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겨울왕국'을 장식한 '얼음 마법' 아트워크의 비밀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3개 |



게임의 기본적인 툴을 짜고, 세부적인 규칙까지 설정하는 '기획', 이런 기획자가 만든 기획을 실제로 구동될 수 있도록 구현하는 '프로그래머',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코딩 덩어리에 피부와 살을 입혀 게임으로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보통 게임 개발자라 하면 이렇게 세 가지 직군으로 분류된다. 물론 더 파고들면 이 세 가지 대분류도 굉장히 세세하게 나눌 수 있지만, 어떻게든 세 분류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심지어 세 명이 모여 단기간에 게임을 만드는 '게임잼'도 시작 전에 기획, 아트, 프로그래밍으로 인원을 분류해 한 명씩 짝지어준다.

그만큼 게임 산업은 분업이 잘되어 있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산업이다. 가끔 혼자서 세 가지 일을 다 해치우고 게임을 만들어내는 괴수 같은 개발자들이 등장하곤 하지만, 이게 어디 쉬운 일이랴. 모두가 협업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게임 개발'에서는 웬만하면 잘하는걸 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타 직군의 일을 배워두면 분명 도움이 되긴 한다. 업무를 전달받을 때도 상대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고, 두 번 말할 필요 없이 알맞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간 사람도 있다. 단순히 협업에서의 효율 상승을 위해서가 아닌, 본인의 작업물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다른 직군의 기술까지 독학으로 배운 사람. 라이엇게임즈 R&D팀에서 일하고 있는 유재현 아티스트다.

NDC 마지막 날의 첫 강연. '코딩으로 아트에 자율성 부여하기'라는 제목으로 NDC 연단에 오른 유재현 아티스트가 발표를 시작했다.



▲ 라이엇 게임즈, 유재현 아티스트


■ 왜 아티스트가 '코딩'을 배웠나?

먼저, 유재현 아티스트는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래픽 아트를 전공했고, 모션 디자인을 공부한 끝에 자연스럽게 CG 분야에 일자리를 틀었다. '왓치맨', '맨인블랙'을 비롯한 몇 편의 실사 영화에서 CG 기술을 담당한 그는, 곧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시네마틱 영상들과 픽사의 애니메이션에도 작업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디즈니'에 입사한 그는 '주먹왕 랄프', '겨울왕국'등의 큰 프로젝트를 겪으며 경험을 쌓았고, 지금의 위치인 '라이엇 게임즈'의 R&D팀에 이르렀다.

그냥 현상만을 보면, 무난하고 훌륭한 커리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늘 의문을 품었다. 그래픽 아트 툴은 매우 훌륭했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쓰고 있었으며, 툴만 가지고 작업을 해도 딱히 모자라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긴 힘들었다. '툴'은 결국 '툴'일 뿐이었다. 십자드라이버로는 십자 홈이 파인 나사밖에 돌릴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만능 드라이버를 얻고 싶었다. 툴에서 지원하는 기능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 시점의 고민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자신이 쓰는 툴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다.

"아티스트의 상상력이 있는데, 이게 툴을 만든 프로그래머의 상상력 안에서만 발휘되는 거랄까요. 뭔가 답답하잖아요."

곧, 그는 독학으로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스스로 코딩을 공부했고, 기존의 툴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고쳤다. 그는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고, 높은 기술적 레벨을 달성하고 싶었다. 자신이 쓰는 툴이 어떤 과정으로 일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콘텐츠 제작자로서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드는 길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것만이 길은 아니다. 강연의 중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더 좋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꼭 컴퓨터 공학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저 그 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있다면, 더 폭넓은 응용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


