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화 논란①] 우물쭈물하기엔 석 달 밖에 안 남았다

기획기사 | 양영석,정필권,김규만 기자 | 댓글: 47개 |



지난 12월,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가 공식적으로 게임 중독 및 게임 장애를 정신건강질환으로 분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질병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의 2018년 개정판인 ICD-11에 게임 중독 및 장애를 정신건강질환에 등재한다는 것이다.

28년 만에 개정판이 나오게 되는 ICD-11에 '게임중독'이 공식적으로 실리게 된 문구는 현재 초안 단계다. 해당 질병의 증상으로 ▲게임과 여타 행동의 우선순위 지정 장애 ▲ 적절한 게임 플레이 시간 조절 불가 ▲게임과 관련된 부정적인 결과 무시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질병 등재가 이뤄지면, '게임'을 즐기는 행위 자체가 '병'으로 진단될 수 있다. 있다 없다 논란이 컸던 '게임중독'이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인정되는 셈이다. 게임업계뿐 아니라 의학계에서도 찬반이 논란이 컸다. 삭제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반대로 질병 등재로 올바른 연구가 이뤄질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WHO 발표가 있은지 약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 현재 게임중독의 질병 등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그리고 업계의 대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인벤에서는 WHO의 게임중독 질병 등재와 관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 및 움직임과 국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해 소개하는 기사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업계 차원에서 어떤 대응이 필요한 것인지 조명해보았다.



1. WHO 게임중독 등재 발표 그 이후
현재까지 어떤 일들이 진행되었나?

그레고리 하틀(Gregory Hartl) WHO 대변인은 초안에 추가된 '게임 장애'에 대해 "임상적 설명만 포함되어 있을 뿐, 예방이나 치료를 위한 옵션은 게재되어 있지 않다"고 전한 바 있다. ICD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건강 추세와 통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반, 질병과 건강 상태를 보고하는 국제 표준"이며, "전 세계 의료 종사자 및 연구자가 조건을 분류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학계에서는 등재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의 시선이 대립하고 있다. 반대측에서는 ICD-11의 '게임 중독' 질병 등재가 너무 성급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나 정신 질환 진단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DSM이라는 표준이 있다. DSM에는 게임중독과 관련해 '인터넷 게임 장애는 정식 장애로 간주되기 이전에 더 많은 의학적 연구와 경험이 요구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질병 등재는 이와는 정면으로 충돌되기에, 의학계에서는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 것이다. 반대로 ICD-11에 게임중독이 등재되어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질 수 있으며, 올바른 진단과 건강한 연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의학계의 입장을 종합하자면 '논의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코펜하겐 IT 대학의 아아르세트 이스펜(Aarseth Espen) 등 26명의 교수는 초안 등재의 기반이 되는 연구의 질이 낮고, 학자들 사이에서 일치된 입장이 없다고 이미 2016년에도 ICD-11에 게임 중독 등재를 반대하는 발표하기도 했었다.

멤피스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메레디스 긴리(Meredith Ginley) 박사는 DSM-5의 게임 과몰입 개념에 대해서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게임 과몰입으로 인해서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는 등 임상적인 피해 사례가 있다"고 언급했다. 유형은 다르더라도 사회적인 피해가 발생했으며, 게임 과몰입에서 지속적인 몰입과 집착, 금단현상, 사용 통제에 대한 저항 등이 일어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의학계에서는 현재 '게임중독'과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미 '게임중독'이나 '인터넷 게임중독'이라는 키워드로 많은 논문과 임상 실험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Ukie

게임 업계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만큼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미국 게임산업협회인 ESA는 발표가 있은 후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반대 성명을 냈다. ESA는 객관적인 연구 결과 게임이 중독물질이 아니라고 이미 널리 알려졌단 점과 정신건강질환과의 비교 시 발생하는 문제를 들어 WHO의 의견을 부정했다.

영국의 게임 및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산업 지원처(Supporting the UK's games and interactive entertainment industry, Ukie)도 이 의견에 대해서 반발했다. Ukie는 ESA, ESA Canada, ISFE 및 IGEA와 협력해 WHO에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였으며, 현장 전문가와 합의한 결과 WHO의 제안에 결함이 있고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관련내용 : World Health Organisation and "Gaming Disorder"(출처 : Ukie)

국내에서도 반발이 있었다.지난 1월 출범식을 맞이한 제 9대 한국게임학회 위정현 회장은 WHO의 게임 중독 질병 공식화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글로벌 연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ICD-11 초안(ICD-11 Beta Draft)에서는 게임 장애를 '정신적, 행동적 또는 신경 발달 장애'의 하위분류로 구분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중독성 행동으로 말미암은 장애'로 구분하며, 디지털 또는 비디오 게임을 통한 과몰입을 근거로 장애로 판단하고 있다.

