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EA가 느꼈던 '돈의 맛', 스타워즈 팬들을 분노케하다

기획기사 | 정필권 기자 | 댓글: 69개 |



EA가 공을 쐈다. 그것도 아주 큰 것으로 말이다.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로 인하여 촉발된 전리품 상자(Loot crate, 랜덤 박스)의 도박 논란은 북미와 유럽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벨기에에서는 랜덤 박스를 도박의 일종으로 분류하는 사안을 조사 중에 있고, 미국에서는 하원의원이 게임 내 랜덤 박스를 강하게 비판했다.

물론, '배틀프론트2' 이전에도 랜덤 박스는 존재했다. 배틀프론트2 이전에 출시했던 '섀도우 오브 워', '어쌔씬크리드 오리진'에도 마찬가지로 게이머의 소액 결제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상품들이 준비됐다. 하지만 게임을 넘어 정치적인 이슈까지 발전한 것은 '배틀프론트2'에 이르러서다.

서구권 플레이어들은 어찌하여 '랜덤 박스'를 비판하게 되었으며, 정치적인 이슈,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번지게 된 것일까.


유저들은 왜 '배틀프론트2'에 분노 했는가
소액 결제와 콘텐츠의 불합리함 속에서




서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랜덤 박스가 등장한 것은 '배틀프론트2'가 처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했던 타이틀들은 대부분이 소액결제 시스템과 전리품 상자를 게임 내에 탑재하고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오버워치'의 전리품 상자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콘솔과 PC 외에 모바일까지 확장한다면 게임 내에 랜덤 박스를 포함한 타이틀은 더욱 늘어난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배틀프론트2'를 기점으로 터져 나왔고, 가장 이슈가 됐다. 스타워즈의 팬덤이 많았던 것과 게임들의 소액결제 추가와 EA에 대한 반감이 쌓인 것과 더불어, 패키지 판매 후 인게임 소액결제의 구조. 그리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가 가장 불합리했기 때문이다.

게임 내 재화로 영웅을 해금할 수 있었으나, 해금을 위해 요구되는 비용이 너무 높았던 것이 문제였다. 스타워즈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다스베이더'를 해금하는데 약 40여 시간이 걸린다는 것. 모든 해금요소를 언락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자 유저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 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를 쓰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콘텐츠의 언락까지 걸리는 비용이 많이 들고, 여기에 인게임 결제 상품의 가격, 상품에서 등장하는 재화의 수량 등 문제가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더 큰 이슈를 낳게 된다. 해외 매체에서는 직접 100$ 어치의 전리품 상자를 인게임 결제로 구매했지만, 베이더나 루크 스카이워커를 해금하기에는 1/2도 못 미치는 양의 크레딧을 얻었다고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쏟아지는 불만과 미디어의 지적 속에서 EA는 해금 가격을 75% 인하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문제가 계속 이어졌던 것은 소액결제 시스템과 관련한 EA의 발언과 행동에 기인한다. 벨기에 게임위원회가 '오버워치'와 '배틀프론트2'의 랜덤 박스가 도박으로 분류할지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EA 측은 "전리품 상자는 도박이 아니다"라고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다.

이후에도 소액 결제에 관한 이슈가 계속되자,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사태도 겪었다. 소액결제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테지만, 전작보다 판매량도 떨어졌다. 그리하여 결국 EA는 게임 내에서 소액 결제를 제거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정식 출시일인 11월 17일이자, 디럭스 에디션 구매자들이 조기 플레이를 시작한 11월 14일로부터 3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 그 3일 동안 전 세계 커뮤니티와 스타워즈 팬들은 폭발했었다.

돌이켜보면 나름 빠른 조치였다. 하지만 조기 플레이 3일 만에 문제가 되었던 시스템을 제거했음에도, 루머와 유저들의 부정적인 인식. 그리고 정부 차원의 논의만이 남아있었다. 그만큼 논란이 된 사안이었고, PC와 콘솔에서의 추가적인 결제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을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현재, 각국의 규제 움직임
벨기에, 미국, 그리고 ESRB



▲ 코엔 긴스(Koen Geens) 벨기에 법무장관 (이미지 출처: VTM NIEUWS)

'배틀프론트2'의 랜덤 박스의 도박여부가 논란이 되자, 가장 먼저 논의를 시작한 나라는 벨기에였다. 벨기에 게임위원회는 현지시각 11월 22일 랜덤 박스를 도박이라고 보고 검토에 들어갔다. 코엔 긴스(Koen Geens) 벨기에 법무 장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구매해야 하는 랜덤박스는 벨기에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추방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미국의 크리스 리(Chris Lee) 하원 의원은 배틀프론트2의 전리품 상자를 '약탈적 행위'로 규정하고 기자 회견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그는 배틀프론트2를 ' '스타워즈의 껍데기를 쓴 온라인 카지노'(StarWars themed online casino)라고 일컬었으며, 함정(trap)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미성년자 및 정신적, 감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이들로 하여금 수백만 원에 이르는 현금을 게임에서 사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도 전했다.

