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소설과 게임의 합작, 아키에이지 수천 년의 역사를 만들다

기획기사 | 김수진 기자 | 댓글: 28개 |



게임과 소설이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일단 정말 당연하게도 세계관이나 퀘스트가 탄탄해질 것이다. 그리고? 스토리를 읽어가는 재미는 기본일 테고, 게임 속에서 일명 '떡밥'을 찾아내는 짜릿함도 느낄 수 있을 테고, 항상 멋진 스토리를 찾아 헤매는 매니아들의 마음도 잡을 수 있다.

전민희 작가가 참여한 아키에이지는 어땠냐고? 놀라지 마라. 무려 수천 년이 넘어가는, 진짜 웬만한 역사서 뺨치는, 아니 그냥 역사서 그 자체인 세계관이 태어났다. 오버가 아니다. 실제로 공식 홈페이지 연대표에 역사 공부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는 댓글이 달렸다.

더 놀라운 점은, 휠을 내리고 내려야 끝이 나는 그 연대표가 작가가 생각했던 설정을 완전히 압축한 분량이라는 것이다. 원작 소설 '전나무와 매'와 '상속자들'의 내용이, 무려 책 3권 분량에 달하는 그 내용이 연대표 상에서 보면 '찬란한 세기'의 삼 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니까. 아니 말이 삼 분의 일이지, 문장으로 보면 '델피나드가 세계의 수도로 불리게 된다. 12명의 영웅들이 정원을 찾아...' 딱 이 정도 분량이다.

정리해보자. 아키에이지의 세계관은 압축시킨 연대표가 필요할 만큼 탄탄하고 길다. 거의 창조 신화 급부터 실제 게임과 연결되는 '근현대'까지 수천 년에 이르는 역사가 만들어져 있다. 심지어 이 역사와 설정은 꼼꼼하고 세밀하기로 유명한 전민희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녀는 블로그를 통해 '아키에이지를 개발하는 6년 동안 다른 작업을 하기 어려울 만큼' 참여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아키에이지와 관련된 일을 하는 중임을 밝힌 적이 있다. 즉, 우리는 아직 그 수많은 설정과 이야기들을 볼 기회가 남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많은 정보가 풀리지 않은 '아키에이지 역사'의 초반부터 빛과 장미의 시대까지, 즉 고대사 부분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냥 풀어내면 아무래도 역사다 보니 길어질 것을 고려해, 각 연대표를 기준으로 포인트를 잡아 일명 '요약본'으로 만들었다. 좀 더 자세한, 세밀한 이야기는 '전나무와 매', '상속자들', 공식 홈페이지의 '루키우스의 기록', 각 종족의 이야기, 그리고 게임 속 다양한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빛과 장미의 시대 이전, 아키에이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절로 거슬러 가보자. 원래 이런 시기가 가장 흥미로운 법이다. 어디까지가 진짜 역사고 어디까지가 신화적인 이야기인지 알 수 없기 때문. 무튼, '아키에이지'라고 불리고 있는 이 세계가 태동한 시기는 게임 기준 수 천 년 전으로 추측된다. 정확한 기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최초의 신인 어머니 신 시올의 딸 '마법사 다나'의 나이를 추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마법사 다나는 새벽 시대에 탄생해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려 왔었다. 새벽 시대란 바로 그녀의 어머니가 정원을 만들고, 전 세계를 창조하고 사라진 시기다. 그 이후로 수천 년을 살아온 그녀는 현재 이니스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와 결혼했던 페레단이 미로의 시험을 통과해 초승달 왕좌의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페레단이 피 묻은 손에게 암살당하면서 그녀가 직접 초승달 왕좌를 다스리게 된다.

다시 멀고 먼 과거로 돌아가 보자. 이 고대 역사는 크게 새벽 시대, 가려진 시대, 육식 시대, 위대한 강의 시대, 얼굴 없는 시대, 그리고 왕자들의 시대로 나뉜다. 어렵다고?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가 시작된 새벽, 기록조차 없어 가려져 있는 시간, 전쟁과 학살만이 자행되었던 암흑기, 강을 통해 교역이 이루어진 문명의 태동기, 거대한 재해로 인해 시대를 대표할 만한 '얼굴'이 하나도 남지 않았고, 단 한 명의 '왕'은 없었으나 찬란했던 '왕자'들이 있었던 나날까지, 각 시대의 이름은 그 시대의 특징을 정확하게 짚어낸 명칭이다.

