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내 친구는 왜 게임은 안 하면서 게임 방송은 볼까?

기획기사 | 허재민 기자 | 댓글: 139개 |



"그 게임 재밌더라. 스토리도 좋고."

평소에 게임에 관심이 없고 즐기지 않던 친구가 어느 날 내게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게임에서 큰 재미와 몰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임 DNA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비게이머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도 그런 친구라고 알기에 별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가 내게 먼저 게임에 대한 말을 꺼냈을 때 어떻게 게임을 접하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임 방송

이 친구가 게임을 접하게 된 것은 알고 보니 스트리머가 방송하는 게임 방송에서였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실황이 방송 콘텐츠로, 스트리머는 게임을 하면서 시청자들과 소통한다. 누구나 알만한 게임에서 처음 보는 인디게임까지 방송인마다 그 선택의 폭과 장르가 다양하며, 이에 따라 유저 성향도 각각 다르다. 누군가는 특정 게임 방송만을 찾아보며, 누군가는 게임과는 상관없이 특정 방송인의 영상을 위주로 본다.

게임 방송은 이제 새로운 콘텐츠는 아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게 자리 잡은 1인 방송의 가장 흔한 콘텐츠 중 하나로 게이머라면 분명 한두 번쯤 게임 방송을 봤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게임을 굳이 직접 플레이하지 않는, 그리고 게임 자체에 그렇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게임 방송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게임, 보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
내 친구는 롤은 안 하면서 롤챔스는 챙겨본다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보는 것이 왜 재미있을까?

그럼 게임을 보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 비게이머들까지 게임을 보게 하고,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걸까?

먼저 게임을 직접 하지 않고도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하면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좌절은 게임플레이에 몰입하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다음번에는 성공해야지, 이번에는 찾을 수 있을 거야, 하면서 게임 플레이를 계속 진행하게 해주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즐거운 좌절은 모든 이에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앞으로의 게임 진행이 어떻게 될지, 이걸 해결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하지만, 직접 게임을 해나가는 플레이 과정을 진행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게임 방송의 직접 하지 않고도 게임을 소비할 수 있다는 점. 이 때문에 게임방송은 비단 게임 플레이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게임을 잘 못하거나 플레이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좋은 대안으로 다가온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지만, 시간이나 여건이 안되는 게이머들은 게임 방송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게임을 소비할 수 있으며, 피로감 없이 게임 진행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어른이 되면 하루종일 게임을 할거야!", "은퇴하면 하루종일 게임만 할거야!" 게임할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심지어 내가 직접 플레이할 때는 별로 재미없었던 것 같은데, 방송인의 위트와 스토리텔링으로 재밌게 보게 되는 게임들도 발견하게 된다. 방송인의 역량에 따라서 게임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무난한 스토리로 진행되는 게임에서 재미있는 유머를 던지는 정도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거나 게임 룰을 자체적으로 새롭게 만들어 플레이하는 방법까지, 게임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기존 게임에서 새로운 독자적인 재미를 창조해낸다.

이와같이 방송인에 따라 시청자마다 보는 이유가 달라지기도 한다. 정말로 게임을 잘하는 게이머의 방송은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며, 게임의 공략으로써 보면서 참고할 수 있는 모범답안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해본 게임이라도 '저렇게도 플레이할 수 있구나', 하면서 새로운 방식이나 컨트롤을 보며 감탄하며 집중하게 된다.

'잘하는 사람의 플레이를 보는 것'은 e스포츠와도 관계가 있다. e스포츠는 게임의 승부와 경쟁을 강조한다. 누가 얼마큼 잘해서 이기는가. 게임의 룰, 선수의 플레이, 그리고 승부가 확실히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리고 관중이 함께 즐기기에 e스포츠는 재미있다. 물론 이는 스포츠가 재미있는 이유기도 하다. 스포츠를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직접 축구를 하지 않고 축구를 보는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듯이, 게임도 그렇다.


보기에 재미있는 게임은 따로 있다?
'갓겜'이 모두 보기에도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게임이 보는 재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직접 플레이하는 것을 전제로 하므로 직접 조작하고 경험하는 재미를 소거했음에도 재미가 있으려면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활발한 e스포츠 시장을 확보한 게임 및 개인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임들. 이러한 '보는 재미가 입증된 게임'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기에 직접 하지 않고 보기만 해도 재미있는 것일까.