■ 실제 사례: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상

이어 유재현 아티스트는 실제로 그가 작업할 사례들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첫 사례는 픽사의 애니메이션인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었다. 하늘에서 비 대신 음식이 떨어진다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는 햄버거가 약 5천번 정도 떨어진다. 문제는 이 5천가지 애니메이션을 전부 다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줄이고 줄여 100가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 해도 각자의 아트 성향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아트 디렉션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유재현 아티스트를 이 과정을 간단한 코딩 작업으로 해결했다. 땅에 떨어져 뒹구는 부분은 아티스트의 성향이 짙게 드러나는 부분이나 6가지 정도의 샘플 애니메이션을 미리 만들어 두고,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이벤트화해 이 때 미리 만들어둔 애니메이션이 콜백되도록 함수를 짰다. 그렇게 5천 개의 햄버거는 모두 비슷한 느낌으로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매우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 이렇게 떨어지는 햄버거가 5,000개...

이어진 사례는 게이머라면 한 번 정도는 봤을 '디아블로3'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대격변'의 시네마틱 영상. 여기서 유재현 아티스트는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길을 구현했다. 이는 기존의 툴로는 다고 만들기 힘든 연출이었는데, 일반적인 시뮬레이션으로 이를 연출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불이 꺼져 버린다. 그렇다고 억지로 불을 남기면 폭발성 애니메이션으로 변환되어 버린다.

유재현 아티스트는 실린더 모양의 절차적 지오메트리를 구성했다. 그리고 실린더의 중앙에 기준선을 만들어, 그 주변으로 Vertex를 찍으며 도형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엔 기준선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색상을 구분했고, 여기에 실제로 들어갈 색상을 도입해 연출을 완성했다. 기준선에서 가까울수록 붉은 불빛에 가깝게, 멀수록 연기의 색에 가깝게 말이다.



▲ 데스윙 뒤로 이어지는 저 끊임없이 타는 불이 결과물

마지막으로 유재현 아티스트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의 예를 들었다. '겨울왕국'을 보면, 주인공 '엘사'의 움직임에 맞춰 눈꽃 파티클들이 마지 일정한 궤적을 그리듯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장면들이 있다. '디즈니'는 그들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마법' 연출 장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곡선의 종류를 패턴화해두는데, 이 기준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는 모양의 곡선은 사용할 수가 없다.

문제는 이 '마법 곡선'으로 파티클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툴이나 파티클 어트랙터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탄젠트와 벡터를 이용해 장면 하나하나의 파티클 움직임을 지정하면 만들 수야 있겠지만. 이렇게 해서야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간혹 마법이 등장하곤 하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겨울왕국'은 엘사가 마법을 난사하다시피 쏘아대기 때문이다.



▲ '엘사'의 팔을 따라 흩날리는 저 눈조각 파티클들이 결과물

그래서 유재현 아티스트는 임의의 곡선을 만들고, 이 곡선에 Vertex를 찍은 후, 탄젠트를 지정, 탄젠트 벡터들로 벡터 필드를 만들었다. 이후 이를 프로그램화해 곡선 자체로 벡터 필드를 구성해버렸다. 이렇게 작업을 하고 나니, 곡선만 설정해도 알아서 파티클이 곡선을 싸고 돈다. 디즈니의 마법 연출 패턴에 맞춰 곡선만 알맞게 그려 주면 되는 것이다.


■ '게임'에서도 가능할까?

마지막으로 유재현 아티스트는 이렇듯 '코딩'을 활용한 아트 디렉팅을 게임에 응용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많이 쓰이는 게임 엔진인 '유니티 엔진'의 에셋을 직접 만들어 공개했다. 앞서 '디즈니'의 사례처럼 곡선을 따라 파티클을 움직이는 기능. 유니티는 기본적으로 곡선 기능이 없고, 당연히 곡선을 따라가는 기능 또한 없기 때문에, 이런 연출을 쉽게 하려면 에셋을 이용해야 한다. 에셋은 '깃허브'에 등록되어 있으며, 자세한 사용법 설명은 영상으로 대체한다.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에 나온 저 자석 연출도 '커브 툴'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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