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하나의 장르를 만들기 위한 끝없는 노력, '진삼국무쌍'이 걸어온 길

기획기사 | 김강욱 기자 | 댓글: 11개 |
나는 '진삼국무쌍'의 팬이다. 정확히 말하면 무쌍류 게임의 팬이다. 지단이 찌르고 베컴이 올리면 호나우두가 헤딩을 하던 시절, '위닝일레븐' 시리즈가 전국에 플스방 열풍을 불러일으키던 때에도 나는 플스방에서 진삼국무쌍을 플레이했다. (물론 위닝을 안 한 건 아니다) 딱히 별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보기에 재미있어 보였고, 해보니 재미있었다. 진삼국무쌍으로 시작된 나의 무쌍 사랑은 개발사인 오메가포스의 다른 게임으로도 번졌다. 또 나왔구나. 이 회사는 어쩜 이렇게 딱 내 취향의 게임을 어쩜 이렇게 많이 내놔서 내 지갑을 위태롭게 만들까 짜증 내면서도 신작이 나오는 족족 구매했다. 주변에서는 "어차피 똑같은 게임을 왜 자꾸 사냐"고 할 때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 무쌍 시리즈는 그 작품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오메가포스는 무쌍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2002년부터 말 그대로 게임을 뿜어내는 스튜디오가 되어있었다. 진삼국무쌍뿐 아니라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국무쌍' 시리즈, 세계관을 혼합한 '무쌍 오로치' 시리즈, 건담으로 플레이하는 '건담무쌍' 시리즈를 비롯해 다른 플랫폼으로 이식한 경우까지 생각하면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낸 타이틀만 50개 이상. 단순 계산으로 3~4개월에 하나씩이다. 그리고 지금도 베르세르크 무쌍이나 무쌍 스타즈 등 신작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수많은 아류작과 정식 시리즈를 통해 당당히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은 무쌍류 게임. 비슷한 플레이 방식 덕분에 "스킨만 다른 게임"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바로 그 '비슷한' 방식을 만들기 위해 개발사인 오메가포스가 굵직한 부분부터 세세한 디테일까지 뼈를 깎으며 시도한 다양한 변화들은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하다. 97년부터 2017년, 무쌍의 원조인 '진삼국무쌍'은 20년의 시간 동안 어떻게 발전했고 어떻게 성장해 왔을까.



▲ 약하지만 인증부터 하고 들어가봅시다.



■ 오메가포스와 진삼국무쌍, 코에이를 수렁에서 꺼내다

진삼국무쌍이 처음 출시되던 2000년은 개발사인 오메가포스(ω-Force)에도, 모회사인 코에이에도 힘든 시기였다. 코에이는 '삼국지' 등 역사 기반 시뮬레이션 게임의 매출이 떨어지고 있었고, 오메가포스 역시 3D 대전액션 게임 '삼국무쌍'을 비롯해 차기작들까지 흥행에 실패하며 스튜디오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있었다. 97년 발매된 삼국무쌍은 게임만 놓고 보자면 크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지금 등장하는 진삼국무쌍 캐릭터들의 개성도 이 당시에 만들어진 것들이니 캐릭터성도 괜찮은 편이었다. 딱 한 가지 실수라면 3D 대전액션 게임의 패러다임을 다시 쓴 '철권3', 그리고 '버추어파이터3'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는 것이다.

2000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게임업계에 한 획을 그었다. 코에이는 창업자 '시부사와 코우'까지 개발 일선에 복귀하며 주 무대를 PC에서 콘솔로 옮기려 시도함과 동시에, 그동안 부진했던 오메가포스에게 삼국무쌍을 다시 만들어 보라며 기회를 준다. 믿음에 보답했던 걸까. 오메가포스는 실패했던 1:1 대전 액션 장르를 과감히 버리고 일 대 다 형태의 새로운 액션 게임을 개발했다. 현재 수많은 '무쌍류' 게임의 원조이자 코에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진삼국무쌍'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첫 선을 보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북미판 진삼국무쌍(Dynasty Warriors) 시리즈와 넘버링이 하나씩 차이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진삼국무쌍은 어쨌든 삼국무쌍의 후속작이었고, 이 때문에 북미판에서는 진삼국무쌍1편은 'Dynasty Warriors 2'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북미판의 넘버링은 일본판의 넘버링보다 숫자가 하나 많다.