초안은 등재되기 전까지 꾸준히 변화하고 수정될 예정이지만, 게임중독 항목에 대한 변화는 크게 없다. ▲게임과 여타 행동의 우선 순위 지정 장애 ▲ 적절한 게임 플레이 시간 조절 불가 ▲게임과 관련된 부정적인 결과 무시 등 내용 변화는 크지 않으며 제외 항목에 조울증세 두 가지가 추가된 정도다.

이번 ICD-11 등재는 어디까지나 '초안'이긴 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규정하는 기준도 아직 없는 상태고, 질병으로서 '게임 장애'를 분류한다는 것이 초점이다. 질병으로 게임 장애를 분류하면서 각 '국가'가 해당 질환에 대한 예방, 치료 및 재활을 위한 보건 의료 및 자원 배분에 관한 결정을 도울 취지라는 것.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역시 ICD를 골격으로 작성되고 있다. 그만큼 ICD-11의 게임 중독 등재가 한국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는 뜻이다.



2. 국내의 움직임 현황
게임 중독 임상 자료 수집

ICD-11은 현재 초안만이 등록된 상태이며, 상기했던 대로 몇 가지 조건을 마련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신의학의 기준점이 되는 DSM(정신장애진단통계편람)-5에서도 인터넷 중독과 게임중독을 동일시하여 설명해뒀다. 그만큼 '게임중독'을 정의하고 관련한 진단과 치료법을 찾는데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 '인터넷 게임장에가 존재한다는 경험적인 증거'를 이유로 일부 문제가 있는 게이머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문제가 없으며, 극소수를 치료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도에서다. 국내에서 누적된 임상 사례나 관련 연구들이 진행되는 것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 DSM-5 (2013년판)에서도 '인터넷 게임 장애'를 후보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국내에서 쌓인 데이터 대부분은 우울증 치료에 가까운 약물치료와 가족 심리치료, 가족 간의 관계회복 등을 치료 방법으로 선택하고 있다. 의학적 외에도 심리학적으로 변인을 알아내려는 시도들도 있다.

약물치료는 환자의 상태,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ADHD 치료제를 투약한다. 2009년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가 '인터넷 중독의 예방과 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 학술 세미나'에서 공개한 인터넷 중독의 이해와 치료 임상예에서는 인터넷 게임 중독 사례의 12세 환아를 대상으로 약물 치료와 인자-행동치료, 집단치료, 가족 치료 등의 치료 방법을 사용한다.

또한, 항우울제 또는 금연치료제로 쓰이는 '부프로피온'과 항우울제 '에스시탈로프람'을 인터넷 게임 플레이로 인한 우울증 장애에 사용하여 효과를 비교한 중앙대학교 한덕현 교수의 2017년 논문도 작성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도박문제 치유처럼 다른 정신과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환경적 요소를 개선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개인 및 가족 상담, 미술과 음악 치료, 인지행동 치료 등 가족과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사회적 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병행되는 과정이다. 즉, 큰 틀에서는 도박과 같은 행위 중독 치료와 ADHD나 우울증 등 다른 정신적 사회적 문제로 인한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게임중독 치료로 진행되는 셈이다.




게임 중독 치료에 대한 실제 사례는 현재 국내 의학계가 취합하여 WHO측에 전달될 예정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중국 등에서 실제적인 임상치료 데이터가 존재하고, 약물 및 정신의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논문과 임상 데이터, 설문조사 결과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WHO측이 지금까지 나온 실제 임상사례를 모아서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등록하기 위해 사용하리란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한편, 이와 동시에 정치적인 이슈들도 언급되고 있다. 17년 12월 28일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특히 아시아 국가에서 게임장애를 포함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는 WHO 관계자의 말을 기사에 담기도 했다. 압력을 넣은 국가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타 국가와 비교해서도 강력한 해소 정책을 도입한 중국과 인터넷 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려 했던 한국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전했다.



