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 섬머] '1위 시해자' 하나된 한화생명e스포츠, 이유있는 반란

기획기사 | 장민영 기자 | 댓글: 31개 |



LCK 1위, 이 흐름만 유지하면 결승에 직행하겠지? 그런 팀들은 모두 내려가고 말았다. 최근 '1위 시해자'로 떠오른 한화생명e스포츠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번 LCK가 상위권 7개팀이 비슷한 승수를 쌓으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PO 진출 가능성이 남아있는 팀 간에 경기는 물론, 다른 경기마저 혼전 양상으로 가는 상황이다. 그리고 하위권에 있는 한화생명e스포츠(이하 한화생명)가 그 중심에 자리 잡았다. PO와 멀어져 승강전 탈출만 바라보는 시기지만, 경기력은 LCK 1위팀을 끌어내릴 정도로 매서웠다. 그렇게 한화생명은 LCK PO 경쟁 양상을 뒤집어 놓는 돌풍을 제대로 일으키는 중이다.

사실상, 한화생명의 이번 스플릿의 성적은 아쉽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6위 자리를 지키며 PO권을 위협했지만, 이번 섬머는 이미 많은 패배를 쌓아둔 상태로 더 내려갔기에 그렇다. 경기 내에서도 성급하게 바론을 치거나 라인전 단계부터 무기력한 장면이 자주 나올 정도로 아쉬움이 큰 팀이었다.

그렇지만 몇 주전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한화생명은 확실히 달라졌다. PO-승강전이라는 목표를 초월해 승리만을 위해 사는 팀, 한화생명은 어떻게 1위에 오른 두 팀을 연이어 꺾을 수 있었을까.


드디어 하나된 한화생명
팀 합으로 다져진 플레이가 나온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팀 플레이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한화생명은 성급한 바론 오더가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이었다. 불리할 때 전세를 뒤집기 위한 오브젝트 싸움 뿐만 아니라, 유리한 순간에도 애매한 바론 사냥으로 승기를 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경기를 보면 확실히 다르다. 미리 시야 장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먼저 상대를 압박하고 합류하는 플레이가 눈에 들어왔다. 협곡의 전령과 드래곤 사냥에 나설 때마다 항상 순간이동을 활용해 수적 우위를 점하는 모습까지 나오곤 했다. 이전 한화생명에게는 보기 힘든 장면으로 이제 확연히 달라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플레이가 나오기까지 3연속 MVP를 수상한 '보노' 김기범의 역할이 컸다. 최근 경기 이전까지 무리한 갱킹이 나오기도 했고, 라이너와 함께 말리는 장면이 잦았다. 이제는 확실히 시야 운영부터 뒤를 봐주는 플레이까지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 정글가 합류할 법한, 교전이 일어날 법한 지역을 돌아다닌다. 레벨업이나 갱킹에 성공하면서 확실한 성과를 내는 플레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라이너가 안심하고 라인전을 펼칠 수 있는 환경, 오브젝트 사냥의 근거를 마련하는 플레이였다.

정글러 간 시야 싸움 대결은 SKT T1과 1, 3세트에서 특히 잘 드러났다. 각각 스카너와 올라프로 상대를 오브젝트 주변 시야를 잡는 플레이가 일품이었다. 단순히 교전으로 점멸을 빼거나 킬을 내는 이득은 아니었지만, 운영 스노우볼의 밑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상대 동선을 예측한 듯 미리 자리를 잡고 몰아내면서 시야 싸움의 우위를 점하면서 말이다. 1세트에서는 '클리드-칸'이 설치한 탑 와드를 모두 지워내더니 3세트에서 드래곤 지역 합류 경로의 시야를 모두 장악한 것이다. 한화생명 팀원마저 발 빠르게 라인을 밀고 합류하는 구도가 나오면서 최근 경기에서 한화생명이 드래곤-협곡의 전령부터 먼저 가져가는 그림이 이어지곤 했다.



▲ 봇 갱 대비 및 드래곤 주변 시야 밝힌 '보노' 올라프


어느새 라인전 강팀?
모든 라인 활약하는 한화생명의 라인전


'보노'의 존재는 약점으로 지목됐던 한화생명의 라인전에도 큰 힘이 됐다. 이전까지 '보노'도 무리한 갱킹이 실패로 돌아가며 라이너와 함께 말리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 탑 '소환-트할'을 중심으로 봐주는 경기에서 연이은 갱킹이 막히자 게임 전반의 흐름이 무너져버리곤 했다. 이런 경기가 쌓이면서 한화생명이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장면이 더 선명한 편이다.

