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 게임 속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들

기획기사 | 김규만 기자 | 댓글: 11개 |



"때로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가끔은 내가 왜 여기 있는지도 궁금해.
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을 뿐인데, 그럴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어."

이건 미국의 랩퍼 맥클모어(Macklemore)가 자신의 딸이 태어나기 몇 달 전에 발표한 노래 "Growing Up"의 가사 중 일부다. 맥클모어는 이 노래를 통해 곧 태어날 아이에게 "미적분 시험은 커닝하고, 무단횡단을 할 때는 하기 전에 좌우를 살피라"는 등 주옥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아직은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가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왠지 이 노래를 듣고 있을 때면 '우리 아버지가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면'이나 '나도 언젠가 먼 미래에는 이런 아빠가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들고는 한다. 당장 그럴 생각이 있든 없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무게는 점점 나이를 먹을 수록 현실로 다가오는 기분이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은 게임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아버지들의 다양한 모습을 모아봤다. 보통 이런 기획은 5월 어버이날 즈음에나 어울릴 법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데 어울리지 않는 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듣도 보도 못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올 여름,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지금이라도 한 번 쯤 안부 전화를 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 아버지에 그 자식?
자식의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




'자식은 부모의 거울'라고 했던가.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가장 먼저 세상을 마주하고, 배워나간다. 그만큼 부모의 취미나 관심사, 혹은 직업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가고는 한다. 그리고, 일부는 부모님과 같은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는 경우도 만나볼 수 있다.

이토록 자식의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의 사례는 '오버워치'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바로 토르비욘과 그의 딸 브리기테의 관계인데, 아트워크 및 게임 속 스프레이 등을 통해 창고에서 이것저것 만드는 아버지의 어깨 너머(머리...너머인가?)로 공학에 관심을 갖게된 브리기테를 자연스럽게 연상해볼 수 있다. 물론 토르비욘은 딸보다 포탑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고, 브리기테는 아버지의 친구인 라인하르트를 더 따르는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 스프레이로 확인하는 훈훈한(?) 부녀지간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상남자 중의 상남자, 마커스 피닉스 또한 세월이 흘러 슬하에 자식을 하나 두게 되었다. BADASS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의 이름은 'JD 피닉스(제임스 도미닉 피닉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뇌미닉으로 더 유명한 마커스의 친우 도미닉 산티아고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기어스 오브 워4'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JD 피닉스를 처음 봤을 때는 아버지와 비슷한 점을 한 번에 캐치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어머니 앤야에게서 물려받은 금발 머리에 수염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까지, 게다가 붙임성도 좋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아버지인 마커스와 닮은 구석을 첫 눈에는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거침없이 사지에 뛰어드는 것은 역시 아버지와 판박이. 성격은 조금 달라도,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 상남자 중의 상남자 마커스 피닉스



▲ 성격은 조금 달라도, 피지컬은 역시 피를 속일 수 없나 보다


절박한 상황에서 더욱 빛나는 부성애
황폐한 세상, 보호자로서의 '아버지'



▲ 절박한 상황일수록 부성애는 더욱 빛난다(영화 '더 로드' 中)

'보호자로서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많은 매체에서 그동안 다뤄 온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또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도 우리네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일터로 향하고 계신다.

그러나 정부 체계가 사라지고,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상에서 아버지는 일터로 나가는 대신 보다 직접적인 수단으로 가족을 지켜낸다. 이런 황폐한 세상 속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게임은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와 텔테일의 어드벤처 게임 '워킹데드'가 대표적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주인공 조엘은 세상이 황폐해지기 전, 어린 딸 사라를 둔 가장이었다. 프롤로그이자 튜토리얼 격인 초반부에서는 사라와 결별하게 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게임을 시작한지 10분 만에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잘 표현한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수 많은 세월이 흘러, 조엘은 '엘리'라는 이름의 어린아이를 특정 장소까지 데려다 줘야 하는 임무를 받게 된다. 결별한 친딸 사라와 동갑내기 정도로 보이는 엘리를 보면서 조엘을 처음에는 일부러 정을 두지 않으려는 듯 행동하지만, 함께 여러 사건을 겪어 나가며 사라의 죽음 이후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을 차츰 열게 된다.

엘리가 워낙 똑 부러지는 성격에, 급박한 상황에서도 알아서 잘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크게 보호자로서의 역할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 후반부에 가서는 납치된 엘리를 되찾기 위해 혈혈 단신으로 수십 명의 적과 대치하는 조엘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배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말이다.




다음으로 텔테일 워킹데드 첫 번째 시즌의 주인공 '리 에버렛'은 무기징역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이송되는 중 좀비의 습격을 받는다.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 리는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게 되고, 둘은 함께 하루하루를 생존해 나가며 세상의 멸망을 지켜보게 된다.

