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금 이 시간, VR 게이머들은 무슨 게임을 하고 있나?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18개 |



꽤 오랫동안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했건만, `VR 게임 시장`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조금 멀리 있다. 개인 단위 이용자의 수가 적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는 사람이 있어야 시장이 생길 테니까.

비싼 가격이 일단 한몫한다. 고성능 PC에 VR HMD까지. 제대로 갖추려면 수백만 원의 돈이 든다. 돈을 삽으로 푸면서 노는 아랍의 왕자들이나 미취학 아동 시절에 주주 딱지를 단 다이아몬드 수저들에게는 별것 아닌 돈이지만,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일반인에게는 단순히 `취미`활동으로 지출하기엔 부담되는 액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물건을 사는 이유는 돈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천만 원을 넘어가는 자동차는 여전히 잘 팔린다. 이제는 가격이 널을 뛰는 부동산도 잘 팔린다. 아니, 애초에 부동산 사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VR은 그 정도는 아니다. VR 게임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왜 이걸 사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필요하다. 애석하게도 아직은 그 답을 줄 수가 없다. 수없이 많은 개발사가 그 `해답`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조만간 등장하겠지만 말이다.


■ 현재 VR 시장의 상황 - 개인 이용자들을 고려해야 하는가?

2016년 말 기준으로 볼 때 VR 게임 시장의 규모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리서치 업체인 '슈퍼데이터' 기준으로 현재까지 팔린 VR HMD의 숫자는 약 630만 대. 그 중 70%가 넘는 451만 대가 삼성의 '기어 VR'이다. 오큘러스와 바이브, PS VR 등 메인스트림이 될 거라고 예측되었던 VR HMD의 숫자는 모두 합해도 200만 대가 안 된다.

시장 규모도 마찬가지다. 2016년 한 해 VR 시장의 총 시장 규모는 약 18억 달러. 같은 2016년 동안 모바일 게임은 406억 달러의 시장 규모를 보여줬다. 어찌 보면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VR은 모바일 시장보다 출발 시점도 상당히 늦은 편인데다, 모바일 시장의 압도적인 기기 보급량을 생각하면 상대조차 불가능하다. 시장 분위기를 볼 때 18억 달러 정도면 꽤 높은 수치로 보일 수도 있다.



▲ 2016년 VR 총 소득, 보급된 VR 기기(자료: SuperData)

하지만 이 지표로서의 시장 가치는 어디까지나 종합적인 수치일 뿐, 수익의 텃밭이 완전히 일궈졌음을 뜻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개인 이용자를 대상으로 VR은 아직 조금 멀리 있다. 단순히 판매량만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한데, 개인 이용자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쉬운 PC VR은 '오큘러스'다. 바이브는 룸스케일을 요구하는 콘텐츠가 많아 개인 사용자에겐 다소 부담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판매량은 바이브가 약 18만 대 정도 더 많다. 오큘러스는 B2B 판매를 하지 않아 상업적 용도로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바이브는 이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이 예상하는 VR 시장의 '최종 단계'는 결국 개인 이용자들이 주력이 되는 시장이다. 일반적인 일이다. PC 보급도 PC방으로 시작해서 결국 개인 단위 이용자에게 이르렀고, 스마트폰 또한 플래그쉽 기기로 시작해 생필품이 되었다. 지금이야 VR을 개인 단위로 쓰는 이들이 적지만, 2, 3세대 HMD가 개발되고 합리적 수준으로 가격이 내려가면 결국 최종 형태는 개인 이용자 대상이 될 것이다.



▲ 실제 VR 게이머의 수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다 보니 누구도 알 수는 없지만, 대다수 관계자는 2~3년 후, 빠르면 1년 반 정도면 보급이 어느 정도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때가 새로운 게임 시장이 활성화되는 시점이다. 수많은 VR게임이 등장할 테고, 주류가 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2~3년이면 게임 하나를 개발하기에 적당한 시간. 다가올 새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면 지금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인 거다.