그렇다면 이 옛날 옛적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원래 역사란 핵심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우선 첫 번째, 아키에이지 세계의 배경이 되는 행성의 이름은 '히르노르'다. 원대륙이든, 누이아 대륙이든, 하리하라 대륙이든 모두 히르노르 행성에 있다. 반대로 전설 속의 종족인 용족이 살던 곳은 '미실론' 행성이다. 용족들은 처음에는 미실론 행성에서 살아 남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는 내전으로 황폐해진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히르노르로 이주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처음에는 부화장, 이후에는 피난처로 히르노르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이프나와 나차쉬, 용족, 누온은 가려진 시대에 활동했으나 이후 모두 사라졌다. 뱀을 닮은 나차쉬는 이프나에 의해 다른 차원으로 봉인, 날개가 돋았던 이프나는 엘프에게 문화를 전수하고 소멸, 검은 피부의 누온은 용 미사곤을 죽이고 용족의 지옥에 갇히며, 용족은 부화하지 않는 자신들의 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숨어버린다. 그리고 용족과 누온이 활동한 곳은 원대륙이 아닌 누이아 대륙이다. 연대표에 '원대륙의 역사'라고 되어 있어서 당연히 원대륙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니다. 누이아다.





세 번째, 현재 게임에 존재하는 종족 중 일부가 가려진 시대부터 부흥하기 시작한다. 엘프의 고향인 에노아는 이프나가 사라진 직후인 가려진 시대 말기에 생겨났고, 육식 시대의 오스트 왕국은 인류의 첫 문명 국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위대한 강의 시대는 인류가 원대륙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네미강의 강줄기를 활용한 무역을 시작하면서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한 시기를 일컫는다. 또한 이 시기, 현재는 리턴드라 불리는 히라마 족의 왕국 히라마칸드가 탄생한다.

네 번째, 얼굴 없는 시대에는 북쪽의 프라나, 남쪽의 잔다니온, 동쪽의 태락, 중심의 싱이 원대륙을 지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 중 고대 왕국 싱에는 '신'을 만들어 내는 나무가 존재했다. 이 나무는 꾸준히 신을 만들어냈는데, 자신이 마지막 신이 되고자 했던 고대의 왕 '비탈리스'가 이를 베어버린다. 그러자 거대한 재해가 닥쳐 싱의 문명을 모두 묻어버리고, 싱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남지 않는다. 추가로, 고대 왕국 싱이 사라진 자리에는 델피나드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왕자들의 시대에 드디어 소설의 배경인 대륙의 수도, 도시국가 델피나드가 등장한다. 원대륙 북부의 북 메어, 남부의 에페리움, 그리고 드워프의 페란까지 3대 왕국이 성립한 것도 이 시기다. 당시 페레들은 하리하라 대륙에 살고 있었으나, 대지진과 화재로 인해 삶의 터전이 사라지자 교역을 했던 일부 상인들과 용병 계약을 맺고 원대륙으로 이주해 온다. 페레들은 기본적으로 유목민족이었으며, 그 중 가장 위대한 자를 '마라'라고 불렀다.

여기까지가 연대표 상으로는 가장 윗부분, 왕자들의 시대까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중 새벽 시대와 가려진 시대는 신화적인 부분이 섞여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건국 신화, 창조 신화는 있지 않나. 물론, 이 시대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게임 속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면 그 옛날 '미실론'이라는 행성에서 넘어왔던 존재인 거대한 용 '미사곤'은 누온에 의해 죽었는데, 그 뼈가 뼈의 땅 전체에 걸쳐 남아있다. 우리가 보면서 그냥 지나쳤던 그 삐죽한 뼈들이 바로 역사 그 자체였던 거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미실론에서 넘어왔던 용족 중 유일한 불의 가문이었던 '불을 움켜쥔 오스페로스'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고 힘에 대한 열망만이 가득한 '붉은 용'이 되어 유저들의 레이드 대상이 되었다. 또 다른 레이드 대상 레비아탄 역시 마찬가지로 용족과 관련되어 있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루키우스의 기록 중 '조각난 연대기'부분에서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음은 도서관의 지식, 그리고 신들의 권능을 통해 빛났던 시대, 바로 빛과 장미의 시대다. 아키에이지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시대이지만 이에 반해 알려진 부분이 가장 적은 기간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 공개된 부분이 인류 문명이 가장 발달했다고 알려진 '찬란한 세기'의 일부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대기를 바탕으로 이 시대, 아키에이지의 세계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시간의 중요 포인트를 짚어봤다.

찬란한 세기, 진과 키프로사, 루키우스 등 최초의 원정대 12인은 델피나드에서 만나 어머니 신 시올이 만들어낸 정원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5명이 신격을 입어 신이 된다. 그 과정에서 오키드나는 정원의 문지기가 되어 갇히고, 이전의 문지기였던 페어리들은 누이아 대륙으로 이주한다. 아키에이지 세계에서 신이란 독특하게도 '의상'과 같은 존재인데, 신격을 입은 개인은 점점 '신'이 되어가면서 인격을 잃게 된다.

