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 게임은 장르가 뭐요?"

기획기사 | 허재민 기자 | 댓글: 30개 |



퓨전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것이 서로 합해져 아예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퓨전은 자칫 이도 저도 아닌 무언가가 되기도 합니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퓨전 음식점들도 '무리수'같은 음식 조합을 시도해 금방 사그라들었죠. 하지만 제대로 융합된 퓨전은 기존 요소들에 대한 기대감과 새로운 요소에 대한 즐거움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게임도 빠질 수 없지요. 게임 장르의 경우 그 장르에서 유저가 예상하고 기대하는 바가 있어 자칫 실망감이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텐데요. 가끔은 오히려 유저들이 직접 장르를 파괴해 다른 방식으로 즐기기도 합니다. 처음 봤을 때 어떤 게임인지 상상이 안가는 '혼합장르게임', 한번 모아봤습니다.


나이츠폴
Knights Fall - 핀볼 게임에 사람이 들어가있다? 핀볼게임과 액션, 전략



먼저 핀볼게임과 액션 전략을 융합한 '나이츠폴(Knights Fall)'이 있습니다. 카본아이드의 '나이츠폴'은 핀볼게임의 모양을 가진 전장에 병사들을 발사시켜서 적들과 싸우는 게임인데요. '나이츠폴'과 동화 버전의 '타이니폴'을 통해 카본아이드는 '폴 게임 장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습니다. 사실 공들이 이리저리 튀며 부서지는 모습을 보면 다소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그것보다 '손가락 조작은 쉽게 머리 쓰는 건 어렵게'라는 카본아이드의 고민이 잘 느껴집니다.

'나이츠폴'의 게임룰은 간단합니다. 병사들을 발사시켜 적들에게 데미지를 입히거나 장애물을 해제하는데요, 병사들을 쏘는 방향은 정할 수 있지만 핀볼처럼 중력에 따라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병사들을 이용해 적과 싸운다는 점은 전략 게임과 같지만 발사하고 맞춰야 하는 부분은 슈팅게임과 같고 맵과 원리는 핀볼게임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전략 게임보다 속도감 있는 게임을 진행할 수 있고 조작도 쉽습니다.



▲ 핀볼 게임과 '나이츠폴'

장르를 혼합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적을 격파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

핀볼게임과 액션 전략이 융합되면서 '나이츠폴'은 기존에 핀볼게임보다 게임 플레이 목적의식이 높아집니다. 그저 투사체를 쏘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전투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인데요. 핀볼게임 속 맵 장치들이 재미있다는 점을 살리면서 어느 순간부터 게임 목적의식이 떨어지는 면을 적절히 보완합니다. 점수를 올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을 깨부숴야 하니까요.

그리고 핀볼게임 특유의 장치가 가득한 맵을 통해 다른 액션 전략성 게임보다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어디에 무슨 장치가 있는지, 어느 부분에 병사를 맞춰서 발동시켜야 할지 여기저기 뜯어보는 맛이 있지요. 병사를 일정 수 이상 투입해 무게로 문을 열거나 하는 장치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병사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요. 점점 병사로 안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겁니다.


좀비 스위퍼
ZombieSweeper - 이 주변에 아직 5마리가! 슈팅 디펜스와 지뢰찾기



1인 개발자 아크게임스튜디오의 '좀비 스위퍼(ZombieSweeper)'도 언뜻 보기에 어떤 게임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뢰찾기(MineSweeper)와 슈팅 디펜스 혼합된 게임입니다. 제2회 구글플레이 인디게임 페스티벌의 TOP3에도 들었던 '좀비 스위퍼'는 좀비를 처리하는 슈팅게임이지만 룰은 칸에 쓰여있는 숫자를 이용해 찾아내는 지뢰찾기와 유사합니다. 칸에 적혀있는 숫자를 보고 주변 칸에 숨어있는 좀비의 숫자를 유추해 찾아내야 하지요.

장르를 혼합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지뢰찾기라면 잘 알고 있지.

