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진짜' 게이머들의 축제, PAX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기획기사 | 양영석 기자 | 댓글: 6개 |



지난 4월 5일부터 8일까지, 4일 동안 미국 보스턴에서 'PAX East 2018' 행사가 열렸다. 지금까지 많은 게임쇼들을 다녀왔기에, PAX는 어떨까 하고 많이 기대를 했었다. 이전부터 다녀온 기자들의 말로는 진짜 재미있다고, 진국이라고 소감을 듣긴 했다.

확실히 직접 현장을 체험해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타 게임쇼들은 아무래도 대형 게임사들의 부스에 방문해서 신작을 체험해보고, 부스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소식과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그러나 PAX는 시작을 앞두고도 그 흔한 게임사들의 '컨퍼런스'나 브리핑도 없을 정도였다.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시연되는 게임들은 분명 과거 다른 게임쇼나 행사에서 해본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것도 꽤나 오래된 게임들도 많았다. 혹은, PTR 등 테스트 서버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AX는 결코 심심하지 않은, 흥미가 떨어지는 행사가 아니었다. PAX는, 진정 '게이머'들이 만들어나가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게이머' 중심의 게임쇼는 이런 것이다
PAX, 다른 게임쇼와는 무엇이 다른가?



전시장 내부는 다른 게임쇼와 다른 느낌이 별로 없다.

PAX의 겉모습은, 사실 다른 게임쇼들과 큰 차이는 없다. 전시관에는 각 게임사들의 부스가 있고, 시연대도 크게 준비되어 있다. 시간마다 각종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저곳 '굿즈샵'이 게임사들의 부스들과 함께 있다는 정도가 다를 뿐. e스포츠를 위한 무대도 있고, 각종 메인이벤트를 위한 전용 공간 '홀'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사진으로 보면, 정말로 다른 게임쇼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PAX의 진수는 바로 다른 부분에 있다. 게임사들의 부스에 방문을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선 시연을 하는 게이머들을 케어하는 부스 도우미가 극히 적다. 그리고 대기열은 매우 짧다. 시연대는 커보이지만 막상 시연되는 게임은 많지 않고 시연 기기도 많은 수준이 아니라는걸 알게 된다.

재밌는 점은 이런 상황에서도 게이머들은 별로 불만이 없다는 거다. 시연대의 회전율은 매우 빠르고, 굳이 도우미들이 나서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질서 정연하게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게임을 알고 있으면 이것저것 묻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와 교류가 이어진다. 이렇게 방문객들은 '놀 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넓은 공간으로 마련된 PAX의 '플레이존'

PAX주최측은 방문객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주고 있다. 특히나 독특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랜파티' 존이었다. 게이머들은 자신의 PC나 노트북, PS와 디스플레이를 들고 와서 자리에 설치를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게임을 하고 논다. 친구들하고 같이 놀 수도 있고, 모르지만 같은 게임을 한다면 바로 합석을 하곤 했다.

굳이 랜파티존에 가지 않더라도, 플레이존에서는 PC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플레이존을 쉽게 말하면, 팍스 기간 내에 운영되는 무료 PC방이라고 보면 된다. 가서, 등록하고, 게임하면 된다. 플레이존과 랜파티존은, PAX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유저들이 방문하고 머물던 곳이었다.

거대한 보드게임 존은 여러가지 형태로 운영됐다. 직접 게임을 가져와서 자리에 앉아 플레이하거나, 전용으로 예약을 해서 즐기는 게임도 있을 정도. 추가로, 특정 시간마다 대회 참가자를 등록하고 이후에 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룰을 잘 몰라도 직접 도우미들이 나서서 설명하고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이는 지스타나 다른 게임쇼보다는, '보드게임' 관련 페스티벌에서 많이 보던 느낌이다.

메인, 알바트로스, 콘도르 등등 '극장'라고 불린 공간은 컨퍼런스와 이벤트로 가득찼다. 그런데, 이 컨퍼런스는 우리가 알던 교육 컨퍼런스와는 매우 다르다. 개발 경험 공유도 아니고, 신 정보 공개도 아니다. '패널 토론'형식이 대부분이었고, 개발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팬'들을 상대로 이야기한다. 간혹 '팬'들이 직접 패널 토론을 만든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팍스는 게이머, 개발자, 팬 가릴 것 없이 그냥 모두 같이 섞여서 '놀기' 위한 콘텐츠가 가득했다. 팍스는 정말, '모여서 논다'라는 목적에 충실했던 게임 페스티벌이었다.