시리즈의 원조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진삼국무쌍1은 그렇게까지 수작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게임이 굉장히 어려웠다. 아군 장수는 턱없이 약했고 적군 장수는 굉장히 강했다. 장수의 숫자도 몇 없는 데다가 모션도 동일해 재미가 부족했다. 그나마도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버튼을 누르다 보면 반격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1편은 삼국지라는 걸출한 IP와 이를 잘 다루던 코에이의 힘, 전장에서 직접 전투를 벌인다는 몰입감, 새로운 게임 플레이 방식이 합쳐져 성공을 거두었고, 코에이와 오메가포스는 재기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 3D 대전액션게임 '삼국무쌍'의 캐릭터들




▲ 시부사와 코우는 오메가포스를 믿었고, 그 결과 코에이가 살았다.




▲ 진삼국무쌍1편 스크린샷. 지금 봐도 굉장히 뻣뻣해 보인다.




▲ 예비군 비디오에서 이 비슷한걸 본 기억이 난다.


진삼국무쌍2는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시스템을 정립한 작품이다. 약공격 - 강공격을 조합한 콤보도 이때 등장한 개념이다. 각 무장별로 스토리 모드가 있어 정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었고, 각각의 전투에서 볼 수 있는 깨알 같은 이벤트 대화는 단조로울 수 있는 전투에 흥을 더했다. 장비에 속성이 붙기 시작한 것도, 무쌍(스토리) 모드, 프리 모드, 챌린지 모드라는 형태가 나온 것도, 2인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진 것도 이 작품부터이다.

다만, 2편은 정말 어려웠다. 1편이 시스템적인 한계 때문에 어려운 게임이었다면, 2편은 그냥 어려운 게임이다. 적 병사들이 굉장히 위협적이어서 잡졸에 비명횡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2편의 난이도를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궁병'은 공격과 이동 속도가 느린 장수에게는 악마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렇게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적 병사들 덕분에 후속작에 비해 훨씬 더 긴박한 전투를 즐길 수 있었다. 2편은 여러모로 '진정한' 진삼국무쌍이라 말할 수 있는 작품이고 지금도 2편을 시리즈 중 가장 수작이라 꼽는 사람들도 많다.

오메가포스는 2편에서 잡은 기틀을 바탕으로 확장팩 개념인 ‘맹장전’을 발매한다. 지금에 와서는 맹장전이 코에이의 상술이라며 숱한 비난을 받고 있지만, 발매 당시에는 정사와는 다른 역사를 직접 써나갈 수 있다는 매력 덕분에 나름 선방한 작품이다. 다만 콘솔 기기에서 확장팩을 적용하기 위해 도입된 ‘MIXJOY’라는 시스템은 판매량을 위해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강조한다며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긴 하다.

맹장전에서는 삼국지연의와 무쌍 시리즈에서 가문 덕후, 무능력한 귀족의 대명사로 그려지는 원소가 명족의 힘으로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승리하고 천하통일을 이루는 전개나, 삼국지판 ‘엑소더스’를 감행하는 장각 등 기발한 역사적 상상력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가끔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시나리오로 비웃음을 사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이후 작품에도 모두 적용되어 나름의 마니아층을 형성한다.

그렇다고 진삼국무쌍2 맹장전이 단순히 시나리오만 몇 개 추가한 우려먹기 확장팩은 아니었다. 적어도 2편의 맹장전은 그랬다. 2편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강해 게임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려 노력한 부분이 눈에 보였다고나 할까. 또한, 지금 돌이켜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다크소울’ 급으로 어려웠던 최상급 난이도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어려움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 한 유저들의 도전정신을 불태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전에는 아무리 어렵다 어렵다 해도 어느 정도 파밍이 된 상태라면 큰 무리 없이 어려움 난이도로 스테이지를 공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규 난이도는 어려움이 우습게 보일 정도였다. 궁병이 쏴대는 명중률 100% 대구경 화살과 내 공격 사이 그 찰나의 순간을 노리고 칼을 박아 넣는 클론 무장, 온몸에 “나 화났음” 기운을 두르고 달려오는 고유 무장 덕분에 패드를 집어던지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물론 이 역시 ‘감’을 잡으면 극한의 컨트롤로 적을 쓸어버릴 수 있었기에 난이도 설정 자체는 호평받았다.



