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포켓몬 리메이크.. 살만해요?

기획기사 | 백승철 기자 | 댓글: 27개 |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를 좋아하는 팬들이 목 빠지게 기다렸던 4세대 리메이크 소식이 '포켓몬 25주년 프레젠트'를 통해 공개되었다. 최근 포켓몬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야 늘 충격적이었지만 이번 발표는 느낌이 좀 다르다. 이제 막 공개된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2등신으로 격변한 캐릭터와 최신 게임이라는 느낌에서 과감히 이탈한 그래픽은 디자인에 관대하기 그지없는 포켓몬 팬들마저 찬반이 극명하게 갈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발표 직전, 4세대 리메이크에 대한 희망찬 루머가 대부분이었다. "그대로라도 일단 나와만 다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포켓몬의 공식 트위터에서 역대 스타팅 포켓몬으로 '포켓몬 프레젠트'의 D-Day를 카운트했는데, 어느 한 해외 웹진에서는 4세대 스타팅 포켓몬을 필두로 카운트다운을 하는 날에 "4세대 스타팅 포켓몬이 공식 SNS에 떴으니 리메이크는 무조건이야!"라고 확대해석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그렇기에 많은 포켓몬 팬들이 기대했던 2월 27일이었는데.. 10년 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게임 화면을 보고 나서 실망했다는 국내 의견이 대다수다. 포켓몬 신작 게임이 발표될 때마다 "IP만 너무 믿는 거 아니야?"라던가 "왜 점점 산으로 가냐"라는 등의 불평불만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도무지 용서가 안되는 모양이다. 추억 속의 그래픽을 너무 잘 되살려서(?) 가격도 10년 전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화가 좀 가라앉을 것 같다.

나만 해도 발표를 보며 '봄버맨(구슬동자)'과 초등학교 때 PS로 즐긴 '실황야구'를 떠올렸으니까. 심지어 본가 타이틀을 외주로 맡긴다는 것은 엎친 데 덮친 격.



▲ 4세대 스타팅 포켓몬과



▲ 4세대 타이틀의 상징격 포켓몬, '디아루가'와 '펄기아'까진 좋으나...



▲ 포켓몬 팬들 사이에서 끔찍하게 여기는 짤1.gif




여태 봤던 리메이크랑은 확실히 다르다
암묵적인 룰이 깨져버린 4세대 리메이크,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 & 샤이닝 펄'



▲ 허공에도 히트박스가 적용되는 예전의 그래픽으로 퇴화했다 (4세대 리메이크 소개영상 中)

포켓몬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IP이며, 그 중심에는 '본가 타이틀'이라고 불리는 게임이 존재한다. 누구나 다 아는 '레드 & 그린(1세대)' 등의 게임 시리즈가 그것이다. 본가 타이틀 중 업그레이드(크리스탈, 에메랄드 등)와 후속작(블랙2, 화이트2 등)을 제외하고는 전부 1,000만 장 이상 팔렸으며 작년 출시한 '포켓몬스터 소드 & 실드'는 2,035만 장을 기록하며 1세대와 2세대를 이은 역대 포켓몬 타이틀 판매량 3위의 기염을 토했다.

포켓몬 리메이크 작품은 2004년에 GBA(게임보이 어드밴스)로 즐길 수 있는 타이틀, '파이어레드 & 리프그린'으로 시작되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기존의 1세대 타이틀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며, 이후 2세대 및 3세대 리메이크들의 판매량 평균은 약 1,300만 장. 이는 판매량이 비교적 부진했던 작품들을 훌쩍 넘는 성적을 거둘 정도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포켓몬 IP에 익숙한 유저라도 매번 새로운 환경과 캐릭터, 특히 처음 보는 포켓몬이 어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신 포켓몬 게임을 즐기려면 강제로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 즈음, 본가의 리메이크 작품을 선보여 팬들을 감동에 빠뜨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행보였다. '루비 & 사파이어(3세대)'와 '디아루가 & 펄기아(4세대)'에서 만날 수 없는 리자몽 등의 서브 주인공급 포켓몬을 리메이크 작품에서 더 멋진 그래픽으로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

그래, 지금껏 내가 이해한 포켓몬 세계에서의 리메이크란, 본가의 타이틀을 차세대기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1세대, 2세대, 3세대 리메이크는 각각 3세대, 4세대, 6세대 본가 타이틀과 느낌을 같이 했었다.