무료로 보드 게임도 빌려준다. 반납만 하면 된다.



놀자판인 만큼, 유쾌한 사람들도 정말 많다. 분위기 자체가 매우 유쾌하다.


놀기 좋은, 게이머들이 만들어가는 PAX
'전시회'형 게임쇼와는 지향점이 다른 행사, PAX

이번에 처음으로 PAX를 다녀오면서, 그리고 경험해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와 문화 자체가 너무 부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게임쇼임에도 설레고 들뜨는 게 없다는 느낌이랄까. 매번 게임쇼마다 새로운 정보와 빌드, 그리고 새로운 게임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있었는데, PAX는 그런 게 없었다. 정보를 기대했다면 오히려 실망만 하고 온 행사가 될 수도. 이런 현상은 바로 PAX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PAX는 자신들을 소개할 때, 'Convention', 혹은 'Exhibition'이라는 뜻의 단어를 쓰지 않는다. 오로지 '쇼'와 '이벤트'로만 자신들을 소개한다. 컨벤션정도는 어느 정도 이해해줄 만하기도 한데, 절대로 쓰지 않는다. 이는 곧 '전시'에 목적을 두지 않았음을 확실히 한 것이다. PAX는 일종의 페스티벌이자 이벤트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는 셈이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런 PAX의 주인공은 게임사가 아니라 바로 '게이머'다.

이게 바로 다른 게임쇼들과의 차이이며, 게임쇼들과 달라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E3, 게임스컴, 도쿄게임쇼, 지스타, 차이나조이 모두 '전시회'라는 이름을 갖는다. 당연히 유저들도 많이 참석하지만, 중심은 '게임사'가 된다. 시연, 체험, 이벤트 등등 주최는 게임사가 하고 게임사 위주로 진행이 된다. 물론 그만큼 신규 정보나 한정된 정보가 많이 공개되기도 한다.



아마, 이번 PAX에선 이분이 제일 큰 소식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바로 여기서 흥행의 조건이 달라지게 된다. 전시회 성향의 게임쇼는 게임사가 어떤 정보를 공개하고 타이틀을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서 방문객 수가 차이가 날 수 있다. 반면에, PAX와 같이 '이벤트'성 게임쇼의 경우는 오로지 유저 참여에 달려있으므로 주최측과 참여 게임사는 '판'을 잘 벌려주고 참여를 더 많이 독려해야 한다.

그러나 팍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범주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그저 '판'을 깔아줄 뿐이고, 방문객들이 즐길만한 여러 이벤트와 콘텐츠를 준비한다. 유저들을 위한 것이기에 유저가 오지 않으면 애초에 성립조차 안된다. 팍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유저' 중심의 행사다.

"어느 쪽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성향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에, 즐기는 유저의 성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아직까지는 '전시회'의 성향이 짙은 게임쇼들이 훨씬 많았고 이게 게이머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새로운 정보와 좋아하는 개발사의 또 다른 신작, 그리고 쇼킹할만한 임팩트와 파장을 원한다면 전시회성 행사를 기대하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놀고 싶고, 이런 '놀자'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PAX'만한 행사가 없다. 그냥 둘은 그렇게 노선이 다르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옷을 입고, '논다'

PAX의 장점, '놀 거리'가 있다는 것.
볼 게 없어도 '놀 게' 있으면 참가 욕구는 성립된다.

노선이 다르다 하더라도 배워올 것은 있다. 일단 전시회 성향의 게임쇼들은 게임사에 많은 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주최측 입장에서는 한결 편안할 수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이거도 문제가 있다. 아래의 사진을 보자.



분명, 다들 한 번쯤은 봤을 사진일거다(출처 : ringosha.jp)

특별한 정보가 별로 없거나 게임사의 참여가 부실하면, 게임쇼의 흥행 근간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반대로 좋은 정보와 게임이 많을수록 행사의 관심도가 매우 높아진다. 어쩔 수 없이 전시형 게임쇼는 참여사들의 의존도가 심히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고, 이는 주최측에서 컨트롤 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 '유저 중심'의 이벤트, 행사가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자리를 잡게 되면 최소한의 흥행을 보증 하나의 수단이자 장치가 마련되는 셈이다.