▲ 진삼국무쌍2 스크린샷. 화려한 장합의 이미지는 여기부터였다.




▲ 더듬이(?)만 봐도 누군지 알겠는 그 분, 여포 되시겠다.



■ 끊임 없는 변화와 발전, '무쌍류'의 기틀을 다지다.

2편에서 쏠쏠한 재미를 본 코에이와 오메가포스는 진삼국무쌍 3편을 ‘내놓는다.’ 2편 본편을 2002년 8월, 맹장전을 2002년 12월에 발매해놓고 2003년 5월에 진삼국무쌍 3편을 출시한 것이다. 1편과 2편의 간격이 1년 이상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2편과 3편을 동시에 개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물론 3편은 2편과는 여러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것은 역시 무쌍 모드가 장수에서 국가 단위로 변화한 것이다. 전투의 난이도는 2편에 비하면 정말 쉽다. 전작에서는 내 장수가 죽어 전투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3편에서는 호로관 메뚜기나 장판교 앞 장비 같은 (싸우지 말라고 만든) 적을 상대할 때 외에는 거의 죽을 일이 없었다. 덕분에 전작의 악독한 난이도에 익숙해진 유저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았다.

다만 쉬운 난이도를 감안한 탓인지 전략적인 동선을 강조해 전투의 긴장감은 전작과 다르지 않았다. 전투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홀로 돌진해 신나게 무쌍을 찍다 보면 어느새 아군 본진 주변에 적 원군이 대량으로 등장해 총대장이 종잇장처럼 썰려 공략에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에 전장 전체를 신경 쓰며 플레이해야 했다. 이는 전투 그 자체를 즐기는 유저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했지만 전략적인 면을 즐기는 유저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다.

3편부터 맹장전에 이은 두 번째 확장팩인 ‘엠파이어스’ 시리즈가 발매된다. 3편에서 정립된 본편-맹장전-엠파이어스의 흐름은 맹장전이 출시되지 않은 5편을 제외한 이후 작품에는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엠파이어스는 액션 게임인 진삼국무쌍과 전략 게임인 삼국지를 합친 느낌의 확장팩이었다. 자신이 한 세력의 무장, 혹은 군주가 되어 정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다른 지역을 정복해 삼국 통일을 노리는 식이다. 이는 게임 자체가 ‘삼국지’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기에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엠파이어스에서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와 같은 치밀하고 세세한 전략을 세울 수는 없어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기는 하지만, 삼국지 원작을 좋아하면서도 머리 아픈 것은 싫어하는 유저들에게 크게 어필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다.

3편에서는 또 하나 새로운 도전이 이루어진다. 바로 PC로의 이식이다. ‘진삼국무쌍3 하이퍼’라는 이름의 PC 버전은 국내에도 정식 한글화로 발매되어 진삼국무쌍 시리즈를 3편으로 접했다는 유저들도 적지 않다. 다만 발매 당시의 하이퍼는 최악의 최적화로 악명이 자자했다. 이후 PC 버전이 나온, 플레이스테이션3 기반의 5편이 무리 없이 돌아가는 PC에서도 3편이 끊길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물론 이제는 PC 사양이 전체적으로 높아져 웬만한 PC에서는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진삼국무쌍4는 그래픽적인 발전 외에 시스템적인 부분은 2-3편과 거의 유사하다. 아무래도 PS2 말기에 나온 작품인 만큼 기기의 역량을 최대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시스템적인 측면도 이전에 나왔던 6개 작품의 경험을 토대로 취사선택 한 것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지만 있을 건 다 있다’라고 평할 수 있다. 다만 5년 동안 같은 시리즈가 7개째 발매되어 사골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4편 역시 맹장전 – 엠파이어스 확장팩 출시의 흐름을 따라간다. 또한, 4편은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XBOX와 PC로도 이식된다. 아쉽게도 이 시리즈는 국내에 정식 발매되지 않았고, 당연히 공식 한글판도 없다.