글로벌 발표를 통해 공개된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 & 샤이닝 펄(4세대 리메이크)'은 '포켓몬 소드 & 실드(8세대)'와 달라도 너무 달랐으며 그래픽만 놓고 봤을 땐 오히려 퇴화했다. 하지만 팬들의 불평 섞인 아우성을 자세히 듣다 보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마치 나처럼. 팬들은 왜 아직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



▲ 2021년 작품이 맞나요..? (4세대 리메이크 소개 영상 中)




보고도 왜 놓지를 못하니
4세대는 '갓겜'이었으니까



▲ 좀 억울한 게, 4세대를 추억하는 프리뷰 형태의 기사를 준비하려 했다

내가 미쳐있었던 콘텐츠는 포켓몬 배틀. "포켓몬은 싸우는 도구가 아니야!"를 외치는 포켓몬 미디어믹스 내의 주인공과 항상 부딪히는, '로켓단' 같은 트레이너라고 할 수 있겠다. 본래 마니아라 하면 애니메이션부터 영화, 게임 내 스토리까지. 해당 IP가 펼쳐놓은 정보들에 대해 섭렵해야 하거늘. 내 관심사는 오직 포켓몬 배틀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본격적으로 포켓몬 대전에 입문한 시점은 3세대부터였다. 3세대부터는 포켓몬의 성격이 생겼고 개체값의 개념이 명확해졌으며 노력치가 한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완벽한 한 마리의 포켓몬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투자와 운이 필요했다.

4세대는 약 1,767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우며 흥행했다. 사실 팬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쳐주는 건 4세대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포켓몬 기라티나(Pt)' 버전이지만, 포켓몬 4세대는 포켓몬 배틀 환경이 긍정적으로 많이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격변한 타이틀이다.

4세대는 뭘 했길래 '갓겜'이라는 기록으로 리메이크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게끔 만들었을까?



기술의 구분과 Wi-Fi 활용으로 포켓몬 배틀에 날개를 달다

포켓몬 배틀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4세대의 가장 큰 업적은 전작과 다르게 물리 기술과 특수 기술이 타입별로 구분되지 않고 각 기술별로 나뉘기 시작한 타이틀이라는 것이다. 적절한 예시로는 4세대 이전의 '불꽃펀치'는 불 타입의 기술이기 때문에 특수 공격력에 영향을 받았었지만 이후에는 기술이 현실적으로 '펀치'이기 때문에 물리 공격력에 영향을 받게 된 것.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4세대가 출시되기 전까지 부조리(?)를 당한 포켓몬이 정말로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높은 물리 공격력을 자랑하는 '갸라도스'가 있다. 4세대 이전까지 물 타입의 기술은 전부 특수 공격력 기반이었기 때문에 갸라도스가 쓰는 자력기(포켓몬 타입과 일치하는 기술로, 위력이 1.5배)는 효율이 매우 좋지 않았다. 높은 공격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타입의 물리 타입 기술을 억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역으로 4세대 이전까지 인식이 하늘을 찌르다가 추락한 포켓몬도 많다. 높은 특수 공격력을 살려 1개의 자력기와 삼색 펀치(불꽃, 냉동, 번개)로 여러 약점을 찌를 수 있는 '후딘'이 대표적이었으며, 약점이 격투 타입 1개라서 물리 방어력에만 신경을 써줘도 눌러 앉는 괴물이 되어버릴 수 있었던 '잠만보'도 특수 공격력에 영향받는 격투 타입의 기술이 생겨버려서 예전만큼의 위상은 떨치지 못하고 있다.



▲ 4세대 이전까지는 물 타입 기술을 쓰면 높은 공격력을 활용할 수 없었다(출처: 포켓몬 위키)

원거리 통신도 기여한 바가 크다. 3세대를 즐길 당시, '넷배틀'이라는 형식의 해외 웹 게임을 통해 2세대 대전을 즐긴 적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데이터 싸움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래픽이 심심했으며, 포켓몬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찍어서 만드는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원거리로 대전을 할 수 있다는 이점 하나만으로 충분히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거리 통신 지원은 포켓몬 세계에서 혁신적이었다.

4세대 이전의 타이틀에서 교환 및 대전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만나서 통신 케이블을 이용해야 했다. 1세대 리메이크 타이틀에서는 무선 어댑터를 지원하긴 했지만 일정 범위 내에서만 무선 통신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닌텐도 DS'로 넘어오면서는 서로 친구 코드를 알고 있다면 Wi-Fi를 통해 통신이 가능하게 되었다. GTS(Global Trade System)을 통해 불특정 누군가와의 교환이 가능해진 것은 화룡점정.