슈팅 디펜스와 지뢰 찾기가 혼합되면서 가장 먼저 룰을 이해하기가 수월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지뢰 찾기를 플레이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퍼즐형 게임의 경우 초반에 룰을 익히고 알아가는 것이 게임플레이의 장벽을 높여버릴 수 있는데 이런 점을 보완해줍니다. 다소 맵의 모습이 다르기는 하지만 지뢰찾기의 원리를 알고 있다면 금방 적응할 수 있게 됩니다.



▲ 모양은 달라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입체적인 맵과 권총, 소총, 샷건, 저격총, 전기톱 등의 다양한 공격아이템으로 타격감 있는 슈팅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뢰 찾기게임의 밋밋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해줍니다. 하지만 단순히 입체화된 지뢰찾기 게임이 아니에요. 좀비 사살, 협동, 공습 등 다양한 모드로 플레이 할 수도 있고, 좀비로 변이하지 않은 일반인을 구출하기도 해야 하지요.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
Crypt of the NecroDancer - 거기 너! 춤출까? 리듬게임과 로그라이크



리듬게임과 로그라이크가 융합된 '크립트오브더네크로댄서(Crypt of the NecroDancer)'도 있습니다. 브레이스유얼셀프게임즈에서 2014년 출시한 인디게임인 '크립트오브더네크로댄서'는 기본적으로 로그라이크 게임이지만 이동과 공격을 리듬게임을 통해 해야 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름부터 네크로'댄서', 하다 보면 여기가 던전인지 클럽인지 헷갈릴 정도죠.

'크립트오브더네크로댄서'에서는 화면 아래에 나타나는 박자에 맞춰서만 한 턴을 이용해 이동하거나 공격할 수 있습니다. 박자에 맞춰서 뛰어 한 칸씩 이동할 수 있고 박자가 맞지 않으면 행동이 실행되지 않습니다.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는 거에요. 또한, 캐릭터 이펙트나 디자인도 음악적으로 구성되어있어서 리듬게임이 그저 미니게임처럼 끼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융합되어있습니다. 상점에 들어갈 때마다 노래를 불러주는 상점 주인 목소리도 매력적이지요.



▲ 몬스터니 악기니?

장르를 혼합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움칫둠칫 앗 죽었네. 유쾌해.

'크립트오브더네크로댄서'의 리듬게임 요소들은 게임플레이에 박자감을 주고 난이도를 높여주는 요소입니다. 어려운 난이도와 조작이 묘미인 로그라이크 게임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는 부분이죠. 박자에 따라서만 공격이나 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박자를 확인하고 턴을 받는 게 중요하고 그 턴을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플레이에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생기고, 각 요소를 적절히 이용해야 하지요.

박자에 따라 춤을 추며 추격하는 몬스터를 보는 것도 유쾌합니다. '던전인데 춤 좀 춰볼까?'하는 마음으로 음악에 맞춰 움직이다 보면 분명 어려운데도 유쾌합니다. 그리고 융합되기에 어려워 보이는 리듬게임과 로그라이크라서 그런지 괴리감 자체도 재미있지요.


엔터 더 건전
Enter the Gungeon - 보스몹은 어디서 총알을 구해오는 걸까? 슈팅과 로그라이크



'크립트오브네크로댄서'가 리듬게임과 합쳐진 로그라이크 게임이었다면, '엔터더건전(Enter the Gungeon)'은 슈팅과 합쳐진 탑다운뷰 로그라이크 게임입니다. 어떤 게임인지는 '아이작의 번제'를 떠올리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총을 쏴 보스를 처치하되 보스가 날리는 탄막들을 피하는 컨트롤이 중요한 게임이죠.

혼합장르게임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엔터더건전'도 타이틀이 말장난이에요. 총(Gun)과 던전(Dungeon)이 합쳐진 건전에서 알 수 있듯이 슈팅게임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힘껏 뽐내고 있지요. 게임 내에도 수많은 패러디와 말장난이 숨어있어 알고 보면 볼수록 재미있습니다. 이건 총이 맞는가 싶은 패러디 무기도 있어 다양한 플레이를 해볼 수 있지요.

장르를 혼합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어렵다 어려워, 넌 나의 오기를 건드렸다.