2. 해외 논문 사례
찬성과 반대, "첨예한 대립"

해외 또한 '게임 장애(Gaming disorder)'가 ICD-11 초안에 등재된 것에 대한 연구자들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게임 장애 등재에 찬성하는 연구자들은 주로 '과도한 게임 플레이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과 '세계 각지에서 이를 치료하기 위한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ICD-11 초안에 게임 장애 등재하는 과정에 참여한 연구진들의 논문에서는, 크게 '게임 중독'의 유병율과 과도한 게임 이용으로 인해 겪는 건강상 부담 사례, 그리고 게임 장애에 대한 각국 공중 위생학적 관점과 신경생물학적 측면으로서의 '게임 장애' 등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장애' 등재에 찬성하는 측의 연구진들은 해당 논문에서 '게임 장애' 증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병율이 아시아 지역에서는 약 10%에서 15%, 북미 유럽 지역에서는 1%에서 10%사이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 사례에 대해서는 과거 중국 청년 네트워크 협회에서 실시한 인터넷 중독자 사례를 인용한 것으로, 논문에서는 이러한 수치가 온라인 게임을 반영한다고 서술되어 있을 뿐 역시 인터넷 중독과 게임중독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아시아 지역과 북미 지역 사이에서 유병율에 차이를 보이는 근거 또한 확실하지 않았다.

또한 논문에 따르면, 홍콩의 경우 지난 2012년부터 인터넷과 게임 장애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2017년 1월까지 약 308여 개의 사례를 수집했으며, 그 중 63%가 온라인 게임과 연관되어 있었다. 일본은 2011년 처음 게임 장애를 전문으로 하는 진료소가 개원했으며, 2016년까지 약 28개소로 늘어났다. 이렇듯 ICD-11에 '게임 장애' 등재를 찬성하는 연구자들은 중국과 일본, 한국, 태국 인도 등 여러 아시아 국가와 소수 유럽 국가, 북미와 호주 등지에서 지금도 게임 과몰입 치료를 위한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상태라고 밝히며, 더욱 명확한 진단 가이드라인과 게임 장애에 대한 기준이 필요한 실정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의 '게임 장애'에 대한 주장도 있다. 해당 논문은 '게임 장애'와 도박의 신경생물학적 토대에 유사한 부분이 상당하다고 설명하며, ▲손실에 대한 민감성이 감소 ▲보다 충동적인 행동 선택 ▲변화된 보상 기반 학습 ▲인지 유연성 변화 등 부분에서 도박 장애인과 유사한 결과를 나타낸다고 밝혔다.



▲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현재도 게임 과몰입 치료를 위한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게임 장애' 등재에 반대하는 의견 또한 물론 존재한다. 프레이밍햄 주립대학 앤서니 빈(Anthony M. Bean)교수 외 3인은 공동 집필한 논문을 통해, "현재 '게임 장애'를 뚜렷한 병리적 장애로 제시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게임 중독'에 대한 개념 자체의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ICD-11에 등재되는 것은 이후 탐색적인 연구보다는 게임 장애를 병리적 현상으로 확증한 채 연구를 장려할 가능성이 있다" 지적했다.

ICD-11에 '게임 장애' 등재를 반대하는 연구진들은 크게 ▲지금까지 진행된 '게임 장애'에 대한 연구가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점과, ▲전 세계에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 '게임 장애' 진단에 부합하는 사람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점, 그리고 ▲환자가 두 가지 이상의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을 경우에 대한 오진의 가능성이 있음을 들어 '게임 장애'를 섣불리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혔다.

'게임 장애' 유병율이 도박 중독에 비해 절반 수준에 미친다고 분석한 네타 와인스타인(Netta Weinstein) 카디프 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데도 '중독'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극소수인 점 또한 이해하기 힘들다"며, "게임이 (ICD-11 초안 상)같은 카테고리에 묶여있는 도박과 같이 강박성을 끌어들이는 활동이라고 정의한다면, 여기서 이야기되는 게임의 성격과 중독성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지, 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증상을 겪고 있지 않은지 의문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와인스타인 교수는 '게임 장애' 유병율이 도박 중독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들은 지금까지 게임 중독 증상을 진단하기 위해 사용된 설문 조사가 종종 DSM-5 진단 지침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더욱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DSM-5는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약칭 APA)가 발급하는 서적으로, 최신 개정판인 DSM-5 조차 아직 '인터넷 게임'은 중독물질로 분류되어 있지 않으며, 향후 연구되어야 할 항목으로 거론되고 있다. '게임 장애' 등재를 반대하는 연구진들은 "게임 중독과 관련된 대부분의 진단 조사가 약물 남용이나 도박, 학대 등 장애 진단에 사용되는 기준을 재구성한 것이며, '헤로인'과 같은 단어를 '비디오 게임'으로 대체하는 식의 단순한 질문 구성으로는 그 결과의 타당성에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WHO의 성급한 '게임 장애' 등재가 모럴 패닉의 결과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Stanley Cohen)이 명명한 모럴 패닉 이론은 일종의 문화적 행동에 대해 '사회 전반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대중의 오해와 과장된 인식 등이 확산되어 일어나는 사회 불안 및 집단 패닉 현상을 일컫는다.

