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월드'라는 우연의 이야기 1부

기획기사 | 박광석 기자 | 댓글: 23개 |



일본의 인디 게임 개발사 포켓 페어의 신작 '팰월드(Palworld)'가 얼리 액세스 출시 6일 만에 80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우며 그야말로 '대세'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팰월드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기록을 세우며 화제의 중심이 되자, 개발사 포켓 페어의 대표인 미조베 타쿠로 CEO가 팰월드 출시일인 1월 19일까지 딱 3일을 앞두고 공개한 개발기도 함께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3일 후 운명이 결정되는, 팰월드라는 우연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해당 게시글에는 게임 개발 과정에 수많은 역경이 있었으며, 총 여섯 번의 놀라운 기적이 있었기에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생생한 개발비화가 담겨있습니다.

팰월드를 좋아하는 게이머가, 그리고 현재 자신의 게임을 만들고 있는 인디 개발자가 '팰월드'라는 게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될 수 있었는지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포켓 페어 미조베 타쿠로 CEO가 직접 공개한 개발기 전문을 한국어로 옮겨보았습니다.

※ 생생한 전달을 위해 원문 그대로 번역하여 옮겼습니다.
※ 해당 개발기의 번역, 게재는 '포켓 페어(Pocket Pair)' 미조베 타쿠로 대표의 허가를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1. 돈이 있다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작 '크래프토피아(Craftopia)' 개발 이후 3년간 팰월드(Palworld)라는 게임을 계속 만들었다. 그것이 마침내 3일 후에 출시된다. 여기까지의 길은 길었다. 되돌아보면 굉장히 멀리 돌아온 것 같다. 꼭 겪지 않아도 되었던 실패의 연속이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는 곳에서 몇 번이나 망설였다. 업계 전문가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만한 것들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아마추어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어떻게 해야하지?"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때의 돌아가는 길이 사람의 인연을 만들어주었고, 지금의 팀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업계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아마추어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포켓 페어'라는 회사가 게임 업계 출신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이고, 자금조달을 통해 자본이 충분한 상태로 게임을 개발했다면 '팰월드'라는 게임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돈이 있다고 해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출시할 수 없었던 첫 번째 게임
포켓 페어가 처음으로 만든 게임은 이 세상에 출시할 수 없었다. 2년에 걸쳐 개발했지만 퍼블리셔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6년경, 아직 내가 27세였을 무렵의 이야기다.

나는 제대로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라는 자신감은 가득했기 때문에, 대학교 후배인 '@weray166'과 함께 모바일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 게임의 개발에 진심으로 임하기 위해, 신규졸업으로 입사한 대기업을 한 달 만에 그만두어 주었다. 나는 이것저것 고민하느라 신규졸업으로 입사했던 JP모건을 그만두는 데 3년이나 걸렸는데, 그는 딱 한 달 만에 결정했다. 우수한 사람일수록 회사를 쉽게 그만두는 것 같다. 분명 그는 나보다 더 우수했을 것이다.

우리는 본격적인 상업용 게임 개발에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임했다. 게임의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는 일절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면서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주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프로토타입이 하루 만에 만들어지고, 버려졌다. 곧 산더미 같은 프로토타입이 쌓였고, 대부분은 채택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졌다.

도중에 개발 엔진을 cocos2dx에서 유니티로 바꿨다. 3D 게임을 만든다면 꼭 유니티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엔진으로 만들었던 코드 에셋은 모두 파기했다. 엔진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도 다시 '0'부터 시작이었다.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고, 엔진을 새것으로 바꿨다고 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엄청나게 힘든 시기였지만, 어떻게든 이겨냈다.

그로부터 2년 뒤, 나는 지금 회사의 이사가 되어줄 사람을 만나게 됐고, 그와 함께 여러 게임 회사를 돌며 퍼블리셔를 찾고 있었다. 우리의 퍼블리셔가 되어줄 회사를 찾고, 자금을 조달해서 프로토타입을 본격적인 개발로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게임의 재미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우리의 프로토타입이 어떤 형태의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주요 게임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 한 회사 정도는 받아주리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회사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리뷰를 해주었다. 기획이나 프로토타입의 세세한 문제점을 지적해주었기에 이를 가지고 돌아가 대책을 세운 뒤, 다시 자료를 만들었다. 개발 멤버에게는 "반응은 좋았어! 여기를 개선하자!"라고 전했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회사와 약속을 잡고 기획과 프로토타입을 전했다. 어느 회사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건 된다"라고 생각하고 각 사의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계속 사내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멤버에게 긍정적인 감상을 전했다.

