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키워줄테니 내놔! 매출 5% 강제징수란?

칼럼 | 서명종 기자 | 댓글: 94개 |
정신없이 바쁜데, 아니나 다를까 또 사고가 터졌습니다. 새누리당의 박성호 의원 등 11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상상콘텐츠 기금의 설치를 위해 매출액의 5% 이내의 범위에서 부담금을 징수할 수 있다'라는 것이 내용의 핵심입니다.

[관련기사]새누리당 박성호 의원 "콘텐츠 산업... 매출 5% 부담금 징수" 법안 발의



1. 가져가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징수

목적이야 어떻든 포장을 그럴싸하게 하면 좋은 것으로 비추어 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게임은 그간 악의 축으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에 이래저래 반발이 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법적으로 규정된 기금의 징수는 준조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금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현재 모든 업종/산업을 불문하고 거래에는 거래에 관련된 세금, 즉 부가가치세(VAT) 10%가 붙게 되어 있습니다. 가끔 카드로 물건을 사지 않고 현금으로 물건을 산다면 10% 정도 할인해주겠다는 것이 이런 것에서 비롯됩니다. 거래에 따른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한마디로 정부와 국세청에 신고되지 않는 거래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정부 세수가 증가한 이유중 하나는, 현금영수증/신용카드/체크카드의 사용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더, 이상 현금으로 거래하고 정부에 신고를 하지 않아도 정부가 알아낼 수 없는 형태의 거래가 대폭 줄어든 것도 한가지 이유입니다.

새누리당의 박성호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은, 부가세의 세액을 15%로 갑자기 올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물품 가격은 그대로 둔 채 말입니다. 만일 소득세를 갑자기 50% 올린다든가, 국민연금의 받는 돈은 그대로 두고 납부할 돈만 대폭 올린다든가 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국민들의 저항과 반발심이 어느 정도일지를 상상해보면, 이번 매출 5% 징수가 얼마나 황당한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가 세금을 받아가기 위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거래라는 것은, 돈이 오가는 것은 서로간에 주고받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국민이 세금을 내는 이유는 단지 국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돈이 국민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찰도 군대도 공무원도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유가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저 5%를 걷어가는 댓가로 대체 뭘 줄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먼저 주고나서 그에 대한 댓가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요?

저 법안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내가 너를 키워줄테니, 니가 가진 돈 좀 먼저 줘봐" 어디서 많이 듣던 말입니다.

"안도와줘도 되니 그냥 좀 내버려두면 안될까요?"



2. 내는 것이 합당한 분야도 있긴 하지만...

이런 기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 분야도 있긴 합니다. 제한적으로 사업자가 허가되는, 말 그대로 그 분야의 사업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혜인 분야라면, 허가에 대한 반대급부의 개념으로 그에 해당하는 준조세를 부담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정부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거나 막대한 예산을 들여 투자한 분야라면 정부 역시 그에 대한 비용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합당한 몫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게임업계가 정부에서 무언가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아, 있긴 있습니다. 갈굼을 받았죠.

게임업계가 정부로부터 그래도 혜택을 받은 것은 하나 있습니다. 세계 최고급의 빠른 인터넷망은 분명 정부의 역할이 지대했으며,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IT 산업, 나아가 모든 산업이 이 혜택을 입었습니다. 말 그대로 국가 기간망이었습니다. 이 인터넷망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게임산업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혜택을 입었다고 게임산업이 특별히 추가로 비용을 더 내야 하느냐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이 인터넷 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책정된 요금을 납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고속도로와 비슷합니다. 고속도로처럼 잘 정비된 도로망으로 인해 물류 이동도 빨라졌고 각 지역간 이동도 대단히 좋아졌습니다. 관광도 활성화되는 효과도 있는 등 그로 인한 효과는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통행 요금을 내게 됩니다.

그런데 고속도로 정비에 필요하다고 해서 현대자동차와 르노삼성과 대우GM 에게 자동차 1대를 판매할 때마다 판매액의 5%를 정부에 추가로 내도록 법을 바꾼다면, 과연 자동차 회사들은 순순히 납득할 수 있을까요 ?

게임산업이 가지는 특수한 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게임산업은 거의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집니다. 게이머들이 결제할 때를 살펴보면,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통장에 현금으로 입금하거나 모바일기기를 이용하여 결제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즉 무자료 현금거래가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이 게임산업이고 따라서 법에 정해진 세금을 가장 충실히 내고 있는 산업일 것입니다.



3. 매출 5%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잠시 화제를 돌려보면, 삼성그룹의 2012년 총 매출은 380조원이었고 영업이익은 30조원을 약간 넘었습니다. 여기에서 매출액의 5%를 정부가 징수한다면, 삼성그룹은 무려 19조를 내게 되고 영업이익에서 이 돈을 빼면 11조원으로 3분의 1밖에 남지 않습니다.