이러한 모럴 패닉 현상은 과거 만화책과 핀볼 머신의 등장, 1980년대 락 음악의 성행부터 비디오게임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존재해 왔으며, 이를 통해 정치적 쟁점으로서 부상하여 새로운 규제나 정책이 도입된 경우도 많았다. 소위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에 대한 과장된 인식이 확산된 환경에서는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연구 및 보고서, 정책을 촉진하기 위한 압력이 가해지며, 그 결과 WHO가 ICD-11 초안에 게임 장애를 등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 모럴 패닉 이론 모델




5월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주도하려는 '연대'와 '움직임'이 필요하다.

'게임 중독'의 질병 등재는 의학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고, 성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행위 중독'이 질병으로 등재되는 게 두 번째인 만큼 신중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등재가 되는 순간 수십억 명의 게이머들과 게임 업계 관계자들이 중독자 및 중독 물질 생산자가 될 수도 있다.

실제 등재의 의미가 그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중'에 인식이 그렇게 되어버린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한때 ICD에 질병으로 등재됐던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고 증명되고,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대중에게 퍼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연구에 대한 반박은 연구로 진행되어야 한다. 논문에 대한 반박 역시 논문으로 이뤄져야 한다. 아쉬운 점은 여기서 하나 더 발생한다.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고 중독에 대한 연구를 한 논문의 수는 다방면으로 많다. 그러나 게임을 긍정적으로 보고 중독을 반박하는 연구는 앞선 사례에 비해서 부족하다. 많은 연구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케이스가 많아져야 올바른 과학적, 논리적 판단이 가능하다. 부정적 연구의 비중, 케이스가 더 많다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의학계가 이렇게 다방면으로 연구하며 양측의 의견이 대립을 이루고 있는데, 정작 가장 뜨겁고 크게 반발해야 할 게임 업계의 반응과 대응책은 실망스럽다. 그마나 해외에서는 성명 전달 등 빠른 대응과 반응이 나왔지만, 국내는 정말 '미진하다'라고 할 정도로 큰 대응이 없다.



협회는 '글로벌 연대를 준비하고 있다'고만 밝힐 뿐, 눈에띄는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게임 장애가 ICD-11 초안에 등재되고 정식판에도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임에도, 국내에서는 업계 차원의 실질적 결과물을 보여주거나 행동을 나서는 모습은 전무한 상태다. 미국 게임산업협회인 ESA(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가 올해 1월 게임 장애 등재 반박 성명서를 낸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작년 12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별다른 성명도, 대응도 없었다.

얼마 전 취임한 위정현 게임학회 학회장이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을 피력하고 대응할 것을 이야기했지만, 막상 기간을 따져보면 3개월여 밖에 남지 않아 기간적으로 매우 촉박하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글로벌 연대를 준비하고 있다고만 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연구의 질적인 측면을 차지하더라도, 의학적인 측면에서 게임 장애를 입증하기 위한 연구, 실제적인 치료 임상 사례들은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쌓였던 데이터들은 결국 게임 장애 질병 등재로 확산됐고, 업계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성장해 버렸다.

ICD의 초안은 2006년부터 이뤄졌다. 게임에 대한 장애 및 중독 연구가 쌓여가는 시점에서 이에 대응하고 대립할 수 있을만한 결과물이나 연구 및 논문을 게임 업계에서도 의학계와 연계해 마련했어야 좀 더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다. 사회 및 대중적 인식 역시 과학적 연구와 근거가 있을때 더 빠르게 변화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이런 연구가 매우 부족한 편이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ICD를 골격으로 만들어진다. 당연히 영향이 크다.

이제 문제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5월까지는 약 3개월도 남지 않은 상태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전 세계적 공조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도 시간이 촉박하다. 그리고 업계 차원에서 이슈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끌려가던 양상에서 반대 측으로 주도하려는 연대와 움직임이 필요하다.

등재가 이루어지던 이루어지지 않던 간에, 이미 게임 장애를 병리적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본격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 끌려다니다 우려했던 모든 일들이 현실에서 구현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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