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사전 검열 철폐 '첫발'...등급분류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 이유

기획기사 | 윤홍만 기자 | 댓글: 17개 |



지난 7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게임산업진흥법 12조 1항이 현재 게임업계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발의의 요점이다.

현행법에는 게임물을 유통하려면 최소 3만에서 16만 원 상당의 수수료를 내고 게임물관리위원회 또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부터 사전에 등급분류를 받게 돼 있다. 이에 대해 노웅래 의원은 "비영리 게임은 대부분 흥미·시험 목적으로 청소년이용불가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에도 의무적으로 등급분류를 받게 돼 있다"며, "이 과정에서 창작의욕이 높은 젊은 개발자들의 창작의욕이 꺾인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노웅래 의원의 발의안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정부가 게임의 사회문화적 기능 및 정신적·육체적으로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조사·연구 사업 추진 및 게임의 기능·영향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 영리 목적의 게임물 및 청소년이용불가 게임 유통 시에 등급분류를 받도록 하며, ▲ 게임물이 청소년이용불가로 유통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위원회 직권으로 등급분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정안 소식에 게임업계는 규제에서 진흥으로 정부의 시선이 바뀐 게 아니냐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발의안이 통과됨으로써 게임산업에는 어떤 이득을 보게 될까. 규제와 진흥의 기로에 놓인 지금, 발의안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과 현업 종사자들이 생각하는 발의안 통과 후의 변화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 게임산업진흥법 어떻게 바뀌는가?

지금까지는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르면 게임을 출시하기에 앞서 사전에 등급분류를 해야 했다. 사행성·폭력성·선정성 등을 조장하는 게임을 사전에 막는다는 취지였지만 대학생 및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흥미·시험 목적으로 개발한 게임들도 등급분류를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비영리 게임도 무조건 등급분류를 받아야 했기에 대학생 등 젊은 개발자들의 걸림돌이 됐고, 자연스레 많은 개발자들이 등급분류의 제약이 적은 모바일로 이동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 지금까지는 비영리 게임도 등급분류를 받아야 했다
출처 : 아마추어 게임 제작 커뮤니티 '니오팅'

그렇다면 모바일은 등급분류를 받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모바일 게임 역시 등급분류를 해야 한다. 단,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통해 등급분류를 받는 게 아니라 개발사가 자신들의 게임에 자체적으로 등급을 분류한다. 이후 마켓에 앱이 올라가면 구글, 애플, 원스토어 등에서는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등급분류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혹, 문제가 있다면 개발사에 정정 요청을 해 재심의를 받게 한다.

한편, 모바일이라고 해도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통해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청소년이용불가 요소가 포함된 성인 콘텐츠의 경우에는 심의 수수료 내고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 구글에선 구글 플레이 디벨로퍼 콘솔의 등급 설문지를 작성해 개발사가 자체 등급분류를 한다

이와 같은 기존의 등급분류 방식에 대해 노웅래 의원은 "현행법은 게임의 기능·영향이 게임물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게임이 사행성·폭력성·선정성을 조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현행법이 개발자들의 창작 의욕을 꺾음은 물론이고 게임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즉, 이번 개정안을 통해 노웅래 의원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명백하다. 그간 개발자들의 걸림돌이 돼온 등급분류라는 문턱을 낮추고 모바일에 쏠린 개발자들의 시선을 PC로 돌려 자연스레 게임 생태계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 비영리의 기준은?

노웅래 의원의 발의안에서 언급한 비영리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모바일의 경우 인앱 결제 외에도 광고로 수익을 얻는 사례가 더러 있다. 이러한 광고 수익에 대해 노웅래 의원실에서는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경우도 금전적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영리 목적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해, 순수한 의미에서 흥미·시험 목적의 게임만 비영리 게임으로 국한한다고 명시했다.



▲ 보상형 동영상 광고 역시 영리 목적으로 취급된다

그렇다면 비영리 목적으로 개발한 게임이라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유포해도 되는 걸까? 기자의 이 의문에 대해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는 "현재 발의안이 통과된 상태가 아니라 명확한 답을 내리긴 힘들다. 다만, 비영리 게임이라고 해도 아무런 제약 없이 유포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된다"라며, 이어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게 게임이 영리, 비영리 목적인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이걸 사전에 할지 사후에 할지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영리 목적이지만 테스트 단계에서는 비영리로 서비스하는, 이른바 CBT 게임의 경우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는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게임이기에 현재와 마찬가지로 CBT 단계에서 사전 등급분류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비영리 게임의 조건을 명확히 했다.



