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팬들의 이런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열쇠일 수밖에 없다. 차질 없는 대회 운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 단위로 펼쳐지는 스토리를 적절하게 엮어내 흥행을 이끌어야 한다. 팬은 솔직하다. 대회 흐름이 재미있고, 경기가 재미있으면 아낌없이 호응하는 존재가 팬이다.

그 중에서도 분수령은 시즌 파이널이다. 이 이벤트가 매끄럽게 진행된다면 세계를 무대로 한 시즌 결승이 펼쳐지는 것이고, 빈 자리를 새로운 스타들이 메우면서 주목도가 올라갈 수 있다. 이것 역시 지켜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블리자드의 WCS 개편안이 시즌 파이널에서 어떤 화려한 무대로 열매를 맺을지, 멀지 않은 미래에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선수와 팬 의견을 섞어, 더 좋은 요리를 만들어내길




▲ 각자의 길을 걷던 단체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제는 앙상블이다

시스템의 성패는 시즌이 진행되면 판단해야 할 것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WCS 개편안은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고, 흥행의 요소도 존재한다. 이번 챌린저 리그 예선에서 신선한 얼굴이 많이 보이고 북미와 유럽으로 지역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게이머 과포화 상태에서 장기적인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e스포츠계의 내실을 다지려는 시도 역시 꾸준히 필요하다. PC방 대회를 주최하며 최초 단계에서부터 기반을 다지려는 블리자드의 시도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그에 더해 막 유망주 단계에 접어든 게이머들이 실력 향상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시스템에서 가장 보완해야 할 점이 그것이다. 챌린저 리그 단계의 선수층이 흔들리면, 판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앞서 쓴소리가 길었던 이유는, 그만큼 첫 단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블리자드가 e스포츠에서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느냐는 지금부터 올해 글로벌 파이널까지의 기간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CS의 새로운 시스템은 매력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세세한 단점을 더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정성 들여 요리를 만들었지만 간이 덜 되었을 때의 아쉬움이다. 현재 리그 진행 순서의 변경이나 파이널 리그 32강 체제 등 각종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서둘러 조율해야 할 점이 많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방향에서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자세다. 어렵게 만든 새 체제라면, 후속 보완도 빨라야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마지막 담금질을 위해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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