그러나 쉽게 결정되지는 않았다. 기획의 최종 결정에는 각 단계의 승인자로부터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각 회사와 반복적으로 미팅을 이어가던 가운데 점점 본질적인 문제가 기획의 내용이나 프로토타입의 내용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어느 회사나 하는 말은 비슷했다. 프로토타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완성도라며 먼저 칭찬했지만, '1)회사의 설립일은 언제이며 어떤 경력이 있는지, 예산은 어느 정도인지, 2)어떤 개발 체제를 갖추고 있는지, 3)유명 IP는 활용했는지'를 물어왔다.

1) 요점은 '게임 업계 출신인가'를 묻는 것. 지금까지 어떤 게임을 만들었고, 얼마나 매출을 올렸고, 당신이 만들면 얼마나 성공 확률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게임업계 미경험자의 성공률은 극히 낮은 편이다.

2) 당시의 '포켓 페어'는 세 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개발팀이었기에 억대 예산의 게임을 만들기에는 분명 인원이 부족하다. 별도의 개발사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며, 운용 페이즈로 옮겨지면 운용 체제도 확인받아야 한다. 만일 퍼블리셔로부터 예산을 받았다고 해도 실제로 이를 활용해서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지를 묻는 셈이다.

3) 당시 소셜 게임 업계는 '몬스터 스트라이크'나 '퍼즐앤드래곤'처럼 새로운 놀이법을 발명해서 파는 게임이 아닌, 유명 IP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을 판매하는 것으로 방향성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사로부터 사전에 어드바이스를 받았기 때문에 주로 질문받을만한 것들을 슬라이드에 정리해둔 상태였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략적인 설명 뒤에 좁혀진 결과는 대체로 같았다.

'현재 회사의 체제까지 고려하면 어렵다, 유명한 IP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어려울 것 같다. 새로운 놀이법을 제안하는 것만으로는 어렵다, 이후에 상황이 바뀌게 되면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 어느 곳도 게임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프로토타입을 건드려보지 않는 회사도 더러 있었다. 이들이 신경 쓰는 것은 오직 회사의 개발 체제, 예산, 개발 계획 등 게임 이외의 것들이었다. 게임이 실제로 얼마나 재미있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것들이 있었다. 게임의 어느 부분이 나쁘다고 지적된다면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게임 내용 이외의 개발 체제 관련 지적은 세 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우리로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거절당하는 회사 수는 두 곳에서 세 곳으로, 다섯, 여섯 곳으로 계속 늘어갔다. 개발 멤버에게는 `아쉬웠다, 다음엔 될 것 같다`라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했지만, 다섯 곳 정도 거절당하기를 반복했을 땐 멤버들 역시 눈치챘으리라고 생각한다. 거절당할 때마다 프로토타입을 더 다듬었고, 내심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개선을 계속했다. 자료도 매번 새로 채워서 세부 사항을 더했고, 자료의 디자인도 계속 업데이트했다. 계속 자료의 퀄리티만 올라가고 있었다.

결국 10개 이상의 회사를 돌아봤다. 이사가 이번엔 인맥을 활용해서 약속을 잡아주었다. '이번에야말로'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갔지만,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몇 회사의 답변은 메일로 돌아왔다. 결국, 모든 회사로부터 거절당했다. 아마 몇 군데는 아쉬운 수준까지 갔겠지만, 결국은 안됐다. 퍼블리셔 측의 사내 체제 변경이나, 개별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멤버들도 조금 침울해했다. 나는 침울해지기보다, 게임 비즈니스의 근원적인 부분을 뼈저릴 정도로 실감했다.