그 전에 앞서, 지금의 VR 게임 시장을 살펴보고 트렌드를 보고자 했다. 과거의 유행은 현재의 유행에 영향을 주고, 또 현재의 영향은 미래의 발전 방향에 이정표가 되곤 한다. 온라인 게임 ESD인 `스팀`에는 따로 `가상 현실` 탭이 있다. 현재 VR을 즐기고 있는 소수의 게이머가 실제로 어떤 게임을 가장 많이 하고, 또 선호하는지 살펴보았다.


■ 1세대 VR 게임의 메인 장르는? - 액션 슈팅

많은 이들의 예상과 같이 초기 VR 시장의 메인 게임장르는 슈팅 FPS가 장악했다. 현재 스팀 VR 페이지에 올라온 게임 중 약 40%가량이 슈팅 장르일 정도. 각 게임 간의 차이는 `이동`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정도다. 몇몇 게임들은 `불릿 트레인`이나 `로보 리콜`처럼 순간 이동 기반의 이동 시스템을 사용한다.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Sairento VR`이 대표적인 예다.



▲ '액션' 태그가 안 달린 게임이 드물다

`Space Pirate Trainer`나 `Serious Sam VR`처럼 아예 룸스케일 이상의 이동을 요구하지 않는 게임도 있는가 하면, 그냥 패드나 컨트롤러를 통해 이동해야 하는 게임들도 있다. 동시에 그만큼 소재도 나뉜다. 물론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좀비`. 의외로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로봇`이다. 로봇의 경우 직접 고어한 연출이 나올 리 없는 데다 상대적으로 슈팅에 대한 부담도 적기 때문에(유혈, 심리적 장벽 등)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슈팅 게임은 VR 이라는 시장의 한계 속에서도 유의미한 매출을 보이곤 한다. 개발사 'Survios'의 슈팅 액션 게임인 'RAW DATA'는 판매 이후 한 달간 약 100만 달러(한화 약 12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물론 기존 게임시장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익이라고 할 수 있으나, VR 시장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의미있는 지표라 할 수 있다.



▲ 의미있는 수익을 보여준 'RAW DATA'

물론 기존의 논 VR 슈팅하고는 상당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양손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게임이 많으므로 기존 슈팅 게임에 자주 등장하던 총기보다는 흔히 `쌍권총`이라 말하는 `아킴보`의 비중이 높은 편이고, 도검이 등장하는 횟수도 잦다. 양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린 사례다. 물론 그러다 보니 돌격소총을 한 손으로 들고 쏜다거나 하는 해괴한 장면도 나오지만, 게임이다 보니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슈팅`은 누가 생각해봐도 VR에 너무나 적합한 장르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금의 VR 하면 먼저 떠올리는 장르기도 하고, 실제로 VR HMD에 딱 맞춘 듯 적합하다. 이 말은 곧, 그만큼 VR 시장 내에서는 경쟁이 거센 분야라는 뜻도 된다. 온라인 FPS의 부흥기에 국내 시장에는 수없이 많은 온라인 FPS가 등장했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확실히 차별화된 요소나 압도적인 완성도 없이는 승부를 내기 힘들 수도 있다. 이 점은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다 비슷해 보이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 VR의 '잠재력'에 대한 도전 -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은 액션 슈팅만큼이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종류도 굉장히 다양해 사실 `시뮬레이션`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묶기 힘들 정도다.

VR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상의 공간을 말하다 보니, 시뮬레이션이 뻗어 나갈 길은 무궁무진하다. 현재 VR 시뮬레이션 중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테이블 탑 시뮬레이터`의 경우 직접 만나서 해야 하는 보드 게임이나 테이블 탑 게임을 VR 공간으로 옮긴 것뿐이지만,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슷한 개념의 콘텐츠인 `VR Desktop`도 마찬가지. 이건 진짜로 컴퓨터 화면을 VR 가상 스크린으로 옮긴게 다지만 평가가 좋다. 아이러니한 건, 기자 본인도 수많은 VR 콘텐츠 중 이게 가장 끌렸다.