또한, "이듬해 관련된 법안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해당 법안은 미성년자층에게 랜덤 박스가 포함된 게임 판매를 금지하고, 게임 내 다양한 종류의 과금 메커니즘을 규제할 수 있을 예정"이라며, "현재 다양한 주의 입법자들과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호주 빅토리아 주 정부 도박 위원회에서도 랜덤박스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빅토리아 주 정부는 영국 도박위원회와 다르게 '랜덤 박스'가 정부가 규정하는 도박의 정의에 합치한다고 밝혔지만, 강제적인 집행보다는 기타 부서와의 협력을 통해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예를 들어 게임 내에 도박 요소가 포함되어있을 경우, 등급 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즉시 해당 게임에 R등급을 부여하는 등의 조처를 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과 캐나다의 게임 등급 분류 심사를 담당하는 비영리 자율 규제 단체 ESRB(Entertainment Software Rating Board)에서는 지난 10월, '랜덤 박스는 도박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알린 바 있다. ESRB는 코타쿠를 통해 랜덤 박스는 원하는 것이 아닐수는 있어도 확실하게 인게임 아이템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며, 수집형 카드 게임과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배틀프론트2 출시 이전부터 논쟁이 계속되었던 랜덤 박스의 도박 논란은 지금 시점에서도 진행 중이다. '도박(gambling)'이라는 정의를 어디까지 내릴 것인지부터, 게임 내에서의 랜덤 요소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전방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사례 - '데일리 판타지 스포츠'
무언가를 '도박'으로 판단했을 때의 논쟁들

북미 지역에서 게임과 관련한 사행성과 확률. 즉, 무작위성을 도박 요소로 볼 수 있는지 논쟁한 것은 랜덤 박스가 처음이 아니다. 북미에서 인기를 끌었던 데일리 판타지 스포츠(Daily Fantasy Sports, 이하 DFS) 또한 현금을 걸고 가상의 게임을 진행하며, 이를 통해 보상을 얻는다는 점에서 도박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판타지 스포츠는 실제 존재하는 종목의 선수를 선택하여 자신의 팀을 구축한 뒤, 실제 선수의 기량 (안타, 타점, 득점 등)을 경기 단위로 집계하여 점수를 매기고, 이를 통해 승패를 겨루는 게임이다. 보통 시즌제로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기간이 길었으나, 기술의 발달을 거치며 주기는 점차 짧아졌고 시간단위를 1주일 또는 1일로 하는 옵션이 생겼다. 이 중 1일마다 진행되는 경기를 데일리 판타지 스포츠 (Daily Fantasy Sports)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유료 DFS 이용자 수는 2014년 기준 142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사업 규모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DFS는 현금을 사용한다는 점과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로 플랫폼이 올라가면 게임 회전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에서 사행성과 관련한 논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도박 여부는 세 가지로 결정된다. 첫 번째는 비용투입(input). 두 번째는 우연성(chance). 세 번째는 보상(Prize)이다. DFS는 참가비를 받기 때문에 비용투입 요건을 갖췄고, 우승 상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보상 요건까지 충족한다. 하지만 팀을 구성하고 경기를 예상하는 등 플레이어의 기술적인 요인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우연성의 여부가 갈렸다.




이외에도 법적인 측면에서는 이용자들의 위치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미국은 불법 인터넷 도박 규제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은 연방 또는 주 법률에 따라 도박이 불법인 장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여 합법적인 주의 도박 게임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도박이 되면 이용자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확인 기술이 필요해지고, 개인의 정보를 수집해야만 했다.

연방 유선통신법 또한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했다. 이 법률에서는 도박 관련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 도박 사업자가 각 주간 설치된 유선통신망 시설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DFS를 도박으로 판단해야 할지 많은 단체와 인사들을 통해 법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해석과 공방이 진행됐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300개가 넘는 회사들이 모여 별도의 자체적인 규제와 정책을 펴기에 이른다.

99년 설립된 판타지 스포츠 트레이드 위원회(Fantasy Sports Trade Association, FSTA)는 자율규제를 위해 판타지 스포츠 컨트롤 에이전시 (Fantasy Sports Control Agency, FSCA)를 출범했다. 그리고 모든 회사에 적용되는 표준, 내부통제 방안, 감사정책 등을 설립하기로 합의한다.

도박 논란을 벗어나 자율 규제로의 전환을 알린 시점이었으며, 동시에 무언가를 '도박'으로 판단하기에는 법적인 그리고 개념적인 논의와 논쟁이 필요함을 알린 것이었다.


논란은 커지고 커져 하나의 결과로.
EA는 주사위를 던졌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사행성과 도박 논란이 계속되는 '랜덤 박스'를 두고 많은 논쟁과 고민이 오고 가는 시점이다. 비단 이러한 논란은 서구권 시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모바일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인 조치, 자율적인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다. 중국 문화부의 '랜덤 박스 아이템 확률 표시 의무화', 국내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서구권에는 그간 확률형 아이템, 랜덤박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불만에 그쳤다. 그나마 모바일 게임과 관련해서는 과도한 인게임 결제 피해 소송만이 진행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배틀프론트2'를 거치며 폭발한 랜덤 박스 관련 이슈는 정치권은 물론 산업 전반의 주목을 받는 의제로 성장했다. 따라서 서구권 게임 업계는 이 문제를 그대로 흘려보낼 수만은 없게 됐다. 어떻게든 답변을 내리고 방향성을 도출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이 갈림길에서 당사자인 게임업체, 입법부와 사법부, 협회가 어떠한 해석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업체가 이용자들에게 '신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겠지만, 업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충실하고 깊은 수준에 이르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 EA 블레이크 요르겐슨 CFO

이미 소액결제 시스템을 제거하고 난 뒤에도, EA의 블레이크 요르겐슨 CFO는 "실제로 게임에는 다양한 타입의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 몇몇 사람들은 돈보다 시간이 더욱 여유롭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시간보다 돈이 여유롭다. 언제나 그 둘의 합의점을 찾아갈 계획"이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이와 같이 단기적인 결과만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시선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만 업계 전반에 논의할 수 있을 것인지. 근시안적인 시선 대신, 조금 더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 논란을 바라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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