▲ 3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확장팩 엠파이어스




▲ 3편 스크린샷. 당시에는 참 좋았는데, 지금 보면 참 그렇다.




▲ 그래픽 측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룬 4편






진삼국무쌍5는 여러모로 비운의 작품이다. 일단 기반 기기였던 플레이스테이션3가 엄청나게 고전하면서 게임의 판매량도 당연히 최악을 기록했다.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도 4편까지 있었던 약-강 공격 조합 방식에서 약공격만으로 게이지를 쌓는 ‘연무’ 시스템을 도입해 전작의 팬에게 어마어마한 혹평을 들었다.

물론 전작에서도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가기 전까지는 사용할 수 있는 콤보가 적어 전투가 답답한 구간이 있긴 했지만, 연무 시스템 하에서는 그 템포가 더욱 느려져 지루할 정도였다. 타격감도 최악이어서 몇몇 무장들은 전투가 한창일 때도 무기를 허공에 휘두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장수의 레벨을 올려 연무 게이지 ∞를 찍기 전에는 굉장히 답답하다. 기껏 채운 게이지는 전투를 조금만 쉬면 쭉쭉 떨어져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의 적을 찾아다니게 만들었다. 게다가 전투 방식이 완전히 바뀐데 반해 공격 모션이 완전히 동일한 장수들이 많았고, 이는 여러 무장으로 같은 스테이지를 공략해야 하는 무쌍의 특성상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5편이 연무를 제외하면 그때까지 나왔던 모든 작품들 중 시스템적으로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스테이지 공략은 공성-수성의 개념을 잘 살렸고 거점을 점령해 회복 아이템을 수급하는 방식을 도입해 단순히 적만 죽이는 게임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나온 공성-수성의 개념들은 이후 작품에도 변형된 형태로 도입되어 무쌍을 조금 더 전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기대와 다르게 진삼국무쌍 5는 맹장전이 나오지 않았다. 코에이는 맹장전을 발매하는 대신 ‘진삼국무쌍5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플레이스테이션2용 타이틀을 낸다. PS3의 부진 때문에 판매량이 저조하다는 판단에서였다. PS2용 스페셜의 발매는 PS2 유저들의 큰 지지를 받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진삼국무쌍 5는 PS3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PS3의 성능은 PS2의 그것을 압도했으며, 모든 면에서 PS3의 성능을 십분 활용했다. 신세대기에 맞춰 제작된 작품을 구세대기로 이식하다 보니 스페셜은 본편에 비해 필연적으로 다운그레이드 될 수밖에 없었다. 연산 속도의 문제로 적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는 고쳐지지 못했고, PS3용으로 유려하게 뽑힌 그래픽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응당 PS3의 맹장전으로 나왔어야 할 각종 개선사항들이 PS2용 스페셜에만 적용됐다는 것이다. 결국 5편은 PS3 유저와 PS2 유저 모두를 100% 만족시키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 되었다.

내외적인 문제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5편이지만, 이 작품으로 무쌍을 접한 사람들은 좋은 평가를 준다. 다소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전투는 연무 등급을 올리다 보면 어느 정도는 해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초반의 루즈함을 견디고 후반을 맛본 사람들은 5편의 진짜 재미에 빠져들었다. 전작의 팬 중에도 5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그만큼 이 작품이 시스템적으로 깔끔하다는 방증이다.



▲ 기기의 성능이 좋아져서 그런지, 캐릭터가 사람다워졌다.




▲ 솔직히 5편의 관우는 시리즈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빗자루 머리라니...



■ 실패한 진삼국무쌍, 그 경험에서 답을 찾다.

2011년. 확장팩이 아닌 정식판으로는 약 3년 만에 새로운 진삼국무쌍이 출시된다. 진삼국무쌍5의 참패 이후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덕일까. 다시 3편의 전투 방식으로 회귀한 진삼국무쌍6는 타 무쌍 작품에서 호평받은 시스템을 선택적으로 적용해 게임의 완성도를 높였다. 5편에서 지적받았던 연무 시스템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약-강공격 조합 방식을 적용한 것은 물론, 장수 하나하나에 집중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며 향상된 연출력을 보여줬다.