▲ 우측 하단의 이상한 도구가 무선 어댑터(출처: 리브레 위키)




한국어판이 본격적으로 출시된 것도 4세대부터

포켓몬 IP의 중심에는 1세대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4세대도 국내에서 인식이 좋을 수밖에 없다. '한국닌텐도'에서 본격적으로 닌텐도 게임들의 한글화 작업을 진행한 시점과 4세대의 출시일이 어느 정도 겹치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그로 인한 접근성 덕분에 "1세대도 1세대지만 내가 포켓몬을 게임으로 입문한 시점은 4세대"라고 얘기하는 팬들도 상당수다.

자연스레 4세대 때 처음 출현한 포켓몬들 중, 기억에 오래 남는 포켓몬이 많은 것도 한몫을 한다. 하나씩 나열하자면 너무 많고.. 박세준 선수가 사용한 '파치리스'의 등장이 4세대라고 하면 설명이 될 것 같다. 600족의 자존심인 '한카리아스'도 그렇고. 이번 25주년 영상에서 새로운 시리즈로 공개한 '포켓몬 레전드' 시리즈의 첫 간판 포켓몬인 '아르세우스' 또한 4세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배포 포켓몬이다.



▲ 한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작품은 4세대부터



▲ WCS 2014 결승전. 박세준 선수의 파치리스만 나왔다하면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 팬들을 통해 다양한 작업물들이 만들어졌었다 (출처: 현재는 비공개인 유저의 SNS)




일본을 배경으로 한 마지막 타이틀, '디아루가 & 펄기아'

포켓몬 게임의 배경과 분위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4세대와 그 이후로 명확히 나뉜다. 원인이 뭘까?

4세대까지의 이야기 배경, 즉 스토리가 펼쳐지는 지역 모두 일본의 특정 도시를 모티브로 한 까닭이다.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 프리크' 입장에서 모국의 특정 지방을 배경으로 한 만큼 스토리도 탄탄하고 어떤 사건이나 요소에 대한 기승전결이 명확하다. 이스터에그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5세대부터 뉴욕, 하와이 등의 해외 국가를 모티브로 한 지역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반갑지만 뿌리가 깊지 않으면 분위기가 가벼운 법. 5세대 이후부터는 스토리에 대한 기승전결, 기존 작품과의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자연스럽지 않고 억지로 넣은 것 같은 해당 지방의 특징들도 게임의 몰입도를 헤친다.

팬으로서 4세대 리메이크에 대한 수요와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이것 때문은 아닐까? 팬들이 농담반 진심반 "그대로라도 나와만 주라"가 너무 말 그대로 실천되었다. 현재 발표된 내용만 봤을 때는 말이다.


▲ 일본의 홋카이도 지방을 모티브로 한 '디아루가 & 펄기아'




신작이 발표된 직후, 기존 작품이 고평가되는 마법
콘텐츠 방면으로 행복회로를 돌리며 기다릴 수밖에..



▲ 포켓몬 팬들 사이에서 끔찍하게 여기는 짤2.gif

"레츠고가 선녀였네"

4세대 리메이크의 발표 후에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의견이다. 최신 작품과 근접한 그래픽으로 리메이크 타이틀을 내놓았던 이전 행보와는 다르게, 이번 공개된 리메이크 작품은 잘 쳐줘야 2006년에 출시한 작품에 비하면 좀 나은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포켓몬 신작 게임은 항상 그렇다. 최신작은 항상 욕을 먹고 기존 타이틀은 극찬 받는다. 이는 현재 '포켓몬 소드 & 실드'를 즐기는 게이머들의 만족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신작 발표 직전까지는 뒤늦은 DLC로 인해 출시일부터 계속해서 미움을 사고 있었던 것을 떠올려보자.

항상 새로운 것에 분개하는 포켓몬 팬들을 위해 "이번엔 정말 있는 그대로 가져왔어!"라며 툭 던진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 & 샤이닝 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국내 팬들은 그래픽이 저하된 만큼 방대한 콘텐츠가 있을 거라는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다. '1세대~4세대를 모두 즐길 수 있는 타이틀', '메가진화의 부활', '디아루가와 펄기아의 새로운 진화 형태' 등의 추측으로 말이다.

밝혀진 정보를 토대로는 할 수 있는 게 비난밖에 없다. 근데도 나는 결국 사게 되지 않을까. 물론 4세대라는 명작의 리메이크인 만큼 현재 공개된 내용들은 아쉬움이 크지만, 욕하면서 사겠지. 외식하러 나간 길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레츠고 시리즈'가 내 손에 있던 것처럼 말이다.



▲ 나는 일단 사게 되겠지..안 산다고 그렇게 욕을 해놓고 결국 샀던 예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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