먼저 난이도 부분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엔터더건전'의 난이도는 상당한 편입니다. 물론 로그라이크 게임 자체가 죽는 데에 패널티가 커서 어렵지만, 거기에 '엔터더건전'은 슈팅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난이도를 극대화합니다. 슈팅같은 경우 자칫하다간 얻어맞고 죽어버리기 일쑤인데 데스 패널티가 높은 로그라이크에서는 더욱 치명적이죠.

슈팅 게임의 특징을 살려 은폐가 가능한 점도 특징입니다. 주변의 엄폐물을 집어들어 적의 총알을 막으며 공격을 준비할 수 있고 벽 뒤로 숨어서 재장전 기회를 잡을 수 있지요. 슈팅게임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에요. 물론 집어든 엄폐물은 언젠가 부서지니 재빠르게 다음으로 이동해야 하는 부분도 난이도가 올라가는 이유 중 하나.



▲ 책상도 세워서 총알받이로!


로켓리그
Rocket League - 자동차도 축구가 하고싶어! 레이싱과 축구



2015년 출시 직후 스팀 1위를 하는 등 사랑받고 있는 '로켓리그(Rocket League)'의 경우 간단하게 말하자면 로켓이 장착된 자동차로 축구를 하는 게임입니다. 주황 팀과 파란 팀으로 나눠 골을 더 많이 하는 팀이 이기는 방식입니다. 레이스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부스트나 점프를 통해서 달리는 플레이와 일반적인 축구 플레이를 동시에 해야 하지요. 맵부터 레이싱트랙과 축구장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켓리그'는 2008년 PS3용 'Supersonic Acrobatic Rocket-Powered Battle-Cars'의 후속작입니다. 전작보다 그래픽이나 기능 부분에서 개선이 되었지요. 언리얼 엔진3을 이용한 그래픽으로 부드러운 배경과 레이싱카 모델링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커스터마이징도 지원하기 때문에 차체를 마음대로 꾸밀 수 있습니다.

장르를 혼합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모로가도 골로만(?) 가면된다!

먼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각각의 레이스와 축구의 기본 룰을 파괴합니다. 벽을 하든 상대의 차를 부수든 자기 팀의 골을 넣기만 하면 됩니다. 애초에 로켓을 달고 있는 자동차들이 선수들이에요. 승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캐주얼하게도 즐길 수 있지만 정확한 컨트롤은 꽤 많은 연습을 요구하는 편입니다. 그냥 축구게임이었으면 불편하게 느껴졌을 룰 파괴지만 왠지 레이싱카들이 발버둥치니까 재밌게만 느껴집니다. 범퍼카를 타는데 면허는 필요없는 것이랑 비슷한 느낌일까요.


비시즈
Besiege - 유저가 장르를 파.괘.한.다!




2015년 1월 스팀에 얼리억세스로 출시된 스파이더링 스튜디오의 '비시즈(Besiege)'는 무기를 제작해 공성전을 벌이는 공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다양한 부품들을 가지고 돌을 던지는 투석기를 만들어서 성을 공략해도 되고 탱크로 밀어버릴 수도 있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합니다. 일정 수 이상의 적을 죽이거나 부수는 등 스테이지마다 공략해야 할 미션이 달라서 그때마다 다른 공성 무기를 제조해 플레이하는 게 특징입니다.

...라고 제작자는 생각했겠지만 유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음대로 공성 무기를 조작할 수 있는 샌드박스 공성 시뮬레이션인 만큼 유저들의 아이디어는 한계가 없었으니까요. 이미 공성은 뒷전이고 각자의 창의성을 펼쳐내고, 어이없고 때로는 천재적인 다른이의 공성 무기(가끔은 공성에는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작품들)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지요. 애초에 두 가지 이상의 장르를 융합해서 만들어낸 게임이 아니라 유저들이 스스로 새롭게 즐길 방식을 창조해낸 장르 파괴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개발자가 상상한 공성무기



▲ 유저가 실제로 만든 것 뭐왜뭐



▲ 유저가 실제로 만든 것2

개발자가 의도했거나 유저들에 의해 게임은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융합되고 파괴되면서 또 새로운 장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기거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요소라면 모두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기지 못해도 과정 자체가 재미있을 수 있고 신기한 방법으로 클리어할 때도 있고 때로는 공성 자체는 관심에도 없을 수 있지요. '비시즈'는 혼합장르게임은 아니지만, 게임 장르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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