이 '최초의 원정대 12인'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미공개 상태이며, 심지어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확인되는 내용 외 아예 정보가 없는 인물도 있다. 이들에 관한 내용은 향후 소설을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원정대는 에페리움에서 온 진과 멜리사라, 북 메어 근처의 데이어 지역에서 온 키프로사와 오키드나, 델피나드 시민이던 에안나, 델피나드에 정착한 루키우스, 대륙을 방랑하는 미삭 부족의 나이마, 페레인 타양, 엘프 아란제브와 에노아, 하리마 족인 이녹, 마지막으로 드워프인 올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발간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인 진과 키프로사를 포함해 오키드나, 루키우스, 타양, 에안나, 멜리사라가 있으며 에안나와 멜리사라의 부분은 아쉽게도 아직까진 매우 적은 편이다. 첫 소설인 전나무와 매에서는 진과 키프로사, 그리고 오키드나가 델피나드로 가게 된 이유, 즉 과거를 다루고 있으며, 상속자들에서는 진과 키프로사, 타양, 루키우스, 오키드나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은 게임 내 '나나의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추가로 정원에 들어가 신이 된 인물은 5명으로, 전쟁과 파괴의 신 키리오스가 된 진, 죽음과 저승의 여신 누이가 된 에안나, 바다와 변화와 밤의 여신 다후타가 된 아란제비아, 황금과 풍요의 신 샤티곤이 된 올로, 봉인과 예언의 신 하제가 된 이녹이다. 현재 이들은 모두 소멸 혹은 봉인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이후 신들의 세기와 불의 세기, 영웅들의 세기를 겪으며 한때는 절친한 사이였던 12명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갈라서게 되고, 전쟁이 일어난다. 이때 풍요의 신 샤티곤, 즉 올로는 자신의 권능으로 황금을 만들어 내 군대를 모집, 델피나드를 향해 진격하고 그의 군대는 예언의 신 하제, 즉 이녹의 군대와 맞붙게 된다. 한편 파괴의 신 키리오스가 된 진은 에페리움의 군대를 이끌고 원대륙 전체를 공격하는데, 이에 맞선 영웅이 타양과 아란제브, 그리고 루키우스다.

사족으로, 진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썰'들이 있다. 이에 대해 전민희 작가는 '진으로 인해 전쟁이 난 건 맞지만, 미친 적도, 배신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즉, 현재 돌아다니는 내용들은 루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루키우스의 기록을 통해 오피셜로 밝혀진 내용들 뿐이다. 가장 먼저 정원 밖으로 나온 진은 에페리움에서 타락한 안탈론을 만나고, 그와 함께 다녔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이들의 전쟁으로 인해 타양과 아란제브는 사망하며, 진은 자신을 막으려던 이녹과 함께 저승에 봉인된다. 그 과정에서 원대륙은 파괴되는데, 누이 여신이 된 에안나가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해 종족들을 신대륙으로 이주시킨다. 이게 바로 최후의 전쟁, 그리고 '대이주'다. 에안나는 이때 모든 힘을 소진해 육체가 소멸하는데, 이 장면은 트레일러를 통해 영상으로 구현되어 있다.

그렇게 누이 여신의 힘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자신들을 누이안이라 칭하고 대륙의 이름을 누이아라 불렀다. 해당 내용은 루키우스가 읊어주는 누이안 튜토리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누이 여신과 연인 관계였던 루키우스는 그녀의 바람, 그리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2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륙의 모든 종족들을 살피게 된다. 추가로 누이 여신은 저승과 죽음을 담당하기 때문에 게임 중 사망하면 캐릭터가 누이 여신상 앞에서 부활한다.

현재까지 발간된 소설에서는 정확히 진과 타양, 키프로사, 오키드나, 그리고 루키우스가 서로를 '친구'라고 여기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추가로 에안나는 상속자들 중간, 멜리사라의 경우 가장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인물 중 아란제브와 아란제비아, 이녹, 멜리사라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는 루키우스의 기록 중 '12명의 영웅들' 부분에서 단편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탭에서는 전나무와 매, 상속자들 사이의 이야기 역시 다루고 있다.









아키에이지의 역사와 세계관을 그냥 흔히 지나가고 흘러가고 잊혀지는 그저 그런 설정으로만 남기기엔 너무나 아쉬움이 크다. 전민희 작가의 손길을 거친, 그리고 그녀의 생각을 거친 만큼 정말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담고 있기 때문.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흔히 게임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만 해도 역사, 소설, 수필, 기행 등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타이타닉을 패러디한 '미리아닉의 침몰과 함께 행방불명 된 것으로 알려진 마리안 트리스테가 남긴 마리안의 일기', 전나무와 매 이전, 제임 데이어가 사망한 전쟁을 다룬 '고대 비스코니아 전쟁사', 에아나드 도서관이 키리오스에 의해 멸망하기 전 상황을 알 수 있는 '마법사 밀러의 기록' 등. 사소하다고도 볼 수 있고, 그저 장식 용으로만 만들었어도 될 아이템에 '진짜' 이야기를 담아 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여름에는 2012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가 추천하는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100선'에 선정된 전나무와 매를 비롯해 수많은 '떡밥'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상속자들, 그리고 몰랐던 사실들도 알 수 있는 루키우스의 기록을 읽으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어 있는지 플레이도 해보며, 한국 게임 역사상 가장 탄탄하고 세밀하게 짜여 있는 아키에이지 연대기로 휴가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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