게임 비즈니스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리스크가 높다. 대박이 났을 때는 큰 이익이 남지만, 실패했을 때는 거의 회수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비즈니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게임이 성공할 것인지 출시하기 전에는 거의 알 수 없다. 어느 정도의 성공 확률이 있을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규모가 큰 타이틀일수록 사전에 모르는 것은 더욱 많아지고, 그렇기에 적어도 '알 수 있는' 부분을 늘리려고 한다.

여기서 알수 있는 부분이란 곧 '실적'이다. 실적 있는 퍼블리셔가 실적이 있는 개발사, 실적이 있는 시나리오 라이터와 짝을 이루어 실적이 있는 장르에서 실적이 있는 게임 디자인의 게임을 만든다. 이것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미리 알기 쉬운 게임'인 것이다. 소셜 게임 업계가 IP를 활용한 게임을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성을 바꾸게 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도 성공 확률은 50%도 채 되지 않는다. 참 혹독한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 어디서 굴러온 줄도 모르는, 갑자기 튀어나온 개발사를 선택하는 것에 메리트는 거의 없다.

요약하자면, 실적 없는 개발사가 실적 없는 게임 디자인으로 신규성이 있는 게임을 몇억엔이나 투자받고 개발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는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여러 반성점이 있지만 답은 단순했다. 지금까지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뿐인가,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다른 회사에까지 리스크를 짊어져달라며 부탁하고 다녔던 것이다. 이렇게 뻔뻔하고 염치없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조금 재미있는 프로토타입을 만들 뿐인 회사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비즈니스였다.


3.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잡는다
기획이 통과되지 않아 게임을 출시할 수 없었던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온 힘을 다해서, 정말로 온 힘을 다해서 생각해낸 게임은 발매조차 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2년간 열심히 개발하고, 의논하고, 10개 이상의 회사를 돌아다닌 뒤에 깨달은 현실이었다. 여기서부터, 생각을 바꿨다. 게임의 내용에 자신은 있었다.

불손한 사고방식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게임을 평가할 수 있는 회사는 유감스럽게도 없다. 프로토타입만으로 팔릴지 어떨지 판단할 수 있는 회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지만, 그 재미있는 게임의 잠재력을 볼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없었다. 알아볼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우리들끼리 할 수 밖에. 우리들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임을, 우리들의 돈으로 직접 출시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범위의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한 타이틀은 수억 엔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게임이었다. 그 정도 규모가 되면 다른 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야만 하고, 이래서는 같은 일의 반복이 되어버린다. 작아도 좋으니 우리들끼리 전부 만들고, 직접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모바일 게임 시장은 개발 시작 시점으로부터 2년이 지났을 무렵 경쟁이 더욱 격화됐고, 완전한 레드오션이 되어버렸다. 이 시장에선 도저히 광고비 없이 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평소에 취미로 즐기고 있는 게임은 대부분 PC 게임 플랫폼인 스팀 게임이니, 스팀에서 게임을 출시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깨달은 뒤 당시에 정말 좋아했던 슬레이 더 스파이어와 클래시로얄을 섞은 '오버던전'의 개발을 시작했다.



▲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 '오버던전(Overdungeon)'

약 반년 만에 만들어 얼리억세스 형태로 스팀에 출시했다. 여러 유저로부터 많은 반응이 있었다. 첫 번째 경험이었다. 열의 있는 유저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이 왔고, 이때 우리들의 필드는 여기라고 확신했다. '우리들 스스로, 스팀에서 게임을 출시하면 된다'라고 말이다. 이후 주식회사 포켓 페어는 현재까지 세 편의 게임을 출시했다. 모두 스팀을 통해 출시했고, 직접 퍼블리싱까지 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은 할 것이 못된다.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범위의 것을, 직접 만들어 출시하면 된다. 게임의 재미에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렇게 발매한 것이 '오버던전', '크래프토피아', 'AI 아트 임포스터'까지 세 개의 게임이다.



그리고 이제 3일 뒤, 여기에 새롭게 하나 더, 우리의 대표작이 되는 타이틀이 더해진다. 지금까지의 실패와 노력, 반성점을 담아 처음부터 새롭게 팀을 조성했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집대성해서 만든 게임이다. 그것이 바로 '팰월드'다.