■ 현업 개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청강대 정종필 교수 : 그동안 학생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외부에 배포할 수가 없어서 인재양성과 좋은 콘텐츠 개발을 위한 학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발의안이 통과되면 학생작품도 외부에 배포할 수 있어지고, 외부인들의 반응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인디 및 아마추어 콘텐츠 개발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우려할 부분 역시 존재한다. 청소년이용불가 요소가 포함된 아마추어 작품들의 배포다. 이를 위해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자율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민간단체의 사후심의를 통한 제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이어서 이 발의안이 통과되면 국내 게임산업에 새바람이 불어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인디,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들은 등급분류의 제약이 적은 모바일을 통해 게임을 배포하곤 했었다. 하지만 역으로 마켓과 하드웨어의 제약이 뒤따랐다. 이제 등급분류라는 제약이 사라지면 마켓과 하드웨어의 제약이 적은 PC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개발이 활성화될 테고 결과적으로는 뛰어난 개발자들을 양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콘텐츠의 자유도를 제약하고 산업의 기반을 축소시키는 이러한 검열이 언젠가는 완전히 철폐되길 희망한다. 문화란 국가나 기관에서 제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기반 콘텐츠가 늘어나야 그에 힘입어 고급 콘텐츠의 제작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의 경우 게임이라는 콘텐츠 발전을 저해하는 사전 검열 철폐의 첫 발자국을 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산업 육성에도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

'충무공전', '임진록2', '천년의 신화', '군주 온라인', '아틀란티카', '삼국지를 품다' 등 국내 게임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게임들을 개발한 정종필 TA는 현재 청강문화산업대의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스튜디오 HG 한대훈 대표 : 대학생의 졸업작품이나 비영리 게임이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게임들도 지금까지는 심의를 받아왔다는 부분에서 본다면 현행법보다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보자면 생업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영리 목적의 인디, 소규모 개발자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법안이라고 본다.

그리고 사전에 비영리와 청소년이용불가 요소가 포함한 게임에만 개정안이 적용된다고 확실한 기준선을 마련한 만큼 크게 우려할 점은 없어 보인다.

끝으로, 이번 개정안을 통해 모바일만이 아닌 PC와 거치형 콘솔 게임 시장 역시 활성화되길 원한다. 지금까지 인디, 소규모 개발자들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등급분류라는 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등급분류라는 제약이 사라진다면 자연스레 PC로 개발하는 개발자들도 많아질 거고, 꾸준히 얘기가 나오고 있는 스팀의 등급 분류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거로 생각한다.

'마비노기', '블레이드 & 소울'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서 아티스트로 참여해온 한대훈 대표는 현재 1인 게임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개발한 '스매싱 더 배틀'은 오큘러스 리프트 런칭작에 선정되는 등 호평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차기작으로 VR 전용 게임 '오버턴'을 개발 중이다.






버프스튜디오 김도형 대표 : 해외의 경우 PC 기반의 인디 게임씬이 형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PC보다는 모바일 쪽에서 인디 게임씬이 활성화돼 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모바일에서는 자율등급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바일 쪽에서 인디 게임씬이 활성화된 게 나쁘단 건 아니다. 하지만 특정 플랫폼이 아닌 다양한 플랫폼에서 여러 시도가 나와야 좀 더 건강한 게임 생태계가 만들어질 거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법안이 통과된다면 모바일뿐만 아니라 PC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시도가 나올 것 같아 약간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개발자로서 지금의 발의안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비영리라는 부분이 빠져야 하지 않나 싶다. 비영리 게임을 개발한다면 개발자 입장에서도 아무래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게임보다 책임감이나 게임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낮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테고, 게임은 무료라는 인식을 심어서 게임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게임산업을 위해서는 등급분류의 제약이 사라져야 하지 않나 싶다.

국내 인디 게임씬이 모바일을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앞서 말했는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PC로 자율등급이 확대되면 PC를 기반으로 한 인디 게임씬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이번 법안 발의를 환영하며, 더 나아가 비영리뿐만 아니라 영리 목적의 게임들도 언젠가는 자율등급이 되길 바란다.

98년부터 게임 개발에 뛰어든 버프스튜디오의 김도형 대표는 태울, 엔씨소프트, 위메이드 등에서 개발자로 경력을 쌓았다. 이후 2014년에 1인 개발자로 독립, '용사를 진행중'의 성공을 계기로 버프스튜디오를 창업해 현재는 후속작인 '용사는 진행중2' 서비스에 매진하고 있다.




■ 게임산업진흥, 첫 삽은 떠졌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해외의 경우 이미 10년도 전부터 자율 등급분류를 시행하고 있다. 그 덕분일지 몰라도 다양한 플랫폼으로 인디씬이 활성화돼 있고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의 게임이 나오기도 한다. 인디 게임으로 전무후무한 성공을 한 모장의 '마인크래프트' 역시 마르쿠스 페르손이 인디 게임으로 개발한 게 첫 시작이었다. 단순히 등급분류가 있었다고 해서 '마인크래프트'가 안 나오리란 법은 없겠지만, 자유로운 개발 환경이 있었기에 이 게임이 나왔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자유로운 개발 환경이 그토록 중요한 걸까? 국내에서는 이같이 자유로운 개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2011년 11월 발생한 이른바 '주차장 사건'이다. 어느 한 게임 개발자가 게임등급위원회(현재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등급분류를 신청하다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혔던 이 사건은 게임에 대한 현행 법규가 얼마나 어설픈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그 개발자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요 며칠 동안 국내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우리나라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사람의 의욕을 짓밟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 같다"며 당시 상황을 자조적으로 표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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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례를 통해 게임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발의안의 의미는 크다. 게임 개발자의 첫 번째 난관이라고 꼽히는 사전 등급분류의 문턱을 크게 낮추는 발의안이기에 업계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규제로 일관되던 정부의 태도가 진흥으로 바뀐 만큼, 앞으로는 여러 규제를 철폐하고 그 결과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게임 생태계가 조성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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