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마스터 오른부터 결승 '검투사'가 되기까지

기획기사 | 장민영 기자 | 댓글: 32개 |



게임 실력은 설명하기 힘든 재능의 영역이라는 말이 있다. 프로게이머들 역시 자신의 플레이를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연습해온 감으로 했다"는 답변을 자주 하곤 한다. 실시간으로 빠르게 판단을 해야 하는 게임의 특성상 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누군가 명쾌하게 프로들이 하는 감의 영역을 말로 풀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2022 LCK 서머가 시작할 무렵, 그런 갈증을 해소해주는 선수가 나타났다. 서머 초반부 DRX 승리에 큰 기여를 했던 '킹겐' 황성훈이다. 당시 '킹겐'은 특유의 오른 플레이로 주목을 받으며 '마스터 오른'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머 승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킹겐'이 왜 그렇게 불릴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움직임과 스킬 샷 하나하나에 뚜렷한 자신의 의도와 확신이 묻어났고, 이를 감이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선수였다. '킹겐'의 확신이 오른을 넘어 다른 챔피언 플레이에도 묻어난다면, 앞으로 더 잘 될 선수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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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드컵 전후로 평가를 뒤집은 DRX 탑-정글

그리고 어느덧 2022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과 결승전 MVP라는 결과가 '킹겐'에게 찾아왔다. LCK의 4번 시드 DRX가 우승했다는 결과 만큼 결승전 MVP 역시 예상하지 못한 선수 '킹겐'이 선정됐다. 마스터 오른에서 이제는 결승전 승부를 결정지은 아트록스로 전 세계 팬들의 기억에 남았다.

결승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킹겐'은 크게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LCK에서는 작년에 하위권 탑 라이너로 마무리했고, 올해 스프링-서머 모두 LCK ALL-PRO 3rd팀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거기에 DRX엔 많은 솔로 킬을 낸 '제카' 김건우와 수없이 롤드컵에 도전한 '데프트' 김혁규, 세레모니왕 '표식' 홍창현, '오더의 신-롤도사'로 불리는 '베릴' 조건희까지 이목을 끄는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킹겐'의 MVP 수상은 4-5세트 활약만으로 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트록스라는 좋은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었기에 운이 따라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번 롤드컵에서도 아트록스는 서서히 풀리곤 했다. 상위 라운드에 올라온 팀들은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아트록스를 풀어주기도 했다. 상대 T1 역시 RNG를 상대로 아트록스를 풀어주고 승리를 경험한 적이 있다. 결승전 1-2세트에서도 아트록스를 가져간 팀이 패배하는 결과가 나왔다. 애매한 아트록스 플레이는 상위권 팀이 충분히 대처할 만하다는 통계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킹겐'은 확실한 아트록스 플레이를 준비했다. 가장 중요한 승부처에서 그 무기를 위협적으로 다룰 줄 알았다. 상대 '제우스' 최우제에게도 아트록스가 풀린 경기가 있었지만, '킹겐'만큼 이를 잘 실리지 못했기에 픽밴의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반대로, '킹겐'은 픽밴의 티어리스트가 엉킨 틈을 타 아트록스를 잡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기회에도 자격이 있다. '킹겐'은 MVP를 받을 자격이 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누군가는 이 정도 숙련도면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세트 스코어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킹겐'은 안주하지 않았다. 팀원 '표식'의 헤카림이 실수와 같은 무리한 플레이를 했을 때, 오히려 더 들어가 공격하는 과감한 선택을 내렸다. 결승전에서도 홀로 과감한 플레이를 하다가 잘린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전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들어가 승부를 뒤집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킹겐'이 잡은 칼끝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결승전의 변수였다.

'킹겐'은 해당 플레이에 관해 "4-5 세트가 되면 항상 검투사 정신이 발휘된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야수의 마음가짐으로 하다 보니 잠재력이 나왔다"며 "정규 시즌부터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뭔가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많이 망설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를 지켜본 분들도 답답한 장면을 많이 봤을 거다. 감독님이 승부의 세계에서는 망설이는 사람이 진다고 했다. 그 말이 내 플레이에 많은 영향을 줬다. 오늘 과감한 플레이를 잘 해서 이런 자리까지 마련된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결승전에서 세트 스코어 1:2로 DRX가 밀리고 있는 상황. 롤드컵 우승 경험이 많은 T1에게 익숙한 스토리가 진행되려고 할 때, 검투사 '킹겐'의 게임은 시작됐다. 4-5세트에서 자신의 활약으로 역전승을 만들어내겠다는 더 극적인 시나리오로 말이다. 야구와 인생은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맞았다. 롤드컵 주제가 Star walkin의 가사 "don't ever say it's over if I'm breathing"도 현실이 됐다. 그리고 이런 극적인 현실 이야기의 주인공 중 '킹겐' 황성훈이 있었다는 게 이제는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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