팰월드의 출시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각 게임에서 저마다 다른 새로운 것을 배웠고,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었다. 어떤 게임이 하나 빠져도 이렇게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4. '팰월드'라는 우연의 이야기
출시하지 못했던 첫 번째 작품이 없었다면, 오버던전은 태어나지 않았다. 오버던전이 없었다면, 크래프토피아도 없었다. 크래프토피아가 없었다면, 팰월드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모든 게임이 정말 많은 어려움과 함께 출시되었다.

첫 번째 작품은 정말 몇 번이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다. 잘못했으면 프로토타입만 20개 정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다툼이라고 할까, 의견 차이도 많았고 논의도 수백 번 넘게 했다. 어떻게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도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그 노력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오버던전'때도 고생했다. 스팀에 게임을 공개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출시한 뒤에는 매일 업데이트를 반복했다. 해본 사람을 알 텐데,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들었다. 퍼블리셔와 처음으로 협상도 했고, 계약도 했다. 잘 흘러가지 않는 일도 많았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크래프토피아'때도 힘들었다. 처음엔 배틀로얄을 만들 계획이었다. 게임의 방향성은 좀처럼 정해지지 않았다. 버그가 잔뜩 남아있는 상태에서 출시했다. 출시 후에는 매일 업데이트의 반복이었고, 죽을 만큼 힘들었다. 테스트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있을 때마다 디플로이하고, 공지를 다시 작성했다. 그래도 많은 플레이어가 지지해주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게임으로서 성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맞이하게 된 팰월드. 게임을 몇 년 동안 만들면서 우리들 나름대로 배운 것이 정말 많이 있었다. 하지만 팰월드 역시 `올바른 게임 개발`과는 동떨어진 형태의 개발이 되어버렸다.

결과부터 되돌아보자면, 팰월드가 이렇게 완성되어 출시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진행 방식, 제작 방식으로 어떻게 이런 게임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올바른 게임 개발`의 대척점에 있는 방법이었다.

정말 많은 기적의 힘이 있었기에 지금의 팰월드가 있다. 여기에는 적을 수 없는 기적도 많다. 애당초 디렉터인 코타로씨가 팀에 합류하게 된 것도 행운이다. 원래 그는 넷이즈에 갈 계획이었지만, 트위터에서 인원 모집을 하는 것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연락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팰월드의 디렉션을 맡게 됐다. 이런 이야기가 잔뜩 있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말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다고 믿고 만들어온 게임 타이틀이 사람의 인연을 이어줬다고도 생각한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기적이 있었지만, 여기에 몇 가지를 골라봤다.

기적 1: 20세의 편의점 아르바이트, 업계 미경험자에서 '젊은 에이스'로

기적 2: 유니티에서 언리얼 엔진4로의 엔진 이행에 성공, 기존의 코드도 모두 파기했다. 사내에 언리얼 엔진4의 경험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기적 3: 몬스터를 100종 이상 만들었지만, 사내에 모션 경험자는 한 명도 없었다.

기적 4: 예산 관리를 하지 않았으나, 아슬아슬하게 완성했다. 10억 엔(한화 약 90억 원) 정도 들었다.

기적 5: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던 신규졸업자가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 됐다.

기적 6: 결국 '팰월드' 엄청 재미있는 게임으로 완성됐다.

기적 1: 20세의 편의점 아르바이트, 업계 미경험자에서 '젊은 에이스'로

'팰월드'는 젋은 개발자들의 덕을 본 프로젝트다. 보통 전체 사원 수 10명 정도의 작은 회사에 우수한 신규졸업자는 지원하지 않는다. 만약 인재가 지원했다고 하더라도 금방 대기업에 빼앗겨버릴 것이고, 애초에 신규졸업으로 이런 회사에 올 이유는 없다. 그럼 팰월드는 어떻게 젊은 개발자들의 덕을 볼 수 있었을까? 어쩌다가 우연히 채용한 멤버가, 정말 우연히도 말도 안 되게 우수했기 때문이다.

