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슈 '콕!'] "변태!? 아닙니다. 개발자 취향입니다"

기획기사 | 허재민 기자 | 댓글: 76개 |
"다른 건 포기해도 이건 안돼!" 영화나 소설과 같이 게임도 표현 예술이다. 스토리를 통해서 주제를 전달하고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영화 안에 감독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듯이 게임 안에는 개발자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어떤 요소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게임안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다른 요소들을 바꿔가면서도 고집하는 부분들도 있을 정도다.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알고 보니 숨은 뜻이 있다던가, 당시에는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후에 재평가된다든가, 혹은 그냥 나사가 하나 빠진 아이디어라던가. 게임을 통해 개발자는 자신의 고집이나 취향을 드러낸다. 물론 개발자 혼자만의 은밀한 취향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통하는 법. 다들 드러내고 좋아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숨겨왔던 취향이 있지 않은가. 개발자의 사심이 가득한 요소는 뜻밖에 게임을 성공시키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내 취향은 이렇다고!"하고 당당하게 외치는 듯한 요소들. 변태라고 불릴지언정 포기하지 않는 게임 개발자들의 이상한 고집을 모아보았다.

* 게임이슈 '콕!'은 네이버 제휴 콘텐츠로 모바일 페이지 '게임·앱' 코너에 함께 게재됩니다.


■ "어딜 보는 거지?" 니어오토마타 2B 하반신 디자인




먼저 '니어: 오토마타'의 2B. 분명 '니어: 오토마타'를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도 떠오르는 바가 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훔쳐보게 되었고 의도치 않게 도전과제를 달성하게 했던 2B의 엉덩이. 이건 안 쳐다보는 게 이상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2B의 모델링은 딱 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티가 난다. 검은 치마를 두른 하얀 레오타드, 보일 듯 말 듯한 특유한 의상이 예술적이다. 잊혀지지 않는다.



▲의상 자체가 예술적이다

스퀘어 에닉스의 요코오 타로 디렉터는 확실한 게임 방향성과 작품관(그리고 취향)을 가진 디렉터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인터뷰로도 본인의 성격을 보여줬었고, 언제나 '에밀'의 가면을 쓰고 나오는 등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2B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쏠린 만큼 그에 대한 질문도 많았을 터. 그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여자가 좋아요. 이걸 기억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중략) 하지만 물론 마이너한 타이틀로서, 우리는 우리만의 특별한 스타일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서구 개발자들과 비교해서 우리는 묵직한 스페이스 마린 디자인을 만들어진 못할 겁니다.. 아마 반도 못 따라갈 겁니다. 추가로, 배경을 미래로 설정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유니크한 캐릭터를 자유롭게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어요." -요코오 타로

10,000년 전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우리도 10,000년 후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게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고 요코오 타로 디렉터는 사심 가득 2B 디자인을 위한 레퍼런스들을 캐릭터 모델러 히토 마츠데라에게 보냈다.



▲PS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2B 컨셉아트

"요코오씨의 취향은 위에 제가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들을 통해서 확실히 전달되었어요. (걱정 마세요. 저 사진들은 이상하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제가 공개할 수 없는 래퍼런스 자료라서 그렇습니다.) 그와 대화해볼 필요도 없이 그가 뭘 원하는지 이해했지요. 제 마음에도 쏙 들었어요." -히토 마츠데라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탄생한 '니어: 오토마타'의 2B 디자인은 많은 사람의 취향을 저격했다. 요코오 디렉터가 노렸든 순수한 사심이었든 말이다. 그럴듯한 전투복은 아니더라도 다소 노출이 있더라도 충분히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턴제에서 실시간으로 바꾼 디아블로, 새로운 역사를 쓰다




개발자들의 신의 한 수는 게임 자체는 물론 장르 전체에도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블리자드의 빌 로퍼가 원래 턴제로 구상되어있었던 '디아블로'를 실시간 포인트&클릭 방식으로 바꾼 것이 한 예다.

'디아블로'는 원래 턴제였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처음 디아블로 산을 보면서 '로그'와 '넷핵'의 영향을 받은 턴제 던전 크롤러 '디아블로'를 구상했고, 셰퍼 형제와 콘도르를 설립했다. 콘도르가 블리자드에 인수되기 전까지 '디아블로'는 1인용 턴제 DOS게임으로 확장팩을 염두에 둔 게임이었다. 블리자드에 인수된 후 블리자드의 빌 로퍼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턴제 방식을 실시간 포인트앤클릭 방식으로 바꾸기를 제안했다.