그런데 요즘 갱킹과 역갱킹을 조율하는 감각적인 '보노'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담원과 1세트에서 자르반 4세로 공격적인 갱킹에 성공하더니 이후부터 또다른 움직임이었다. 라인을 미는 미드와 봇 라이너들의 뒤를 봐주는 시간을 길게 잡았고, 그 사이에 들어오는 갱킹을 깔끔하게 받아치면서 이득을 챙긴 것이다. 앞서 말한 오브젝트 시야를 잡아주는 것과 동시에 아군 라이너의 뒤를 봐줄 수 있는, 두 가지 이득을 모두 가져올 수 있는 '보노'의 동선이 나온 것이다. 해당 영상이 그저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담원전부터 SKT T1을 상대로도 이어지고 있기에 이젠 우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 자료 제공 : KT e스포츠 라이브

'보노'의 이런 플레이가 나오자 한화생명 다른 팀원들의 라인전 능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보노'와 함께 미드-정글 싸움을 장악하고 있는 '템트' 강명구는 안정감과 강한 라인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라인을 밀면서 동시에 갱킹 위협마저 기회로 만든다. 뒤를 봐주는 '보노'와 함께 말이다. 최근 경기에서 미드-정글 싸움마저 연승을 이어가면서 오브젝트 주도권, 힘 싸움에서 모두 승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뛰어난 성장과 캐리력으로 후반 한타의 핵심 역할도 해낸다고 보면 된다.

위로는 '소환' 김준영이 꽉 잡고 있다. 작년까지 유명했던 솔로 킬 능력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게임 양상을 확연히 바꿔놓았다. 상대의 갱킹이나 로밍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거침없는 1:1 싸움을 벌인다. 상대는 공격적인 라인전으로 최고의 평가를 받는 '너구리' 장하권과 무결점의 아트록스로 정평이 나 있는 '칸' 김동하였다.

하지만 '소환'은 두 선수를 상대로 모두 솔로 킬을 기록했다. 아무리 강력한 선수라도 위축되지 않았고, 정상급 선수 특유의 배짱을 역으로 노릴 줄도 알았다. 이들의 과감한 플레이를 제대로 낚아채자 그대로 힘이 빠지고 말았다. '소환'의 장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칸'이 라인전에 힘을 주기 위해 순간이동마저 포기한 채 퀸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라인전에서 고통받던 '소환'이 순간이동을 활용해 합류에 힘을 주는 또 다른 양상이 나왔다. 이제는 단순히 라인전만 강한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 라인 복귀 중 리쉬해주는 '상윤'

봇 듀오 역시 라인전 단계의 변화가 놀랍다. 2R에서 킹존 드래곤X를 상대로 라인전에 강한 케이틀린-럭스를 뽑은 적이 있다. 라인전이 강한 픽을 뽑고도 '데프트' 김혁규의 이즈리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무너졌던 게 이전 한화생명의 봇 라인이었다. 그랬던 한화생명 봇이 달라졌다. 초반부터 라인을 밀면서 먼저 합류하고, 오브젝트 싸움에 순간이동을 활용하는 장면이 나왔다. '보노'가 뒤를 봐줘서 과감하게 플레이하는 것도 맞지만, 그만큼 발 빠른 합류로 '보노'와 팀에 힘이 되주는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최근 SKT T1전에서 '테디-에포트'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라인을 미는 그림, 드래곤 싸움을 주도하는 것까지 모든 게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이렇듯 한화생명은 이유있는 승리를 거두고 있다. 깜짝픽이나 상대의 실수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승리가 아닌 실력에서 나오는 진짜 '매콤한 고춧가루'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승리가 간절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경기력이었다. PO 진출과 거리가 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1위를 잡을 수 있었다고 본다. 팀원 전체가 제 역할을 해내면서 이룬 승리이기에 더 뜻깊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승강전 탈출을 확정짓게 된다면, 곧 한화생명은 이번 2019 시즌을 마무리한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지만, 마지막 만큼은 후회없이 자신들의 경기력을 증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다른 PO 순위 경쟁권에 있는 강팀과 만날 예정이다. 아프리카 프릭스를 먼저 상대하고 현 1위이자 PO 진출을 확정 지은 그리핀과 마지막 경기를 펼친다. '고춧가루', '1위 킬러'란 말보다 한화생명에게 중요한 건, 어떤 강팀을 만나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그들의 경기력이다. 오늘만 산다고 말한 한화생명은 정말 내일의 PO를 바라보는 상위권 팀들을 끝까지 넘어설 수 있을까. 지난 경기처럼 하나가 된 팀 합을 보여준다면, 강팀을 상대로 승리가 세 번-네 번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 '3텔'로 보여준 한화생명 팀 합(출처 : LCK 공식방송 캡처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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