팰월드라는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총'이다. 일본에서도 배틀로얄 장르의 유행과 함께 FPS/TPS 장르의 인기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원래 글로벌 기준으로 생각하면 성공하고 있는 게임은 FPS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게 RPG만 계속 만드는 나라는, 아마 일본뿐일 것이다.

팰월드의 기획 초기 단계부터, FPS 또는 TPS 시점에서 총을 쏘는 것을 메인으로 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 큰 문제가 있었으니, 일본에서 총 게임을 만든 경험이 있는 경험자를 채용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라. 일본 국산의 FPS, TPS 게임이 있었나? 지금 간신히 떠오르는 것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정도인데, 이걸 총 게임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구방위군'은 조금 특수한 상황이고, 그런 딱 들어맞는 경험자를 채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곤란한 상황이었다. 물론 전원 아마추어라도 어느 정도 형태는 만들 수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FPS, TPS 게임 개발 경험자가 있었으면 했다. 일본인으로 채용할 수 없다면 외국인으로 경험자를 채용해야 하는데, 현재 팀 체제에서 영어로만 소통하는 인재를 수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애당초 팀 내에 총에 관해 강한 '고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나도 딱히 고집은 없는 편이었다. AK-47 정도는 알지만, 구경의 이야기라든지 조금이라도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면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도 안 나오고, 평소처럼 트위터를 돌아보기로 했다. 테마는 `총`으로 좁힌 뒤, 트위터 검색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한 개, 특이한 계정을 발견했다. "이 사람, 총의 장전 모션 영상만 계속 올리고 있네?"


게다가 모든 트윗이 영어고, 해시태그만 일본어였다. 영어 레벨은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꽤 자연스럽고 익숙해보였다. 적어도 일본인이 주로 쓰는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아니었고, 슬랭도 섞여 있었다. 외국인일까? 소녀전선을 좋아하고 영어에 능통하다면 중국인이나 한국인일 가능성도 있는데, 트윗에 간자체나 한글은 없었다.

어쨌든 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본에 살고 있을 가능성은 작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문제는 총의 장전 애니메이션에 집착이 있고, 계속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뭐 조금이랄까, 절대로 이상한 사람일 거야(지독한 편견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총 이외에도 무언가에 비정상적으로 집착이 있는 별난 사람이겠지. 그정도가 딱 좋다. 팰월드는 총에 집착이 있는 사람이 꼭 만들어주었으면 했다. 일단 연락해보자.

곧바로 트윗에 댓글과 DM을 보냈다. 영어로 보낼까 잠시 고민했지만, 일본어로 답변이 돌아온다면 일본인이 확실하다는 생각에 우선 일본어로 보내봤다. 그러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왠지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놀랐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게임업계 경험자인지 여부였다. 이 정도 퀄리티의 동영상을 올리고 있고, 일인칭 시점에서의 장전 모션 동영상을 공유하고 있었으니 아마 게임 업계 경험자이리라. 아니, 어쩌면 애니메이션 업계나 CG 업계일지도 모른다. 이 근처는 업계가 가까우니, 성과물만 봐서는 특정하기 어렵다. 만약 의뢰한다면 게임업계 경험자가 당연히 좋다. 가장 알고 싶은 의문점을 솔직하게 물어보니, 바로 답변이 왔다.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완전히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경험 0입니다"

경험 제로라니, 무슨 뜻이야? 취미? '게임회사'라는 질문이 나빴을 가능성이 있다. 게임회사 대신 애니메이션, CG 업계 또는 그 외 업계에서 CG 애니메이션에 종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만약을 위해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지금은 프리터입니다. 이 취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는 것일까. 바로 구글 미팅으로 약속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정말 편리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업계 경험이 없고 현재 홋카이도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이나 툴의 사용법은 모두 유튜브를 보며 독학으로 배웠다고 했다. 무섭다. 독학으로 여기까지 갈 수 있는 것인가. 영어는 FPS를 플레이하며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는 것 같다. 일본인 대부분이 대학생이 되기까지 10년 이상 공부해도 습득하기 어려운 영어를 FPS를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익히다니, 솔직히 보통이 아니다(입사 후에 쓰기 외에도 읽기, 듣기, 말하기까지 모든 것을 충분히 구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의 실력을 보기 위해 개발 중인 동영상을 제공하고, 개선점을 물어보기로 했다. "다람쥐가 위에 탄 상태의 동영상입니다. 캐릭터 측의 동작도 포함해도 괜찮으니,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라는 의견을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우선 시프트 때문에 바쁜 상황이라는 반응이 왔다. 정말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나보다. 질문을 보낸 시간이 밤 20시였기 때문에 역시 바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은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5분 뒤에 그로부터 아래의 답장이 왔다.