방문객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서 '놀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게임쇼에 참석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반대로 유저 행사만이 있어서 조금 지루해질 수 있는 이벤트도, 게임사들의 적절한 정보 공개와 한정 이벤트 등을 마련하면 '방문 목적'을 강화시킬 수 있다.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구조란 뜻이다.




혹자들은, 지스타의 미래를 'PAX'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PAX와 지스타를 모두 경험해본 입장에서는, PAX를 지스타의 롤모델로 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스타 역시 전시회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게임사의 흥행작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부분이 있다.

매년 이래저래 최다 방문객을 갱신하고는 있지만, 지스타도 항상 불안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모바일' 중심으로 시장이 개편되면서, 출전작들도 모바일 게임들이 많아졌다. 모바일 게임은 특히나 게임쇼에서만 해볼 수 있다는 메리트는 크게 떨어진다. 아무래도 PC나 콘솔, VR 등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유저들의 '기대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기대감이 부족하다는 것은, 곧 게임쇼에 방문할 목적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지스타만의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게임쇼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게임사에 의존하는 행사를 해왔기에, 몇몇 행사들은 이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애초에 '비즈니스' 성향이 강한 E3를 제외하고, 게임스컴이나 TGS의 경우는 유저 참여 행사나 유저 주도 행사를 마련하면서 게임사 쪽에 몰려있는 무게를 유저 쪽으로 조금씩 덜어내고 있다. 게임사들의 부스에서도 유저들이 직접 참여하고 놀 수 있는 이벤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성우의 방문이라던가, 개발자와의 대담이라던가.

지스타는 어떻게 보면 이와는 다른, 반대의 노선을 가고 있었다. 과거 지스타에서도 제법 크게 마련됐던 보드게임존은 해가 갈수록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있고, 유저들이 다른 게임들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기는 인디 게임존 역시 매년 규모와 형태가 아쉽다. 반면에 대형 게임사들의 부스는 날이 갈수록 거대해지고 발전하고 있다.

현재 '지스타'가 어떤 게임쇼를 표방할 것인지 확실치는 않다. 비즈니스 행사로서 무게를 더하고 싶으면, 지금의 방침도 결코 잘못됐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저렴한 입장료와 각종 혜택, 접근성과 편의성을 강화하는 등 방문자를 늘리려는 시도로 봐서는 분명 '유저 친화적'인 방향도 고려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



PAX의 보드게임존, 사람이 거의없는 1일차 오픈 30분 타임에 찍은 사진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유저들을 위한, 유저들이 놀 수 있을만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다른 게임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유저 코스프레존과 이를 배려한 공간 자체는 아예 없고, 방문객들이 꼭 방문해보는 전용 굿즈샵도 없다. 다만 지난해 식사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푸드트럭을 운영한 것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개인적으로도, 유저로서 참여했던 다른 게임쇼들은 이것저것 게임사들이 주는 여러 가지 선물과 함께 굿즈, 그리고 코스튬 플레이어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스타는? 내 기억은 게임사들이 주는 커다란 쇼핑백과, 그 안에 뭔가 바리바리 싸 들고 나온 게 대부분이었다. 보드게임을 즐기면서 놀았던 게 언제쯤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유저로서는 그저 게임사들의 부스를 한 번 둘러보고 나오면 더 이상 갈 이유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불과 몇 년전까지는, 거의 그랬다.

지스타가 진정 '유저'들을 생각하는 행사이길 바란다면, 이제는 조금씩 '변화'를 생각해볼 때라고 생각한다. 유저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놀 거리를 던져줘야 한다. 물론 지난해부터 유저 참여 행사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이 고무적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유저 참여 행사나 이벤트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게임사들의 발표가 다소 실망스럽더라도, 지스타에 가면 재미있게 놀 수 있어서 다음에도 또 오고 싶은 '계기'를 마련해주는것도 좋지 않을까? 막말로, 볼 게 없어도 '놀 게' 있으면 갈만한 이유가 생기는 거니까.

이 고민은, 분명히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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