현대차그룹의 2012년 총 매출은 164조를 약간 넘겼고 영업이익은 12조 8천억 가량이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매출 5%라면, 8조 2천억이고 영업이익에서 이 돈을 내고 나면 4조 6천억으로 역시 3분의 1만 남게 됩니다.



▲ 삼성그룹은 매출액 5%를 정부가 징수할 경우 19조를 내게 된다


삼성과 현대의 매출 5%만 더해도 27조원이 넘습니다. 4대강 사업을 한번 더 벌이고도 무려 5조가 남는 돈입니다. 공군의 3차 차기 전투기사업은 10조원의 예산으로 약 60대의 신형 전투기(F-35 같은...)를 구매하는 것이 목표인데, 무려 162대를 살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F-16 전투기 전부를 F-35로 단 1년만에 바꿔도 되는 돈이죠.

그런데 매년 매출액의 5%니, 삼성과 현대로부터 매출액의 5%만 해마다 징수를 해도 5년간 모으면 135조원입니다. 대통령의 복지 공약에 5년간 필요한 재원이 130~150조로 추정되는데, 삼성과 현대만 가지고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게임사로 눈을 돌려봐도 엔씨소프트는 연간 350억원 이상을 내야 합니다. 이 돈이면 NC 다이노스 1년 운영비를 능가할 것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엔씨소프트는 야구단 2개를 운영해야 하는 셈입니다. 게임으로 바꾸어도 해마다 아이온 하나씩 만들고도 남을 돈입니다.

엔씨소프트가 야구단을 창단하려 할 때, 과연 엔씨소프트 같은 기업이 많은 돈이 드는 야구단을 꾸준히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몇몇 재벌그룹들이 반대의견을 표명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야구단 운영비보다 5% 매출 징수액이 더 큽니다.



▲ 엔씨소프트의 매출 5%는 350억원 이상(NC 다이노스 1년 운영비를 능가하는 금액)


이 법안의 대상이 되는 것은 비단 게임뿐만이 아닙니다. 문화분야이기 때문에 SM엔테인먼트나 YG엔터테인먼트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의 2012년 매출액은 2,898억원입니다. 해마다 145억을 기금으로 납부하게 되겠습니다. YG엔터테인먼트의 2012년 매출액은 1,374억원입니다. 해마다 69억씩 납부해야 합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SM과 YG는 기껏 해외 진출해서 K-Pop 한류 만들어놨더니, 한류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해마다 210억이 넘는 돈을 정부에 추가로 내게 되는 셈입니다.

매출액의 5%는 이 정도의 규모입니다.



4. 법안 통과 가능성은 낮겠지만 ...

개인적으로 이 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른 법률과의 상충 문제도 있을 뿐더러, 이런 기금을 불명확하게 강제 징수하는 것 자체도 논쟁의 소지가 많습니다. 나중에 가면 상위법과의 문제라든가 심지어는 위헌 등등 이 내용 그대로 순탄하게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이 법안 자체도 게임이나 문화산업에 대해 심도깊은 조사와 숙고를 거쳐 나온 것이 아니라, 업계쪽에 쓸 기금이니 해당 업계쪽에서 돈 좀 마련하면 되지 않을까? (정부 예산도 부족한데...) 정도의, 말 그대로 쉽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발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생각됩니다.

특히 게임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 해당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반발도 일어날 것이라 통과 가능성이 낮을 것입니다. 그러나 5%를 0.5%나 1%로 낮추어서 마치 양보해준 것 마냥 통과시키는 편법을 쓸 가능성도 있습니다. 애초에 이 정도가 목적이었을 수도 있겠죠.

게임산업 발전에 정부가 해준 것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미미한 편이었을테고 부분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떠한 명목으로든 돈을 가져가려는 시도를 변함없이 하는 모양새입니다. 마치 왕따시키고 괴롭히던 애가 나중에 성공해서 돈을 좀 버니, 이제 같이 좀 나눠먹자고 들러붙는 거죠. 왕따당할 때 잘해줬으면 혹시 모를까 왕따의 가해자측이 그렇게 나오니 속이 더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처음 나왔을 때는 왜 강남이라는 것을 가지고 그런 노래 만드느냐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던 강남구가, 그 노래가 전세계적인 히트를 하자마자 강남스타일을 주제로 한 행사를 개최하네, 관광코스를 만드네 어쩌네 하는 모습하고 대동소이합니다.

사실 처음에 이 법안의 발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또야?" 라는 생각이 첫 반응이었습니다. 하도 여러번 비슷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덧 이런 일에 둔감해진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이제는 지겹기조차 합니다.

다만 한가지, 정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언가 선제적인 대응을 게임계에서, 문화계에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법안 발의야 별 생각없이 그냥 하는 사람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에 대해 입법기관 내에서 충분히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맨날 두드려 맞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이 카운터펀치로 날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두드려 맞지 않도록 업계 차원에서, 협회 차원에서 미리 대응을 해야 할 필요성은 이미 몇년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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