"어떤 게임이 보기에 재밌는가." 방송을 준비하는 개인 방송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재밌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 방송하는 사람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방송의 메인 디쉬, '스테이크'라고 할 수 있는 핵심 콘텐츠 '게임'이 재미있어야 한다. 근데, 여기서 게임이 재미있다고 함은 꼭 갓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가 시청자가 재밌어 할만한 게임, 두 번째가 내가 재밌는 게임. 제일 좋은 것은 나도, 시청자도 재밌는 게임이겠지만 차선은 내겐 조금 덜 재미있더라도 시청자가 보기에 재밌는 게임이에요." - 트위치 스트리머 풍월량



▲직접 했을 때와 보기에 둘다 재미있는 것이 최선, 차선은 보기에 재미있는 게임 (사진 출처: 풍월량 트위치 페이지)

먼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야 하는 만큼 눈으로 게임 진행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게임이 적합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은 시뮬레이션 게임은 기본적으로 2D게임이나 플래시게임보다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수치나 표로 확인하게 되는 게임보다는 게임 진행을 비주얼적으로 간단하게 보여주는 게임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심즈, 심시티, 문명 정도가 반응 좋았던 시뮬레이션인데, 가시성이 좋다는 게 공통점이죠. (중략) 게임방송에서 2D게임과 플래시게임이 특히 인기 있는 이유가 바로 가시성이에요. 오히려 3D 대작 게임은 화질 좋아도 대부분 시청률이 굉장히 떨어져요." -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가시성 외에 화제가 되는 게임인가도 중요한 요소이다. '병맛'이거나, 하드코어한 게임이거나, 보기만 해도 신기한 게임이라던가. 와, 이런 게임도 있네, 싶은 게임들이 그 예다. 최근 트위치 방송 순위에서도 20위권 안에 들었던 게임, 'Getting Over It (일명 항아리 게임)'도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Getting Over It'은 먼저 그 비주얼부터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항아리에 들어간 대머리의 남자. 근데 그냥 '병맛'게임인가 했더니 레벨디자인까지 하드코어 했다. 희한해서 방송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그 극악의 난이도 때문에 계속 시청하게 됐다.



▲"으아아아악!" 스트리머들을 고통받게 했던 '항아리게임' (출처: 우왁굳의 게임방송)

"어디 한군데 결함이 있어도 어? 이 음식 처음 맛보는 음식인데? 신기한데? 이런 부분에서 더 큰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 트위치 스트리머 우왁굳

게임을 하기 전에 스토리 스포일러를 당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의외로 스토리 위주의 게임들이 방송에서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스토리가 중요한 대작게임들도 좋은 예시가 되겠지만, 좀 더 눈에 띄게 게임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게임들은 쯔꾸르 게임류다. 게임 제작 툴인 쯔꾸르를 가지고 만든 게임들을 일컫는 쯔꾸르 게임은 분명 비주얼적으로도, 스토리부분에서도 간단한 게임들이 많다. 간단한 게임임에도 개인 게임 방송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게 쯔꾸르 게임이기도 하다.



▲의미심장한 스토리와 한눈에 이해하기 쉬운 쯔꾸르 게임류 (출처: 대도서관 TV)

먼저 앞서 말했듯 2D 게임인 만큼 비주얼적으로 보고 이해하기에 쉽다는 점이 있다. 평면적으로 게임을 진행하고, 스토리 진행은 캐릭터와 대화창이 등장해 진행된다. 집중해서 화면을 주시할 필요도 없고,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복잡한 이펙트도 없다. 캐주얼하게 틀어놓고 보면서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또한, 쯔꾸르 게임은 대부분 의미심장하고 자극적인 스토리 진행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개인 제작자가 많으므로 정말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스토리 전개를 볼 수 있고, 유저들은 궁금해하면서 계속 보게 되는 것이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게임 캐릭터로서의 경험이 극대화된 게임들 또한 방송에서 사랑받고 있다. 공포 게임류가 그 예인데, 공포게임은 공포감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게임 자체로써도 끊임없이 유저로 하여금 게임 캐릭터에 이입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방송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반응과 연출이 나오고, 유저도 캐릭터에 감정이입하는 동시에 이에 놀라는 방송인에게도 감정이입하게 된다. 무서우면서도 웃긴, 감정의 밀땅이 이루어지는 것이 공포게임 실황이다. 물론, 직접하기에는 너무 무서워서 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하기 때문도 있다(...)