6편에서는 최초로 스토리 모드에 '진'나라가 추가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삼국지라는 이름으로 위, 촉, 오 3국에만 집중했지만 실제로 천하를 통일한 것은 진나라였으니 말이다. 진나라가 추가되며 사마의는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이동했고, 삼국시대 후기를 다룬 새로운 이야기와 사마사, 사마소 등 신 무장이 등장했다.

6편의 가장 큰 변화점은 역시 무기 교체 시스템이다. PSP로 출시된 '진삼국무쌍 MULTIRAID'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이 시스템에서는 장수마다 사용하는 무기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준비 화면에서 미리 전투에 사용할 2종의 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각 무장마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인 '천품 무기'가 있어 이 종류를 착용할 시 보너스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 주로 천품무기 하나와 범용성이 높은 무기 하나를 전투에 가져갔다. 무기 교체 시스템이 생기며 공격 모션이 장수가 아니라 무기에 따라 변화했기 때문에 선택에 따라 왕원희가 장료의 쌍월을 들고 휘두르는 모습이나 관우가 초선의 채찍을 들고 우아하게 회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6편에서는 '진'을 추가하며 정사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데 주력했다. 덕분에 실제로 멸망한 촉나라나 오나라의 경우 너무 갑작스럽게 나라가 망해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전까지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기발한 시나리오를 즐기기는 다소 어려워졌지만, 무장 하나하나의 컷신을 즐기면서 정사를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무기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되면서 전투의 난이도는 상당히 내려갔다. 물론 무쌍난무 사용 시에는 고유 무기로 사용하는 이펙트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주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됐기에 사거리가 넓은 사슬낫이나 그 자체로 여포의 방천화극을 들려주면 딱히 아쉬울게 없이 플레이할 수 있었다. 적병의 공격성이 낮아져 생각할 거리가 많이 준 것도 난이도 하락의 큰 원인이었다. 2편에서 대구경 화살을 펑펑 쏴대던 궁병은 없고, 이제는 주변을 둘러싸기'만' 한 허수아비 무리를 베는 듯한 밋밋함에 전작의 긴박함을 원하는 유저들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난이도 조절은 5편에서 무쌍의 팬이 많이 줄어들었기에 코어 유저보다는 라이트 유저를 노린 점이라 할 수 있다.



▲ 등장 무쌍 무장의 숫자부터 압도적이었던 6편


2013년 초 발매된 진삼국무쌍7은 전작에 적용되었던 시스템 중 호평받았던 것들만 모아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7편의 가장 큰 성과는 역시 '스텔스 현상'의 해결이다. 스텔스 현상은 연산의 문제로 적병이 화면에 표시되지 않는 상황으로, 많은 수의 적병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진삼국무쌍 시리즈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의 시리즈에서는 적을 죽인 자리에 적이 갑자기 등장한다거나, 무쌍난무로 주변의 적을 쓸어버리자마자 제자리에 적병이 리스폰 되는 황당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7편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도입, 스텔스 현상을 거의 대부분 해소해 쾌적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전투는 약공격으로 약-강 콤보를 발동시킬 수 있는 서포트 기능을 도입, 마치 5편과 6편을 동시에 즐기는 느낌으로 개선되었다. 서포트 기능은 원하지 않는다면 끌 수도 있다. 어려운 난이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동조작을 해야 하지만, 이 기능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단지 약공격을 연타하는 것 만으로도 화려한 콤보를 볼 수 있게 만들어 전투의 지루함이 덜해졌다. 또한, 6편의 무기 교체 시스템에 천, 지, 인의 상성을 넣어 상성에 맞춰 무기를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적 무장과 상성이 좋지 않은 무기를 쓸 경우 공격에 성공해도 적 무장이 경직되지 않아 전투가 상당히 불리하기에 적극적으로 무기를 교체해가며 싸워야만 했다.