텔테일의 어드벤처 게임이 늘 그렇듯 플레이어는 주인공 리의 시점으로 닥치는 상황마다 여러 가지 결정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종종 클레멘타인에게 위험이 닥치는 상황이나, 클레멘타인에게 위협을 가하는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에피소드 이후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고른 선택지의 비율을 보면 대다수가 클레멘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선택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엘과 리는 '테이큰'의 리암 니슨처럼 전직 특수부대 요원도,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가장이지만,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이 보호하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서슴없이 나서거나 아이를 위해 희생을 선택하는 등 '아버지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자식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존재
기구한 운명의 '아버지'들



▲ 표정부터 기구한 운명이 느껴지는 아버지 '에단 마스'

위의 두 사례가 황폐한 세상에서 함께 있는 자식들을 보호하는 역할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면, 지금 소개할 두 인물은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기 위해 무엇이든 감수하는 아버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퀀틱 드림의 어드벤처 게임 '헤비레인'에 등장하는 에단 마스는 잘나가는 건축가였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첫째 아들과 사별하고, 둘째 아들인 숀은 오리가미 킬러에게 납치당하는 기구한 운명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들을 납치한 오리가미 킬러가 에단에게 건넨 요구는 시험에 통과해 아들을 향한 그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에단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기도, 전류가 흐르는 바닥을 지나가기도, 또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직접 절단하기도 한다. 이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는 단 하나, 아들 숀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 주인공은 살해당하는 아내와 아이의 납치를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했다

'폴아웃4'의 주인공은 핵전쟁으로 지구가 폐허로 변하기 직전 방호 시설인 '볼트 111'에서 급속 냉각되어 200년 동안 잠들게 된다. 잠시 냉동 시설이 멈췄을 때 누군가 자신의 배우자를 살해하고, 아들을 납치하는 것을 목격했던 그는, 볼트에서 탈출한 뒤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 황무지 보스턴을 배회하며 아들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아들이 납치됐던 시점이 언제인지, 또 어떤 단체에 의해 납치되었는지 등 아무런 단서도 없이, 주인공이 폐허가 된 도시를 탐험하기로 결정하는 데는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물론 실제 게임은 오픈월드 형태로 아들을 찾는 메인 퀘스트 전에 삼천포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것도 다 아들을 되찾기 위한 수행의 일환이라고 생각하자.

경험과 노련함을 통해 조언을 주는 존재
조언자로서의 '아버지'




세월이 지나며 아이와 아버지는 점점 나이를 먹는다. 언제까지고 앞장서서 보호해주어야 할 아이인줄 알았더니,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다. 이제 아버지는 보호자로서의 역할 대신, 그동안 경험을 통해 자식들의 여정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맡는다.

폴란드 개발사 CDPR의 '위쳐' 시리즈의 주된 내용은 주인공 게롤트와 그의 수양딸 시리의 관계이긴 하지만, 늑대 교단의 스승인 베스미어와 게롤트의 관계 또한 주목할만하다. 베스미어는 스토리상 가장 나이가 많은 위쳐이자, 늑대 교단의 위쳐들을 이끄는 스승으로서,게롤트를 포함한 제자들을 제 자식처럼 여기는 인물이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어 오며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게롤트에게 아버지의 보호는 더 이상 필요 없지만, 베스미어는 게롤트와 함께 여정을 계속하며 경험과 노련함에서 우러나오는 여러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프라이프 시리즈에 등장하는 일라이 밴스 박사는 '하프라이프2'에서 고든 프리먼 박사를 돕는 여주인공 알릭스의 아버지다.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한 상황에서도 심지 곧은 딸을 키워낸 만큼 훌륭한 아버지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에 더해 자신의 딸인 알릭스가 주인공을 따라 사지에 뛰어들겠다고 할 때에도 딱 잘라 거절하지 못 하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자식이 선택한 길인 이상 반대하기 보다는 응원하는 쪽을 선택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 어느새 어른이 돼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것도 어쩌면 아버지의 숙명


처음부터 완벽한 아버지는 없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들



▲ GTA5의 주인공 마이클은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아버지는 자식 앞에 떳떳하고, 존경받는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한다. 총각(?) 시절 어떤 일로 이름을 날렸든, 그것은 아버지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가 그보다 더 중요히 여기는 것은 자식이 그를 어떻게 보느냐이기 때문이다.

GTA5의 주인공 마이클은 악명 높은 은행 강도이면서, 동시에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싶어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활약(?)하는 직업을 가진 이상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짐짓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지만, 마이클은 거액을 주고 상담을 받거나 아들, 딸들이 처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전쟁의 신도 아들 앞에서는 아버지가 된다

왕년에 올림푸스 신들의 씨를 말려버린 '전쟁의 신'도 아들 앞에서는 꼼짝없는 아버지다. 올해 초 출시되어 시리즈의 부활을 알린 '갓 오브 워(2018)'에서 노쇄한 크레토스는 아들 아트레우스와 함께 아내의 유언을 달성하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그 여정에서 크레토스는 위에서 소개한 보호자로서의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자 하지만, 역시나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아버지인 제우스를 살해한 크레토스다. 어쩌면 그가 올바른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갓 오브 워'에서 보여주는 아버지 크레토스의 모습은 어딘지 약간은 가부장적인, 우리네 아버지들과 비슷한 점을 많이 보여준다. 자상하게 감싸안는 것보다 윽박지르는 것이 편하고, '내가 그렇게 컸으니 아들 또한 강하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들 아트레우스도 마찬가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 하고, 그렇기에 둘은 함께 있는 와중에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조차 망설였던 크레토스. 그러나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무자비했던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싶었던 전쟁의 신은 점차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배워 나가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조금씩 달리 보기 시작한다. 이처럼, 전쟁의 신조차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무던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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