이것은 '진짜'다. 25분 만에 이러한 대답은 보통은 쓸 수 없다. 글에는 열의가 배어 있었다. 게다가 초면에, 이 정도의 지적을 겁내지 않고 보내오는 것은 대단하다. 지적한 내용도 그야말로 타당한 것들이었다. 틀림없이 평소에도 FPS를 오랫동안 플레이하고 있고, 총의 애니메이션에 집착하는 사람이리라. 이런 사람이 필요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총 게임을 만들어야 해. 인터넷은 언제나 없는 자의 편이다.

곧바로 그와 업무 위탁 계약을 했다. 놀란 것이, 그는 아직 20세였고, 게다가 중졸이었다. 스무 살에 독학으로 인터넷을 사용해 애니메이션 기술을 익히고, 취미로 총기의 장전 애니메이션을 오로지 유튜브와 트위터에 올리고 있던 것이다(게다가 그 영상들의 조회수는 수십만 회를 넘기고 있었다).

내심 소설 같다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현대의 우수한 젊은이라는 생각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도 2D 아트 쪽에 천재를 한 명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그러한 시대가 온 것이라고 납득하기로 했다.

업무 위탁 계약을 한 뒤 원격으로 한달 정도 같이 일했는데, 업계 미경험이고 언리얼 엔진4도 제대로 만져본 적 없을 그의 습득력은 상당히 빨랐다. 태도도 공손하고, 배우는 것도 빠르고, 적극성도 높았다. 이런 젊은 사람은 작은 회사에서는 보통 얻기 어렵다. 곧바로 사내에서 그에게 풀타임으로 함께 일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수한 젊은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든, 20세든, 중졸이든, 게임업계에서는 전부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지금의 성숙해져버린 게임 업계에서는 어쩌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켓 페어에서는 상관 없다. 실력만 있으면 돼.

즉시 그에게 연락했고,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바로 사원이 되어달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금방 마무리됐지만, 이후 부모님이 불안해하셨다고 한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갑자기 게임업계 미경험자인 중졸이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 도쿄의 작은 게임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싶으니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와줘'라고 말했다고 한다면 보통 사기를 먼저 의심할 것이다. 아마 그 자신도 불안했을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다. 그의 희망에 따라 우선 2주에서 1개월 정도 도쿄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해보기로 했다. 왕복 비행기는 당연 우리가 부담했다. 이쪽에서 부탁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가 도쿄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의 흐름은 빨랐다. 그는 실제로 대면에서 일해도 우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생활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도쿄를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 연말에 바쁘게 주거지도 마련해줬다.

그리고 현재, 2년 동안 그는 더 우수해졌다. 그의 재능은 총 애니메이션 하나에 그치지 않았다. 직접 동영상을 만들어본 경험 덕분인지 효과음 조정도 매우 잘했다. 무엇보다 작업 속도가 빠르다. 툴을 다루는 속도가 빠르고, 어떤 요청도 빠르게 처리해준다. 캐릭터 모션에 이르러서는 언리얼 엔진에서 사용되는 '블루프린트'라고 불리는 프로그래밍에 가까운 로직 구축도 대부분 그가 작업해주었다.

모션, 그림 만들기, 카메라워크, 소리 붙이기, BP 제작, 그리고 총의 조정까지. 처음엔 총의 조정만 의뢰할 생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을 부탁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작은 회사에서는 전문가인 스페셜리스트보다, 무엇이든 맡아주는 제너럴리스트가 정말 중요하다. 그와 만날 수 있었던 기적에 감사하고 있다.

※ ''팰월드'라는 우연의 이야기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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