▲ 테이블탑 게임 전체가 VR로 흡수되었다.

구글에서 개발한 `틸트 브러쉬`도 꾸준히 좋은 인기를 끌고 있다. 3D 공간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 콘텐츠는 2D 공간에 한정되어 있던 `회화` 분야에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그 외에도 롤러코스터를 직접 만들고 타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나, 얼음 깨고 낚시를 하는 시뮬레이터, 라멘집 운영 시뮬레이터 등 다양한 시뮬레이션 콘텐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Owlchemy Labs'의 '잡 시뮬레이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잡 시뮬레이터'에서는 사무직부터 식당, 정비공, 편의점 카운터까지 네가지 직업을 직접 체험해볼수 있다.(물론 정상적으로 일을 하는 유저는 적지만...) 흔히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불리는 '심즈'의 경우 등장 초기 "누가 저 게임을 사겠냐"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되었다. 현실의 일을 그저 가상으로 옮기기만 해도 승부수가 될 수 있는 거다.

'잡 시뮬레이터'

주목할 점은 소재에 대한 편향성이 없다는 거다. 과거 VR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에 대해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대개 `아웃도어` 활동이 주 소재가 될 것이란 점에 의견이 모였다. 가상의 공간인 만큼, 접근성이 좋지 않은 소재들이 주가 될 것으로 예상한 거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데스크탑`이나 `테이블 탑`처럼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가능한 소재로도 좋은 평가가 나왔다. 이 점은 VR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딱히 편향성 없이, 어떤 것도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얼리 억세스'와 인디의 바다 - 게임 시장은 이제 시작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건 `개발사`다. 현재 스팀 VR 스토어에 등재된 콘텐츠들은 대다수가 `얼리 억세스` 혹은 `인디`라는 두 가지 태그 중 하나를 달고 있다. `얼리 억세스`는 아직 게임이 개발 단계에 있다는 거고, `인디`는 우리가 잘 아는 그 인디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큰 게임사라고 생각하는 속칭 `메이저 게임사`들은 아직 VR 스토어에 작품을 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 이거 없는 게임도 마찬가지로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지금 걸려 있는 작품 중 게이머 층이 흔히 안다고 말할 만한 개발사의 작품은 `유비 소프트`의 `이글 플라이트`정도뿐이다. 그리고 이 `이글 플라이트`는 음성까지 한글화되어있음에도 그리 큰 홍보를 하지 않았다. 아마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게이머들도 많을 거다.

물론 메이저 게임사들도 VR에 관한 관심을 꾸준히 드러내고 있고, 숨겨져 있을지언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들에게 프로젝트팀 하나 정도 꾸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덤으로 현재 등재된 작품들의 퀄리티도 `엄청나게 좋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실험적인 작품들도 많고, 썩 좋다고 말하지 못할 정도의 그래픽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 이정도만 되어도 반응이 좋다

기성 게임시장에서 도전은 모험을 넘어 `도박`이 되어버렸다. 이미 익숙해진 게이머들과 너무나 강력한 유행 코드, 그리고 개발비 차이로 벌어지는 작품 수준까지.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 개발사나 스튜디오가 기댈 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참신한 아이디어뿐이 남지 않았다.

이제 옆 동네에 새로운 시장이 보인다. 세계로 바로 통하는 직통 시장. 손님은 적지만, 잠재력은 있다. 어떤 시장이나 처음에는 '안될 거야'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막강한 메이저 개발사들도 아직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은 미개척지에 가까운 시장이다. 앞날을 생각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존재한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개발사의 몫이다. 하지만 확실한 비전과 아이디어, 그리고 의지가 있다면, 실행에 옮긴 타이밍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새로 열리는 시장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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