▲공포게임 방송,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 궁금하지만 직접 할 용기가 없을 때, 방송을 찾기도 한다 (출처: 대도서관 TV)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것
정해진대로 즐겨야하는 법은 없다

게임 방송은 이제 방송인과 시청자, 그리고 방송만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케팅으로서의 게임방송은 이제 너무 유저들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어떤 게임인지 보여줌으로써 홍보하는 것은 물론, 게임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어? 이거 재밌겠는데, 사서 해봐야겠다'라는 구매로 이어지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트위치는 게임 방송을 보고 유저가 바로 게임을 구매할 수 있도록 게임 커머스 기능을 추가했다. 트위치에서 판매하고 있는 게임사의 게임을 파트너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면, 방송 하단에 바로 게임을 구입할 수 있는 버튼이 생긴다. 게임 방송을 보던 유저는 보고 있는 게임이 마음에 들 경우, 바로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임 개발사-게임방송-시청자이자 잠재 고객을 이어주는 것이다. 아프리카 TV 또한, 지난해 8월 '배틀그라운드' 방송을 보는 유저가 바로 게임을 구매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한 바 있다.



▲트위치 게임 커머스

이외에도 게임 플레이를 하는 스트리머에게 개발자가 암호화폐로 댓가를 지불하도록 해주는 플랫폼, 'Refereum' 등 게임 방송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게임 방송을 통해 게임을 알릴 수 있다는 정도의 마케팅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게임 방송 시청자와 게임사를 연결해주는 적극적인 형태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게임은 재밌다.

기본적으로 이 문장에서는 '게임을 하는 것은 재미있다'가 주된 의미였을 것이다. 좀 더 폭넓게 보면 게임을 하는 것을 보는 것, 게임에 대해서 정보를 찾는 것,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까지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전부 포함해 '게임은 재밌다'라는 문장은 이제 '게임과 관련된 모든 과정이 재밌다'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이제 비단 직접 플레이하는 방식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적극적인 방식 말고도 다른 사람이 플레이하는 실황을 보면서 즐기는 방식으로도 파생되고 있다. 비단 게임 방송뿐만이 아니다. 게임 속 룰을 바꾸거나 하면서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게임을 즐길 새로운 방법을 찾기도 한다. 유저들은 '비시즈'에서 정석적인 공성무기를 만들지 않는다. '배틀그라운드'에서 스트리머들은 좀비 모드를 구상해내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캐릭터만을 가져와 2차 창작으로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스토리만을 찾아보는 유저도 있다.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것은 애초에 고안된 1차적인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게임뿐만이 아니다.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게 고안된 '겨울왕국(Frozen)'의 싱어롱(Sing Along) 상영, 콘서트에 온 듯이 응원하면서 볼 수 있도록 상영된 '킹 오브 프리즘' 응원 상영까지.



▲'따라부르고 싶다'는 관객의 수요를 위한 '겨울왕국' 싱어롱 상영

분명, 게임 방송은 개발사의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 저작권 침해행위이므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들이 스포일러를 위해 방송을 허락하지 않는 등, 예민한 문제는 있다. 하지만 확실히 게임 방송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고, 비단 게이머뿐만 아니라, 게임을 자주 플레이하지 않았던 비게이머들도 즐겨 찾는 콘텐츠가 되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법은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플레이하면서 즐거운 기본적인 의미의 게임인가, 보면서 즐거운 방송의 주요 콘텐츠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이야깃거리인가.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으면서 방송을 통해 접하는 비게이머들의 게임 콘텐츠 소비.

콘텐츠를 깊게 즐기는 것을 소위 '판다'고 한다. 땅굴을 파고들어 가듯이. 모든 재밌는 게임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분명 '파고들 만한 여지가 있는 게임'은 재밌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게임도 재밌다. 게임을 직접 하지 않으면서 게임을 소비하는 비게이머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게임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게임 외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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