스토리 모드에서도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IF 루트가 열려 정사와는 다른 이야기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일례로 촉의 경우 정해진 조건을 모두 만족하면 번성 전투에서 서서와 마초, 방통(조건을 달성하면 죽지 않는다)이 등장해 관우의 죽음을 막을 수 있고, 이후의 이야기는 당연히 촉의 천하 통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각 나라의 팬들에게는 새로운 만족감을, 그렇지 않은 유저들에게도 선행 전투에서의 조건을 달성하는 목표를 주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전투에 긴장감을 더했다.

IF 루트 덕분에 시리즈의 볼륨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위, 촉, 오, 진, 타, 여포(맹장전 추가)의 6국 양쪽 루트의 스토리만 모두 클리어한다 해도 수십 시간은 즐길 수 있다. 맹장전에서는 여포 시나리오 추가 외에도 각 국가의 외전들이 등장, 더욱 풍부한 이야기가 마련되었다. 진삼국무쌍 7 맹장전은 그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플레이스테이션4 용 합본이 출시되기도 한다. 과거 5편이 눈물을 머금고 구세대기로 이식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정말 기념할만한 성과이다.



▲ 진삼국무쌍7 진나라 벽지




▲ 관은병만 믿고 가면 된다.




▲ 많은 유저들의 가슴에 불을 붙인 여령기 의상



■ '무쌍류'는 아직 진화 중... 새로운 시도가 기대되는 시기

2000년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했던 작품인 '진삼국무쌍'은 긴 시간 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게임을 점차 완성시켜왔다. 수많은 아류작과 콜라보를 통해 '무쌍류' 게임에 맞는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진삼국무쌍은 무쌍류 게임의 원조이자 선구자로 긴 시간 동안 자리매김하고 있다. 위에서는 소개하지 못했지만 진삼국무쌍의 피를 물려받은 작품들은 이외에도 많다. PSP 버전으로 나온 멀티 레이드 시리즈, 닌텐도 DS용으로 나온 DS파이터즈도 있고, 온라인으로도, 모바일 버전으로도 여러 작품이 출시된 바 있다.

모바일에서는 진삼국무쌍 SLASH와 BLAST, 그리고 2016년 중국 퍼펙트월드에서 출시한 진삼국무쌍 Mobile이 있으나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SLASH와 BLAST는 코에이에서 직접 손을 댔으나 기기 성능의 한계로 원작의 재미를 따라가지 못해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나마 앞선 두 작품은 무쌍을 모바일에서 살리기 위한 고민이 있었지만, 퍼펙트월드판 진삼국무쌍 모바일은 본가에서도 포기한 3D 대전액션 게임을 꺼내 참패했다. '무쌍'이 왜 '무쌍'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IP만 보고 달려든 게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할 수 있다.

한 차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코에이와 오메가포스는 장르로써 거의 완성형이라 여겨지는 '무쌍'에 오히려 더욱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작년 말 처음으로 발표된 진삼국무쌍8은 시리즈 최초로 '오픈월드 방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개발 단계부터 PS4의 압도적인 성능을 바닥 끝까지 박박 긁어서 사용했다는 진담 같은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오픈월드로 만들면서 무쌍 본연의 재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그보다는 오메가포스가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오픈월드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하는 유저들이 더 많다.

모바일에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작년 말 CBT를 진행하며 호평받았던 진삼국무쌍: 언리쉬드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에이테크모의 '무쌍'에의 고집과 대만 최고의 개발사인 XPEC, 한국의 넥슨까지 3국 3사가 합작해 모바일에서 무쌍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을 준비했다. 캐릭터야 진삼국무쌍 7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왔으니 당연히 최고 수준이고, 걱정했던 그래픽 문제나 타격감, 조작 등도 CBT를 통해 합격점을 받았다. 과연 무쌍이 그동안 정복하지 못했던 '모바일'이라는 시장에 당당히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작품이다.

진삼국무쌍은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다. 오랜 기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쌓인 경험이 만들어낸 결정체이다. 장비의 옵션 하나, 간단한 스킬 하나, 그리고 무심코 누른 버튼에서 나오는 공격 모션 하나하나가 모두 성공과 실패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제 진삼국무쌍은 새롭게 도전하려 한다. 무쌍류 게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려 한다. 그 앞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무쌍이 언제나 그래왔듯 한 번의 실패는 또 다른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진삼국무쌍의 새로운 도전은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