▲빌 로퍼, "실시간 방식으로 하는게 더 재밌을거라고!"

이미 구상된 게임의 중요한 부분을 갈아엎으라니, 데이비드 브레빅은 처음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확고한 빌 로퍼의 주장에 어떤 모습일지 확인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하루 만에(!) 턴제였던 디아블로를 ARPG으로 바꿔보았고, 그 결과는 지금의 '디아블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성공이었다.

"처음에 턴제로 작동하던 워리어가 움직이고 맵을 가로질러 걸어가 해골을 실시간으로 부수는 것을 보면서 '오마이갓! 이거 너무 멋진데!'하고 외쳤던 게 기억납니다."
-데이비드 브레빅





턴제로 제작되었다면 어쩌면 '디아블로'는 평범한 게임으로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당시 '이게 액션게임이지 RPG냐!'라는 유저들의 비판적인 시각에 "우리는 RPG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디아블로'를 만들려 했다"라는 뚝심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고집한 결과. 빌 로퍼의, 블리자드의 고집은 성공적으로 RPG에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결과를 가져왔다.



■ "재밌으면 됐어!" 염소시뮬레이터 개발 비화




제목은 변태? 유행? 예술? 이지만 이건 그냥 나사가 하나 빠진 거야! 라고 외치게 될 사례가 있다. 바로 2014년 4월 1일(날짜가 예술이다) 발매된 커피스테인사의 '염소 시뮬레이터'다.

"염소 시뮬레이터는 당신에게 차세대 염소 시뮬레이션의 세계를 열어 줄 최신 기술입니다. 더 이상 상상 속에서만 염소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됩니다! WASD로 역사를 쓰십시오."

염소가 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부숴 포인트를 얻고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염소 시뮬레이터'의 개발 비화는 간단하다. 정말 단순하게 개발자가 머릿속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그걸 실제로 플레이해보고 싶어서 만들어진 게임이다. "대체 염소 시뮬레이터는 왜 만들었니?"라는 질문에 실제로 "재밌어서 만들었어. 메에에~" 라던 커피스테인 개발사.



▲염소, 어디가

물론 신입 프로그래머들에게 물리 엔진을 교육할 용으로 만들었다는 비화(구실)도 있다. 언리얼 엔진3을 이용한 그래픽과 염소의 움직임을 물리 엔진을 통해 구현하면서 과정을 익힐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염소였던 걸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시면 말이죠. 지구 상의 모든 동물들은 염소 그 이상 혹은 그 이하로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린의 경우, 매우 키가 큰 염소라고 볼 수 있죠. 고양이는 조그만한 솜털로 뒤덮인 염소고요. 곰은 일반 염소보다 털이 더 풍성한 큰 사이즈의 염소입니다. -아르민 이브리사직



▲매우 키가 큰 염소의 사진이다

이 개발자들, 그냥 염소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놀랍게도 염소 시뮬레이터는 반응이 엄청났다. 실제로 게임으로 출시할 생각이 없었던 개발자들은 유튜브에 올린 염소 시뮬레이터 영상에 대한 반응을 보고 놀라 출시를 결정했다. '게임을 하는데 복잡한 룰이나 정교한 장치는 필요 없어! 재밌으면 그만이야!' 라는 반응은 '그냥 재밌어서 만들었어!' 라는 개발자의 의도와 놀랍게도 일치했다.

저희도 '염소 시뮬레이터'가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 몰랐어요! 그런데 유튜브에 올렸던 영상 조회수가 백만이 넘고 2백만이 넘어가는 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염소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르민 이브리사직

게임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까지 들게 한 염소 시뮬레이터. 개발자의 솔직한 의도와 염소에 대한 이상한 취향이 합쳐져 만들어진 놀라운 결과는 아닐까.



■ "평등하게 입고 벗자" 하라다 PD의 양성평등 수영복




어느 나라에서는, 어떤 시대에는 괜찮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이 글로벌화된 사회에서는 특히 나라마다 민감한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또한 나라마다 민감할 수 있는 소품이나 캐릭터를 조금씩 바꿔 개봉하기도 하면서 신경을 쓰고 있다.

철권의 수영복 논란의 경우 물론 문제는 서양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최근 여성인권에 대한 논란이 민감해진 만큼 글로벌하게 이슈가 되었다. 철권7 여성 캐릭터들의 수영복 코스튬이 여성의 성 상품화가 아니냐는 문제. 철권 시리즈의 하라다 카즈히로PD는 수영복 코스튬에 대해서 트위터에 "너희 나라의 프로불편러들에게 물어봐라" 라고 트윗했고 이후에 사과하고 삭제한 일도 있었다.




트위터에서는 다소 격해진 감이 있지만 하라다PD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전했다.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게임을 개발하기가 어려워졌어요."라고 유감을 표한 하라다PD는 수영복 코스튬은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이 시즌 라인과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영복 코스튬은 여성 캐릭터만을 위해 추가된 것도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라다 카즈히로PD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정보의 추출 과정에서 틀린 과정이 있다고 생각하고, 불공평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보면 로봇과 동물, 심지어 괴물에게까지 우리는 수영복을 입혔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사례만을 들어 비난하는 것은 불공평한 의견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캐릭터에게 수영복을 주었다. " -하라다 카즈히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하라다 카즈히로PD는 수영복 코스튬을 포기하지 않았다. 몇몇 유저들은 남성 수영복 코스튬으로 눈이 괴로울 수는 있지만(혹은 더 좋을지도) 하라다PD만의 평등한 관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의 수영복 코스튬을 비난하려면 캐릭터에게 수영복을 입혔다는 자체를 비난할지언정 여성 캐릭터만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들 눈정화하고 가시길



■ "NO엘린, NO테라" 소녀 가장 엘린의 탄생 배경




우스갯소리로(가끔은 진지하게) 테라의 소녀 가장이라고 부르는 '엘린'은 사실 공들여 만든 캐릭터가 아니었다. 주요 인기를 끌 것이라고 노리고 만든 캐릭터는 사실 케스타닉이었고, 대부분의 광고 포스터나 홍보는 케스타닉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꿀벅지와 귀여운 외모로 테라의 아이덴티티가 된 엘린의 개발 비화는 정말 특이하다.

"왜 우리 게임에 귀여움은 없냐능!"이라며 강력한 취향 존중을 주장한 개발자의 요구로 '귀여움'을 담당할 캐릭터가 필요하게 되었고, 캐릭터 포트폴리오에 없던 귀여운 소녀형의 '엘린'이 탄생하게 되었다. (뭐야 이거 무서워.) 심지어 엘린은 별도로 만들어진 종족도 아니었다. 성별이 따로 나눠지지 않았던 포포리 종족의 여캐로 구상되었고 귀와 꼬리를 단 소녀 컨셉으로 등장했다.



블루홀 페이스북 에 올라온 엘린 개발 비화 만화

"그리고 엘린은 원래 별도 종족도 아니었다. 포포리 여자였다. 이걸 바꾼 시점이 오픈하기 두 달 전이었는데, 그때 북미에서 피드백을 받았다. 그곳 사람들의 거부반응이 굉장히 심했다. 북미 사람들은 합리적이다. 세계관이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야 좋아한다. 엘린을 보고, '이 종족은 번식을 어떻게 하나요' 묻더라. 포포리는 동물이고 엘린은 인간형이니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솔직히 이 부분은 우리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결국 캐릭터 선택 창에서 종족을 분리시키기로 결정했다. 엘린이라는 이름도 그 때 지어진 것이다. 그전에는 그냥 포포리 여자였다. " - 블루홀 김낙형 전 라이브팀장

처음에는 사심반 밸런스반으로 개발되어 노엘린 노테라까지. 개발자의 고집이라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는 사례지만 사심이 가득한 디자인으로 테라를 먹여 살리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다소 불편한 시선에 '꿀벅지가 유행이라서 그런 거에요! 사실 저건 팬티가 아니라 짧은 바지에요!'라는 변명들을 애써 해야 하는 캐릭터기는 하지만 아직도 사랑받고 있음은 틀림없다. 심지어 스쿨미즈 코스튬 하나로 규모를 축소하려던 일본 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리지 않았는가.




개발자의 사심, 개발자의 고집은 무조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확고한 뚝심으로 무언가 특별한 것이 탄생함은 틀림없다. 물론 자신의 고집이 틀렸을 때 인정하는 모습도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취향은 의외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나만 좋아하는 건가'하는 마음에 혼자 조용히 '덕질'하다가도 어쩌다 말을 꺼내면 주변에서 나도! 나도! 하는 호응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개발자의 당당하고 확고한 의견이 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얻으며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한 번 더 개인의 취향에 당당해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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